가난도 죄인가?
우리 속담에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가난이란 그만큼 헤어나기 어렵다는 뜻도 그 말 안에 들어 있다.
6·25를 겪은 사람들은 전쟁과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극소수의 사람들을 빼놓고 대부분 사람이 가난에 시달리게 된다. 배고픔은 인간을 짐승의 상태로 전락시킨다. 6·25가 끝나고 서울 수복이 된 후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지금도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시장바닥에서 남들이 깎아 버린 참외껍질을 주워 먹던 생각이 난다.
늘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고 쌀밥을 마음 놓고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학교에서 소풍 갈 때도 꽁보리밥에 오랜만에 깨소금을 뿌려서 가서 맛있게 먹었다. 흰 고무신이나 운동화는 꿈에도 신어볼 생각 못 했다. 검정 고무신도 아껴서 신었고 그것이 구멍이 나면 다시 땜질해서 신었다.
너도나도 모두 가난하므로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것이 바빴고, 조금이라도 잘살아 보려고 모두 입을 악물고 주린 배를 참으며 살아갔다. 모두가 가난하므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제 6·25전쟁이 끝난 지 40년도 더 지났다. 지금은 그 당시와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다. 재벌도 생기고 중산층도 있고 저소득층이나 빈민층도 있다. 현재 우리는 선진국의 대열에 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우리들은 아직도 사회의 각계각층이 서로 깊이 공감하여 협력할 줄 아는 의식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가난도 타고난다"라고 말한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든가 "가난도 타고난다"라는 말은 가진 자가 여전히 가진 자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 변명이면서, 또 못 가진 자가 좌절한 상태에서 내뱉는 절망의 소리이기도 하다.
가진 자가 사회제도를 통해서 못 가진 자가 가질 기회를 마련하고, 또 못 가진 자는 최대한 노력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우리에게도 바람직한 사회보장제도가 점차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모순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절실히 깨달을 때 비로소 사회 각 계층의 공감과 협력이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부자가 결코 자랑이 아니며 또한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애쓰고 함께 노력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 각자는 사회의 공정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회의 공정함과 정의로움이 현실적으로 확립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힘에서 가난을 극복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우리나라는 지금 세 가지 형태의 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대는 6.25와 그 전쟁 뒤를 경험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과
두 번째는 중진국 시대를 살아간 1980년부터 2000년까지의 2세대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2000년이 지나서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신세대들과의 3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물과 기름 같은 세대인 세 종류 의 세대가 살아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