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물든 단풍잎이 어느새 낙엽 되어 삭풍에 흩날린다. 냉기 찬 바람이 육신을 움츠리게 한다. 겨울의 전초전은 이미 시작되었고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댕그라니 벽에 걸려 있다. 예년 같았으면 해넘이 행사로 스케줄이 빼곡할 텐데 코로나 펜데믹으로 텅 비어있다.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시리다.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이맘때면 언제나 지나온 한해를 되새김한다. 알게 모르게 저질러진 업보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여 마음의 사진첩에 담는다. 선한 것은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첩에 담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악한 것은, 회한의 사진첩에 담아 개선의 정을 깨우치며 후일을 다짐한다.
한 해를 함께했던 사람들 중에 고맙고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매일같이 카톡으로 아침을 열어주는 사람, 고적한 날 소주 한잔의 우정을 청해오는 친구, 갓 담은 김장김치로 입맛 당겨주신 이웃 할머니, 참다운 문학을 위해 축적된 지성을 아낌없이 쏟아주신 교수님, 그리고 술 한잔에 늘그막 세월을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면 언제나 불빛 열어주는 동반자, 이 모두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렇듯 고맙기 그지없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내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그러나 누구보다 감사해야 할 사람은 무탈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지가 멀쩡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슬처럼 사라져간 이별에 가슴 아파한 적이 한두 번인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맥박이 뛰고 있다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기에 생명의 불꽃을 더욱더 다독여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돌이켜 보면 정성을 쏟지 못한 세상살이에 아쉬움이 남고 무심코 스쳐버린 일들이 회한으로 남는다. 삶에 지쳐 비틀대는 친구에게 문안 인사 자주 못 해준 냉정, 사랑하는 아내를 여의고 혼자 사는 친구의 슬픈 고독을 마음껏 달래주지 못한 무정, 살아생전 아내와 함께했던 추억이 생각나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며 눈물짓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했던 세월이 어느새 서산으로 기운다.
노후의 인생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울림과 조화로움이다. 수필창작과 인문학을 낙으로 삼고 문도들과의, 어울림에 한없이 기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담소할 수 있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가 않다.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멋진 인생임을 깨우치며 주위를 살펴본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보고파 전화를 하면 군말 없이 달려오는 벗이 몇 명이나 될까. 넉넉지가 않다. 세월 따라 흩어지고 운명을 다해버린 인연의 고리가 너무 아쉽다.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서기에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팔십 고개를 눈앞에 두고 보니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살가움보다 무던함이 좋다는 걸, 질러가는 것보다 때로는 돌아가는 여유로움이 좋다는 것을, 묵향같이 은은하고 그윽한 인연이 오래 간다는 것도, 깨닫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고 싶고 매력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매력 있는 삶일까.
영국의 캐서린 하킴 교수가 발표한 ‘매력자본(Erotec Capital)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매력이란 잘생긴 외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머 감각과 활력이 넘치고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는 멋진 태도나 기술을 말한다. 이런 멋진 태도나 기술은 나이가 많다고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질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라고 했다. 와락 가슴에 와닿는다. 실천 철학으로 가슴에 새긴다.
그는 칠십 대를 신 중년이라고 했다. 백세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삶에 썩 잘 어울리는 명언이다. 백수를 넘긴 원로 석학께서는 살다 보니 육, 칠십 대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직은 칠십 대 후반에 머물고 있으니 신중년이다. 신중년의 매력 자본을, 보다 많이 축적하기 위하여 수시로 문학의 길을 산책한다.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내 삶의 독백을 글 속으로 유인한다.
유수와 같은 세월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가는 세월이 더디게 느껴진다. 차라리 화살처럼 후닥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의 삶이 결코 고달파서가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 더 이상의 과오는 범하지 않아야겠다는 노파심과 조금씩 다가서는 황혼의 고독을 감당하기가 힘이 들 것 같아서이다. 이제는 긴긴 세월을 두고 응어리진 마음의 짐을 하나둘 세월의 강물위에 띄워보내련다. 강물은 바다로 흘러 더 넓고 깊은 마음으로 내 삶의 전부를 안아줄 테니까.
새해 첫날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아득한 추억 속의 한 여인이 생각난다. 갓 시집온 새색시가 시부모님 산소를 찾아 산길을 오른다. 그날따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빨간 치마 옥색 저고리가 눈발에 휘날리고 하얀 버선발에도 흰 눈이 쌓인다. 눈 속에 피어난 그녀의 하얀 미소가 그렇게 눈에 부실 수가 없다. 그때의 눈부심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은 흘러 그녀도 이제 신중년에 섰다. 반백 년을 나와 함께 해준 일편단심이 너무 고맙지만 병마에 시달리는 모습이 가련하여 가슴이 아프다. 하느님의 가호가 있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힘내요, 우리. 아자아자.
첫댓글 선생님 께서는 독자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글을 쓰십니다. "살가움 보다 무던 함이 좋고 질러 가는 것 보다 여유로움이 좋다"는 구절, 제 자신을 다시 한번 훑어보게 합니다. 꼭 헤민 스님이 말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찾아주심 감사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