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안밖으로 그렇다.
뜰 안 목련은 봄이라고 하얀꽃잎을 내보인다.
그런데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다.
올해는 봄이 더디 온다.
죽곡정사에는 동백이 많이 피었다고 전해준다.
어제는 보성 사암연합회에서 하는 방생에 참여를 했다.
벌교소화다리 위에서 했다.
다리 위에서 물로 투하시키는 미꾸라지들이 하우적이며 허공을 맴돌다가 물에 떨어졌다.
미꾸라지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떨어지는 순간 지금 나의 심리와 같지 않았을까?
허공에서 허우적 대는 그 짧은 순간!
다리 위에서 미꾸라지를 던져서 방생을 하였다.
방생을 끝내고 옴천사에서 탑을 보고 점심, 무의사, 월남사지, 백운동원림, 백련사를 차례로 다녀왔다.
무위사는 나에게 꽤나 의미있는 절이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입덧으로 아무것도 못 먹을 때다.
초파일이 되니 무위사를 가자고 하여 둘이 나들이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어렵게 갔는데 주지스님의 어머니가 나오시며 무척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하이고 우리 귀한 사람이 여기가지 왔네. 자네는 여기 있어. 저기서 밥먹을 사람이 아니냐"
하시며 나가시더니 초팔일 음식 중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상을 내 오셨다.
그런데 집에서는 한숟갈도 목을 넘기지 못하던 내가 그 나물과 밥은 다 먹었다는 것이다.
무위사와 가까운 백운동 원림을 찾았다.
전에는 전시관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시관 문을 열어 놓고 카페도 운영을 하고 있었다.
옛 문헌들과 글과 풍경, 은둔생활을 했던 분들, 다산선생, 차밭, 철저하게 산으로 가리워진 백운동 정원,
그렇게 또 시 한수를 읊조리며 월남사지를 찾았다.
진각국사를 위해 월남사를 짓었다는데 당시에는 그 터가 엄청났을 것이다.
삼층석탑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백련사로 간다.
백련사는 가 본다고 하고서도 가보지 못한 절이었다.
동백이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다산의 인생에도 깊은 관련이 있는
휘적휘적 동백림 사이를 걸어 올라가니 바다가 보였다.
다산초당을 간 적이 있어 그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는 안다.
다산은 강진에 남고 형님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야 했던 형제, 날마다 흑산도에서 오는 배를 바라보며 혹시나 형님이 오시지 않을까? 그리워 했다는 다산의 이야기는 20여년 전에 글로 쓴적이 있다.
초당 오르던 길 대숲에서 느꼈던 속삭임,
스님은 백련사 누각에 앉아 다산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갈 곳이 없어서 술집에 머물다가 백련사에 와서 해장스님을 만나고
해장스님은 다산을 만나 술을 배웠다가 40세의 나이로 떠나고
본부인이 보낸 붉은 치마를 마름하여 글을 쓴 것으로 하피첩을 만들게 된 배경이며,
노을 지는 강진 앞 바다를 보며 백련사를 떠나왔다.
백련사에서는 3월 14일 사찰음식 경연대회를 앞두고 절마당 치장이 한창이었다.
이쁜 사진을 찍었었는데 내가 못 찍고 찍어달라고 했더니 아직 사진을 안 보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