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의 마음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 라는 뜻의 '역지 사지(易地思之)'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한자를 들여다보면 '바꿀 역, 땅 지, 생각 사, 갈 지, 의 단어로 쓰여 있다. 땅을 바꾼다는 것인데, 우리는 처지. 입장을 바꾸다'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왜 '땅'(地)이 쓰였을까 궁금했다.
농업을 주업으로 했던 농경 사회에서 농사의 기본이 되는 땅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쌀이 수확되는 논은 중요한 자원이었고,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흔히 쓰는 표현 중에 '물꼬를 튼다'라는 말이 있다. 물꼬는 논에 물이 들어오거나 나가게 하기 위하여 만든 좁은 통로를 말한다.
위 논에 김 서방네, 아래 논에 이 서방네가 있었다고 한다. 김 서방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 물꼬를 막으니, 이 서방도 물이 필요하여 물꼬를 열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물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고, 바로 여기서 이 서방이 위 논을, 김 서방이 아래 논의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해 주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결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논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목 생활에서 참 어려운 점은 이렇게 처지를 바꾸어 본다는 것이다. 독신 서약을 한 사제가 혼인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이미 혼인 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가 사제로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처지를 바꾸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소통을 잘하고 있는가?'로 물어볼 수 있을 듯싶다. 역지사지를 잘하는 사람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다.
내가 남을 존경하고 배려하면 나도 존중과 배려를 받는다. 물론 살면서 정반대의 일도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 이 정신이 바로 역지사지의 궁극적 방향이 아닐까 싶다.
역지사지는 그냥 되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나와 '틀리다' 라는 '차별'(difference)의 면으로 볼 게 아니라, 나와 '다르다'라는 '차별화'(differentiation) 의 면으로 보아야 한다. 새해에는 '다름'을 인정하며,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해보기를 다짐해 본다.
덧붙임 " 역지사지를 영어로 하면"
"Don’t judge a man until you’ve walked in his boots."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 보거나 한 일을 해보지 않고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마라.) 라고 한답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영어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춘천주보 2023.01.08
사제 단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