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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선교 주일을 맞이해서 이렇게 킹스크로스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릴 드릴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오늘 또 목사님 말씀 통해서 선교 그리고 선교사로서의 보내심에 대해서 또 다시 한 번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돼서 저도 개인적으로 너무나 뜻깊고 그리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선교 주일을 맞이하여서 이렇게 간증과 이렇게 말씀 제가 부탁을 좀 받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떤 말씀으로 여러분들과 나누는 것이 좋을지 좀 고민을 좀 하다가 오늘 말씀 한 구절을 먼저 좀 나누고 제가 말씀을 좀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 1절 말씀인데요. 성경 있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고 짧은 구절입니다. 제가 말씀을 제가 말씀을 잠깐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 말씀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에 힘써 행하노라
1절 말씀입니다.
사실 저희 가족이 개인적으로 이 킹스크로스 교회에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지금 저희가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첫 번째 안식년을 가졌을 때 2014년 가을이었는데 그때 런던에서 저희가 안식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때 같이 예배드리고 1년 6개월 정도 됐었는데요. 그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 또 그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또 이 시간을 비로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교회 앞에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2장 말씀을 포함해서 갈라디아서 1장 2장 이 말씀에 보면은 사도바울과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그리고 베드로 요한 이렇게 우리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과 또 선교를 담당하였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목사님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은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의 사도로서 복음의 선교사로서 그리고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은 또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 지도자로서 이렇게 대비되는 모습을 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교를 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렇게 복음의 본질은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오늘 함께 읽으신 갈라디아서 2장 10절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고 있는 그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을 알 수가 있는데요.
사실 이 갈라디아서 2장을 이렇게 읽다 보면은 좀 유대인을 향한 유대인을 향한 이렇게 말씀 전하는 우리 초대교회 교부들과 그리고 이 이방인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사도바울을 비롯한 약간 좀 대비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할례를 하는 문제에 있어가지고 약간의 이견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그 모습과 달리 오늘 말씀에서 보신 것처럼 가난한 자를 생각해 달라는 그 말씀은 큰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초대교에서부터 지금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그들을 돕고 구제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들로 여겨졌고 그 점에 대해서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생각할 때 복음 전파와 가난의 구제만큼 우리 속에 머릿속에 쉽게 떠올리기 쉬운 모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와 제 가족도 의료 사역을 감당하는 전문인 선교사로서 그리고 또 제 아내는 이제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렇게 미술과 갖고 있는 달란트로 또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이렇게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단어가 어떻게 보면 가난이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과연 가난함을 우리가 어떻게 정의하고 또 바라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겠지만은 오늘 이 시간에는 저희들이 사역지에서 감당하였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초대교회 때부터 계속 강조되었던 그런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라는 점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가난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아무래도 이제 가장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재정이 부족해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상황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진 한 장 다음 슬라이드에 보여주 여기 이제 어린 소녀 한 명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가 13년 전에 말라위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선교병원에서 만났던 한 어린 소녀입니다. 한 5살 정도 채 됐을까 싶은 어린 소녀인데요. 어린 소녀가 하루는 이제 시름시름 앓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제가 사역하고 있던 서교병원에 찾아왔던 소녀였습니다.
소아과 병동을 담당하고 있던 현직 의사가 이 어린 아이를 아무리 진찰해도 왜 아픈지 잘 모르겠다면서 저에게 이 아이를 한 번 봐달라고 이제 연락이 왔었습니다. 제가 이제 이 소아과 병동에 갔더니 아이를 보면서 이제 진찰을 했더니 이제 이렇게 소변도 자주 본다고 하고요. 또 입도 자주 마른다고 하고 그리고 체중도 잘 안 는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여러 가지 생각해 봐야 될 질병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이제 소아당뇨 이제 의심이 되었고 혈액 검사를 해보니까 혈당이 정상보다 무척이나 높아서 최종적으로 소아 당뇨로 진단받았던 아이였습니다.
가난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 어린 아이 이야기하나 좀 의아해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왜 이 아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이 아이는 어떤 점에서 우리들이 선교지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난에 처해 있는 사람의 어떤 종합판 같은 아이였기 때문에 이 사진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아이는 말 그대로 가난한 집의 아이였습니다. 갖고 있는 부모가 이제 아버님이 이제 옆에 있는데 갖고 있는 돈이 부족해서 아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부모님은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서 이제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이제 병원으로 데려왔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해서 이제 경제적인 가난 우리가 쉽게 떠올렸던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부분 선교지의 상황이 많이 비슷한데요. 지금은 뭐 이렇게 선진국에서는 도시에서 사는 인구들이 훨씬 많지만 선교지에서는 이런 이제 시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아직도 높습니다.
하지만 아팠을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시설은 이런 선교지에 있는 곳에서도 다 이제 도시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시골에서 살고 있는 그런 모습 이제 그런 상황조차 이런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병원에 올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또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가난의 한 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아이는 당연하거니와 그리고 이 부모님들조차 이 병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사실이죠. 무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당뇨라는 진단을 저희가 내려주고 난 이후에도 당뇨병이 어떤 병인지 부모님조차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하였습니다. 그 무지로 인해서 병을 제대로 앓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지적인 가난을 겪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가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뇨라는 병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다음에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되고 또 어떤 음식은 먹지 말아야 되고 또 운동은 해야 되고 또 해야 한다면 언제 해야 되고 뭐 이런 후속적인 조치를 해줄 수가 있는데 이 당뇨라는 병 자체를 모르니 그 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 그리고 예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소규의 경일기와 다름이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이 아이의 부모에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이 아프다거나 또 혹은 연루하신 부모님들이 아픈 경우에 병원에 데려오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에 아이들이 아픈 것은 그냥 커가면서 그냥 어쩔 수 없이 당연히 생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현상이라고 이해하거나 아니면 연루하신 부모님들이 아프신 것도 노환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런 현상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그런 가난한 가정 가운데서도 이제 아빠가 아픈 경우에 가장이 아픈 경우에는 이렇게 빚을 내서라도 거기에 있는 사립병원을 찾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난을 겪고 있는 한 가족, 그리고 한 지역 안에서도 그 아픈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병원 치료를 어떻게 받는지 이렇게 달라지는 차별이 생기는 어떻게 보면 사회 문화적인 그런 차별에 의해서 생기는 그런 가난을 겪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말라리아에서 사역하는 동안에는 이 아이에게 정기적으로 혈당 검사할 수 있는 이제 혈당 검사 기계하고 그리고 또 인슐린을 처방 해줘서 인슐린 맞을 수 있도록 계속 도와줬는데요. 벌써 이제 시간이 12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이 아이가 어떻게 지금 그 운명이 되었는지는 저희조차 좀 짐작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때 이후로 이 병이 잘 조절이 안 됐다 한다고 이제 생각을 한다면은 아마 지금쯤은 여러 가지 당뇨 합병증으로 부상하고 있어 고생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이 사진 속의 아이를 만난 지 벌써 13년이 지났지만은 선교지에서 접하는 다양한 가난의 모습을 저희가 떠올릴 때마다 이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저희들 마음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다음 사진 좀 보여주십시오. 두 번째 사진은 이제 저희들이 이제 우간다에서 사역할 때 사진인데요. 저희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었던 것은 우간다에 있으면서 전쟁의 고통으로 낯선 타지에서 지내고 있던 남수단 난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내는 이제 남수단 난민 특별히 남수단 난민 여인들을 돕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역들을 왕성하게 진행을 했었는데요. 남편분들은 남수단 내전에서 이렇게 몸이 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혹은 전쟁통에 이제 목숨을 잃게 되어서 이제 여인들이 자녀들과 함께 낯선 타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제 우간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렇게 생활 기반이 취약하다 보니까 이제 그분들을 돕는 사역들을 이제 아내가 했었고, 저는 이제 남수단 난민촌을 방문해서 진료를 한다거나 남수단 난민촌 이웃들에게 그런 진료 활동들을 했었습니다.
오늘 짧은 시간 동안 그분들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그분들이 이제 남수단 내전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경험했던 그런 잔혹했던 모습들을 증언하는 것을 들을 때 저희들은 그런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적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 이야기를 다 직접 표현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형제에게 그리고 자녀가 부모를 향해 칼과 총을 겨누기까지 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모습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알게 하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옵니다. 이러한 전쟁을 통한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하고도 처절한 경험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의 가난해진 마음들을 잘 보듬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저희들에게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사실 좀 아까 동영상에서도 잠깐 보여드렸던 사진인데요. 여기 또 다른 가족이 있습니다. 여기 가족은 이제 아마존 아마존에 있는 가족입니다. 저희들이 이제 11년 정도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2022년 초에 이제 남미 페루 아마존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는데요.
지금 저희들이 제일 초점을 두고 하는 사역들은 이런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열대 감염병 환자들을 줄이기 위한 이런 다양한 사역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지금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 뎅기열의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같은 경우만 해도 남미 전체 대륙에 막 300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생겼고 또 그중에 많은 분들이 또 돌아가시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마는 제가 처음 이제 20년 전에 저희가 아프리카 죄송합니다. 페루 아마존에서 처음 활동을 한 3년 정도 이제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사실 이제 한 20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 다시 아마존으로 이제 돌아가게 된 그런 상황입니다. 그때 지금의 모습과 사실 20년 전의 모습이 이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제가 좀 많이 놀라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이런 이제 열대 감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안타까운 점은 이런 질병에 걸리시는 분들은 계속 같은 분들이 이제 똑같은 병에 반복적으로 걸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그분들이 살고 있는 이제 주거 환경에서 이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여기 보시면 벽과 지붕이 이렇게 막 뚫려 있고 이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 허름한 집에 살고 계시다 보니까 사실 모기는 뭐 이렇게 손톱보다 더 작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모기들은 저런 부실한 문틈과 지붕 그리고 벽들 사이를 통해서 너무나 손쉽게 들어오고 그리고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모기들만의 파티가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렇게 자꾸 물리다 보면 또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이런 질병에 자주 걸리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저희가 3년 전부터 이제 시작한 사역의 일환으로 이런 부실한 주거 환경 개선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제 저희가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있는 그런 교회를 통해서 가장 취약한 몇 가구를 선정하는 그런 작업을 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요. 일단 그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가구 예를 들어서 편부나 편모 가정인 경우가 선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이제 온전히 받기 어려운 그런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결정이었고요.
두 번째는 가정 안에 이제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이제 대상 가구로 고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전에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이런 질병에 자주 걸렸던 적이 있는 그런 가정을 고려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가정을 선정하여서 이렇게 부서질 것만 같은 집들을 고쳐드리겠다고 그 가정을 방문하여 어떻게 주택 개조를 해 나갈 건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진에는 좀 작게 보여서 잘 안 보이는데 여기 있는 가족들 이 있는데 여기 이제 어린 세 자녀를 홀로 키우는 이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막내는 이제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였고요. 근데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은 이렇게 집을 떠나서 이제 남편은 집을 떠나서 이제 혼자 지내고 이 여인이 오롯이 어린 세 자녀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저희가 이 가정을 방문했을 때 이렇게 도움을 드리겠다는 저희들의 이렇게 제안에 대해서 오히려 이렇게 되게 의심많은 눈빛으로 저희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도 이제 자기들을 자기 가정들을 도움을 주겠다는 이제 도움의 이런 요청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가와서 자기들에게 도움은 주지 않고 이제 마음의 상처만 안겨주고 떠난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또다시 그런 마음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면서 처음에 저희들의 제안을 좀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가정은 이런 경제적인 가난을 겪고 있는 것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마음의 문을 쉽사리 열지 않는 그런 아주 닫혀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엄마가 이런 마음속에서 지내다 보니까 거기 이제 자녀들도 이제 자신들의 공간을 갖지 못한 채 우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여러 번 찾아가서 설득한 끝에 이 여인의 집을 수리하고 고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이제 이 여인이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그제서야 자신의 속마음을 이제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는 이 여인이 이제 오래전부터 자신의 집이 너무 낡고 부실에서 이렇게 어린아이들과 밤에 잠을 잘 때마다 이렇게 허름한 문을 부수고 도둑이 집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은 그런 불안한 마음에 매일 지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이 부실한 문만이라도 고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오랫동안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던 중에 저희들과 이렇게 연결이 되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에 한편 기뻤으면서도 또 그동안에 피해 의식이 쌓여 있는 터라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노라고 저희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이제 집안 공사가 시작되면서 집을 나갔던 남편도 생면부지에 저희들이 이제 자기 가족을 돕고 있다는 그런 소문을 듣고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직접 집을 수리하고 고치는 작업에 자신의 힘을 보태겠노라고 이제 하면서 같이 이제 도움을 이제 주었는데요. 이제 몇 주가 지나고 나서 이제 집을 개조하여서 이렇게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집을 고쳐드렸는데 막상 공사 기간이 지나고 나니까 이 여인의 집은 단지 모기에게만 물리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됐을 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그런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마음이 평안을 되찾고 남편이 돌아와서 온전한 가정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엄마 아빠가 평안을 되찾게 되자 아이들도 그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집을 개조하면서 공부방을 만들어 주었더니 공부에 더 취미를 갖게 되었고 학교 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그런 결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단순히 이 가정이 이제 모기에 덜 물려서 이 질병에 덜 걸렸으면 좋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한 가정이 온전히 회복되고 또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는 그 놀라운 결과를 갖게 되어서 저희들도 얼마나 놀랍고 또 주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 가정의 가난을 온전히 다 구제한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스스로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드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읽었던 갈라디아서 2장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사도바울은 사역 중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구제 활동에 힘쓴 모습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역설적이게도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은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도움으로써 우리가 크리스천 됨을 이웃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희 가정은 고국 한국을 떠나서 멀리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사역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게 하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렇게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사역을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희들이 갖고 있는 그런 달란트를 지금 저희들이 있는 곳에서 쓰여지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여러분들 주위에도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분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로 여러분들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가난한 분들을 여러분들께서 마주하셨을 때 주님께서 허락하신 마음으로 돕고 그들을 위한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신다면 오늘 바울 사도가 했던 이 말들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태복음 25장 35절에서 40절 말씀을 읽으면서 제가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5절부터 4절까지 말씀입니다.
내가 줄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맛있게 하였고, 낙근이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줄이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은이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배웠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여러분 곁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한 분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그분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