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972호 선택과 책임, 내게 있는데 누굴 탓하랴? (고전2:9~16)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려면 하고, 하지 않으려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선택의 의지가 우리에게 있다는 시사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루를 살면서도
‘차를 가지고 출근할까,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선택해야 하고, 점심때면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선택해야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갈까 그냥 퇴근할까’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선택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냐, 따먹지 말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결국 따먹는 쪽을 결정했습니다. 당연히
그 책임도 아담의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평생 수고해야 함은 물론이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이 있게 되었으며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창3:16~19). 그런데 이에 아담이 반발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이 준 여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책임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열심이나 충성 이전에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것이냐 안 믿을 것이냐’가 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인데, 그 책임은 누구도 아닌 선택한 본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 신앙은 강요되지 않습니다. 선택권이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 또한 자신이 져야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아담처럼 누굴 탓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선택입니다.
신명기 30장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얘들아,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단다. 너희들은
어떤 것을 택하겠니? 나는 너희들이 생명과 복을 택하기를 원한단다.”(신30:19). 그러려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신30:20)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쉽게 말하면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로 압축할 수 있는데, 곧 예수를 믿기로
선택하면 영생이요, 믿지 않기로 선택했으면 영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선택은 인생의 방향을 말합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방향이 틀렸으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법이고, 아무리 선을 행한들 방향이 다르면 소용없는 법, 그래서 여호수아는 선택을
못하고 우유부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명한 것이고, 엘리야도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18:21)고 촉구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약속의 땅인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책임은 온전히 나오미의 것이므로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지만 나오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압을
선택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탓하는 대신 그는 회개하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룻1).
하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택해야
하고, 하나님 편을 택해야 생명과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이 열심과 충성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 ‘하나님의 일에, 신앙에 열심을 낼 것이냐, 충성을 할 것이냐, 아니면
대충 교회만 다닐 것이냐’의 선택도 본인의 것입니다. 당연히 그
결과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충성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받을 보응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충성된
자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마25:21)라고 하셨고, 충성되지 못한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충성하지
않은 사람이 되레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라고 주인 탓을 했습니다. 그가 ‘게으른 내 탓입니다.’라고 회개했더라면 어쩌면 회생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충성된 자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10). 남들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때 ‘목사님이 안 가르쳐줬다’고 제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분명히 충성에 대해 한문 풀이까지 해주며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바울처럼 주의 일을 함에 있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자가 되십시다.
십일조나 헌물도 선택입니다. 십일조를 안
한다고 해서 지옥 가는 건 아닙니다. 이건 선택사항입니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말3:10~12)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면 잘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무슨 일인가 될 듯하다가 안 되고, 인생이 삭막하고 풍성하지 않다면 그것은 십일조를 하지 않기로 선택한 당신의 책임입니다. 괜히 하나님 탓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선택에 따른 조건부의 축복을 이미 제시하셨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선택은 신앙적인 문제뿐 아니라
인생전반에 중요한 일입니다. 역시 그 선택에도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떤 청년이 유투브를 보고 사무실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요즘 불황이라 취직이 안 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듣고 있던 제가 그 청년에게 “왜 세상 탓을 해? 네 탓을 해야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네 탓이고,
능력이 없는 네 탓이지, 왜 현실을 탓해?”라며 야단을 쳤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현실에도 취직한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입니까?
가끔 자기가 좋다고 결혼해놓고 사이가 안
좋으면 부모에게 ‘왜 그 때 안 말렸느냐’고 항의하는 자들이 있는데, 선택은 자기가 해놓고 왜 부모 탓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죠.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선택하는 자는 그 선택의 결과를 자신이 받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또 병이 난 다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술 먹고 담배 피고, 운동 안한 나를 탓해야 옳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고 육체를 잘 간수해야 함을 알려주셨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영·혼·육의 선택에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좋은 결과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할렐루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운명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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