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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곽무천(郭茂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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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중국 |
분야 | 시 |
해설자 | 강필임(세종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
≪악부시집(樂府詩集)≫ 100권은 북송 곽무천(郭茂倩)이 편찬한 것으로, 시선집(詩選集)이나 사서(史書)에 산발적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던 선진(先秦)에서 당오대(唐五代)까지의 악부 문학을 성격과 용도, 시대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악부시 총집(總集)이다.
≪악부시집≫에는 총 5290편의 악부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 작가 이름이 있는 작품은 576명의 3793편, 없는 작품은 1497편이다[≪악부의 역사 연구(樂府の歷史的硏究)≫, 마스다 슈세이(增田秀淸)]. 작품의 성격에 따라 왕실의 교묘악장(郊廟樂章)에서부터 민간의 속가나 속요까지, 형식상으로는 악부 구곡(舊曲)부터 도시(徒詩), 신제(新題) 등에 이르는 각종 유형의 악부시까지 수록했는데, 각 악부 가사의 내원, 용도, 음악적 특징에 따라 모두 12종류로 나누었다. 교묘가사(郊廟歌辭), 연사가사(燕射歌辭), 고취곡사(鼓吹曲辭), 횡취곡사(橫吹曲辭), 상화가사(相和歌辭), 청상곡사(淸商曲辭), 무곡가사(舞曲歌辭), 금곡가사(琴曲歌辭), 잡곡가사(雜曲歌辭), 근대곡사(近代曲辭), 잡가요사(雜歌謠辭), 신악부사(新樂府辭) 등이다. 이 12개의 대분류마다 각각 총서(總序)를 두어 해당 가사의 성격과 역사적 변천을 개괄했다. 총서 아래에는 다시 곡조마다 제해(題解)를 두어 해당 곡조나 가사의 원류, 내용 및 특징 등을 설명했다. 가사의 수록은 고사(古辭)가 전해지는 경우는 고사를 먼저 수록하고 시대별로 문인들의 모의작(模擬作)을 수록해서, 각 시대별ㆍ문인별 작품의 내용과 예술적 수용 및 변천 양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곽무천의 악부 12분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교묘가사(郊廟歌辭)란 조정의 각종 제사에 사용되던 종묘제례악의 가사다. 고대 황제는 천지에 지내는 교제(郊祭)와 황실 조상들에게 지내는 묘제(廟祭)를 지냈다. 한대(漢代) 채옹(蔡邕)은 당시 음악을 ‘태여악(太予樂)’, ‘주송아악(周頌雅樂)’, ‘황문고취(黄門鼓吹)’, ‘단소요가(短簫鐃歌)’ 등 한악 4품(漢樂四品)으로 나누었는데, 그중 태여악과 주송아악이 교묘가사에 속한다(≪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 가운데 주석의 “一曰太予樂, 典郊廟ㆍ上陵ㆍ殿諸食擧之樂. …二曰周頌雅樂, 典辟雍ㆍ饗射ㆍ六宗ㆍ社稷之樂” 참조). 다만, 태여악과 주송아악에 속하는 악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현재는 알 수 없다. ≪악부시집≫에는 한대의 교묘가사로 교제에 사용된 <교사가(郊祀歌)> 20곡, 묘제에 사용된 <안세방중가(安世房中歌)> 17곡이 전해진다. 이후 교묘악장은 각 시대별로 황실의 신성성과 권위를 담아 용도별로 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상당수가 전해진다. ≪악부시집≫에는 교묘가사 12권이 전해진다.
연사가사(燕射歌辭)는 황제가 국가적 연회나 대사(大射: 고대 활쏘기 등과 관련된 일종의 의식) 등을 열 때 사용되는 악장가사다. 현재 한대의 연사가사는 전해지지 않는데, 한악 4품 가운데 주송아악과 황문고취 등이 제왕의 연회 등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진대(晉代)에 <원단행례시(元旦行禮詩)>, <식거악가시(食擧樂歌詩)> 등이 제작되어 송(宋)ㆍ제(齊)까지 연회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양(梁)과 진(陳)에서는 <상화오인(相和五引)>과 <준아(俊雅)> 등을 포함해 49곡이 제작되었다. 북위(北魏)는 북방의 정악(正樂)뿐 아니라, 연(燕)ㆍ조(趙)ㆍ진(秦)ㆍ오(吳) 등 남북방의 속악을 두루 갖추어 연회 음악으로 사용했다. 수(隋)ㆍ당(唐)에는 서북 이민족의 음악이 유입되어 연회 음악으로 애용되었다. 현재 ≪악부시집≫에는 서진에서 수대까지의 연사가사가 모두 3권 분량으로 수록되어 전한다.
고취곡사(鼓吹曲辭)는 단소요가(短簫鐃歌)라고도 불린다. 고취란 타악기와 취주(吹奏) 악기 위주로 구성된 연주 형식 혹은 연주 악곡을 일컫는다. 타악기로는 북[鼓] 혹은 건고(建鼓)가 대표적이고, 취주 악기인 퉁소[簫], 호드기[笳] 등과 동시에 연주된다.
고취곡사는 원래는 군악가사였다. 채옹은 <예의지>에서 “단소요가는 군악이다. 황제 시대의 기백이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위엄을 세우고 공덕을 알리며 적을 위협하고 무사들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었다(短簫鐃歌, 軍樂也. 黃帝岐伯所作, 以建威揚德ㆍ風敵勸士也)”고 했다. 위진 이후에는 왕조를 신성화하고 황제의 성덕과 무공을 찬양하는 지극히 아악적인 관제(官制) 고취곡사가 제작되어 조정에서 거행하는 각종 의식에나 공신을 치하할 때 사용되었다. 이처럼 고취가 국가적 행사나 황제의 출궁 등 어가 행렬 의식에 일부 사용되고, 가사도 국가의 권위와 왕실의 위업을 나타내면서 점차 의장악(儀仗樂)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의식악(儀式樂)으로서의 고취는 청대까지도 궁정이나 관가 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민간에서도 혼례나 장례 등에 애용되었다. 우리나라의 황해도 안악(安岳) 제3호 고분벽화의 대행렬도(大行列圖)에 묘사된 악대가 한대 단소요가의 악기 편성과 같은 것으로 보아, 고취곡사가 아주 이른 시기에 주변국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악부시집≫ 고취곡사에는 <한요가(漢鐃歌)> 18곡과 그에 대한 후대 문인들의 모의작, 위(魏)ㆍ오(吳) 및 이후 각 조대의 관제 고취 및 일부 개악가사(凱樂歌辭)가 모두 5권 분량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요가> 18곡명으로는 <주로(朱鷺)>, <사비옹(思悲翁)>, <애여장(艾如張)>, <상지회(上之回)>, <옹리(擁離)>, <전성남(戰城南)>, <무산고(巫山高)>, <상릉(上陵)>, <장진주(將進酒)>, <군마황(君馬黃)>, <방수(芳樹)>, <유소사(有所思)>, <치자반(雉子斑)>, <성인출(聖人出)>, <상야(上邪)>, <임고대(臨高臺)>, <원여기(遠如期)>, <석류(石留)>다.
횡취곡사(橫吹曲辭)는 북방 이민족 음악이 한대에 전해져 군악으로 사용된 곡조다. 현재 전해지는 횡취곡명은 한의 장건(張騫)이 서역에서 수입해 온 <마가두륵(摩訶兜勒)>을 이연년(李延年)이 <신성28해(新聲二十八解)>로 개작한 것이다. 횡취곡은 초기에는 ‘고취’로도 불렸으며, 북과 뿔피리[角]가 중심 악기여서 ‘고각횡취곡(鼓角橫吹曲)’으로도 불렸다. 후에 기능과 사용하는 악기에 따라, 조회나 도로의 행차에 의식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취’, 군대에서 사용하는 것은 ‘횡취’로 구분했다. 고취는 퉁소와 호드기가, 횡취는 북과 뿔피리가 중심이 된다. 수(隋) 이후에는 고취와 더불어 횡취도 황제나 왕공귀인(王公貴人)들의 행차 시에 노부(鹵簿)로 사용되었다.
현재 횡취곡사에는 이연년이 개작한 신성28해 중 10곡(<황곡(黃鵠)>, <농두(隴頭)>, <출관(出關)>, <입관(入關)>, <출새(出塞)>, <입새(入塞)>, <절양류(折楊柳)>, <황담자(黃覃子)>, <적지양(赤之揚)>, <망행인(望行人)>)과 후에 다른 횡취곡 8곡(<관산월(關山月)>, <낙양도(洛陽道)>, <장안도(長安道)>, <매화락(梅花落)>, <자류마(紫騮馬)>, <총마(驄馬)>, <우설(雨雪)>, <유생(劉生)>)이 더해져서 총 18곡의 곡명이 전해지는데, 원래의 고사(古辭)는 전해지지 않고 문인의 모의작만 전해진다. 또 제량(齊梁) 시기에 북조에서 전해진 고각횡취곡 60여 수가 <양고각횡취곡(梁鼓角橫吹曲)>이라는 명칭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곡명으로 <기유(企喩)>, <낭야왕(瑯琊王)>, <자류마>, <절양류>, <농두> 등이 있다. ≪악부시집≫에는 횡취곡사가 5권이 전해진다.
상화(相和)란 앞 사람의 선창에 노래 혹은 악기 연주로 화답하는 노래 방식을 일컫는다. 이때는 현악기나 관악기가 사용된다. 상화가사(相和歌辭)는 상화라는 형식으로 가창되는 한대의 민간 가곡인데, 악부 기관에 채집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상화가사에는 한대 사회의 생활상과 의식 형태가 반영되어 있다. 위(魏)에 와서 조씨 삼부자[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식(曺植)]가 애창해 직접 가사를 짓거나 개작해서 궁정 연악으로 사용하면서 점차 경전화(經典化)ㆍ귀족화되었다. 후대의 많은 문인이 상화가사에 대한 모의작을 많이 남겼다. ≪악부시집≫에는 18권이 전해진다.
곽무천은 상화가사를 연주되는 악기와 연주 방식에 따라, 상화육인(相和六引), 상화곡(相和曲), 음탄곡(吟嘆曲), 사현곡(四弦曲), 평조곡(平調曲), 청조곡(淸調曲), 슬조곡(瑟調曲), 초조곡(楚調曲) 등 8개로 분류해 수록했다. 상화곡 가운데 대표적인 곡명으로 <강남(江南)>, <해로(薤露)>, <호리(蒿里)>, <맥상상(陌上桑)> 등이 있다. 평조곡에는 <장가행(長歌行)>, <단가행(短歌行)> 등이, 청조곡에는 <예장행(豫章行)>, <상봉협로간행(相逢狹路間行)> 등이, 슬조곡에는 <선재행(善哉行)>, <서문행(西門行)>, <동문행(東門行)>, <부병행(婦病行)>, <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 <염가하상행(豔歌何嘗行)> 등이, 초조곡에는 <백두음행(白頭吟行)> 등이 있다.
곽무천은 청상곡사(淸商曲辭) 서(序)에서 청상악(淸商樂)의 개념 변천에 대해서 서술했다. 요약하면, 청상악은 청악(淸樂)이라고도 하며, ‘9대에 걸쳐 전해 오는 음악(九代之遺聲)’으로 유래가 오래된 음악이다. 원래는 상화 3조(相和三調), 즉 상화가사에 속하는 평조ㆍ청조ㆍ슬조를 아우르는 명칭이었다. 후대 북조에서 아속(雅俗)이나 신구(新舊)의 구분 없이 중원(中原)의 상화가사 등과 남조의 ‘청상신성(淸商新聲)’을 모두 아울러 청상악이라고 했다.
하지만 ≪악부시집≫ 청상곡사에 실제 수록된 작품은 그중 동진ㆍ남조에서 유행하던 ‘청상신성(淸商新聲)’이다. 강남의 오성가곡(吳聲歌曲), 형초(荊楚) 지방의 서곡가(西曲歌) 및 강남농(江南弄)이 여기에 속하며, 문인들의 모의작도 전해진다. 오성가곡에는 <자야가(子夜歌)>,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 <화산기(華山畿)>,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등이 대표적이고, 서곡가로는 <오야제(烏夜啼)>, <삼주가(三洲歌)> 등이 있다. 강남농에는 <강남농(江南弄)>, <채련곡(採蓮曲)>, <양춘가(陽春歌)>, <상운락(上雲樂)> 등이 있다. 청상곡사는 모두 8권이 전해진다.
고대에는 연회를 개최할 때 반드시 춤이 있었고, 그 춤에는 반드시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 가사가 있었다. 그래서 한대 이후로 악무(樂舞)가 특히 발전했다. 무곡가사(舞曲歌辭)에는 조정의 제사 등에 쓰이는 아무(雅舞)의 가사인 아무가사와 조정의 연회에 사용되는 잡무(雜舞)의 가사인 잡무가사가 있다. 아무로는 문무(文舞)나 무무(武舞)가 대표적이며, 아무가사는 교묘가사와 내용이 유사하다. 잡무로는 <공막(公莫)>, <파투(巴渝)>, <반무(槃舞)>, <비무(鞞舞)>, <탁무(鐸舞)>, <불무(拂舞)>, <백저(白紵)> 등이 있으며, 처음에는 민간에서 시작되고 나중에 점차 조정에 채용된 것이 대부분이다. 잡무가사의 내용은 상화가사와 비슷하다. 현재 ≪악부시집≫에는 무곡가사 5권이 수록되어 있다.
금곡가사(琴曲歌辭)는 금(琴)으로 연주되는 악곡의 가사다. 금 연주는 고대 문인들에게 인격 수양이나 정서 함양을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 인식되었고, 따라서 문인들은 금곡을 애호했다. ≪악부시집≫에는 당요(唐堯), 우순(虞舜), 주(周) 문왕(文王) 및 한(漢) 채염(蔡琰)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후대의 가탁(假託)으로 여겨진다. 그 외의 금곡가사는 대부분 남조와 당대 문인의 작품이다.
금곡에는 오곡(五曲), 구인(九引), 십이조(十二操)가 있다. 오곡에는 <녹명(鹿鳴)>, <벌단(伐檀)> 등 5곡명이, 구인에는 <열녀인(烈女引)>, <정녀인(貞女引)>, <사귀인(思歸引)>, <공후인(箜篌引)> 등이, 십이조에는 <의란조(猗蘭操)>, <월상조(越裳操)> 등이 있다. 금곡가사는 모두 4권이 전해진다.
잡곡가사(雜曲歌辭)에는 진한(秦漢) 이후 문인들의 다양한 악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잡곡’이라는 명칭은 내용상 문인들의 언지(言志), 그리움이나 이별의 슬픔, 전쟁이나 행역의 고통, 인생의 각종 우수 등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어서 붙은 듯하다(≪악부시집≫ 권61 <잡곡가사>의 “雜曲者, 歷代有之, 或心志之所存, 或情思之所感, 或宴游歡樂之所發, 或憂愁憤怨之所興, 或離別悲傷之懷, 或言征戰行役之苦, 或緣於佛老, 或出自夷虜, 兼收備載, 故總謂之雜曲.” 참조). 잡곡가사는 작품의 내용이나 풍격이 상화가사와 비슷하다. 하지만 잡곡가사에는 처음부터 음악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서정 시가로 지어진 작품이 상당수에 이른다. 유협도 조식과 육기의 작품이 대부분 음악에 연주되지 않아 ‘괴조(乖調)’라 불렸다고 밝혔다(≪문심조룡(文心雕龍)≫ <악부(樂府)>의 “子建ㆍ士衡, 咸有佳篇, 幷無詔伶人, 故事謝絲管, 俗稱乖調, 蓋未思也” 참조). <군자유소사행(君子有所思行)>, <상가행(傷歌行)>, <처박명(妻薄命)>, <미녀편(美女篇)>, <결객소년장행(結客少年場行)>, <장상사(長相思)>, <행로난(行路難)>, <보허사(步虛詞)> 등이 대표적인 곡명이다. 잡곡가사는 현재 18권이 전해진다.
근대곡사(近代曲辭)는 성격상 잡곡가사와 유사하나 수ㆍ당 시기에 중국으로 새로 유입된 곡조의 가사들이며, 송의 곽무천이 ≪악부시집≫을 편찬할 때는 수ㆍ당대가 비교적 근대에 해당해서 붙여진 듯하다(≪악부시집≫ 권79 <근대곡사>의 “近代曲者, 亦雜曲也. 以其出於隋唐之世, 故曰近代曲也” 참조).
근대곡사는 주로 궁정의 연악에 맞추어 불렸다. 수(隋) 개황(開皇) 초기에는 남조 음악으로 구성된 청상기(淸商伎) 외에 서북 지역 이민족의 악무인 서량기(西涼伎), 고려기(高麗伎), 천축기(天竺伎), 안국기(安國伎), 구자기(龜茲伎) 등으로 구성된 7부악(七部樂)이 궁정 연회악으로 사용되었다. 수 양제(煬帝) 이후 당대(唐代) 무덕(武德) 초년까지는 9부악(九部樂)이 사용되었고, 이후 다시 입부기(立部伎)와 좌부기(坐部伎)로 재구성되었다. 천보(天寶) 이후에는 서량악(西涼樂)과 구자악(龜茲樂)을 중심으로 한 200여 곡이 연악으로 사용되었다. 때문에 근대곡사의 가사는 연악가사적 성격이 강하며 당오대 사(詞)의 발생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다. 근대곡사는 4권이 전해진다.
잡가요사(雜歌謠辭)는 음악 연주 없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다(≪이아(爾雅)≫의 “徒歌謂之謠” 참조). 따라서 엄격하게는 악부시라고 할 수 없지만, 그 풍격이 악부시와 유사해 별도로 구분되고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대의 상화가사나 남조의 오가 등도 원래는 음악 연주 없이 민간에서 불리는 도가(徒歌)의 형태였고, 나중에 궁중이나 귀족에 의해 음악 연주와 배합된 것이다.
잡가요사에 수록된 작품은 주로 진한 이래의 민간에서 불린 도가나 동요이므로 민간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악부 곡조가 없는 도가의 형태고 특정한 시대에 주로 불린 것들이어서 후대 문인들의 모의작은 거의 없다. ≪악부시집≫에는 7권이 수록되어 있다.
당대 문인들은 유가적 시교관(詩敎觀)을 실천하기 위해 한위(漢魏)의 악부시, 특히 상화가사, 잡곡가사 등을 모방해 새로운 제목과 제재로 악부시를 창작했는데 이를 신악부(新樂府)라 한다. 신악부는 한 악부의 정신을 계승해 현실을 고발하거나 풍자했는데, 처음부터 음악으로 연주되지 않는 순수한 문인 시가로 창작된 작품들이다. 성당(盛唐) 시기에 이미 등장했고, 중당(中唐)에 이르러 본격적인 문학 풍조를 형성했다.
신악부는 일반적으로 즉사명편(卽事名篇), 즉 내용에 따라 제목을 짓는 신제악부(新題樂府)다. 왕유(王維)의 <도원행(桃源行)>, 이백(李白)의 <정야사(靜夜思)>, <새상곡(塞上曲)>, <새하곡(塞下曲)>, 두보(杜甫)의 <애강두(哀江頭)>, <애왕손(哀王孫)>, <병거행(兵車行)>, <비진도(悲陳陶)> 등과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新樂府)> 50수 가운데 <도주민(道州民)>, <두릉수(杜陵叟)>, <매탄옹(賣炭翁)>, <채시관(采詩官)>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11권이 전해진다.
≪악부시집≫은 시대별로 도당(陶唐)에서 오대(五代)까지 작가로는 주(周) 문왕(文王) 등 고대 황제부터 문인은 물론 작자를 알 수 없는 백성의 민요까지, 성격상으로는 궁중의 교묘악장에서부터 민간의 속가ㆍ속요까지, 형식상으로는 전아한 4언의 악장에서부터 도시(徒詩)까지 다양한 유형을 광범위하게 수록했다. 이처럼 수록 범위가 넓고 유형이 다양해, 송 이전 중국 악부 문학의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ㆍ정리한 악부 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악부는 그 범주가 넓은 만큼 악부 분류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 각 시대별로 악장의 성격 및 용도 등이 달랐고, 시대적 변천에 따라 원래의 악장 역시 다르게 수용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많은 문인 학자들이 각 악장가사의 성격과 분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곽무천이 ≪악부시집≫에서 사용한 12분류가 악장가사의 특징을 살려 비교적 개괄적이고 간략하게 구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에도 악부 분류는 대체로 곽무천의 것을 따른다.
≪악부시집≫은 각종 고대 악서(樂書)나 서적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는데, 여기에 인용된 고악서 대부분이 현재는 전해지지 않아 고대 음악의 역사나 악부 변천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남조 초기의 장영(張永)의 ≪원가정성기록(元嘉正聲伎錄)≫과 왕승건(王僧虔)의 ≪대명삼년연악기록(大明三年宴樂伎錄)≫, 남조 진(陳)의 지장(智匠)의 ≪고금악록(古今樂錄)≫ 등은 위진남북조의 악부, 음악사, 궁중 의례 및 연악(宴樂)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이들 자료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악부시집≫을 통해서만 그 부분적 면모를 알 수 있다. 또 ≪악부시집≫에는 당 오경(吳競)이 편찬한 ≪악부고제요해(樂府古題要解)≫, 치앙(郗昻)이 찬한 ≪악부고금제해(樂府古今題解)≫, 작자 미상인 ≪고제해(古題解)≫, 송 심건(沈建)이 편찬한 ≪악부광제(樂府廣題)≫ 등 100여 종의 악부 관련 서적을 인용했는데, 이 역시 현재 상당 부분이 전해지지 않아 ≪악부시집≫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악부시집≫ 판본은 많지 않다. 비교적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사부총간(四部叢刊)≫ 영인 급고각본(汲古閣本), ≪사부비요(四部備要)≫본 및 1955년 문학고적간인사(文學古籍刊印社)의 송영인본(宋影印本) 등이 있다.
1979년 중국 중화서국에서 송영인본을 저본으로 삼고, 급고각본과 각 사서의 악지와 작가의 문집과 ≪옥대신영(玉臺新詠)≫, ≪예문류취(藝文類聚)≫, ≪문원영화(文苑英華)≫, ≪한위육조백삼명가집(漢魏六朝百三名家集)≫, ≪선진한삼국진남북조시(先秦漢三國晉南北朝詩)≫, ≪전당시(全唐詩)≫, ≪시기(詩紀)≫, ≪고악부(古樂府)≫ 등을 참고로 새로운 교점본(校點本)이 출간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