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받는 사람이 오히려 단명한다.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데이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이 단명한다는 논문은 있다. 무의촌일수록 장수한다. 이는 과학적이다. 의사에 가니까 이것저것 하게 된단다. 의사에 가지 않으면 약을 안 먹고 검사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장수한다. 사소한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게 좋다. 1969년 필자가 대학을 졸업 시 콜레스테롤 정상치는 260이었다. 10년 후는 250으로 결국 지금은 230이다. 누군가 기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기준치 10을 내리면 약을 먹는 사람이 1,000만 명 늘어난다. 여기에 어용학자가 끼어들고, 240 이상이면 심장병에 걸린다는가 뇌졸중에 걸린다든가 하며 그들은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위협한단다. 기준치가 넘으니 정밀검사를 받으라 하고 약을 처방한다. 환자는 20~30년 약을 먹어야 한다. 얼마나 고마운가? 기준치를 내리면 의료기관도 제약회사도 이익을 본다. 이것이 대사 증후군 건강검진의 본질이라고 입에 올릴 필요도 없단다. 필자는 중성지방의 기준치는 150이지만, 아니 200이 돼도 걱정할 일이 아니란다. 삶과 죽음에는 LDL콜레스테롤이든 HDL 콜레스테롤이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불안을 부채질할 뿐이다. “일본의 의료는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주장한다. (과연 한국이라고 다를까요? 답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판단이다.)
사람은 고혈압으로 죽지 않으며 일본의 뇌경색은 거의 의사가 발생시킨다. 혈압이 높으면 의사는 안심한다. 그러나 낮으면 의사는 긴장한단다. 뇌졸중은 세 가지다. 뇌출혈, 뇌경색, 지주막하출혈이다. 뇌에 혈관이 찢어진 것이 뇌출혈이고, 뇌혈관이 막히는 것이 뇌경색이다. 도랑에 흐림이 늦어지고 뭔가 걸리면 막힌다. 혈압이 높아 관을 잘 통과하면 뇌경색은 일어나지 않는다. 혈압은 뇌출혈과 관계가 있으나 13%이고, 뇌경색이 84% 주류다. 지주막하출혈은 3%다. 혈압이 높은 사람이 뇌경색을 걱정해 약을 먹는다는 것은 완전 잘못이다.
대사 증후군은 한마디로 바보 놀음이고 뼈를 강화하는 약을 먹으면 뼈가 점점 약해진다. 나이는 예순인데 신체나이가 일흔이라면 어떤 처방을 말할까? 답은 세 가지다. “단백질을 섭취하라, 채소나 과일을 먹고 항산화물질을 섭취해라, 운동해라.”뿐이다. 의료기관은 의사를 시켜서 고액 기계의 감가상각을 위해 건강한 사람을 불안에 빠트려 검사받게 한단다. 불안을 안고 병원을 찾아오면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불안하기만 하다. 건강검진에 가장 나쁜 건 뢴트겐 방사선이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다리가 저리다고 해도 의사들은 뢴트겐을 찍어댄다. 위는 10~15분이나 뢴트겐을 쬐면서 본다. 이런 검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도 되는지 묻고 싶단다. 그리고 그 흉부 뢴트겐을 공부한 적이 없는 아마추어 의사가 본다. 이상 여부를 모르니 CT 검사로 돌린다. 혹시 암이라면 오진의 소송을 당하기 싫으니까 정상인도 CT를 찍는단다.
암을 빨리 발견해도 의미가 없다. 암을 조기 발견한다는 것은 뢴트겐으로는 환상이다. 내시경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 빠르다. 위 카메라나 장 카메라는 피폭의 염려가 없고, MRI도 피폭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문제는 조기 발견도 수명연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단다. 암 수술받고 살아남은 사람은 가짜 암을 수술한 결과이다. 라고 주장한 사람은 게이오대학의 ‘곤도 마고토’ 선생이다. 그는 이것을 가짜 암이라 부른다. 진짜 암은 이미 목 속 여기저기 퍼져나가고 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실이 그렇단다. 그러니 긍정적 사고로 살아가라 그리고 자기 신체 감각을 존중하라. 위암 검진은 일본과 한국에서만 시행한다고 ‘아사히 신문’이 2010.04.01.에 보도했다. 의사들이 용기를 내어 행동한다면 일본의 의료비는 대폭 줄어든다, 그리 줄어든 의료비를 다른 부흥 원조에 쓰고 피난민을 돕자 그것이 일본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필자는 주장한다.
일본에는 무라 사회란 문화가 있다. 무라는 일본어의 마을을 뜻하는 말로 촌락 내에서 사회구조를 일컫는다. 기존의 관습을 지키는 경향이 강하여 이를 따르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자에 대하여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관여한 자 모두를 이단자 취급하여 왕따를 시키는 문화다. 한 무라에 반기를 들면 다른 무라에서도 공격받고 사회에서 배척당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내부고발은 인정하지 않는 사회구조가 되어 있다. 스모, 경찰, 검찰, 관청, 기업, 방송국, 신문사 등도 똑같은 무라다. 되어서는 안 될 무라가 되어서 기득권을 옹호한다. 사회적 역할도 대의명분을 내거는 간판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료는 환자의 건강이 무라의 이익보다 우선시한다. 의료는 무라의 구성원인 척하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무라와 더불어 사는 것만이 확실하고 안전한 길일 뿐,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이 의사가 환자를 못 본 체하게 된 이유란다. 자기들 세계에 신분을 감추는 것은 경찰관, 검찰관, 재판관, 세무서, 관료, 교사들도 공통적이다. 자신이 속한 무라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방사선과는 원래 외과, 내과, 같은 진료과가 아니다. 진료과는 환자를 위한 것이나 방사선과는 의사의 위한 것으로 새로운 포지션을 요구한 제4 내과 정도였다. 몸집이 커져 방사선과가 된 것이다. 방사선과는 꼭 필요한 진료과가 아니기에 환자에 대한 책임이 없다. 식도암, 폐암, 두경부암 등 경우가 방사선 치료가 일반화될수록 환자에게 이롭다. 이제 무라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서 일하게 하려면 진료과 무라의 지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진료과 구분은 의사를 위한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므로 진료과는 증상에 따라 나눠야 한다. 이것이 프로젝트팀 의료제도다. 즉 두통, 요통 하나의 진료과로 대응하기 어려운 병을 프로젝트팀은 얼마든지 필요하다. 외래, 입원, 치료 후의 경과 관찰 과정을 통해 검사, 투약, 수술 등을 일관되게 담당한다. 그래야 환자 숫자를 늘리기 위한 기계적인 작업이 없어지고 환자당 맞춤 대응이 이뤄진다. 프로젝트 의료는 의사에 얼마나 돈을 줘왔느냐는 먹잇감 취급하던 환자가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대접받는다.
건강검진이란 상품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1970년대 초반에야 일본은 전후의 영양 부족이 해결되고 포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질병 구조의 변화, 즉 감염증 중심에서 만성질환 중심으로 옮긴 것은 1955년 경이다. 1978년에 세계도 최고의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알마타 선언‘이 나왔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3의 여학생에 시가 전액 부담으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을 접종하면서 발송통지서를 학부모에 보냈다. 필요성과 부작용을 숙지하시고 보호자와 본인이 납득한 상태에서 접종해달라는 안내문이 동봉되었단다. 접종의 자기 책임론이다. 성 경험이 없어야 큰 효과를 본다며 권장한다. 이것은 괴이쩍은 예방의학의 예로 든 것이다. 요컨대 자궁경부암은 100% 예방할 수 없고 도리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고 사망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건강 미리 챙기기를 절대 선으로 여기는 관념에 편승하여 4년에 매출을 두 배나 올린 백신 비즈니스가 진전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내과 의사)는 주장한다.
필자는 자궁근종에 걸려 자궁을 들어낸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근종을 진단받았을 때 1주일 전에 자궁 검진에서 근종을 어찌 발견하지 못했을까 의문을 가진다. 그녀는 유방촬영술에서 유방을 선반에 올려놓고 기묘한 자세로 실행한 X선 촬영도 받았다. 검진 결과는 암세포가 아니라 선종이란 결론이 났다. 유방을 가진 여성을 유방을 가진 생물로 취급받는다. 무엇보다 검사 대상 장기에 특정한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외는 보지 않는다. 더구나 검사에 따른 리스크가 생길 가능성이 있더라도 그보다는 치료라는 명분으로 검사 대상인 병을 중시한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암 검진받지 않았다. 필자는 가정과 교사로 20년을 근무하다 퇴직하여 고향에서 영양사로 일하는 여성이다.
“건강검진을 받으려고 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부정적이다.” 암 검진에서 검사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비교해 보면, 총사망률은 검사한 사람 쪽이 도리어 높다. 이는 검사가 무의미하다는 결과를 드러낸다. 지금은 건강 불안과 의료과잉이 문제다. 예방을 강조하면 검사 횟수가 늘고 수요가 확대된다. 그리하여 산업 종사자의 일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고액의 검사 기계를 사들인 의료기관이 감가상각을 보전하기 위해 기계 가동률을 높일 수밖에 없어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를 늘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태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검진의 자질한 수치에 마을을 빼앗겨 미세한 악의 징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 라 대표 필자는 주장한다.
2022.12.15.
건강의 배신-2
이노우에 요시야스 엮음
김경원 옮김
돌베게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