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1992) 선생의 수필집 ‘산을 생각한다’를 우연히 접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유럽이나 중국의 여러 산을 유람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의 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선생의 글에는 서울 근교인 북한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설악산에 대해서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조물주가 한반도에서 백두산을 만들고 나서 너무 험하다고 생각되여 금강산을 만들었는데, 지나치게 기교를 부렸다고 반성하여 다시 설악산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설악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네요. 첫째 교이불교(巧而不巧), 둘째 험이불험(險而不險), 셋째 고이불고(高而不高), 넷째 웅이불웅(雄而不雄), 다섯째 수이려(秀而麗).
소싯적에 여러 번 드나들던 설악산을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얼핏 3, 4십년은 되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빠 젊은 날의 추억이 아련한 설악산을 찾지 못했는지.. 그래서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는 일부러라도 꼭 한계령에 오르리라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지난 7월 중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고교동창 가을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답사팀에 합류하여 동해안을 둘러본 후 설악산을 넘어 원통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터널을 관통하는 미시령 코스가 빠른 길이나 모처럼 한계령을 넘어보는 게 어떻냐기에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오색(五色)을 지나자 ‘희미한 옛사랑’을 찾아가는 넘처럼 가슴은 뛰었으나 정작 그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네요. 너무 오랜만에 오르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녹음이 울창하여 옛 자태가 들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계령 휴게소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느새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옛날에는 엄청 오래 걸렸던 길로 기억되는데, 이제는 차가 좋은데다가 직접 운전하지 않고 편안하게 뒷좌석에 앉아왔기 때문이겠지요. 차에서 내려 건너편 산마루를 둘러봐도 도무지 생소한데, 뒤돌아본 ‘한계령 휴게소’는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의 북적거림은 온데간데 없고 적막감마저 들 정도로 한적합니다. 미시령 빠른 터널 코스를 마다하고 이곳까지 올라오는 한가한 넘들이 별로 없다는 게지요.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하릴없이 기념품을 둘러보아도 추억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네요. 한계령(寒溪嶺)의 또 다른 이름인 오색령(五色嶺)처럼 온통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 나무잎이 성겨져서 바위가 제법 들어날 때 쯤 다시 한번 찾아 오렵니다, 이루워 질지는 몰라도..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에 얽힌 이야기
양희은의 노래도 좋지만 특히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 곡입니다. 그룹 ‘시인과 촌장‘의 멤버였고 지금은 목사가 된 하덕규가 작사 작곡한 노래로 알려져 있었지요. 그러나 원 작사가는 오색이 고향인 이름없는 시인 정덕수가 불우했던 젊은 시절, 19세의 나이에 쓴 연작시의 일부를 노래말로 옮긴 거라네요.
원시를 붙입니다.
한계령에서 / 정덕수 시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 육천 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981년 10월 1일 설악동에서 출발하여 화채봉을 거쳐 대청봉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1981년 10월 3일 서북주릉을 경유해 한계령으로 하산할 때 종일 궂었던 날씨가 개었습니다. 마지막 구간의 전망이 좋은 바위에 올라가 쉬며 편지지를 배낭에서 꺼내 쓴 시가 이 ‘한계령에서’입니다.)
첫댓글 한계령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있어요.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