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래 글·사진 _ 길에서 생각을 얻다
가자미
1.
옛날, 동해바다에서였다.
어느 날 메기장군이 물고기들을 모아 놓고 지난밤 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 그런데 날이 추웠다 더웠다 하더니 갑자기 눈이 내렸다.”
망둥이가 해몽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주 좋은 꿈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르니 용이 되는 꿈이지요. 날이 덥고 춥고 눈이 내리는 것은 날씨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지위에 오를 것입니다.”
메기장군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고, 크게 웃다가 입이 찢어졌다. 그때부터 지금의 메기입이 된 것이다. 이때 가자미가 나서서 초를 쳤다.
“에이, 그건 죽는 꿈입니다. 구름 위로 오른다는 것은 낚시에 걸려서 하늘을 만난다는 것이고, 추웠다 더웠다 하는 것은 석쇠에 얹어져서 뒤집히며 구워지는 것이고, 그때 눈이 내리는 것은 때맞춰 소금이 뿌려진다는 것이죠.”
이에 화가 솟은 메기가 얼마나 세게 가자미 뺨을 때렸던지 가자미 두 눈이 한쪽으로 쏠려 버렸다. 놀란 망둥이는 그때 눈이 튀어 나왔다. 지금의 모습들이 그때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민담은 가자미의 눈에 대해서 이렇게 전해 오고 있다. 이를 보면 입은 화(禍)를 부르고 귀는 화(和)를 이룬다. 새겨 볼 만하다.
2.
그러니까 가자미의 눈이 처음부터 한쪽에 쏠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건 생태학에서도 밝혀져 있다. 사실 어린 가자미의 눈은 몸 양쪽에 따로 있다. 이런 물고기는 서서 유영(遊泳)생활을 하므로 측편형 물고기라 한다. 어린 가자미는 플랑크톤을 먹기 때문에 서서 생활을 해도 문제가 없다. 어릴 때의 가자미는 측편형 물고기다. 그런데 자라면서 서서히 한 쪽 눈이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두 눈이 모인다. 이때부터 누워서 먹이활동을 한다. 위를 향한 쪽만 눈이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종편형 물고기라고 한다. 이처럼 가자미의 두 눈이 모이게 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이를 보면 삶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나를 바꾸는 것이 쉽게 적응하는 길이다. 가자미가 알려 주는 지혜다.
3.
가자미가 누워 지내게 되자 움직임도 위아래로 리드미컬해졌다. 춤을 춘다. 이를 두고 예로부터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가자미를 나비접자(蝶)와 발음이 같은 접어(鰈魚)라 불렀다. “접어가 동해에서 많이 나므로 우리나라를 접역(鰈城)이라 한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있는 기록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동해에선 가자미가 많이 잡혔다. 예전에도 그랬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 중심이 정자항이다.
우리가 정자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물고기는 가자미였다. 들어오는 배마다 선창에다 가자미를 부린다. 크기에 따라 분류하고 있는 아낙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팔아요?”
“…….” 한 마디 대꾸가 없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미 다 팔 데가 따로 있다는 거였다. 그 옆에서 돌문어를 파는 아낙네가 한마디 한다. “문어도 기억해 주세요.” 돌문어 역시 정자항에선 흔하다. 오늘 저녁식사는 돌문어로 정했다. 해파랑길에서 가자미는 언제든 먹을 수 있을 터이니까. 가자미는 동해안 모든 지역에서 잡히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