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되고 있다 / 정희연
장문의 편지가 왔다. 어버이날 고마움을 담은 글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교환학생으로 2023년 1학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에게 받은 것이다. 선물이라며 5만원권 한 장도 같이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에서 벗어나, 기숙사에서 3년을 보내고, 경상남도 인제대학교 의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슈퍼맨처럼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그 크기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가정을 이룬 후 직장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근면과 성실을 무기로 앞을 보며 달려왔다. 쥐구멍에도 해는 들어왔다. 회사 여직원을 통해 아내를 만났다. 전폭적인 지지자가 생겼다. 아내는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처가는 전문건설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장모님은 나를 예뻐 했다. 주말이면 처가로 갔고 늘 어머니는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맛있는 음식을 내어 주었다.
직장생활 5년 후 사업체를 차렸다. 장모님의 도움이 컸다. 건설회사였다, 건설은 나라의 사회기반시설을 주로 하는 만큼 법리적인 것부터 건설의 일머리까지 전반적인 지식 필요했다. 시작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종 업계의 보증 없이는 입찰 후 계약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10년 동안 도로, 골프장, 지하철역, 교량, 하천, 산업단지 조성등 많은 성장도 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아들도 머리로 그리고 몸으로 같이 체험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산다. 모두가 다르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따돌릴 수 없는 일이다. 어울려 같이 해결해야 한다. 동료로, 선후배로, 고객으로 때론 갑을 관계로 가는 곳마다 엮인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신도 감정도 그렇다. 어떨 때면 꿈속으로까지 들어와 힘들게 한다.
순도 100%의 금이 없는 것처럼 세상에서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어떤 것이든 틈이 있고 흠이 있다. 나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실성, 인내력, 그리고 기술력이었다. 설계서를 보고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투입비가 어느 정도 들어갈 것이지 읽어내는 역량이 있었다. 입찰 결과가 나오면 다음 날 아침 회사로 찾아가 사무실 앞을 지켰다. 사장님과의 면담을 청했다. 대표이사의 명함이 나의 전폭적인 지지자였다. 효과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지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후로 20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직장인으로 보수를 받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하니 마음이 새롭다. 호주머니가 풍족하고 가정이 평안해야 무슨 일을 시작해도 안정되기 마련이다. 내게는 아내가 있고 배우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자녀가 있다. 그때까지는 돈이 나오는 창구를 튼튼히 해야 했다. 그래서 직업만큼은 굳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챙기고 미리미리 준비했다. 어려운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직접 만나서 해결했다.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음에서 생겼다. 그것이 좋지 않은 관계로 이어졌다.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읽으려 노력했다. 해결할 방법과 그 과정을 민원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 과정에 공을 들였다. 규정상 여건상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20년 6월에 주식을 8월에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주식시장은 급하게 떨어졌고 불확실성 시대에 시장과 세상은 멈추었다. 학교도 어린이집도 식당도 문을 닫았다. 나라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신 돈을 풀었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 19의 발생원인도 찾으면서 하향하던 주식시장은 상승으로 전환해 1년 내 올랐다. 직장에만 충실한 일벌레로 금융지식은 짧았다. 이때부터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글쓰기 공부도 같이했다. 월요일 오후가 되면 긴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주 주제가 뭘까? 긴장 속에 있다가 과제를 주면 그때부터 상상의 나라로 변한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호기심 많은 하룻강아지다. 서론 본론 결론 무엇을 쓸까 고민한다. 그리고 과거의 내 체험의 전부를 스캔한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글자를 써 나간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다. 글이 엉뚱한 데로 흐르고 문맥도 많지 않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생각할 엄두도 없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한 장 반을 넘겼다는데 100점을 준다. 뒤돌아 읽어 보니 엉망이다. 문단마다 독립을 외친다. 고치고 또 고친다. 이제 뭐가 맞는 것인지 더 복잡해져만 간다. 3학기째 하다 보니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수요일 목요일에 제출하던 습관을 일요일 저녁으로 바꾸었다. 일주일 내 글과 함께했다. 화요일 오후다. 결과는 절망적이다. 하루아침에 배움이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평생 해야 할 공부라는 걸 알려주는 시간이다. 마음이 편해졌다. 온통 붉은색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살아남으려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굴하지 않고 써야 하고 먼저 꼬그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들과 딸이 보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데 그 말이 무섭게 다가온다. 성인으로 성장해 앞에서 이끌어 주기가 이제는 벅차다. 도서관을 찾는다. 제목이 맘에 들거나 글자체가 눈이 잘 들어오는 책을 고른다. 정리되지 않을 때도 많다. 무작정 읽는다. 중요한 내용은 메모한다. 2016년부터 전투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벌써 시작한 지 8년째가 되어간다. 그러다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후부터 즐거움이 더해졌다. 그것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바르게 알려주시는 교수님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답장을 써야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어떤 길을 가든지 그 길에 관심을 가질 때 길이 열리며,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고 했다. 식어버린 후에는 아무리 망치질을 해도 원하는 모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이 늦었다. 겨우 막차에 올랐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독서와 글쓰기에 중독되어 가면서 나와의 약속이 생겼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사람, 평생 공부하는 사람, 즐거움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다.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첫댓글 착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좋은 글 잘 읽었었습니다.
모처럼 집에 모면 뒤 따라 다니며 봐 줘야 하는데 밖에서는 할 일 하고 다니나 봅니다. 아들을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중독입니다.
푹 빠져 보세요.
제목을 바꿔야 하나 봅니다. 중독을 바라는 마음인데....
가족에게 편지 쓰는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중독까지 됐다니 응원합니다.
또 글이 몸을 앞서갔나 봅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데..... 중독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선생님 멋지십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부족한게 많아 할 일이 더 많은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정희연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글도 갈수록 좋아집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고압습니다.
아들한테 편지 받았다니! 부러워요.
돈이 필요한 건가? 하하하!
선생님,
저도 글쓰기와 독서에 중독되려고 노력중인데 좋은방법도 알려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노력 중입니다.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중독 되고 싶다'로... 하하하!
선생님의 노력 덕분인지 글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매끄러워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생님이 멋집니다.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5월의 하늘이 더욱 푸르게 보입니다.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8년째 책 읽기를 열심히 하셨으니 이제 글로 나올 일만 남았네요.
어찌 어찌 하여 이곳 까지 왔고 뒤돌아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갈 길은 멀어 보이나 선생님들이 걸어온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합니다. 같이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