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195. 달팽이
언젠가 나는 우리 집 옆 뜰에다 아주 작은 밭을 일구었다.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거름흙을 사다가 둔덕을 만들어 그 곳에 들깨를 심었다.
들깨 모는 떡잎부터 잎맥이 뚜렷한 깻잎 모양을 하고 있어서 들여다 볼 수록 신기하고 소소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일주일만 더 자라면 비록 작지만 한 번쯤 뜯어다가 삼을 싸 먹거나 양념 간장을 발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날이 새기 무섭게 달려가 들여다 보곤 했다.
그런데 날마다 한 잎 두 잎 줄어든다 싶더니 어느 날 아침에 보니까 작은 꼬챙이들만 서 있고 모조리 없어졌다.
너무 실망하고 놀라서 Arnel에게 물어봤더니 Worm과 Snail이 다 먹었다고 한다. 그 때까지 나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빼앗겨 버린 허탈감에 나는 다시는 밭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고 작은 밭둑은 빗물에 씻겨 땅처럼 납작해지고 질긴 풀이 다 덮어버려서 그냥 울타리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번엔 우리 집 현관 둘레로 파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웬일인지 시들거리고 꽃송이도 옛날만 못한 것 발견했다.
땅이 거칠어진 걸까? 우기에 비가 많이 와서 뿌리가 좀 상한 걸까?
언젠가는 보식을 좀 해 주거나 거름흙이라도 보충을 해 주어야 되나보다 생각하며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기둥에 매달린 큰 달팽이를 보았다.
자세히 보던 나는 더욱 놀라서 소리쳤다. 그 꽃 나무의 우거진 잎새 속에 엄청 큰 달팽이가,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촘촘한 잎새와 가지 사이에 숨어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게다가 달팽이가 붙어 있는 주변은 벌써 잎은 다 갉아 먹히고 누렇게 말라죽고 있는 게 아닌가!
꽃도 왠지 실하지 않다 싶더니 그 원흉이 달팽이였다. 프랑스 요리론 일품이라던데 저만큼 큰 달팽이라면 먹을 것도 푸짐할 것 같다.
Arnel을 시켜 수십 마리를 잡아 내었다. 내 밭의 들깻잎을 모두 갉아 먹은 것도 그 놈들일까?
Arnel은 Worm이라는데 지렁이도 아니고 그건 또 어떤 놈이었을까? 구더기 종류인가?
자고 나면 개미 집이 여기저기 생기고 여간 성가시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달팽이까지. 그리고 아직은 정체를 모르는 Worm까지.
그 후로 나는 다시 아기자기한 내 밭을 가꿀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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