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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교사들
- 다양성으로 학교를 숨 쉬게 하는 교사들의 이야기
저자 이윤승·김헌용·선영·애리·유랑·조원배·함께 걷는 바람·진냥·김은지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23년 5월 15일
정가 17,000원
쪽수 277쪽
책 크기 145*210mm
ISBN 978-89-6880-177-8 (03370)
분류 사회과학》 교육학》 교육에세이
인문》 교육학 》 교육에세이
에세이》 한국에세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 그러나 학교에 필요한 사람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벗어난 교사들의 이야기
+ 책 소개
교사는 다른 직업에 비해 유독 ‘정상적인’ 존재들로 상상되곤 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의 지배적 규범과 가치를 가르칠 것을 기대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사들도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삶의 모습만을 보여 줄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다 보니 ‘교사’라는 단어와 ‘소수자’,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장애가 없고 이성애자이며 중산층의 정상 가족 출신의 사람들일 것만 같다. 초·중·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둔 모범생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당연히 교사들 중에도 장애인, 성소수자 등 수많은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 참여한 교사들은 남들과 다른, 약점으로 비치거나 ‘가르칠 자격 없음’으로 간주될 수 있는 점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 이윤승은 학교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자퇴하고, 당시의 자신에게 필요했던 교사가 되기 위해 수년간의 도전 끝에 사립 학교로 돌아간다. 김헌용, 조원배는 각각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가지고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들이다. 이들은 세간의 불신과 달리 학생들과 ‘충분한’을 넘어 ‘특별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한편, 장애 교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선영은 동성 파트너와 비공식적 이혼을 한 경험을 학생들과 간접적으로 나누며 가족 형태의 정상성에 도전한다. 애리는 교사가 되어서야 진단받은 ADHD를 받아들이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필요했던 돌봄을 전하려 한다. 함께 걷는 바람은 졸업생들을 학교 바깥에서 재회하고 커밍아웃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한 교실 안에 있으면서도 각자 고립되어 있는 퀴어들의 존재를 일깨운다. 유랑은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이 만든 성소수자 동아리의 일원이 되어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고 운동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여는 등의 활동을 함께 한다. 김은지는 가정과 대학의 바깥에서 경험했던 관계와 배움을 학생들과 나누려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학교 안에서 차별을 겪고 벽에 부딪혀 온 경험에 대한 고발이자, 자신의 소수자성을 숨기거나 덮어 놓고 교사로 살아갈지를 고민해 온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의 고민은 교사와 학생 사이 전통적인 관계를 벗어난다. 나아가 동시대인으로서 학교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바꾸어 나갈 것인지 고민한다. 하나의 키워드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들의 다채로운 삶은 학교라는 공간에 어떤 파문을 만들어 낸다. 다름을 지닌 어떤 학생들에게 힘이 되고, 꼭 남들과 비슷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된다. 또, 자연스레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우리 사회가 학교에, 교사에게 요구하는 협소한 규범과 삶의 모습은 당연한 것인가? 특정한 계급과 집단의 가치관을 반영한, 차별적인 것은 아닌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학생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보다 바람직한 교사상은 아닐까?
+ 추천의 글
“명시적, 잠재적 교육과정에는 소위 정상으로 여겨지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산층, 정규직 등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정상 바깥에 위치한 존재들이 비가시화되고 배제되기 일쑤이다. 이 책에는 학교에는 정형화된 모습의 교사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은 정상 바깥의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정상 규범에 포섭된 교사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살아간다. 별별 교사들의 이야기가 교사를 넘어 학교 안에서 비가시화된 수많은 존재들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희망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이들이 학교에서, 고유한 존재의 빛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남미자 | 경기도교육연구원
“나는 중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마주할 때면 ‘재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초·중·고를 별 탈 없이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교사가 된 모범생들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공부를 못하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이해할 필요도 못 느낄 것 같은 ‘재수 없음’을 느꼈다. 그러다 좀 더 자유로운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교사=재수 없음’ 공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교사들을 몇 명 만났다. 별별 교사들의 존재는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학교에 답답함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 많은 교사들에게 읽히고, 더 많은 교사들이 별별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으면 좋겠다.”
김찬 | 고등학생,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권교육 중에 참여자들의 커밍아웃이나 숨겨 왔던 경험을 만날 때가 있다. 오랫동안 ‘말할 권리’를 갖지 못했던 ‘별별 존재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이 책은 모나지 않기를 요구해 온 학교를 비집고 나온 각양각색의 삶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교사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 온 교사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 교육 시스템에 대한 통찰과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으면서 ‘별별 교사’도 이러한데 ‘별별 학생’은 어떤 분투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이들에게 ‘별별 교사들’의 이야기가 삶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북돋는 숨구멍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잎 | 인권교육센터 ‘들’
“성인이 된 자기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 어려워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다양한 성인 성소수자 롤 모델을 보여 주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 다양한 모습을 커밍아웃한 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퇴를 경험하거나 성소수자이거나 페미니즘과 장애 등에 대해 고민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없는 작은 20평 공간에 함께 있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준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학교가 누구나 안전하게 나의 삶을 고민하고, 경험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성인이 된 나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 보고 고민하며 차별 없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선호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나는 집이 필요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집. 나는 길이 절실하다.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떠나는 길. 별별 교사들의 이야기에는 길도 있고 집도 있다. 그들도 나처럼 집도, 길도 간절하다. 그래서 나처럼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도 하다. 장애, 성적 지향, 가난, 자퇴, ADHD……. 이런 말들을 평범하게 여기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 기적은 필요한 기적이고 일어나야만 하는 기적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배제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꼭 필요한 기적이다. 이런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과 이 책을 나누고 싶다.”
비비새시 | 전북 중등 교사
+ 책 속에서
만약 열여덟 살의 이윤승에게 지금의 통제와 규칙들, 폭력을 참으라고만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스무 살의 이윤승은 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쓰거나 영화를 배우러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자퇴해서 좋았던 것들을 자퇴하기 전에 느낄 수 있었다면, 학교가 그런 곳이라면, 학교에 나를 위한 교사들이 있었다면. 온갖 생각이 매일 매일 반복되었다. 나도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학생으로가 아닌 교사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열일곱의 이윤승과 열여덟의 이윤승이 원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었다.
- 이윤승, 〈너의 삶은 꼭 누군가와 닮지 않아도 된다고〉, 27~28쪽
작년 말, 어느 수업 중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지 한 학생이 편지를 써 주었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오니 이름도 없는 편지가 있었다. 그는 편지에 고맙다고 썼다. 자신의 꿈을 말하면 비웃을 것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이런 꿈을 가져도 되나 고민했는데 내 이야기들을 들으며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웃긴 사람이 해 주는 웃기는 이야기 같았는데 그 안에 나의 실패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고.
‘나처럼 하면 돼’,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내가 웃으며 던지는 자퇴하라는 이야기에 웃기만 하고 자퇴하지 않는다. 웃긴 선생의 웃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삶이 가능하고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삶과 꼭 닮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선택하고 또 선택하다 보면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어딘가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
- 이윤승, 〈너의 삶은 꼭 누군가와 닮지 않아도 된다고〉, 49쪽
가끔은 장애와 화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오곤 하는데 아이들이 내 눈이 괜찮다고 말해 준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홍채 렌즈로부터 해방됐다는 것은 내가 나의 장애를 더욱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편견의 조각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이들 덕이었다. 그날 아이들의 환대에는 오랫동안 내게 걸려 있던 봉인을 푸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그 마법의 주문은 나를 남들의 시선 안에 가두는 대신 홍채 렌즈를 렌즈 통에 가두어 버렸다. 마치 요술 램프에 지니를 가두어 버리듯.
- 김헌용, 〈교무실의 이방인〉, 76~77쪽
한 사회가 장애와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달성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그것을 생략한 채 우리의 교육은 지금 여기까지 왔다. 익숙한 모국어의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 이방인이 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오로지 그 과정을 통해서만이 기존의 체제가 얼마나 부실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한 단계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이 사회가 장애인의 언어를 배우기 전에는 결코 장애인을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말하기로 한 것이다. 요컨대 이방인의 언어이다. 교무실에서 누구나 눈치채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방 안의 코끼리’가 되는 대신 존재를 명확히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 교사’이다”라고.
- 김헌용, 〈교무실의 이방인〉, 78~79쪽
눈을 떠 보니 뱁새가 퀴어인 세상이었다. 스스로가 황새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랑이를 기꺼이 찢고 있는 뱁새들이 많은 세상이었다. 가랑이를 찢지 않고 뱁새인 채로 살고 싶은 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꿈이 되어 버린 세상이었다. 페미니즘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 그랬다. 처음에는 내가 숨 좀 쉬고 싶어서 붙들었던 것이 페미니즘이었다. 그런데 교사로서 많은 아기 뱁새들을 만났다. 드러내지 못하는 비밀을 품고 있는, 혹은 다름을 숨길 수 없는 작은 새들. 그들과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이 생기니 어느 때보다도 삶이 치열해졌다.
- 선영,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니까〉, 95~96쪽
익명으로 각자의 비밀 소원을 적은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 교실 한가운데로 날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다른 친구의 비행기 하나를 골라 소리 내어 읽어 주는 활동이었다. 친구의 소원을 읽고 나서 소원이 이루어지길 응원하는 말도 한마디씩 해 주기로 했다. 테슬라 CEO가 되고 싶다는 재미있는 소원들도 있었지만 의외로 간절한 진심이 느껴지는 소원들이 많았다. “이혼한 엄마, 아빠가 재결합해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엄마가 겨울에 일하면서 손이 많이 텄는데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엄마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생들의 소원을 들으며 감동받지 않기로 했다. 각자의 비밀들이 우리를 연결해 준다고 믿으며, 비밀이 비밀일 필요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선영,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니까〉, 101~102쪽
내가 ADHD 진단을 받은 교사라서 좋은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나랑 비슷한 것 같은 어린이를 잘 찾아낸다. 그에게 잽싸게 상담을 권유하거나 다른 적합한 수업 방식을 제안할 수 있다. 어린이의 문제 행동에 조금 더 관대해질 수도 있다.
“너 이 수학 문제 힘들지. 과정을 좀 더 쪼개 볼까?”
“수업이 지루해 미칠 것 같을 때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종류의 행동을 같이 생각해 보자.”
“샘은 의사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없지만, 사실 내가 어렸을 때 너랑 되게 비슷했거든.”
- 애리, 〈나는 서른 살의 ADHD〉, 121~122쪽
진단 결과를 이야기하며 의사 선생님은 내 직업을 듣더니 꽤나 좋은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황급히 아뇨 저는 공문 하나를 써도 회수와 기결 취소를 세 번씩은 해야 하는 사람이고 때때로 어린이들에게 급발진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하고 되물었다.
“어쨌든 한 시간에 한 번씩 과업이 바뀌는 거니까요.”
“아…….”
“그리고 ADHD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창의적인 사람이 하기에 좋은 직업이잖아요, 교사는.”
“그래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훌륭한…… 더 잘 버는…… 그런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약간 아쉬워요.”
“그러면 교실에서 어렸을 때의 선생님 같은 아이들이 없는지 잘 살펴보세요.”
이 말에는 정말 화들짝 놀랐다. 나 같은 어린이! 나 같은 어린이가 나처럼 뒤늦은 ADHD 진단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의 질병은 정말 여러모로 쓸모 있겠군. 최고야.
- 애리, 〈나는 서른 살의 ADHD〉, 129~130쪽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받게 된 질문은 이곳에서 ‘나’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하게 했다. “남자친구 있어요?”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며 설레던 마음이 멈칫하게 되었다. 자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을 적어도 세 번 갈아타야 올 수 있는 산골 마을. 학기 중에는 개인 시간이 많지 않아 연인이 있다면 그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보다는 ‘남자친구’라는 단어에 꽂혀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숨겨야 할까? 솔직하게 말할까? 혹시나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그 수많은 생각 중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면접 중 커밍아웃을 하면 채용되지 않았을 때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떨어진 게 아닐까 하며 다시 굴을 파고 들어가게 될 나 자신이었다.
- 유랑, 〈우리의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때〉, 141쪽
한 학생이 ‘전 쌤이 성소수자여서 좋아요’라는 말을 했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한 쌤이 성소수자여서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그런 쌤이 우리 곁에 있어서 좋다고. 이날의 대화는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여전히 큰 힘이 되곤 한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며 내가 꿈꾸던 교사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소수자인 학생들에게는 힘이 되어 주고, 아닌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존재를 알려 줄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
- 유랑, 〈우리의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때〉, 161쪽
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리고 일반 중학교 교사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재학 중에 청신경이 손상됐다. 1987년 6월항쟁 직전, ‘호헌철폐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무기한 단식 농성 투쟁 중 새벽에 학교를 덮친 경찰들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다쳤다. 청신경이 손상된 사실은 시간이 한참 더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청력이 한꺼번에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니라 조금씩 서서히 감퇴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교사로 살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 조원배, 〈당신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69쪽
무엇보다 학생들과의 소통과 만남에서 더 많이 신경 쓰는 게 하나 있다. 진심을 다해 ‘마음’으로 만나고, ‘내 삶’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과 걸림돌을 넘어 서로 더 깊이 있게 만나고 소통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수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조원배, 〈당신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75쪽
혁수는 내가 담임을 맡았던 6학년 때도 이미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담임이었던 나를 이렇게 게이 술집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혁수도 교실에서 성소수자는 자기 혼자일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고 하니, 성소수자인 우리는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침묵을 강요당하여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섬처럼 외롭게 지냈던 것이다.
- 함께 걷는 바람, 〈학교가 차별이 아닌 존엄을 가르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205~206쪽
게이이며 교사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이며 교사인 나는 이 땅에 소수자로 살면서 또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에 더 민감하게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의 힘은 교사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더욱 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교사의 힘은 권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가장 약한 존재를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 함께 걷는 바람, 〈학교가 차별이 아닌 존엄을 가르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221~222쪽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학생들이 와서 현수막과 손 피켓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급식소로 가 보았다. 파업 지지 선전물들이 온데간데없었다. 그걸 떼서 학생들에게 돌려주지도 않고 그냥 처분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버려졌을 거라고 짐작하며 나는 분노했다. 온 학교의 교사들에게 정이 떨어졌고 나 자신이 그야말로 상처받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나의 순진함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그날 이후 이 싸움은 나의 싸움이 되었다. 누가 그것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고, 날 부르고 2시간이나 기다렸던 회의에 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누구와 싸우는 것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그리고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 학교에서 싸웠다. 학생들의 대리인인 것처럼 결정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결국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 진냥,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복수’를 도모하다〉, 237~238쪽
학생들이 하교하고 나서 빈 교실에서 탈진한 채 엎드려 있었다. 그 학생과 몸싸움을 한 것이 그날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의 나는 유난히 폭력적이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한참 엎드려 있다 일어나 사과문을 썼다. ‘미안해요’ 같은 글이 아니라 단체나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것과 같은 정식 사과문을 썼다. 그리고 학생 수만큼 뽑아 책상 위에 한 장 한 장 올려놓고 퇴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거의 모든 학생이 사과문을 읽고 있었다. 교실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내가 그 학생과 몸싸움을 하던 내내 아무 소리 없이 있던 학생들은 내 사과문 또한 아무 소리 없이 읽고 있었다. 긴장된 교실의 공기 속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나와 몸싸움을 한 그 학생 역시 사과문을 읽고 있는 것만 확인했다. 그리고 1교시가 시작되었고 그냥 나는 수업을 했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그날 오후쯤 학생들이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진냥,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복수’를 도모하다〉, 242~243쪽
보통 교사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어떤 과목 가르치세요?’라는 질문이 뒤를 잇는다. 이에 ‘자립 교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문학 수업을 합니다’, ‘치유하는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답변하곤 하는데, 어김없이 상대방의 아리송한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내가 교사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경쟁 위주 입시 교육에 반대하며 설립된 학교에서 대학 졸업 여부를 묻지 않고 학력이 아닌 삶의 이력을 근거로 함께하자고 제안해 주었기 때문이다.
- 김은지, 〈경로 이탈의 삶이 배움이 될 수 있을까〉, 248쪽
“쌤은 대학 어디 나왔어요?”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어찌할 줄 모른 채 애써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나 대학 안 나왔는데?”
태연한 척 답했지만 그 찰나에 수많은 감정과 물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더 빠르게 뛰게 했다. (……)
“헐 대박, 드디어 우리 학교에도 이런 쌤이 왔어!”
‘드디어’ ‘이런 쌤!’ 귓가를 스치는 격앙된 어조에서 의도의 긍정성을 확인하고 되물었다.
“무슨 뜻이야?”
“맨날 우리한텐 대학 안 가도 된다 얘기하고서 정작 본인들은 다 좋은 대학 나왔잖아요. 근데 이제 진짜 대학 안 나온 쌤이 온 거죠.”
- 김은지, 〈경로 이탈의 삶이 배움이 될 수 있을까〉, 260~261쪽
+ 목차
추천의 글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사람들
프롤로그
학교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 그러나 학교에 필요한 사람들
너의 삶은 꼭 누군가와 닮지 않아도 된다고 | 이윤승
자퇴한 학생, 교사로 돌아오다
교무실의 이방인 | 김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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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니까 |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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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 살의 ADHD | 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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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때 | 유랑(유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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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조원배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하지만, 마음에 귀 기울입니다
학교가 차별이 아닌 존엄을 가르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 함께 걷는 바람
학생에게, 동료에게, 가족에게 나눈 나의 커밍아웃 이야기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복수’를 도모하다 | 진냥(이희진)
학교도, 교사도 아직 용서하지 못한 교사
경로 이탈의 삶이 배움이 될 수 있을까 | 김은지
대학 밖에서 모색한 자립의 경험을 나누다
+ 저자 소개
이윤승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하루 종일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인간이지만 친구만 있다면 세상 모든 주제로 하루 종일 떠들기를 좋아한다. 라디오헤드가 싫어하던 ‘Talks in math’의 상황을 즐기는 수학 교사다. 수학으로 시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학교 유일의 자퇴생 출신 장애인 교사라 아주 만족하며 지낸다. 공저로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대안의 길을 찾는 교사들》이 있다.
김헌용
언어, 음악, 장애를 인생의 주제로 삼고 살아가는 영어 교사다. 서울 강동구라이프를 즐기며 특기는 ‘보지 않고 이해하기’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으로 석사 학위를 수료했고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 번역가 양성 과정에 강사 및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9년에 세계 최초의 장애인 교원으로만 구성된 노동조합인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함께 쓴 책으로 《교사》(꿈결 잡 시리즈), 함께 번역한 책으로 《로스트 보이스 가이》 등이 있다.
선영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결혼과 이혼을 겪은 초등 교사다. 다양성이 개인을 더 자유롭게 하고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 믿음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페미니즘 때문에 첫 학교에서는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 좀 외로웠다.
애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모든 것이 쌓여 있는 교실에서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다. 쌓여 있는 모든 것 중에 어린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이 많은 걸 어떻 게든 다 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등 교사는 여러모로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유랑(유아름)
레즈비언 교사이자 페미니스트이다.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20대를 보내며 가르침과 배움을 넘나들었다. 지금은 학교 밖에서 퀴어 청소년과 어떤 꿍꿍이를 벌이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존재만으로 투쟁’이 되는 정체성들이 이 세상을 뒤흔들리라 믿는다.
조원배
‘삶=교육’이라고 믿고 시를 사랑하는 사회 교사로 청각장애가 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이탁오의 말을 좋아하고, 학생들이 나를 ‘좋은 벗’으로 대해 줄 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을 느낀다.
함께 걷는 바람
성소수자로 태어난 삶에 늘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초등 교사다. 노래와 인권을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으며, 위기를 겪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단체와 함께하고 있다.
진냥(이희진)
초등 교사. 2017년부터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을 맡아 다양한 교육 문제를 다루는 글을 써 왔다. 인권, 나이주의, 반폭력을 주제로 가지고 있고 특히 권위주의·통제에서의 탈출과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한 소수자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마녀가 되고 말겠다는 장래 희망을 간직한 채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평등한연대’, 인권교육센터 ‘오리알’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전교조 여성위원회와 ‘연대하는교사잡것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 《체벌 거부 선언》, 《세월호라는 기표》, 《삐딱할 용기》,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등이 있다.
김은지
대학 졸업장 없이 교사가 되었다. 빈한했던 내게 곁을 내어 준 이들처럼 비빌 언덕을 자처하며 산골 마을에서 8년간 교사로 지냈다. 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통해 경험은 살아 있는 교육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가난의 흔적이 삶의 언어를 제한하지 않도록 정신 줄 바짝 잡으며 살고 있다. 슬픔이 쓰이는 다정한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