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赤裳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창건. 또는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 개로 1995년 이건, 중창되었고 산 정상에 산정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사고지에서 바라보는 호수 전경은 너무 멋있었다.
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 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가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라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천불전·지장전·삼성각·호국당·일주문·요사채가 있다. 주요문화재는 극락전 안에는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괘불은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이 괘불은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5호 호국사비,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기념물 제88호 사고 등이 있으며,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모신 성보박물관이 있다. 코로나로 임시 폐쇄중이다.
극락전 안에는 보물 제1267호인 괘불(掛佛)이 있다. 괘불은 1728년(영조 4)에 조성하였다. 높이 10.75m, 너비 7.25m로서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그리고 안국사가 무주 내륙의 깊숙한 적상산 정상 가까이 높은 데에 자리 잡게 된 연유는 바로 사고(史庫) 때문이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정신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 땅에서 가장 안전한 지대에 보관하고자 하였다.
해발 1000m의 고지대이며 내륙 깊숙한 지점이고, 적상산 자체가 요새 지형이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공격하기가 어려운 지형이었다. 거기에다가 적상산 정상 부근이 비교적 평탄한 평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안국사가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 선원, 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 천불전, 요사, 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