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苦는 못 없애요… 견디는 힘을 얻는 것이 幸福이죠"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주고, 알면서도 외면하려는 심리를 정확하게 집어주는 사람. ‘연희동 한쌤’으로 유명한 타로마스터 한민경씨가 말하는 점쟁이의 정의다. 상담에 가까운 그의 점괘는 상담자 자신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대기업 회장도 상담하러 간다는 '타로마스터' 한민경(45)씨를 최근 그의 연희동 자택에서 만났다. 타로는 78매 그림카드를 해석해 점괘를 낸다. 알음알음으로만 점을 봐주는 한씨는 팟캐스트와 저서 '무슨 고민인가요'(스윙밴드)를 내며 '연희동 한쌤'으로 유명해졌다.
한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대학을 다녔다. 양친의 사업이 망해 학교를 중퇴하고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비닐봉지 공장에서 봉지를 접고, 나이트클럽 DJ, 화장품 방문판매 사원, 패밀리 레스토랑 직원, 대기업 고객상담실장도 해봤다.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주역, 관상, 풍수, 사상체질, MBTI(성격유형검사), 컬러테라피를 배우고 상담을 해주다 30대 중반에 아예 타로마스터로 나섰다.
한씨가 들려주는 '점괘'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너 자신을 알라". 한씨는 "나도 모르는 나를 봐주고, 내가 나를 속이려고 할 때 속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점쟁이"라고 말했다.
'운명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씨는 "어떤 일을 당하는 게 운명이 아니고, 일을 당했을 때 반응하는 내 모습이 운명"이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태어난 꼴이 있으며, 그 꼴에 따라 반응이 정해져 있다는 해석이다. "제가 이런 몸을 갖고 태어났으니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도 강수진은 될 수 없다. 해봤자 개그 발레다. 주어진 상황, 타고난 조건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타개하고 가느냐는 나한테 달렸다."
그의 저서 '무슨 고민인가요'는 숫자로 인생을 풀이하는 수비학(數秘學)을 바탕으로 한다. 수비학에 따르면 인간 성격은 생년월일에 따라 9가지, 한 해 운세는 22가지의 숫자로 나뉜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운명이 9가지밖에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이 복잡하다 보니, 가진 돈이나 권력에 따라 인생이 매우 달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모습은 대기업 회장이든 말단 직원이든 비슷하다. 결혼을 보자. 한다, 안 한다, 이혼한다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순해 보이는 9가지 유형 중에서 한 가지에 속하는 나의 모습, 나의 본질이 내가 직면해야 할 운명이다."
생년월일로 운세를 따지는 것은 토정비결과 타로가 유사하지만, 타로는 그림카드를 해석할 여지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 토정비결과 구분된다.
"생년월일로 미래가 정해진 게 아니고,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구분한 것이다. 유형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체계화한 MBTI가 나왔다. 생년월일에 따라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은 일부 점쟁이가 사업하려고 오도하는 것이다. 성찰해도 소용없는 바보로 만들어야 그들이 먹고살기 때문이다. 그래야 부적도 팔고 굿도 하니까."
한씨의 점은 심리상담에 가깝다. "사람들은 눈앞의 일을 맞히는 걸 용하다고 한다. 사실은 그게 맞히기가 가장 쉽다. 확률에 달렸기 때문이다. 세 사람에게 물어보면 한 사람 정도는 맞힌다. 결혼 시기가 궁금해 점 보러 갔다가 '시집 늦게 간다'는 말을 들은 여성이 많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시집가기 쉬운 분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100% 맞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늦고 이르고가 아니라, 그 사람이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엔 상담자들이 안정과 준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다고 했다. "세상을 전쟁터로 여기니 실전에 나가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우두머리가 돼야 안정적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리더십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실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상담자의 고민에 대해서는 경쟁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 이유를 밝혀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TV 드라마에 경쟁이 부각되고, 세상이 경쟁을 주문하고 있으니까 홀린 것이다. 경쟁의 원인 중 하나가 장수다. 늙은 채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노후를 잘 보내는 방법을 돈뿐이라고 생각하면 고민이 커진다. 돈이 없으면 설거지라도 하면 된다. 어느 화장품 방판 할머니는 크림 하나 사준 고객의 잔칫날마다 설거지를 해준다. 그러면 그 고객은 또 화장품을 사겠지. 자신의 호환 가치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경우다."
한씨는 "점을 볼 때 정확한 질문을 갖고 가라"고 충고했다. "예를 들어 어떤 상담자는 '저하고 그 사람하고 잘될까요'라고 묻는다. 이건 좋은 질문이 아니다. 그 사람하고 잘될지가 왜 궁금할까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를 위해 필요한 질문을 찾는 것이 답보다 우선이다."
점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자신답게 사는 걸 알려줄 뿐, 행복해지는 걸 알려주는 게 아니다. 인생에서 '고(苦)'는 못 없앤다. 행복이란 고(苦)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업(業)인 그는 "잘 산다는 것은 자기다운 것"이라고 했다. "나를 구해줄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내가 나의 미신이자 부적이고, 내가 나의 질문이자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