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포도(葡萄)에게 배운다
늦여름과 초가을에 걸쳐서 나오는 과일이라면 당연히 포도(葡萄)가
아닌가 싶다
이 시기(時期)가 되면 포도(葡萄)의 계절이라 불릴 정도로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는 바라만 봐도 좋다.
여름 무더위를 뒤로하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맛보는 잘 익은 포도는
누구나 좋아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른 과일도 무척 좋아하지만 가을이 오는
길목엔 검붉게 익은 포도(葡萄)를 찾게 된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고향(故鄕)에서 생산되는 포도(葡萄)라서
그런지 모른다
매일마다 저녁으로 퇴근하면서 과일가계에 들어가서 보면 고향(故鄕)에서
나온 포도(葡萄)가 안 보이니 속마음을 태운 것이다
그런데 10월의 첫 주말인 오늘 우연히 과일가계에 들어가니 입구에
“영동포도” 박스가 보인다
마치 서울에서 고향(故鄕) 사람을 우연하게 만나는 그 기분(氣分)처럼
어찌나 반가워 가격표도 확인없이 한상자를 사가지고 나왔다
나이를 잊고 아주 힘들게 농사짓는 농부(農夫)들의 꼬부라진 허리를
보노라면 마치 말라 비틀어진 포도나무의 줄기처럼 보인다
말라 비틀어진 못난이 포도나무라 할지라도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탱글탱글 초록 열매가 맺히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태양(太陽)의 정열(情熱)담아 붉게 붉게 익어가면 계절(季節)이 바뀌는
가을이다
포도(葡萄)란 열매를 먹기도 하지만 포도주(葡萄酒)도 많이 담는다
그런데 좋은 포도주를 생산(生産)하기 위해서는 포도나무를 심을 때
일부러 척박한 땅에 심어야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는 포도나무는 토질(土質)이 좋은
땅에 심게 되면 자라서 탐스런 포도가 열리긴 해도 땅 표면(表面)의
영양분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병충해도 많고 기온변화에 민감하며 자연재해에도 약하여 결국 포도의
품질 지속성(持續性)이 떨어진다
포도나무를 일부러 척박한 땅에 심으면 자라는 속도가 더디고
열매 맺는 시기가 좀더 걸리더라도 생존 욕구에 의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포도의 맛이 더 깊고 그 품질의 변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의 인생(人生)을 포도나무에게서 배운다는 우스갯 소리가
전해진다
예전에 초가을이면 자식이 부모(父母)에게 편지를 쓸 때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 하시라는 구절(句節)을 잘썼다
포도순절(葡萄旬節)이란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白露)에서 한가위까지를 뜻한다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쓰기도 한다
포도지정(葡萄之情)이란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어린 자식에게 입으로 먹여주던 그 정(情)을 말한다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秋風嶺)고개 노랫말처럼
연휴(蓮休)에 푹 쉬면서 고향(故鄕)의 영동 포도(永同 葡萄)를 먹으니
웃음이 나온다 ..... 飛龍 / 南 周 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