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후배님들의 커뮤니티에 눈팅으로나마 가끔 놀러오는 동문선배입니다.
직업상 요즘 젊은이들의 세계를 엿보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이 곳에는 특히 경희 공대생들이 많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공대 졸업생은 아닙니다.
80년대 중반에 입학하여 90년대 초에 경희대 정외과를 졸업했으니 벌써 15년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저는 공대 선배들을 무척 좋아했지요.
공대생들은 사실 무척 장난이 심하지만 타대생들에 비해 인간관계가 순수한 면이 많습니다.
대학생답기는 커녕(?) 동네 악동같은 고향 선배가 좋아 매일매일 뒤 졸졸 따라다니며 막걸리 깨나 얻어마셨지요.
그 보답으로 나는 영문과나, 사대 영교과, 미교과 여자 선배들을 가끔 소개시켜주는 충성심을 보이곤했습니다.
그 선배는 당시 기계과 야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참. 그때는 막 수원캠퍼스가 생겨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고, 공대나 산업대등이 아마 그 때쯤해서 수원으로
옮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현재 한의대가 단과대 건물로 쓰고 있는 곳이 사실은 원래 경희 공대와 산업대가 쓰던 공대건물입니다.
당시엔 공대뿐만 아니라 모든 서울학부가 수원으로 내려가고, 서울엔 대학원 과정만 남겨 연구중심대학으로 간다는
루머가 한창이라 학내시위가 정말 말도 못하게 심하던 때였습니다.
광주사태가 일어난지 몇 년 안된 시점에다가, 학부생들 수원이전설까지 겹쳐 정말 경희대는 일년내내 최루탄 연기가
가실날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당시 본관 유리창을 깨려는 시위대에 맞서 문리대학장이던 새박사 '원병오' 교수님이 '이러면 안된다'며 온 몸으로
저지하던 모습이 지금도 찡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공대는 말없이 내려갔습니다.
당시엔 경희대외에도, 한양대, 외대, 중앙대등 많은 학교들이 동시에 지방캠퍼스를 열던 시절이었고
지방캠퍼스는 너나 할 것 없이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분명치는 않지만 아마 당시엔 지방 국립대 공대보다도 지방캠퍼스 성적이 대체적으로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양공대로 대표되는 공과대학의 수많은 배출학생들에 비해 우리 경희공대는 과나 학생수나 그리 많은편이
못되었고 서울에서는 객관적으로 그리 공과대의 비젼이 크다고 볼 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다시금 수원에서 자리를 틀고 경희대학교의 주류로서 자라난 공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졸졸 따라다녔던 기계과 야간 선배들의 후배집단이 그것도 경희대에서 가장많은 모집인원으로 주류공대로 부쩍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곳 쿠플라자에서 내가 들은바로는 경희공대 규모가 이제는 인하공대, 한양공대 다음으로 많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일단 공대는 질도 질이지만 양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가 경희대 내에서 발언권도 별로 없이 말없이 수원으로
내려간 빈약한 공대생들 틈에서 생활하면서 깊게 느꼈던 사항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초창기 알게 모르게 지방캠퍼스 학생으로서의 서러움을 은근히 씹으며 서울쪽을 바라봤을 경희공대가
이제는 당당히 입시성적에서도 서울의 몇몇대학을 제외하면 별로 뒤지지 않는 정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는 서울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근근히 경희대 공대정도의 입시 성적을 유지하는 대학이라면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교통의 발달,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으로 내려가는 인구등 대학경쟁력은 이제 서울에 있다고하여 반쯤 먹고들어가는
시대는 끝났기 때문입니다. 금번 연대의 송도캠퍼스는 그런 시대흐름을 읽고 한 발 앞서가려는 전략이라고 봅니다.
성적순 줄서기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학경쟁 풍토에서는 사실 한발한발 따라가서 추월하려는 전략은 힘든 측면이 보입니다.
그러나 경희대의 경쟁력은 발상의 전환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 경쟁력을 창출하려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분명히 다른대학의 줄서기와는 다른 차원의 전략으로 대학 경쟁력을
키우려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부선 옆, 영통지구, 수지지구, 동탄지구, 분당, 호수를 낀 자연속 넉넉한 캠퍼스, 수원에서 성큼성큼 자라는 공대의
모습만으로도 그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학교당국의 숨고르기가 끝난후에 공대에 큰 힘이 실리는 순간이 한번쯤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희대에 입학하기 몇 년 전 쯤인 1980년도인가 1981년도인가, 경희대는 한 번 배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4년 전액 장학금으로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며 연고대급 이상의 우수 고등학생들을 입학시켰던 경험말입니다.
그러나 그 해 이후, 역량부족으로 큰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장학금의 유혹에 경희대 입학후 은근히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많은 선배들을 목도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막연하지만 경희의 꿈은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는 흥겨움이 느껴집니다.
더 큰 또 하나의 듬직한 모교가 저기 수원에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한 일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공대생들로 가득가득 차 있는, 내게 대학생활의 90% 즐거움을 안겨준 공돌이들의 세계라는 사실이..
출저:쿠플라자
미래가 아름다운 경희. 경희대공대 비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