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1. 5. 14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대강당[지하강당]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Ⅰ 서론
오늘날은 복지의 시대이다. 복지 시대란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만들어주는 제도’가 마련된 시대를 의미한다. 기본적인 생활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다음은 문화적 삶을 꿈꾸게 된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중대한 시점과 만나게 된다. 언젠가 한 제자가 찾아와 자기 인생을 상담한 일이 있다. 교사 발령이 늦어져, 공무원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교사 발령이 났다. ‘교사’과 ‘공무원’을 선택하여야 할 기로에 놓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자 할 때, 내리는 결정이야말로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럴 때 하늘의 뜻 즉 천의를 물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동·서양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보통 자기 문화권에서 선호하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그 종교권에서 해결의 실머리를 찾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의 선택 방안 가운데 하나가 명리학적 방안이다. 그런데 자기 일생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므로 신중을 기하자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신중한 방법이《상서》홍범에 등장한다. 원래 대상이 다르지만 여기서는 오늘날 변용하여 활용해 보기로 한다.
제도적으로 한 사람의 전문가[스님·신부·목사·보살 등]에게만 묻지 않고 세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두 사람의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의심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이다. 그러면 1) 내 마음, 2) 부모나 스승 등의 의견, 3) 친구나 후배 등의 의견, 4) 점괘의 의견 가운데 선택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나온다. 편의상 A=내 마음 B=거북[스님·신부·목사·보살 등]점[5 가지] C=산대[스님·신부·목사·보살 등]점[2 가지] D=부모나 스승 등의 의견 E=친구나 후배 등의 의견 등으로 기호화하여 설명해 보도록 한다.
一 A=B=C=D=E[모두 일치할 때]
[판단] 최고의 좋은 대동의 상태로 몸이 편안하고 자손이 길하다.
二 A=B=C☓D☓E[A·B·C가 같고 D·E가 다를 때]
[판단] 좋다
三 D=A=B☓A☓E[D·A·B가 같고 A·E가 다를 때]
[판단] 좋다
四 E=B=C☓A☓D[E·B·C가 같고 A·D가 다를 때]
[판단] 좋다
五 A=B☓C☓D☓E[A·B가 같고 C·D·E가 다를 때]
[판단] 속으로 움직이면 좋지만 밖으로 행동하면 좋지 않다.
六 A☓B[A·B가 모두 다를 때]
[판단] 조용히 있으면 좋으나 행위를 하면 좋지 못하다.
이러한 의사 결정이 전통 사회의 명리학적 방법이었다. 현재도 이러한 신중한 결정이 내려졌으면 한다. 특히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것’과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의 ‘구별’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의 건강상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이 상한다면 몸이 상하기 때문이다.
Ⅱ 전통 명리학과 3대 저서
여기서 전통명리학이란 조선시대 관리 채용 시험에서 ‘음양과 명리학’ 시험 과목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필수과목인 《원천강》, 선택과목이지만 오늘의 입장에 중요한《서자평》, 조선 시대[정조] 국가 지식으로 정리된《협길통의》를 3대 저서로 선정하였다. 지면 관계상 소개할 수는 없지만, 다른 명리학 과목은 제목만 제시하기로 한다.
1 《응천가》, 2 《범위수》, 3《극택통서》, 4《삼신통재》, 5 《대정수》, 6《전정수》, 7《6임》, 8《5행정기》, 9《난대묘선》, 10《성명총화[괄]》, 11《난강망》, 12《금연진경》, 13《주역점》, 14 《관매수》, 15, 《해저안》, 16 기타 문헌
1《원천강》
1) 서지
《원천강》은 표제이다. 줄이지 않은 이름은《원천강5성3명지남》이다. 현재 이 책은 규장각과 장서각에 각각 1종씩 2종이 있다. 규장각본은 10권 2책이고 장서각본은 14권 2책이다.
장서각본은 14권2책으로 내용이 보강되어 있고 훈련도감자판이라는 점에서 규장각본류와는 구별된다. 이 본은 광해군~인조 사이 1609년부터 1648년 사이에 간행되었고 표제와 판심제가 모두 ‘원천강’이다. 책에는 장서인으로 안정복(1712~1797)과 이지질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원천강》은 10권 2책[상·하]이다. 상책은 발단류[권1], 귀신류[권2], 합류, 역마류, 학당학관류[이상 권3], 인류[권4], 재고류, 관살류[이상 권5]이고 하책은 공망류[권6], 시단류[권7], 관귀류[권8], 행운류[권9], 명격류[권10]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는 속수사고전서 술수류 총서 12책에《신간지남대사원천강5성3명대전》4권이 있다. 이 책의 본은 건읍서림 종덕당 웅충우에서 출판한 것이었다.
2 저자
원천강은 의문투성이인 사람이다. 조규문이 박사학위[2009 대전대학교 대학원] 논문[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에 관한 연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581년 전후에 태어나 647년 이전에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다.
원천강 인물에 관한 사료는 우리나라의 경우《경국대전주해》,《서운관지》가 있고 중국의 경우《구당서》《중국인명대사전》등이다. 하여튼 원천강은《구당서》의 열전에 나오는 실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이 사료들은 관리로서의 원천강이 살던 시기를 수[581년~619년]와 당 고조[618년~626년], 태종[626년~649년] 등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천강은 촉군 성도 사람이다. 아버지 기는 양주의 사창이었고 할아버지 숭은 [북]주 나라[556~581]에서 조정에서 건위를 지냈으며 포양과 포강 두 고을의 수령과 거기장군을 역임하였다. 증조 달은 양조장에서 강주와 황주 두 주의 자사였고 주 조정에서 천수와 회인 두 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천강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했으나 도예를 좋아했으며 상술에 정통하였다. 당 무덕 연간[618~626]에 화정령이 되었고 정관 6년[632]에 벼슬의 임기가 다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태종[재위 626~649]이 불러서 보고 천강에게 일러 말하길 ‘파촉에는 옛날에 엄균평이 있었는데 짐은 지금 네가 있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어떠한가?’ 대답하여 말하길 ‘그 사람은 때를 만나지 못했고 저는 성군을 만났으니 제가 마땅히 낫습니다.
이상은 조규문이《백부총서집성》‘원천강외전’의 번역에서 가져온 것이다. ‘[]’안은 연구자가 보강한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 나라의 원천강이 ‘명과학’의《원천강》저자와 일치 여부이다. 일치하지 않고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연구자의 생각이다.
‘袁天綱’이라고 쓰지만, ‘袁天罡’으로 쓰기도 한다. 이것부터 의문이 생긴다. ‘天罡’은 북두칠성을 말하는 것이고 ‘주마[달리는 말]6임’에서는 ‘자[쥐]’와 ‘임’에 해당한다. ‘주마6임’은 천강, 태을, 승광, 소길, 전송, 종괴, 하괴, 등명, 신후, 대길, 공조, 대충 등의 별들을 말한다. 이들은 지지로 표현하면 천강이 진[용], 태을이 사[뱀]......공조가 인[호랑이], 대충이 묘[토끼]에 해당한다. 서자평이 서씨 가진 사람이 ‘자평’을 잘 하기 때문에 자평이라는 이름이 된 것과 같다. 袁天綱 혹은 袁天罡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원씨 가진 사람이 천강 즉 별자리를 잘 본다는 별호가 이름이 되지 않았는가 한다.《원천강》의 책 이름에서 5 별이 등장하는 것으로도 이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5성으로 3명을 보는 지남이라고 풀이되기 때문이다.
《중국인명대사전》에 의하면, 원천강은 명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풍수학 전공자이다. ‘풍감을 잘 했다’고 했는데 풍감이 바로 풍수인 것이다. 동시에 6임과 관상에도 능한 사람이었다.
혹시 뒷사람이 거짓으로 꾸민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상은 사료를 통하여 원천강을 살펴본 결과이다. 그런데 연구자가《원천강》의 원천강과《구당서》열전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것은 명리학적 근거에 의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 내용과 의의
저서《원천강》을 논의하려면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 조선 시대 내내 명리학의 제1 필수과목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명리학에서는 거의 ‘공백 상태’로 남겨 두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한국명리학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왜 저서 원천강이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셋째, 저서 원천강은 왜 현대명리학 즉 소위 자평학의 중요 항목인 ‘6신’론의 모태를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세 가지 항목을 풀지 않으면 원천강 접근이 어려우리라고 생각된다.
최근 학위 논문을 통하여 원천강은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심규철은 원천강을 명리학의 출발점으로 보고 조규문은 본격적인 연구를 했다. 그러나 아직은 고찰이 필요한 단계이지 판단을 내려서는 아니 된다고 여겨진다.
첫째, 중국의 고전 명리학의 문헌들은 거의 영락대전과 사고전서에 수록되면서 공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원천강》은 여기에서 빠져 있다. 다만 사고전서본[1781년] 만민영萬民英[가정 년간(1522~1566)의 진사]의《성학대성》에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성학집성》권23에는 부록으로 ‘지남정귀격’으로 《원천강》권10 명격류을 모두 빼지 않고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천지합덕, 군신경회, 일기위근, 양간불잡, 삼합취집, 사주순전, 오행구족, 육위상승, 간진일자, 지신일자, 봉황지, 봉황간, 봉황지, 인종포승, 신장살몰, 마록교치, 간록간마, 집복발복, 5자연주, 6자연주
여기서 만민영은 ‘원천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지남정귀격’을 붙인다는 것이다. ‘정귀격’의 ‘지남’으로 보고 부록으로 달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다. 저서 원천강에 등장하는 ‘명격류’를 ‘정귀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성삼명의 지남으로 보았다는 뜻이 된다. 이를 확대 해석한다면《원천강》의 권7 ‘시단류’에 등장하는 시결 200여수도 모두 ‘지남’이라는 시각이 된다.
이 뿐이 아니다.《성학대성》권25에는《원천강》권9 ‘조미론’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만민영은 저서 원천강의 조각들을 핵심적인 부분에서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저서 원천강의 제목이 ‘5성’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것이다.
둘째 그동안 왜 한국명리학계에서 저서 원천강이 논의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현대명리학이 외국[중국 또는 일본을 통한 중국]과 연결되면서 고전명리학과 연계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자는 2003년 강의노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저서 원천강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명리학 제1 필수 과목’이었다.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대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명리학 저서였다. 그런데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가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책자의 이름인가, 인물의 이름인가, 심지어는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 때의 '충격'은 컸다. 오늘 이러한 저서를 쓰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충격의 산물이다. 한국 명리학의 역사를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학생 가운데 조규문 선생이 있었다. 2003년을 ‘명리학 발견의 해’라고 경탄했다. 그러더니 2009년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 연구》라는 논문을 써서 한국 명리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와 같이 원천강 연구를 강조하는 것은 그저 ‘개별적인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한국명리학의 고전과 현대를 잇는 역사적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역사적 맥락을 통하여 현대명리학으로 연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원천강》이 한국명리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의를 살피는 순서이다.《구당서》열전에 등장하는 원천강과《원천강》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점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서 원천강은 1) 체계적이고 논리화된 명리학 문헌이라는 점 2) ‘6신’이 등장한다는 점 3) 한국 역사상의 후대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구당서》에 등장하는 원천강이 581년 전후에 출생하여 649년 이후에 죽었다면, 이허중은 762년에 태어나 813년에 죽었다. 원천강과 이허중은 150여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면 이허중[《이허중명서》]은 원천강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두 사람이 모두 당 나라 사람이므로 전승 관계가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그런데《이허중명서》는《원천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구태어 영향 관계라면 이허중의 태·월·일·시론이나 원천강의 년·월·일·시·태의 ‘5명론’이 될 것이다. 저서 《원천강》에는 년월일시의 ‘주관’을 년은 15년, 월은 30일, 일은 45일을, 시는 늙어죽을 때까지라고 했다. 주관의 담당 영역은 년이 ‘자신’이 되고, 월이 ‘형제’가 되며, 일은 ‘처첩’이 되고 시는 ‘자손’이 되며 태는 ‘부모’가 된다고 했다.
권2의 5명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갑자년 4월 무신일 인시생의 5명[‘5주’]을 꾸미는 과정이 있다. 년은 갑자이고, 일은 무신이니 그대로 간지를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월·시·태가 문제가 된다. 월은 ‘갑기둔기병인’을 적용하면 4월에 이르러 기사월이 된다. 시는 ‘무계둔기임자’을 적용하여 인[+호랑이 3 동·목]에 이르러 갑인시가 된다. 이렇게 ‘4주’가 완성된다. 태는 남녀 불문하고 본 생월 앞 4위[간지의 위치를 말함]로 산정하니 경신이 된다.
그러므로 5명은 갑자년금, 기사월목, 무신일토, 갑인수, 경신태목이 된다.
이와 같이 이허중과 원천강의 처음부터 접근 방식이 다르다. 《구당서》의 열전의 원천강과 《원천강》의 원천강이 다르다는 점이 이것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저술 원천강의 권1 ‘발단류’를 보면 그 체계가 오늘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60화갑자, 10간순, 10간역, 10간소속음양, 10간소속5행, 10간천원화운, 12지, 12지소속음양, 1지소속5행, 12생초, 12월건, 약12시, 정인시, 정태양출몰, 24기, 둔월례, 둔시례, 5행납음, 5행상생, 5행상극, [상생과 상극에 대한]가[노래]왈, 5행발용, 장결[손바닥을 통하여 비결을 암기하는 방식], 4생, 4패, 4임관, 4왕, 4고, 4절, 5행자생자왕례, 5행자패자절례, 5행불패불절례, 수화불혐사절론, 토불절이론
이 가운데 ‘약12시’, ‘정인시’, ‘정태양출몰’ 등은 당시의 역법 수준으로 생각할 수 없는 천문학 천착인 것이다. ‘정인시’의 경우는《자평연원》과 《연해자평》에 그대로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당나라 사람 원천강과 조선시대 명리학 저자 원천강은 동일한 인물이 될 수 없다.
《원천강》에서 주목되는 것이 소위 ‘6신론’의 초창기적 모습을 한다는 점이다. 권2의 뒷부분에 ‘식신류’가, 권4에는 ‘인[도장]류’와 ‘재고류’ 등이 등장한다.《연해자평》에는 극아자[나를 극하는 것]는 정관·편관이 되고 생아자[나를 낳는 것]는 정인·편인이 되며 아극자[내가 극하는 것]는 정재·편재가 되고 아생자[내가 낳는 것]는 상관·식신이 되고 비견자[나와 어께를 나란히 하는 것]는 겁재·패재가 된다.《원천강》의 경우 ‘식신류’는 아생자로 [내가 낳는 것] 식신을, ‘인[도장]류’가 생아자[나를 낳는 것]로 정인·편인을, ‘재고류’가 아극자[내가 극하는 것]로 정재·편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신류’를 예시로 들어본다. 식신류는 10간식신과 비결 관귀식신, 연주식신, 녹마식신, 식신학당, 식신학관 등이 있다. 10간식신은 10간을 취급함에 있어서 1위[자리]의 천간을 건너뛰는 것이다. 즉 갑[천+1목]의 식신은 병[천+3화]이 된다. 을식정 병식무 .... 임식갑 계식을 등과 같다. 관귀식신은 갑[천+1목]이 신[천-8금]을 쓰면 官이 되는데 신의 식신은 계[천-10수]가 된다. 갑생인은 신을 보는 것을 쓰지 않지만 다만 계를 보고 이를 고칠 수 있다. 연주식신은 갑의 식신이 병이고 병의 식신 무[천+5토]이고 무의 식신이 경[천+7금]이고 경의 식신의 임[천+9수]이다. 년·월·일·시·태가 서로 순행할 때 위에서 아래를 식신하는 것이다. 녹마식신은 갑신·갑자·갑진 생이 병·인을 보고 경인·경오·경술 생이 임신을 보는 것이다. 단지 이들 6위[자리]가 이것이니 크게 귀하고 현달하게 된다. 식신학당은 갑의 식신이 병이면 병인을 얻는 것이고, 병의 식신이 무이면 무신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말한다. 식신학관은 을의 식신이 정이면 정기를 얻는 것이고 정의 식신이 사이면 사해를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말한다.
권4 ‘인[도장]류’ 가운데 ‘10간 인수’가 등장한다. ‘생아[나를 낳는 것]자는 양[+]이 음[-]을 버린 것을 취하고 음[-]을 취하고 양[+] 위[자리]를 구한다’는 설명은《원천강》과《자평연원》과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한 명리학적 이론은《천기대요》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 부분의 적은 결론을 내리면,《원천강》은《자평연원》을 도입하기 위한 단계처럼 보인다.《원천강》의 원천강과《구당서》에 등장하는 원천강과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허중과 원천강은 명리학적 이론에서 전혀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사회로 올수록 원천강의 영향을 널리 퍼져 나간다. 각종 고대소설에 등장하고 현재 제주도의 신가[신의 노래]로 ‘원텬강본추리[원천강본해]’가 전하고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원천강》,《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성호사설》,《임원16지》,《누판고》,《한국서지》,《증보문헌비고》,《삼명통회》,《성학대성》, 《조선무속의 연구》《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에 관한 연구》
2《서자평》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평연원》
1) 서지
책의 표제는《자평연원》이다. 줄이지 않는 제목은《자평3명통변연원》은 상·하권 2책이다. 이 책은 ‘전당동재 서대승’가 서[머리말]를 썼다.
문제는 ‘명과학’의 관리 임용과 취재 시험 과목인《서자평》이 바로《자평연원》과 일치한가의 여부이다. 현재까지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평연원》이라고밖에 없다.
한국명리학의 역사에서 《서자평》은 비교적 행적이 분명한 문헌이다.
1430년[세종 12]에는《서자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1485년[성종16《경국대전》]에는《현여자평》과 함께 등장하여 과시와 취재에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1797년[정조 21]에는 시강의 과목에서 제외된다. 1865년[고종 2]에 발간된《대전회통》에서도 그 폐지가 확인된다.
1797년[정조 21] 서자평과 범위수 ‘운명을 추구하는 방서이므로, 본디 길일을 기리는 학업에 관계되지 않으니 이제부터 새로 간행된 《협길통의》와《원천강》 두 책으로 시강하면 참으로 합당하겠습니다.
이로 보아 조선 후기에 와서 명리학의 입지가 약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등장과 퇴장의 관계를 밝힌다면, 서자평 연구의 핵심이 될 것이다.
2) 저자
저자는 ‘전당동재 서대승]이다.
언제 태어나 죽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다.《중국인명대사전》에도 동재 서대승의 항목조차 없다. 그만큼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우선 서대승과 서자평이 동일 인물인지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경국대전주해》에는 ‘서자평’이 송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만약 이 고증을 믿는다면,《서자평》은 서대승이 된다. ‘명과학’의 관리 임용과 취재 시험 과목의《서자평》은 《서자연원》즉 《서자3명통변연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자평이 누구인지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익李瀷[1681~1763]은《성호사설》에서 서자평을 서거이徐居易로 보았다. ‘5대’ 사람으로 진도남陳圖南 즉 진단陳摶과 화산에서 은거했다고도 했다. 모리스 꾸랑[1894~1896]《한국서지》에서는 서자평을 ‘5대의 서거이나 ‘송대’의 서언승徐彦升으로 보았다.
이러한 서자평이 살던 기간이 송대인설과 5대인설로 정리된다. 송대란 북송이 960~1127년이고 남송이 1127~1279년의 약400년간이다. 5대란 907년 주혼朱溫[朱全忠]이 당 나라를 멸한 후 회하 이북의 황하 유역에 일어난 [후]양, [후]당, [후]진, [후·북]한, [후]주 등 5 왕조를 말한다. [후]양이 907~923년, [후]당이 923~936년, [후]진이 936~946년, [후]한이 947~950년, [북]한이 951~979년, [후]주가 951~960년 등이므로 907년부터 960년까지 약 50년간이다.
송대인설과 5대인설은 언뜻 5대와 송대를 거쳐서 산 사람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연구자가 조사한 서대승에 대한 기록은 2종이 있다.《자평연원》과《해저안》이다.
《자평연원》은 ‘전당동재 서대승’이 보우 연간[1253년부터 1257년]에 10월 15일 보름날에 쓴 서문이 나온다. 발문도 보우 연간이 ‘전당자 전지옹’가 쓰고 있다.
《해저안》은 왕자王鼒가 찬하고 하신何侁이 중편하고 ‘전당동재 서대승’이 교정했다는 기록이다. 중편자 하신은 순우 갑진년 즉 1244년에 서문을 썼다.
이 두 가지 기록은 서대승이 1244년에《해저안》을 교정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적어도 10년 후에《자평연원》을 썼다는 사실이다.《연해자평》의 작자도 ‘동재 서대승’이다. 따라서 서대승은 남송 사람으로 순우 연간인 1241~1252과 보우 연간인 1253~1258년 사이에 살았다.
역시서 흥미로운 사실은 서대승의 ‘전당동재’라는 호이다.《해저안》과 《자평연원》이 모두 같다. 다만 전자에서는 ‘唐’이고 후자는 ‘塘’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자평연원》의 발문 ‘錢塘子 錢芝翁’[전지옹의 발문]의 존재이다. ‘전당자가 전지옹’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당, 서대승, 전지옹등이 모두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또 하나 추가해야 할 기록이《신간합병관판음의평주 연해자평》에‘題宋錢塘東齋 徐升編’이다. 서승과 서대승이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대승보다 서승이 뒤에 사용한 이름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런 논리라면 서언승徐彦升도 같은 인물일 수 있다. 서대승은 많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가 서대승을 서자평이라고 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자평연원》에서조차 두 가지 이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대승을 서자평이라는 주장은 서자평이 스스로 쓴 문헌이 발견되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자평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만민영萬民英[가정 1522~1566 진사] ‘자평설변’에서 보듯이 ‘자평의 전문가’ 또는 ‘자평의 선생’이라는 일반 명사인 셈이다.
서자평은《중국인명대사전》에서도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혹은 말하기를 오대 사람이라 한다. 별에 관한 학문에 정통하였고 낙록자의《삼명소식부》를 주석하였다. 후세에 술사의 조종이 되었다. 이제 8자로 추명하는 것을 이르니 자평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
이 서자평에 대한 서술은 서자평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쪽으로 되어 있다. ‘혹은 말하기를’부터가 그렇다. 《경국대전 주해》, 《성호사설》,《한국서지》등에서와 같이 ‘혹은’이 따라다닌다. ‘순우’나 ‘보우’의 연호만 사용하지 연도를 밝히지 못하는 것도 일반 명사와 고유 명사가 혼재되었기 때문아닌가 여겨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의 명리학의 역사에서 저술자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보기를 들면 수도 없지만《삼명통회》가 대표적인 아닌가 싶다. ‘육오산인’과 ‘만민영’을 섞어서 쓰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러므로 사고전서본(1779)《삼명통회》‘제요’에는 지은이를 모른다고 하고 있다. ‘육오’인지 ‘만민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만민영’으로 정리되었다. 술사 혹은 방사들은 즐겨서 이름을 감추는 일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라 할 것이다.
이들 술사 혹은 방사들이 책을 짓고도 ‘하늘에 내린 것’이라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 나라[BC 206~ AD 220]의 참위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신비성과 권위를 보장받으려는 심리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옥추경》은 정일교 39대 ‘천사’ 장사성이 1333년에 지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몇 차에 걸쳐 ‘하늘이 내린 책’ 즉 ‘강서’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 말씀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평의 법은 배우기는 쉽지만 정교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자평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고유 명사의 자평과 일반 명사의 자평이 그것이다. 전자인 경우는 서자평을 의미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자평, 즉 자[쥐]로 하는 평’으로 추명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자평을 고유명사로 보느냐 일반 명사로 보느냐에 따라 지은이가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전공하는 학문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곧잘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하기 쉽다. 특히 명리학에서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연대기를 자꾸 윗대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역시 신비성과 권위를 내세우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원천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논의한 대로《원천강》의 명리학적 논리는 150여년 후대의 이허중[762~813]과 관련시키기가 적절하지 않다. 서자평을 고유 명사로 보고 오대 사람이고 성[별자리]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6신의 완성자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대승이 바로 서자평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서대승이 만난 고수는 ‘자[쥐]로 하는 평’의 대가로 풀이된다. 북송[960~1127]의 상수학을고려하지 않으면 남송[1127~1279]의 학문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내용과 의의
《자평연원》은 ‘자평이 3명에 대한 통변의 연원’을 살핀 것이라는 의미이다.
〇 3명론의 성립과 완성
자평이 말하는 ‘3명’은 ‘정진론’, ‘희기편’, ‘계선편’ 등과 발문에섞여서 그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모색 단계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연해자평》에서는, 독립된 항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학설이 완결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책 제목이 ‘3명’인데 내용은 ‘3원’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여기서 ‘3원’은 천원, 지원, 인원을 의미한다.
가령 갑자이면 갑목으로 천원을 삼고 자로 지원을 삼으며 자 가운데 감추어진 계수로 인원을 삼는다.
원래 ‘3원’은《자평연원》의 발문에 요약되어 있고 ‘계선편’에 비교적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전당자 전지옹의 발문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명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은 반드시 일[날짜]와 월[달]이 주가 된다. 시[시간]을 빌려서 천원에 모습이 되니 10 천간을 삼고 지원에 배열이 되니 12 지지로 되며 납음에 깔아서 5행이 된다. 이를 3명의 책이라 한다.
《자평연원》의 3명론 즉 ‘천원=10 천간’, ‘지원=12 지지’, ‘납음=5행’의 등식이다.
그런데《연해자평》에 와서 ‘납음=5행’이 ‘인원=지장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자평의 3명론이 《자평연원》에서 제기하여 《연해자평》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〇 통변론의 연원
‘통변’이란 소위 ‘6친[가족 관계]’, ‘10신[용신 관계]’, ‘10성[별과 관련]’ 등을 말한다. 자평 이전에도 ‘통변론’이 있었는데, 아직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연원을 밝히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원천강》을 다루는 과정에서 시사한 바 있다. ‘식신류’, ‘인류’, ‘재고류’ 등의 초창기적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원천강류의 ‘통변론’이 아직 정제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자평연원》에서 통변을 정제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첫머리로 ‘천간통변도’와 ‘지지조화도’로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천간통변도’는 ‘생일’로 보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계 |
임 |
신 |
경 |
기 |
무 |
정 |
병 |
을 |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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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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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간 |
상관 |
식신 |
정재 |
편재 |
정관 |
D |
정
인 |
편인 |
B |
C |
갑 |
식신 |
상관 |
편재 |
정재 |
D |
정관 |
편
인 |
정인 |
C |
A |
을 |
정재 |
편재 |
정관 |
D |
정인 |
편인 |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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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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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재 |
정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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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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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간통변도
오늘날과 용어상 차이가 다소 있다. C는 비견, A는 패재․양인, B는 패재 , D는 칠살 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겁재인 경우 갑견을, 병견정, 무견기, 경견신, 임견계 등 5종이 패재․양인이 되고 을견갑, 정견병, 기견무, 신견경, 계견인 등 5종이 패재가 된다. ‘7살’이란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통변론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 ‘간명 입식’ 혹은 ‘간명 입세’이다. ‘입식’은《자평연원》에서 ‘입세’는《연해자평》에서 사용한 말이다. 전자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간명하는지 설명이 없지만 후자에 오면 그 방법을 제시하여 보여준다.
간명입세는 5행제강이다. 간명은 8자를 배열하는데 일간위주로 한다. 년을 취하여 뿌리가 되고 조상이 준 재산을 삼아 집안의 성하고 쇠함을 안다. 월을 취하여 싹이 되며 부모가 된다. 즉 친부모의 음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일간은 자기의 있음이 되고 일지는 아내와 첩이 되니, 아내와 첩의 현숙함을 안다. 시는 꽃과 열매가 되고 자식이 되니 자손 둠을 안다.
‘일간’과 ‘일지’를 분간하여 논의한 것은 이 때부터이다. 말하자면 통변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시’를 ‘꽃과 열매’로 인식하는 등의 다소의 차이가 있으니 아직 이 설이 완비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여튼 ‘통변의 연원’을 밝히려는 서대승의 노력은 이전의 명리학과 구별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후대의 명리학서인《자평진전》과 비교하여 그 과정을 깊이 통찰할 필요가 요구된다.
〇 ‘일위주론’과 ‘일간위주론’의 구분
《자평연원》과《연해자평》의 ‘일위주론’과 ‘일간위주론’을 구별하여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일[날짜]을 위주로 하여 8자를 찾아 활용하니 먼저 제강[월령]의 무겁고 가벼움을 관찰하고 다음에는 시[시간]와 일[날짜]의 깊고 얕음을 세밀히 살핀다. 전적으로 재관이 원래 있는지와 없는지를 보아야 한다.
일주를 위주로 하여 8자를 보고자 할 때 먼저 제강의 무겁고 가벼움을 보고 다음에는 시[시간]와 일[날짜]의 깊고 얕음을 상세히 살핀다. 전적으로 재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영역에 ‘서자평=일주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평연원》‘계선편’에는 일주론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귀하고 천함’을 알고자 할 때는 ‘제강[월령]’으로 보아야 하고 ‘길함과 흉함’을 알고자 할 때는 ‘일위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자평의 생각은《연해자평》에 오면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귀하고 천함을 알고자 할 때는 먼저 월령 제강을 본다’는《자평삼명통변연원》이《연해자평》에 오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설명을 한다.
월령으로 8자의 요령을 본다면 다시 절기의 깊고 얕음으로 알고 재화를 알아야 한다. 가령 인 가운데 간토가 있으면 여기가 7일 반이고 병화가 기생하면 또 7일 반이며 갑목이 바르게 합하게 되면 같이 15일이 된다. 이 3자가 어떤 것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활용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정관·정인·식신을 본다면 길하고 상관과 편인은 흉할 것이다.
‘다음에는 귀천을 알고자 하면 먼저 월령의 제강을 보고 다음으로 길흉을 판단하고자 하면 오로지 일간을 주된 본위로 하여 3원으로 격국을 만들면 사주는 재관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천간이 천원이 되고 지지가 지원이 되며 지지 가운데 소장되어 인원이 된다. 년월일시가 4주가 되니 오로지 생일의 간지로 하되 4주3원을 배합하여 격국을 완성한다면 재관이 좋아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서자평의 일주론은 ‘귀천=월령’, ‘길흉=일주’라는 특별한 하나의 용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주로 4주를 만든다’는 것은 ‘우월령으로 하면 4주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일간위주론’은《자평연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연해자평》‘6친총론’에 등장한다. 6친은 부모, 형제, 형제, 아내, 자손을 말한다.
일간위주을 활용한다. 정인은 어머니이고 편인은 서모 및 조부이다. 편재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의 남편별이다. 역시 첩이 된다. 정재는 아내가 되고 편재는 첩이 되고 부모가 된다. 비견은 형제자매가 된다.
이상의 6친론은 조부, 아버지, 어머니, 편모, 아내, 첩, 형제와 자매 이외에도 남자, 여자, 남자 자손, 여자 자손, 할머니 등을 다루고 있다. 중국의 가족 관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하여튼 이러한 서대승의 ‘6친론’은 후대 간지로 교체되면서 다시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다만 이러한 깊이 있는 연구는 여기서 논외이므로 취급하지 않지만 앞으로 과제로 여겨진다.
〇《자평연원》과《연해자평》의 비교
《자평연원》은《연해자평》으로 가는 길목의 원전을 제시한다. 전자에서 미흡한 점을 보강하는 것이 후자이다. 특히 ‘상해정진론’, ‘희기론’, ‘계선편’은《자평연원》의 경우보다《연해자평》의 확대가 2~3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없던 항이 보이기도 하지만, 골격 면에서 변화는 없다. 이들 두 원전의 섬세한 비교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하여튼 조선시대의 서자평인《자평연원》은 소위 ‘서자평 초창기 명리학 저서’인 것이 분명하다.
[참고 문헌]
《서자평》,《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성호사설》,《임원16지》,《누판고》,《한국서지》,《증보 문헌비고》,《삼명통회》,《관판 연해자평》,《연해자평정해》[번역본],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 속집 경․자부 2》
3 《협길통의》
〇 서지
《협길통의》는 총22권10책이다. 본원[권1~2], 의례[권3~7] 공규[권8~9] 용사[권10~11] 의기[권12] 입성[권13~14] 이용[권15~18], 총론[권19] 변위[권20] 부록[권21~22] 등이다.
‘본원’은 총론에 속하므로 이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하도/ 낙서/ 선천8괘 / 후천8괘/ 갑력/ 10간12지/ 4서/ 6신/ 12월 벽괘/ 12신28수성상/ 28수배일/ 5행/ 5행용사/ 5행생왕/ 간지5행/ 3합/ 6합/ 5서둔과 5호둔 / 5합화기/ 납음/ 납음5행 응선천도/ 납음5행 응후천도 / 납음간지 기수합5행/ 5행5음/ 납갑/ 납갑 직도/ 납갑 원도/ 납갑납12지도
이상은 ‘본원 1’로 권1로 ‘상수학’의 기본적인 지식이다. 이 지식에 의하여 18세기 이후 명리학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본원 2’는 권2로 풍수학 관련 지식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초간본이 보관되어 있다. 목판본으로 운관[관상감]의 발행으로 사주쌍변, 반곽 21.5 x 15.4 cm, 10행20자 주 쌍행, 상백어미; 31.7 x 20.5 cm이다.
〇 저자
임금[정조]의 명에 의하여 관상감 제조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사인 민종현閔鍾顯이 교찬집을 맡았고, 정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경연사인 심이지沈頤之와 관상감 제조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 춘추관사동지 성균관사 규장각검직 직제학인 서유방徐有防[1741~1798]이 교정을, 통훈대부 행 평구도 찰방인 지일빈池日賓, 통훈대부 전행 와서 별제인 지경철池景喆, 통훈대부 전행 명과학 겸교수인 지경필池景泌 등이 휘편을, 지일빈池日賓 등이 감인을 맡았다.
서문은 서유방이 썼다.《홍재전서》에도 정조가 쓴 서문이 보인다.
〇 저서의 의의
《협길통의》는 두 저서의 제목에서 따온 합성어이다. 즉 매곡성의《협기변방서》에 ‘협’과 위감의《상길통서》의 ‘길통’을 딴 것이다. 거기에 ‘義’를 붙여서 완성된 단어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1795년 정조 17년에 나라에서 내린 것이기도 한다.
음양가는 곽박郭璞[276~324]의《현경》이후로 무려 수백 가에 이른다. 그러나 오직 조진규曹震圭의《역사명원》과 이광지李光地의《성력고원》만이 천리를 근거로 하여 상생과 상극을 발휘했으니 참으로 선택의 좋은 방법이다. 하락의 변화를 따라서 술가의 잘못을 증정한 것으로 매곡성梅瑴成의 《협기변방서》가 있다. 또한 여러 가의의 그림과 해설을 모두 모으고 각 법의 단점과 장점을 절충한 책으로 위감魏鑑의 《상길통서》가 있다. 내가 운관에 지시하여《협기변방서》와 《상길통서》두 책을 참고하여 합하되 그 가운데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서 본원, 의례, 공규, 용사, 의기, 입성, 이용, 총론, 변위, 부록의 10개 항목으로 편집하고 《협길통의》라 명명하였다.
이상은《홍재전서》18 권183 군서표기 5에 수록된 정조의《협길통의》서문이다.《협길통의》가 조진규의《역사명원》과 이광지의《성력고원》을 바탕으로 쓰여진 ‘선택서’라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선택’이란 ‘마땅함’과 ‘꺼림’을 가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명리학은 ‘적중률’에 매달리고 있다. 이 ‘적중률’ 안에는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애보다는 경제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한 번 깊게 생각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일이란 모두 ‘마땅한 것인가?’ 혹은 ‘꺼리는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기 때문이다.
《서운관지》‘선택’에는 정조가 1793년[17년] 서운관 관리들에게《협길통의》를 만들어야 하는지 설명한 대목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연구자의 설명 대신 정조의 발언이 보다 직접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길흉을 가리는 것은 역서를 수찬하는 중요한 일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큰 도리이다.
예전에는 역관이 귀갑을 안고 남쪽으로 하고 천자가 곤면을 갖추고서 북쪽으로 한 것은 감히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서 하늘을 존경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신들이 돕는 바와 일월성신이 임하는 바에는 따르거나 혹은 피했다. 이는 조정에서 흠준하여 분명히 섬기는 정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백성에게 널리 알려 기운을 여는 것이 어찌 하늘을 존경하여 감히 판단하지 않는 뜻이 아니겠는가?
제사, 연하, 조회, 봉책, 힐융[군사를 다스림], 행행[넓은 의미에서 임금의 거둥]은 나라의 큰일이다. 또한 관혼, 거사, 입학, 교우는 백성의 큰일이다. 사연을 보고 점치는 방법으로 삼을 한 부의 완성된 책이 없을 수 있겠는가?
[참고문헌]
《협길통의》《경국대전》,《경국대전주해》,《서운관지》,《속대전》,《대전회통》,《서운관지》,《임원16지》,《누판고》,《한국서지》,《증보문헌비고》,《역사명원》,《성력고원》,《협기변방서》,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 속집 경․자부 2》
Ⅲ 현대 명리학의 전개
현대 명리학은 1960년대 후반부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명리학이 형성되기 이전에 과도기적 과정이 필요하였다. 강제적인 국가해체기부터 1960년 전반부까지가 그 시기이다.
1 ‘백방길흉서’의 이어지는 모습 2《월영도》:해체 사회의 성씨 자화상 3 그림 주역 또는 당화 주역과 문맹자들의 문자 대안, 4 당사주와 토정비결: 믿고 싶은 ‘진실’, 5 그림 4주와 문자 대조의 비밀, 6 서자평의 ‘일시법’론
현대 명리학은 고전 명리학을 발판으로 유입되는 해외[일본과 중국]의 명리학을 통합하면서 새로운 내적인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이 시기가 2000년 이후라고 생각된다.
명리학의 발전 요인은 첫째로 명리학 철학적 바탕을 이론화하게 되었다는 점, 둘째로 대학에서 전공 학과의 하나로 설정되었다는 점, 셋째로 출판문화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직종으로서의 적지 않은 사설학원 교재의 발간이 빈번해졌다는 점 등이다.
사실은 ‘사주학’은 이미 앞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직 철학적인 이론을 마련하지 못한 개념이다. ‘고전 명리학’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와 비교하여 ‘명리학’은 이제 나름대로 철학적인 바탕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명리命理’는 ‘성리性理’에 대응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문학이나 유교학에서 ‘성리’의 상대 개념으로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학이나 한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성리’의 하위 개념이나 아예 종속 개념으로 보려는 듯하다.
그러므로 학계보다 일반 명리학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명리’를 ‘성리’의 대응 논리로 보려는 성과가 있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논객이 최국봉崔國峰(1945~)이다.
그동안 성리학性理學에 가리어 도외시되고 잡서로 취급되었던 명리학命理學이 이제야 그늘에서 벗어나 눈부신 광명을 온몸에 받게 되었으니 그 생명 빛나는 햇살과 함께 온 천하를 밝혀줄 진리되어 영원무궁하리라. 오! 명리命理여!
이 인용문은 최국봉이《명리》제2호(2002. 7.10)에 발표한 ‘명리 예찬’의 일부이다. 오늘날까지 그는 ‘성리:명리’라는 등식을 구조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확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의 하나[한국동양운명철학협회와 동양철학회의 회장와 총재를 지냈고 현재는 고문직에 있다.]가《명리命理》라는 학회지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命理》는 2002년 5월 10일자로 창간호를 시작으로 현재는 제44호(2010년 가을호에 해당)로 지속되고 있다. 계간으로 학회 사무실은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526-1(4층) 한국동양운명철학인협회이다.
참고로 삼기 위해 창간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창간사[회장 국봉 최원기]와 김종업[‘명리학 기초’]를 남승호, 송선식, 노승우, 남한우, 김용찬, 김갑식, 송복영, 김찬영, 김용식, 어선진 등이 참가하고 경남, 경북북부, 서울, 충남, 경기, 경북동부, 남서울, 대구, 강원제주, 부산, 전북, 충북 등의 지부가 소개되고 있다. 46배판으로 99쪽이다. 책 제목의 글자는 최국봉이 썼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명리》의 성격을 알기 위하여, 제43호[2010년 여름호]의 목차를 보이기로 한다. 최국봉의 ‘중화사상으로 가는 길’, 김일엽의 ‘명리학 지도자의 중심’, 김태완의 ‘중화사상의 윤리관’, 노승우의 ‘관상학의 정수는 중도’, 홍연표의 ‘상대성으로 본 음양 원리’, 김갑식의 ‘신살과 사주’, 조기원의 ‘《예기》’, 도인의 ‘만화 육임학’, 오선진의 ‘한방차의 효능’, 공자운의 ‘명리정전’, 김용식의 ‘풍수지리학’, 편집부의 ‘고전감상’, 지여해의 ‘추명가해설’ 등이다.
‘성리’에 대응한 ‘명리’의 학술적인 연구 성과는 김영호(2008)의《명리학 특강:성리로 본 범주론적 명리체계》(논형)에서 체계를 완성한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한의학의 중요 개념이라는 점이다. 한의학에서 죽고 사는 문제 즉 명리를 규명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겨진다. 이러한 한의학적인 성과는 권백철이 1979년《명리와 역의학대전》(남산당),《한의학과 명리학》[이정근 1990, 명문당], 《명리학과 질병론》[이정근 1992, 민족문화사] 등이 있다. 한의학에서 이러한 후속 성과물이 나오지 않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명리’가 학문으로 ‘명리학’으로 확실한 위상을 확보한 것은 국립대학[공주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으로 ‘역리학과’이 설립[2003년]되었다는 점이다. 사립대학에서도 이러한 설립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평생 교육 차원에 있었다. 명리학이 발전기에 접어든 것은 ‘명리학 전공’으로 전공자가 배출됨으로써 공인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주대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명리학 전공이 설정되기 위해서는 10여년이라는 준비와 인내의 기간이 필요했다. 대학에서 소위 ‘미신’으로 치부되는 ‘역리학’은 ‘초자연현상연구회’가 구성되어《초자연현상》이란 학술지를 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협동과정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이 출발하여 2010년 박사 과정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후 경기대학교, 원광대학교, 동방대학원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의 대학원을 중심으로 명리학이 설립되고 전공 연구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명리학 관련 학위 논문은 2002년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다. 박효순의《교통사고 일진日辰의 명리학적 분석 : 자동차 사고 실례조사를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이후 2003년은 5건, 2004년은 2건, 2005년은 9건, 2006년은 7건, 2007년은 5건, 2008년은 12건, 2009년은 11건, 2010년은 6건 등 총 49건이 된다. 2002년 1건을 포함하면 명리학 관련 학위 논문은 총 51건이 되는 셈이다. 배출 대학별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경기대학교 국제문화대학원 24건/동방대학교 대학원 11건/원광대학교 동양대학원 8건/공주대학교 대학원 7건/동의대학교 대학원 2건 /한국정신문화원구원 한국학대학원 1건[이하는 모두 갇음]/안동대학교 대학원/성균관대학교 대학원/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경북대학교 대학원/ 대전대학교 대학원
특히 경기대학교, 동방대학교 대학원, 원광대학교, 공주대학교, 대전대학교 등과 달리 아직 초창기 단계의 여타 대학에서도 명리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기 논문의 수집 대상이 못한 경남북 소재 대학에도 많은 연구 성과물이 출현할 것이다.
이 가운데서 박사 학위 논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리학의 연구 방향과 성격 등이 제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규철(2003)《명리학의 연원과 이론체계에 관한 연구》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정국용(2003)《성격특성의 예측을 위한 사주명리학에 관한 연구》 동의대학교 대학원
최성수(2008)《사주명리학에 근거한 건축 공간디자인 방법론 연구 : 특히 양택풍수 현대화 방안에 관한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
문재호(2009)《명리학과 운기학의 질병예측 비교연구》동방대학원대학교,
소재학(2009)《오행과 십간십이지 이론 성립에 관한 연구》동방대학원대학교
유경진(2009)《명리학 용신 도출의 방법론에 관한 연구》동방대학원대학교
조규문(2009) 《천강 원수성의 명리사상에 관한 연구》대전대학교 대학원
이영환(2010)《임철초의 명리 사상과 종격론 연구》동방대학원대학교
류시옥(2010)《명리 오행 체질론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동방대학원대학교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전문서적의 등장이다. 우선 명리학의 전문서적과 사전 편찬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발간된 전문서적으로 평가되는 책은 백영관[1963,오영문화사]《사주정설:비전》, 김은용[우재][1963, 창원사]《팔자대전:자해》, 신성생[1965,지명관]《사주명리학전집:정해》등이다. 백영관 책은 현대명리학 이론의 제시했다는 점에서, 김은용 책은 전통명릭학의 계보를 잇고, 신선생 책은 일본 명리학을 수입했다는 점에서 세 가지 저서를 들었다.
지금까지 집필된 사전은 다음의 5종이다. 박재완[1978]《명리사전》서울:동양문화사/ 신육천[1986]《사주명리학사전》 대구:갑을당/ 조성우․한중수[1994]《역학대사전》명문당/ 김승동[1998]《역사상사전》부산대학교 출판부/ 박주현[2002] 《낭월사주용어사전》 서울:동학사 등이다.
Ⅳ 결론
현대명리학은 ‘가벼움’이다. ‘오늘의 운세’가 매일 온·어프라인 선상에 뜨는 시대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가벼운 자기 최면’이라고 생각된다.
점을 치려는 사람은 스스로 점을 치거나 전문가를 찾아가 점을 치거나를 막론하고 대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나오리라는 결과를 짐작하고 있다. 일종의 종교적 행위와 비슷하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편안하고 안락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나 성당 그리고 절에 간다면, 경전이나 성직자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짐작하고 있다. ‘나를 위로하고 위로 받고 싶어서 가는 것’이 바로 종교 행위라는 것이다. 종교가 ‘공부’에 속한다면 성직자를 빼고는 종교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명리를 알아본다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종교 행위’이다. 인류가 형성되면서부터 늘 존재해왔고 또 존재해야 하는 바탕이 되는 종교 행위인 것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최면을 거는 행위인 것이다. 자기 최면은, 그러나 지고한 인간의 가치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어쩌면 무생물체까지도 ‘자기가 스스로 운용하는 세계 범위’에서 움직인다.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는 목숨을 거는 거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크기와 깊이의 지혜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사랑’이나 ‘자비’는 대부분 아주 작거나 얕은 그것이다. ‘인류애’를 위하여 활용되기보다는 ‘개인적인 자기애’가 적용된다. 이것은 종교의 속성이기도 하다. 자기의 크기와 깊이에 따라 종교를 믿기 때문이다.
‘자기 최면’은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적 실체이다. ‘운명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 존재의 실체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기가 그동안 구축한 넓이·높이·크기에 따라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겨자씨나 대추씨만 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평수의 방만하고 /어떤 사람은 공주시만하고 /어떤 사람은 충청도만하고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만하고 /어떤 사람은 남북한 합친 만하고 /어떤 사람은 아시아만하고 /어떤 사람은 지구만하고 /어떤 사람은 우주만하다.
이 가운데 가장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은 ‘자기가 만든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일 것이다. 자기가 만든 세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 세계 안에서 안주하면 안락하고 편안할 수[낙천주의자]도 있고 안주하지 못하면 불편하고 불안할 수[이상주의자, 허무주의자도 극단적인 이상주의자이다]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가 구축해놓은 세계를 벗어나 키우고 넓히고자 ‘수련’을 한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 받는 ‘공부’는 바탕을 마련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직접적으로 스승[교사]을 만나거나 간접적으로 스승[책자]을 대하거나 스스로 스승[자연]이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리학은 훌륭한 도구가 된다. 자기를 구축하는 동력을 구하는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천원에서 2~3만원을 투자하여 자기의 세계를 키워나가고 넓혀나갈 수 있다면, ‘투자 가치’가 높은 행위가 분명하다. ‘자기 최면’에 있어서 장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소위 ‘관’이라는 사고의 틀이다. 달리 말하면 ‘해석학’이고 ‘방향학’인 셈이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운용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자기 운명은 자기가 만들어가고 정비해나가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건강학인 셈이다.
* 이 강연은《한국명리학의 역사적 연구》[2010, 국학자료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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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H지식곳간채-한국풍속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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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구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