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 일색 선관위는 아예 여당 선거운동원
조선일보
입력 2021.04.03 03:24 | 수정 2021.04.03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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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박영선의 힐링캠프’ 유세에서 피켓을 든 채 박 후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친여 성향의 민생경제연구소 등 20여 시민 단체는 지난 1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시장 자격이 없다”며 즉각 사퇴하라고 했다. 오 후보를 비난하는 피켓도 들었다. 민생경제연구소 안진걸 소장은 전날에도 다른 시민 단체들과 함께 오 후보 사퇴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정 후보를 겨냥해 이틀 연속으로 낙선 운동을 한 것이다. 선거법은 현수막 등을 이용한 시민 단체 등의 낙선 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안 소장은 2016년 총선에서도 낙선 운동을 벌인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안 소장은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유세 차량에서 피켓을 든 채 “박 후보를 엄청나게 지지한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여당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일회성 행사라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고 했다. 가두에서 현수막 등을 설치·게시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는데 기자회견 등에서 한 것이니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관위가 얼마 전 여성 단체 등이 ‘보궐선거 왜 하죠?’ ‘성평등에 투표한다’ 캠페인을 벌이려 하자 곧바로 제지한 것과 대비될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3월 중 4차 재난지원금을 집행하라고 독촉한 일과 가덕도를 방문한 일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이 선거운동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서울시 교통방송의 ‘#1합시다’ 캠페인에도 면죄부를 줬다. 반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신문 광고를 낸 시민에겐 곧바로 찾아가 조사받으라고 했다.
선관위가 왜 이러는지는 중앙선관위원 면면만 보면 알 수 있다.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친여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조해주 상임위원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 있었다. 일반 위원 6명 중 4명도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야당이 추천한 위원은 한 명뿐이다. 그나마 이 위원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앙선관위원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비공개로 열린다. 지난달 말 열린 회의에서 이런 문제는 다루지도 않았다. 선거법 위반 여부는 서울·부산 지역 선관위나 중앙선관위 사무처가 결정한다. 이러니 정권의 입김이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선관위가 아니라 여당 선거운동원이다. 이 선관위가 내년 대선까지 심판 노릇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