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덩샤오핑과 어향육사
귀로 듣는 요리…‘정신 회식’으로 배고픔 극복하다
홍군 대장정 중 부대원 둘러앉아 맛있는 고향 요리 이야기
덩샤오핑 리더십, 패배·굶주림 달래고 낙관적인 마음 심어
1930년대 중국 공산당 군대인 홍군은 대립하고 있던 국민당 군대의 전면 공세에 쫓겨 역사적으로 유명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1934년 10월 중국 남부 장시성(江西省)에서 시작해 1936년 10월 북쪽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까지 1만2500㎞를 쫓겨 간 패주의 행군이다. 군사적으로는 분명 쫓겨 도망간 패전의 행군이었다. 하지만 중국을 종단하는 행군을 통해 중국 전역에 홍군의 존재를 알렸을 뿐만 아니라 핵심 지도급 인물들이 모두 살아남았고 장정을 통해 홍군의 전략전술이 발전했다. 그 결과 중국 공산당이 재건돼 마침내 중국을 차지하는 전기가 됐다. 피아를 떠나 이때의 행군을 주목하고 연구하는 이유다..
눈 덮인 산을 넘는 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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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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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연속이었던 홍군 대장정
대장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18개의 험준한 산맥을 넘었고 24개의 강과 협곡을 건너 한반도 길이의 10배가 넘는 기나긴 거리를 도망갔으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장정을 시작할 무렵 8만 명 규모였던 홍군 제1군 병력 중에서 장정이 끝났을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8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전투 중에 죽은 것이 아니라 상당수가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생존자들은 담배가 보급되지 않아 낙엽을 주워 말아 담배 대신 피웠고, 식량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굶기를 밥 먹듯 했다고 회고했다..
▲ 대장정을 이끈 홍군 지휘관들, 오른쪽 끝이 덩샤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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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부대의 귀로 듣는 회식
그런 와중에도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로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낸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지휘하는 부대는 회식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덩샤오핑은 당시 홍군 제1군 정치부 선전부장으로 대장정에 참가해 부대를 이끌었는데 보급이 안 돼 홍군 전체가 굶주리는 가운데도 그의 부대만큼은 맛있는 음식을 풍성하게 펼쳐놓고 부대원 전체가 모여 회식을 즐겼다.
부대원들은 특별히 이 회식을 ‘정신 회식’이라고 불렀다. 회식은 회식이지만 입으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귀로 요리를 듣는 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홍군 전체가 굶고 있는데 덩샤오핑 부대만 음식을 따로 빼돌려 먹을 것이 풍부했던 것도 아니고, 민가에서 음식을 구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주린 배를 움켜쥐고 참자니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서 휴식할 때면 쫄쫄 굶고 앉아 있느니 부대원들이 빙 둘러앉아 돌아가며 자기 고향 음식을 자랑하는 말 잔치를 열었다.
홍군은 중국 각지의 병사들이 모였기에 다른 지방 음식을 못 먹어 본 것은 물론 듣도 보도 못한 음식도 많았다. 그래서 여러 병사들의 고향 특산물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배고픔의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아마 광둥성 출신이라면 맛있는 딤섬 이야기, 베이징 출신이라면 짜장면·양꼬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중국 우체국에서 발행한 대장정 20주년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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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배고픔 달래고 사기 올려
지휘관인 덩샤오핑도 정신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맛있는 요리가 많기로 유명한 쓰촨성(四川省) 출신인 만큼 다양한 요리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 놓았다. 더군다나 덩샤오핑은 프랑스 유학 시절 두부 장사까지 했으니 요즘 먹방 쿡방에 나오는 유명 셰프 못지않게 맛있고 실감 나게 이야기를 풀었을 것이다.
인기 있는 쓰촨 돼지고기 볶음[回鍋肉]부터 마파두부, 맵고 얼얼한 닭고기 볶음까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매운 고향 요리 이야기가 배고픈 병사들의 시름을 달래 주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쓰촨 서민 요리인 어향육사(魚香肉絲)를 이야기하면 병사들이 침을 흘리며 맛있게 들었다고 한다.
덩샤오핑이 들려주는 어향육사
어향육사는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 죽순과 버섯, 잘게 썬 파와 고추 등을 섞어 볶다가 걸쭉한 소스를 부어 마무리하는 음식이다. 이때 사용하는 소스가 매콤달콤하면서 신맛이 나는데 생선요리에 사용하는 소스 맛과 비슷하다고 해서 어향(魚香)이라고 이름 지었다.
어향육사는 쓰촨성 시골 농가에서 발달한 요리다. 어느 솜씨 좋은 주부가 만들었다. 중국은 생선이 귀하게 때문에 생선 요리가 비싸고 그 때문에 서민들은 쉽게 생선을 먹지 못한다. 어향육사는 흔한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이지만 소스 덕분에 생선 요리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서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대장정 중 홍군 병사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사기를 올려준 음식이지만 정작 ‘어향육사’라는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적군인 국민당 군의 총사령관 장개석의 요리사가 지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든 대장정 기간에 덩샤오핑의 병사들은 없는 밥을 찾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맛있는 요리 이야기로 정신적인 회식을 즐기며 배고픔을 이겨냈다.
덩샤오핑의 지도력이 부하들에게 낙관적인 생각을 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부터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先富論)으로 중국을 발전시킨 덩샤오핑의 또 다른 리더십이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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