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박사님(현재 91세)의 4년 전
기자와 인터뷰 한 내용의 기사가 나의 메모장에 쓰여진 것을 옮기며 조박사님을 상기 해 본다.
조박사님의 하얗고 긴 수염처럼 흰 눈섭이 그리고, 얼굴 인상이 너무 인자하시고 순수하시며 믿음직하시다. 10년만 젊으셨으면
하는 부족한 나의 바램이랄까~?
장자가 말하는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8가지 과오를 설명하셨다
1. 자기일이 아닌데 덤비는 것을 주착이라 한다.
2. 상대방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망령이라 한다.
3.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것을 아첨이라고 한다.
4.시비를 가라지않고 마구 말 하는 것을 분수라고 한다.
5.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소라 한다.
6.남의 관계를 갈라 놓는 것을 이간질이라 한다.
7.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시킴을 간특하다 한다.
8.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받아보는 것을 음흉하다 한다.
조순박사는 '고중유락
(인생은 괴로운 가운데 즐거운 것이 있다)' 사자성어 를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중국 송나라에 '주신중'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에는 다섯개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1.생계: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
2.신계: 이몸을 어떻게 처신 하느냐의 계획
3.가계: 나의 집안,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냐의 문제
4.노계:어떤 노년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계획
5.사계: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에 설계를 말한다.
기자가 묻는다.
" 당신에게도 노계가 있오? "라는
물음에는 '소이부답<말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속에 나의
대답 일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하다.
"나는 달동네로 유명한 봉천동에 살고 있다. 25년(현재는 29년)전 나는 관악산을 내다보는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대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당시에는 주변도 비교적 좋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주위에는 그 때와는 전혀 딴 판이 됐다. 단독주택은 거의 다 없어지고 주변에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밀집해있다. 주차도 어렵고 지하철 역에서 이 집까지 오자면 가파른 언덕길을 허덕이며 올라와야한다. 처음 오는 사람중엔,' 이 집이 정말 조순의 집이냐? 동명이인의 집이 이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25년을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나밖에 없다. 자식들은 나보고 이사를 가지고 한다. 좀 더 넓은 곳. 편한 곳으로 가자고한다. 자기들이 모시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여기가 어떻다고 이사를 간단 말이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다소의 불편은 참고 지내야지. 사람은 너무 편해도 못써!' 어디를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 지난 25년 (현재는 29년)의 파란 많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사고없이 지냈고 지금도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이만 하면 됐지! 내게는 이 집이 좋은 집 이야! 이 집엔 좁은 대지에 나무가 많다. 모두 내가 심은 나무들이다. 해마다 거름을 주니 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 이제 이 집은 숲 속에 묻혀 버렸다. 감나무엔 월등히 좋은 단감이 열리고 고향땅 강릉에서 가져온 토종 자두나무는 꽃도 열매도 고향 냄새를 풍긴다.
강릉서 파 온 대나무도 아주 무성하고 화단은 좁지만 사계절 꽃이 핀다. 이 집과 나무 화단은 아침 저녁 내게 눈짓 한다. '당신이 이사를
간다고요? 가지 마시요!' 지난 25년 (현재는 29년)의 파란만장한 삶이 압축된 이 애물단지! 내게 이런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 2016년 8월 나의 메모장에 적힌 기사내용이 좋기도 하지만 조순박사님이 좋아서
이 글을 적고있다. 왠지 그분의 인상은 우리나라를 시온의 대로로
이끄실 Mentor 역할을 하실 분으로
생각된다.
나는 1974년도 대학 졸업과 동시 육군소위로 임관시 용산 한강로에서 봉천동 달동네 행복한감리교회 (구.봉천중앙감리교회 고. 장영근 목사님 개척 )창립한지 2년후 이사 왔다. 어느새 47년이 지났다. 개척하신 목사님과 어머님간에 강화도에서 친분이 있어 이사를 오게된 이유다. 79년도12월에 결혼을하고 아들이 중학교 입학할 당시였다. 87년도쯤 학군 좋은 강남으로 이사 가자는 집사람의 주장이 있었다. 99세로 고인이 되신 고.김영자장로 어머님께서, '신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살아야지 무슨 강남이냐? 안됀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 성경이 말 해 주듯이 어머님 주장대로 그냥 따르며 살았다. 결국, 1995년부터 큰 아들을 둘을 중학교 졸업과 동시 미국 고교로 입학시켰다.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2003 년도 귀국해 현재도 살아가니 47년 봉천동 귀신이 됀 셈이다.
조순박사님보다 18년 더 오래 봉천동에 살아 왔으니, 다른 곳에 가서 살기는 힘들 듯하다. 조순박사님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못가시는 이유처럼~나도 47년이란 희노애락이 봉천동에서 엮어진 탓인 것 같다.주변에 계신 동네분들과 행복한교회 성도들과의
인과관계가 깊어진 탓인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시기에 오늘도 내일도 한주간도 금년 2020년도 도 감사하며 봉천동에서 살아 갈 것이다.
조순박사님♥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사시고 저랑 함께 봉천동
에서 떠나지 마세요. 대한민국을~
봉천동을~하늘을 받들며 영원히 살아가시죠!
★조순박사님께서 구순의 연세에 2020년대 10년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나라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그 나라 지도자의 질에 달렸다. 그 주변의 엘리트의 질도 중요하다. 나아가서는 국민들의 질이 좋아져야
그 나라가 좋아지고 새로운 운명이 전개된다. 결국 지도자의 질이 좋아져야 하고 국민들이 행동과 사고를 제대로 할줄 알아야한다.
그걸 못하면 10년이 지나도 달라질게 없다."고 말하심을 인터넷을 통해 읽었는데 구순의 노령 연세에도 나라사랑엔 변함
없으시다.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믿음을 주는것 이게 경제 대책이든
뭐든 모든 정책의 첫걸음" 이라고 강조하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