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아이코의 "뭐가 우습나" 09
何がおかしい(2020 佐藤愛子)
09 자연과의 친화
64세의 신춘을 맞이하여 생각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한해를 무탈하게 보내고 싶다는 것 뿐이다. 아~ 나도 벌써 이런 연두소감을 피력하는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개가 무량하다.
작년까지는 이러한 소감 따위는 조금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연말연시를 바쁘게 보내면서 전선의 병사들 모양 본분에 충실하며 아득바득 한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하곤 했다.
"한해를 무탈하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나의 에너지가 노쇄해 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 속 평화의 기조가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에이즈의 발생과 세계 각지에서 빈발하고 있는 대지진과 화산 폭발은, 우리 인간들의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과학에 대한 신봉과 자신감과 오만함에 대한 조물주의 경고가 아닐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미하라산(이즈大島소재-1986년大분화)의 분화를 '神火(신성한 분화)'라고 하였던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조물주의 힘을 경외하는 겸손함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멀리서 분연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마음을 가졌던 인간들은 이윽고 산을 깍아서 길을 내고 차를 달리게 하여 가까이에서 분화를 구경하게 만들었다.
미하라산이 폭발했다는 소식에 관광객이 몰려들어 현지주민들은 영업이 번창하게 되어 기뻐한다고 한다. "神火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 준다." 라고 현지인들은 말하지만, 산의 입장에서는, "자기네 좋을 때만 신화(ご神火), 신화하면서 추켜세우지 말라." 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홋카이도의 우리 집은 초원을 내려다 보는 풀이 무성한 산언덕의 외딴 집이다. 겨울엔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람과 히다카산맥으로부터 몰아치는 바람이 맞부딪혀서 눈앞이 눈보라로 뒤덮이는 그런 집이다. 덧창과 2중유리로 된 창문을 설치하고 있어도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텐이 흔들린다.
물은 얼어붙고, 불타고 있는 스토브에서는 굴뚝을 통해 울려오는 바람소리가 윙윙하고 하루 종일 소리를 내고 있다. 얼굴도 씻을 수 없고 차 한잔도 마실 수 없다.
처음 경험하는 홋카이도의 겨울이었다. 방은 스토브를 계속 때서 겨우 온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 걸음만 방을 나오면 틈새로 들어오는 한풍 때문에 욕실이나 화장실에 갈 때는, 한달음에 복도를 지나가야만 한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집을 지었나 하고 후회하면서 얼굴도 씻지 않은 채, 차를 마시러 눈덮힌 언덕길을 걸어 마을까지 내려 갔다. "하필이면 그런 곳에 집을 지어 고생이 많으십니다." 차를 끓어 주면서 마을에 사는 어부가 말했다.
"풀이 무성한 그런 산언덕이라면 여우도 내려 왔다기 도망갈 겁니다." "우리집 뒤의 공터에 집을 세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겨울에도 편히 생활할 수 있을 텐데.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돼요."
계속되는 어부의 말에, 나는 "음~"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잠시 기운이 빠지는 듯 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라는 이유 뿐만이 아니고 돈을 들여 겨울에도 편히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힌다! 그 때 나는 바람과 눈(雪)에게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이윽고 봄이 왔다. 홋카이도의 봄은 5월이다. 눈이 녹고 북풍은 진정되고 말랐던 나무에 조금씩 푸른빛이 비쳐고 있다는 소식에 띠라 나는 북해도의 집에 갔다. 이미 화장실 가는데 복도를 빠르게 걸어 지나가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날씨는 많이 풀려 있었다.
산기슭으로 내려가는 산길에는 토필이 줄기를 뻗고 있고 들길에는 노란 꽃들이 자라고 있다. 언제나 머무는 동안 목장에서 데려오는 개인 시로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시로는 도쿄의 우리 집에서 태어나 새끼 때에 이곳으로 데려와 근처의 목장에 키워달라고 맡겨 둔 개다. 우리 집이 있는 풀숲산 부근에는 목초지의 초원이 있어, 나는 거기를 개와 함께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도 시로의 뒤에서 달리고 있던 나는, 초원의 끝자락에 늪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그곳은 자주 가고 있던 장소이지만, 언제나 계절이 여름이었기 때문에, 늪의 주위에는 무성한 떡갈나무와 갑제풀의 잎이 늪을 가리고 있었다. 시로를 부르며 이직 잎이 없는 떡갈나무 가지 사이로 문득 눈길이 닿는 순간 순백의 늪의 바닥이 나의 눈을 흐리게 하였다.
----5월이라고 해도 아직 늪의 바닥에는 눈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멈춰서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는 무심결에 감탄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이라고 생각한 것은, 물파초의 꽃이었던 것이다. 군락하고 있는 물파초의 나팔형으로 핀 꽃이랑 두손으로 합장하고 있는 듯한 모양의 흰 꽃봉오리가 틈새 없이 늪의 바닥을 메우고 있다. 하나같이 순백하고, 무심하게 피어 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그 순백색 융단의 아름다움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아니, 이런 곳에도 봄이 제대로 와 있다는 감동이었다. 그 늪의 바닥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물파초 군락이 있다고는, 현지의 누구도 모르고 있음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눈에도 닿지 않고, 5월이 오면 여기에 물파초는 피었다가 또 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을 두려워하듯이, 이 늪의 바닥에 모여, 몇 년이나, 몇 번이나, 피고 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꽃은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피는 것이 아니고 단지 무심하게 조물주의 뜻에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늪의 물파초의 존재를 마을사람들에게 알릴까 말까 고민했다. 어쩌면 나의 한마디로, 늪바닥의 물파초가 뿌리째 없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자신 혼자만의 가슴에 간직하기에는 너무 벅찬 감동이어서 마을을 향해 산을 내려갔다.
"그 아름다움이라니..심장이 멎을 것 같았어요" 라고 말했으나 동네 사람들은 "그래요? 그랬군요" 라는 반응 뿐이었다. "그 쪽은 옛날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어요. 흑백합도 가득 피었고요." 라고 말하는 한 할머니 외는 누구도 믈파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디 어디 한번 보러 갈까, 하고 일어서는 사람도 없다. 어디에 있는 늪입니까 라고 묻는 사람도 없다. 꽃과 사람과의 친해지는 법이 원래 이런 것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물파초가 늪의 바닥에 피어 있다. 그런가, 올해도 피었군. 좋군...그렇게 중얼거리고 지나간다. 꽃은 꽃, 사람은 사람이다. 꽃은 사람 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문득 보니, 거기에 피어 있다····이것이 조물주가 바라는 꽃과 사람과의 본연의 존재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