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4만 달러 고소득자도 월세 내면 빈털터리
밴쿠버 세입자 소득 40% 빚과 주거비로 증발
밴쿠버 임대료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조사 결과가 무색하게 세입자들이 체감하는 주거비 부담은 여전히 살인적인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 가구 소득이 14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층조차 소득의 40% 이상을 월세와 부채 상환에 쏟아붓고 있어 밴쿠버 주거비 위기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분석이다.
임대 리스크 분석 플랫폼 싱글키가 발표한 임대 지능 보고서에 따르면 밴쿠버 세입자들은 고소득과 높은 신용 점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주거비 지출로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다. 밴쿠버 세입자 가구의 평균 연 소득은 14만6194달러로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신용 점수 또한 731점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평균 2891달러의 높은 월세를 부담하고 있어 겉보기와 달리 실속 없는 살림을 꾸려가는 실정이다.
데이터 분석 결과 BC주와 밴쿠버시는 캐나다 전역에서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혔다. 전국적으로 세입자들은 소득의 3분의 1이 넘는 38.6%를 임대료와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지만 밴쿠버의 경우 이 수치가 41.6%까지 치솟는다. 통상적으로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30% 룰이 밴쿠버에서는 이미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캐나다 정책 대안 센터는 세전 소득의 30% 미만을 임대료로 지출해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본다. 연 소득 5만 달러인 경우 월세가 1250달러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주거 선택지가 늘어나야 정상이지만 밴쿠버의 기형적인 임대 시장 구조는 고소득자들조차 주거비 빈곤층으로 내몰고 있다.
BC주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비슷하다. 세입자 가구 평균 소득은 12만5516달러지만 순수 월세로만 소득의 33.9%가 빠져나간다. 여기에 부채 상환액을 더하면 고정 비용 지출은 소득의 40%에 육박한다. 식료품비 등 필수 생활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세입자들의 가처분 소득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상태다.
임대 시장의 구조적 변화도 감지된다. 과거와 달리 책임감 있고 신용도가 높은 30대 세입자들조차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주거비 유지에 쓰고 있다. 많은 가구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맞벌이나 부업 등 제2의 소득원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이 세입자의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임대인에게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세입자의 재정 건전성 악화는 곧 임대료 체납 가능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소득이 주거 안정성을 보장하던 공식이 깨지면서 밴쿠버 임대 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불안한 살얼음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