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삼일절입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가 한창이던 시절,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거행된 삼일운동은 여러 측면에서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철저하게도 비폭력 평화 시위로 진행되었습니다. 동시에 조선 독립의 초석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삼일운동은 단기간에 끝났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습니다. 이 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중국 상하이에 수립되었습니다. 국제 사회 앞에 우리 백성들의 자주독립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보다 조직적인 항일 운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종교계가 주도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천도교 15명, 개신교 16명, 불교 2명이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천주교는 단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민족대표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3·1운동에 천주교 신자들이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는 미미했고 소극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식별력과 판단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제를 합법적인 정부로, 조선을 일본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반정부 운동으로 단정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신자들에게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나중에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동참할 것과 신사참배까지 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같은 경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병자 성사와 미사 요청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조선교구장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것입니다. 지시를 어기고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에게는 2개월간 성무 집행을 정지시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세월이 흐른 지금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의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는 이제 독립운동가로서뿐만 아니라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신앙이자 애국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톨릭 교회가 또다시 시대의 징표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한국천주교회 구성원 전체가 다 같이 노력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교회 담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포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늘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 현실을 내려다보며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요 요직에 친일파들이 득실대고 있습니다. 잠잠하다가도 어느새 독사들의 무리처럼 머리를 쳐들고 활개를 칩니다.
그릇된 지난 시대에 대한 깔끔한 청산에 실패의 결과물이 참담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싹 다 정리했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능수능란한 친일파들은 어우선하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어느새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하고 또 세탁해서, 새로 수립된 정부의 주류이자 기득권 세력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청춘과 목숨까지 바쳐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해방의 기쁜 소식을 듣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귀환하셨던 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받으셨던 느낌, 그 참담한 심정과 수모가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일본인들, 전 세계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를 볼 수 없습니다.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화해를 위한 전제조건 중에 하나입니다. 나치 만행은 독일의 항구적 책임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과오에 대해, 진심이 담긴 사과를 끝까지 하지 않고 있는 일본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거저 이룩된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익명의 독립운동가들, 항일 투쟁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물방울들이 모이고 모여 큰 물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대한독립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또 다른 항일 운동, 제2의 삼일운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혼란 속에 있는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을 굽어보시고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서 빨리 이 야만과 비인간의 시대, 미성숙과 부끄러움의 시대가 지나가고 청산되기를 간절히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