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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3月 ☞소통과 합력의 달☜
고후5:1-21절) 새로운 피조물
어떤 사람이 건물더미가 무너졌을 때, 거기에 깔렸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되었거나,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간(肝)이나 심장(心臟)을 이식 받아서 살게 되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고, 하루하루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또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심장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시키도록 해서 한 생명을 살렸는데, 그 사람의 가슴에 손을 대어 보니까 자기 아들의 심장이 느껴져서 굉장히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와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살게 되어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물더미에 깔리지도 않았고, 간이나 심장을 이식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강하고, 운(運)이 좋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보다 수십 배 더 나은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산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늘 똑같고,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처럼 큰 사고에서 살아나야 하나님께 감사하고,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치료되어야 감격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작은 방이나 기숙사 방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다면, 병이 나지 않아도 따분하고 지루할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아주 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거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연락이 온다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수술하고 나서 병실에만 갇혀 있으면, 하루하루가 지루하지만, 친한 친구가 찾아오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하루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가 응답되고, 성도들과 만나면, 아주 스릴(thrill)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Ⅰ.날마다 낡아지는 우리의 인생
성경은 사람의 몸을 집으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어느 곳에 멋진 새 집을 지었고, 새 천막을 쳤을 때, 처음에는 새 집이어서 멋있고 좋아 보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색이 퇴색되고 천도 낡아 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집이나 천막이 낡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집이나 천막이 완전히 낡아지면, 폭삭 주저앉아 무너지고 맙니다.
5:1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어린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날 때만 해도 육체가 탄력이 있고, 힘이 있고, 지치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늙어갑니다. 청년기에 접어들면,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장년기에 접어들면 열정이 사그라들더니 어느덧 노년을 맞게 됩니다. 사실 집이라고 하는 것은 집 자체가 얼마나 크고 멋있느냐 하는 것보다, 그 집 안에 누가 사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멋진 천막(天幕)이 있는데, 그 집에 아주 사납고 심술궂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아무도 놀러오지 않을 것이고, 종종 고함소리가 나고, 싸우는 소리도 날 것입니다.
반면 어떤 천막(天幕)은 보잘 것 없이 작지만,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 살아서 어린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많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올 것입니다.
또 어떤 텐트에서 개척 교회를 한다면, 어린이나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몰려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육신 안에 영원한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겉으로는 낡아지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매일 새로운 사람이 찾아와서 언제나 새로운 집이고, 나중에 죽으면서 영원한 새 집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5:2절)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날로 새로워지지만, 우리도 인간이기에 육신의 문제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즉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고, 청년은 취직을 해서 결혼도 해야 하고, 남자는 군대를 가야하고, 성인은 가정 경제를 위해 돈을 벌어야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육신은 시도 때도 없이 병들고 다치고 여러 가지 문제로 걱정스러울 때가 많아서 탄식하게 됩니다.
본문에 우리는 하늘의 처소(處所)로 덧입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에서 하늘의 몸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성이 드레스를 입을 때, 속옷을 입은 뒤 그 위에 멋진 드레스를 덧입는 것처럼, 우리 속사람은 이 상태에서 바로 영광의 육신을 입게 됩니다.
즉 우리에게는 영원한 패션쇼(fashion show)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마 여성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뒤, 이 옷 저 옷 갈아입을 때, 기분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많은 옷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많은 은혜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천국에서 최고로 멋지고 아름다운 새 옷으로 패션쇼(fashion show)를 하게 될 것입니다.
5:3절)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입을 옷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벌거벗은 상태에서 집도 없고, 아름다운 육체도 없이 아주 보기 흉한 이 세상에서의 늙고, 저주 받은 몸으로 영원한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5:4절)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육신의 무거운 짐을 젊어진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어린 아이들 중에 가난한 집에서 자라는 어린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 청소년 때는 외모나 집안의 경제력을 갖고 비교당하는 일도 격을 것입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세상에서 성공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한 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온몸이 고통을 받고, 힘도 없어지고 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걱정에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짐을 벗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5:4절)...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 모두 삼켜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어미 소(牛)나 말(馬)이 새끼를 낳으면, 새로 태어난 소나 말은 태반(胎盤)에 싸인 채, 피가 엉겨있고 오물로 덮여 있습니다. 그때 어미 소나 어미 말은 새끼의 몸에 있는 태반이나 피, 오물을 핥아서 새끼의 몸을 깨끗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어미의 보살 핍을 받고 나면, 송아지나 망아지는 일어나서 껑충껑충 뛰면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적인 성공이라든지, 돈이라든지, 질병을 포함한 모든 고통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태반(胎盤)이나 오물처럼 더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오물을 생명으로 삼켜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새 드레스 같은 영원한 육신을 덧입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생명이 우리를 삼키는 것이 진행되고 있으며, 새 육신을 드레스처럼 입는 것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것을 믿지 않고 있다가 더러운 것을 삼켜버리는 깨끗함을 받지 못해 새 육신을 입지 못한 채, 벌거벗은 상태에서 도망치듯 지옥(地獄)으로 달아나게 됩니다.
Ⅱ.성령을 보증으로 주심
집을 사고팔 때, 돈을 다 받지 않았고, 집을 인수하지 않았지만, 계약금이 오가면, 그 계약은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집을 사거나 팔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집을 사거나 팔 때, 계약금을 받고 나면 *나, 집 팔았어* 라든지 *나, 집 샀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지만, 아직 천국(天國)의 어마어마한 축복이나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새로운 육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고, 보증금까지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과 영생의 계약을 맺은 것이고, 그 보증금으로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5:5절)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이것에 대하여 품질보증까지 하셨습니다.
백화점에서 명품 시계를 산다거나, 자동차 매장에서 차를 새로 구입 할 때, 품질 보증서를 받듯.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품질을 성경으로 보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드레스를 입듯. 영원한 몸을 우리 속 옷 위에 덧입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이에 대한 보증금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성령은 돈이 아닙니다. 성령은 땅도 아니고, 보석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신성이고, 하나님의 영(靈)이며, 하나님의 지혜(智慧)이고, 하나님의 능력(能力)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피조물(被造物)을 우리에게 보증금으로 주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신성으로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증금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가 있는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보증금을 당겨쓸 수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얼마든지 있다*입니다. 즉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축복을 이 세상에서 당겨쓸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능한 한 성령의 보증금을 많이 당겨쓰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은 월급도 당겨쓰고, 현금 대신 어음으로 받았을 때도 당겨쓰면서 성령님을 당겨쓸 줄을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가득 담으면, 우리의 믿음은 무한정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넓어진 그 마음만큼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충만(充滿)은 기득 차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가진 믿음의 분량만큼 가득 찹니다.
그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희한한 능력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게 되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천국의 기쁨으로 기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나서 우리의 기도로 병이 낮기도 하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적이 일어나거나, 부흥이 일어나서 집단적으로 은혜 받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령의 보증금을 당겨쓰기를 원하십니다.
5:6-7절)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이 세상에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다* 는 말이 무슨 뜻일까? 주님은 먼저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경찰서에 있거나 검찰에 있거나 병원에 있으면,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미리 알아본 뒤 자세히 알려줄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챙기다보면, 주님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주님은 *너는 이 세상에서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가질 것을 권해도 과감히 뿌리치고 우리 앞에 있는 상(賞)을 향하여 나아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5:8절)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죽어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죽는 것이 더 좋을까?
우리 중에 대부분은 지금 죽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더 좋고, 할 일도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으면, 주님과 함께 어디 듣지 가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자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돈이나 집을 다 내려놓고,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어디든 가려고 할 것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행복해 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이나 가족들이 보기에 *이 여자가 완전히 미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꼬여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꼬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열 가지 재앙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광야로 꼬여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가운데서 모세를 따라 애굽 땅을 탈출한 것을 후회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광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했던 물질적 보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미쳐야*합니다.
5:9절)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참된 성도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행복을 책임지시므로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만 기뻐하고,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이나 나머지 문제는 모두 이차적인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미친 듯이 좋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미치게 하셔야 미칠 수 있습니다.
5:13-14절)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미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돈에 마치거나 성공에 미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마쳤고, 예수님의 사랑에 미쳤*습니다.
유대인은 사도 바울이 성공의 길을 달려가다가 한순간 변화되어 예수를 전하고 다닐 때,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 때문에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도 바울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멀쩡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멀쩡한 척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5:14절)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입을 다물 수 없었고,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셀(cell)공동체에 올 수 밖에 없고, *주일학교에서 봉사하거나, 성가대에서 찬양할 수밖에 없고, 선교하러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송 1037절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예수님이 *너는 가야 한다. 너는 가야 한다. 너는 해야 한다.* 라고 계속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Ⅲ.예수 안의 새 피조물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물이 나타나면, 온 세상이 놀라 난리가 날 것입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식물이라든지, 새로운 동물이라든지, 새로운 곤충만 나타나도 학계에서는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히 신품종인 새로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 새로운 인간은 내면(內面)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죄의 뿌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뽑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인간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곧 예루살렘에 성령이 오신 뒤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언은 동시통역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큰 경기에서 자기편이 이긴 것처럼,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욕하자 베드로는 자신들이 *새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때 마귀나 세상 권력자들은 *제자들의 입을 다물도록 하기 위해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붙잡아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하고, 그들을 채찍질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잡아 죽였습니다. 네로는 로마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獅子)에게 물려 죽게 하고,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인간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었습니다.
5: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결함(缺陷)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도덕적인 결함도 있고, 성격적인 결함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급이나 출생의 결함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 있으며,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결함을 깨끗이 고쳐 주셔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被造物)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5:17절)...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 피조물의 위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 이 새 피조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아직 새 피조물의 기능과 성능과 능력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는 다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부끄러워할 과거가 없고, 더 이상 숨겨야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변화된 모습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는 아무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아무런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사랑에는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거나, 예쁘기 때문에 사랑한다거나, 자기 마음에 들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단점(短點), 우리의 방황(彷徨), 우리의 좋지 못한 성격(性格)까지 모두 다 사랑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價値)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서 오랜 기간 방황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방황하고 병들고 미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우리 자신을 찾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이 세상은 *미친 세상이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며,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세상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고, 우리가 우리 삶을 연기(演技)해야 할 세상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연극무대(演劇舞臺)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5:15절)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과연 우리는 완전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먹고 사는 것을 위해서도 살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인생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는 훨씬 더 높은 가치(價値)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연스레 그처럼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은 모두 수단(手段)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죽을 영혼을 건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외모(外貌)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5:16절)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살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세상의 직책(職責)이나 외모(外貌)로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볼 때는 성도(聖徒)로 볼뿐, 사장(社長)이나 부자(富者), 교수(敎授) 등 직책으로 보면 안 됩니다.
옛날에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님도 유대인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 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和解)하게 하는* 것입니다.
5:18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이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怨讐)가 되어 계속해서 하나님께 대적(對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정권도 자꾸 미국에 대적(對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평화롭게 살면 되는데, 자꾸 불안하다 보니, 미국을 자극해 무엇인가 자신을 과시(誇示)하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복(福)에 감사하면서 잘 사용하면 되는데, 자꾸 불안하다보니, 일부러 하나님께 대적(對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로 보내어 세상 사람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5:20절)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여기서 *사신(使臣)*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대사(ambassador)입니다.
사람은 흔히 외교(外交)에 대해 총과 대포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즉 외교관은 다른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대통령이나 정부를 대변합니다. 그는 거기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보호하고, 자기 나라의 입장이 무엇인지 밝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사(大使)가 거기서 자기 나라의 입장을 밝히는 동안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뇌물(賂物)을 먹고 입을 꾹 다물어버리거나, 철수해버리면, 전쟁(戰爭)이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에게 총과 대포. 폭격기가 없지만, 우리 뒤에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천군(千軍)천사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심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을 전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5:10절)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온 세상 사람들은 언젠가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대(審判臺)앞에 서서 심판(審判)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말해줌으로써 마지막 한 명이라도 하나님과 화해(和解)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성공입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온 천하(天下)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아-멘
본문 토의와 적용
1.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헌 옷처럼 낡아지고, 떨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 입게 될 새 옷이나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2.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새롭게 변화되었으며, 과거에 좋지 못한 기억이나 관계, 기질 가운데서 아직도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하나님은 세상과 화해하는 직분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세상과 하나님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찬송가 508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알림(연속2)
▣ 교갱원 소속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금년 ☞ 정착과 부흥의 해*
3月 ☞소통과 합력의 달☜
◈4월1일-5월31일 춘계 대심방(세례겸)과 셀(cell)현장 점검을 위해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신청해야만 심방이 가능하고 소속이 될 수 있으며, 정착하지 않고*특권과 은혜감사*를 실천하지 않는 셀(cell)의 무관심이 *생명의 양식*촛대를 전체 삭제하고 옮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전반기 셀(cell)보고서 결과?)
※리더(leader)1명을 뽑아 *필수과목*을 필하고,예배 인도 등 교갱원과 계속 소통해야 소속으로 안전할 수 있습니다(직분자도 동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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