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 詩)
나무*가 살고 있다 / 홍강호
숲 가장자리
혼자 하늘을 오래 바라본
소나무 한 그루
제 뿌리로 서 있으려 한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무들은 서로의 그림자를 밀어내며
한 뼘 더 햇빛 가까이 가지를 뻗는다
숲은 평화로워 보여도
빛을 향한 경쟁은 늘 조용히 흔들린다
햇살 좋은 날
넓게 펼쳐진 잎사귀들이
바람의 밥상을 차린다
나무는 말없이도
새와 벌레와 사람을 먹여 살린다
절벽 끝 바람 많은 자리에는
곧게 자라기를 포기한 나무가 있다
몸은 휘어졌지만
끝내 자기 방향을 잃지 않았다
강가 가까운 곳에서는
어떤 나무가 물 냄새를 먼저 알아차리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뿌리를 밀어 넣는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물길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묵묵히 열매를 내어놓는 나무도 있다
떠들지 않고
자기 자리를 오래 지켜낸 것들이
가을이면 가장 조용히 익는다
폭풍우 지나간 산등성이
껍질이 벗겨진 거목 하나
수없이 흔들렸을 텐데
오히려 뿌리는 더 깊어진다
상처는 때로 나무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숲의 중심에는
반듯하게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휘지 않는 마음으로
서로의 간격을 지켜 주며
숲의 질서를 만든다
안개가 오래 머무는 산속
속이 비어가는 늙은 고목 하나
겉보다 안쪽 나이테가 더 깊다
침묵 속에서만 자라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깊은 숲 그늘 아래
물과 햇살을 충분히 받은 나무는
자기 몸으로 또 다른 그늘을 만든다
누군가를 쉬게 하는 일은
오래 살아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숲은 조용하지만
수많은 방식으로
나무가 살고 있다
* 甲木, 십 천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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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사)
나무가 살고있다
홍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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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
26.05.15 18:1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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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가 살고 있네요.. 잘 읽었어요
그래요 잘 살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지킴이와 떠돌이, 구심과 원심의 바람 같아요? 잘 감상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지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왜 저러고 있지 할 수도 있죠.
자연의 싱그러운 향 내음이 품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