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랑진 낙동에서
입춘이 지나고 우수를 앞둔 이월 중순 수요일이다. 일기예보는 제주도와 남해안에 강수량이 제법 될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이른 아침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올겨울은 예년보다 무척 포근했고 비가 잦다. 소한대한도 추위가 없었고 눈은 고사하고 넉넉한 비가 내렸다. 잦은 겨울비로 산불 방재 관계자들은 걱정을 좀 들고 지내지 싶다.
비가 온다기에 산행은 어려워도 산책은 가능할 듯했다. 창원중앙역에서 순천을 출발해 해운대를 돌아 울산과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터널을 빠져나가니 진례 들녘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열차 차창으로 빗방울이 튕겼다. 진영역을 지나니 차창 밖 화포천은 구름과 안개와 함께 비가 내려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한림정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터널을 지났다.
낙동강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니 삼랑진이었다. 삼랑진에서 타고 간 열차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 나가 우산을 펼쳐 썼다. 삼랑진은 내가 젊은 날 초등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잠시 근무한 곳이다. 그 시절이 삼십여 년 전이라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고 어느덧 정년을 앞둔 즈음이다. 다른 도시에서 비해 그렇게 변모하지 않아도 새로 지은 역사를 비롯해 거리와 건물들은 달라졌다.
그간 4대강 사업으로 생긴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 따라 걷는다고 물금에서 원동과 삼랑진까지는 여러 차례 다녀갔다. 밀양강을 따라 거슬러 오르기도 했다. 밀양역까지도 올라간 적 있다. 삼랑진은 만어산에는 만 마리 물고기 바위에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종석이 있다. 깐촌 강변엔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작원관이 복원되어 있고 처자교 승교 쌍다리 전설의 현장도 있다.
역전에서 읍사무소가 위치한 송지 장터를 지났다. 4일과 9일이 송지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터는 형성되지 않아 썰렁했다. 읍사무소와 성당을 지나 낙동역 방면으로 걸었다. 낙동역은 경전선 분기점에 있는 첫 번째 역이었는데 근래 폐역이 되어 사라졌다. 낙동역과 인접해 부산대구간 고속도로 교량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건너갔다. 강둑으로 나가 둔치 드넓은 생태공원을 바라봤다.
쉼터 정자가 있어 비를 피해 사진을 찍으려고 그곳으로 올라가 강변 풍광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정자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뭔가를 덮어둔 설치물이 있어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속에서 웬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정자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낸 듯했다. 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아마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종주하는 이가 하룻밤을 보낸 듯했다.
민물횟집과 매운탕집이 있는 뒷기미 나루로 돌아가기 전 생림으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밀양강이 합류해 강심이 깊고 물살이 빠른 지점이라 트러스트 공법으로 건설된 다리였다. 다리를 건너니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오가는 차량이 한산하고 자전거로나 걸어 지나치 이는 더군다나 없었다. 연탄불을 피워 데워둔 어묵꼬치를 두 개 사 먹으며 잠시 말벗이 되어 주었다.
생림에는 경전선이 복선화되면서 옛 단선 터널은 레일파크로 조성해두었다. 낙동강이 밀양강과 합수하는 지점은 낮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었다. 마사마을 앞으로 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니 빗방울은 받쳐 든 우산에는 또닥또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연속해 들려왔다. 마사마을에서 모정으로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폐선 터널을 자전거길로 만들어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되었다.
예전엔 기차가 다녔을 터널을 지나니 한림 모정마을이 나왔다. 화포천 다리를 건너 철길과 나란한 들판을 지나 한림정역까지 갔다. 아까 모정고개를 넘지 않고 폐선 철길 터널을 통과해 지름길로 온 셈이었는데 부전을 출발해 순천으로 가는 열차는 간발의 차로 탈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어 한림면행정복지센터 앞 식당으로 들어 요기를 하고 버스로 진영을 거쳐 창원으로 복귀했다. 2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