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대교회에서 방언이 문제가 되었을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방언에 대해서 논쟁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 현상의 역사적 교회사적 출처에 대해서 신경을 너무 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입니다. 오늘날 다수의 교인들이 방언 문화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방언의 물결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방언은 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제2, 제3의 신비주의로 입문하는 초등 단계라고 봅니다. 그 증거로서 김동행 목사님, 이분은 신비주의의 극단까지 경험하셨으니 귀한 경험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방언이 각종 신비체험의 전단계로 간증하신 것입니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마녀재판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진짜 마녀와 가짜로 모함받은 마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중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실제 악령들린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녀들이 행했던 특이한 능력 중의 하나가 동식물과 대화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초능력, 텔레파시라고 부르는 그러한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마녀들이 행하던 초현상 중에 방언은 기본 메뉴로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은사주의와 관련해서만 받아들이는 방언이 실제로는 중세 암흑시대나 다른 문화권 타종교에서도 거의 유사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었다면 우리가 그것을 굳이 성경과 결부시켜서 이것만은 오직 성령의 은사이며 우리가 하는 것 외에는 모두 흉내내기 가짜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신사도 운동에 대해 영상과 자료들을 보신 분들은 알지만 요새 기독교계를 습격하는 쿤달리니 영성은 힌두교에서 온 것입니다. 힌두교는 바빌론 신비종교의 원천과 가장 맥이 잘 닿아 있습니다. 그 뿌리가 그대로 계승된 형태가 힌두교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로마의 바커스)의 숭배의식이 있었는데 이것도 쿤달리니 영성과 흡사합니다. 광적으로 흥분하고 술에 취한 듯, 또는 실제 술에 취해서 흐느적거리고 알 수 없는 방언들을 말하며 광란에 휩싸여서 열광적으로 신을 찬양하는 의식이 동반되었습니다. 오늘날 성령에 취해서 벌인다고 하는 신사도 쿤달리니 짓들도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합니까? 성경이 이교도의 행실을 배우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그리스 고대 신앙의 방언이나, 또는 힌두교의 방언이 실재했었다고 말한다 해서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그것이겠습니까? 성령께서 이교도들과 신비체험을 놓고 경쟁하실 리가 없습니다. 방언은 외국어이며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교도들이 종교의식으로 행하는 알수없는 주절거림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왜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대신 뭔가를 육체적으로 느낌을 통해서 성경을 입증하려고 합니까? 그런 짓을 촉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으로 알아야 합니다
첫댓글 방언기도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마귀로부터 온 방언 기도를 분별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생각이 마귀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사람의 경험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 근데 실상은 그것이 마귀로부터 왔을 경우 경험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물론 미혹의 영인데 경험 안 하는 게 낫단 식으로 오진 않겠죠? 고귀하고 신령한 경험이라는 믿음으로 들어오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끊어낼 때 끊어내기가 싫은 아니 끊어내기 힘든 마귀의 방해가 있는 마귀의 원하는 바 였을 뿐입니다.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저도 몰랐어요
다 자기들의 믿음대로 말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잘못이 없습니다.. 한쪽이 속고있을뿐 마귀에 대하여 승리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지금 교제하고 있는 성령님 그분과 끊어지면 두렵다는 생각으로 방언을 끊지 못하신다면 악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걸 끊었다가 나는 오히려 속아서 반대로 계속 미혹당하다 지옥가면 어떡하지? 얼척 없는 생각입니다 마귀가 준 마음의 거짓말이고 제가 두려워했던 부분이죠.. 그러나 다 마귀가 준거라는.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잘 모르나 암튼 방언을 이제 하지 않겠다! 안해도 괜찮다! 했을 때 두려움이 오면 마귀가 잡고 놓지 않는 건 아닐까 한번쯤 생각이 드실겁니다.
저도 방언으로 기도하지만 전 제가 죄인임을 늘 깨닫고 회개하며 주님께 늘 외치는 것은 화려한 말보다 다양한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대로 주님 뜻대로 온전히 살길 바란다는 기도 외엔 하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의롭다 할 수 없음을 알고조심히 말씀드리지만 방언을 하는 것이 교만을 부른다는 단정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며 방언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냐 방언을 안하는 것이 성경적이냐 하는 말로 서로 진리라고 말하며 논쟁아닌 논쟁을 하는데 방언하는 것이냐 안하는 것이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게 말씀 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겠고 그 순종도 여러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아닐까요? 죄와 싸우며 내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 앞에 굴복시키고 세상자랑 즐거움 다 내려놓으며 그 자리에 하나님 사랑으로 날마다 갈급해하며 바라보고 그 빚진 마음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나누며 천국을 소망하며 정결한 신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언을 하는 자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다 간다고 할 수 없고 방언을 안하는 자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다 간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방언이 모든 것의 귀결이 되는 것처럼 말씀들 하시는 것이 신앙의 길을 막 달려 가는 분들을 실족케 한다면 그건 누가 책임
지나요?
그런 불안함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단 방언으로 말고 또박또박한 마음의 기도로요..
분별이란 이름으로 글 올리기보다 같이 기도하시죠 그럼~
아멘 입니다
그렇다면 방언 안하고 신앙생활하면 더 영적으로 일취월장 하느냐...방언하면서 우리가 얻는 유무형의 혜택들을 무엇이 줄 수 있느냐라고 묻는 분들에게 답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방언을 통해서 얻는 유익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은 그 유익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십니까? 그 말씀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리 죽도록 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면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자녀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은 회초리로 때려야 움직이지만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먼저 알고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모두 사단에게 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데요; 명철님의 질문성 말씀이 제게는 억지로 들립니다. 방언의 유익을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신앙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그러나 방언이 주는 유익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니 그것도 귀한 것입니다. 샬롬~
명철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더욱 힘쓰라고 은혜로 주신 방언도 감사합니다.
방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며 방언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정리를 한 적이 있는데요. 방언은 존재하고 유효하다고 성경에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영분별을 해야합니다. 영분별 원리는 김동행님이 잘 설명해주고 있으십니다.
제가 공연한 글을 쓴것 같군요. 성령의 은사로 주셨던(과거) 방언은 알수없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면 성경을 고쳐야 합니다. 지금 행하는 방언은 100% 소리 혹은 소리와 파편적 언어가 조합된 모방 방언입니다.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이 해석은 불변합니다. tongue에 대한 전세계 모든 사전적 정의와 성경적 정의가 동일합니다. 오직 오순절주의만 어떤 소리도 된다고 하지요
명철님께서 방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해주셨군요~~^^
방언(고전14장)에 대한 제 해석에 반박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의 방언도 외국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방언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만 왜 그런지는 글을 포스팅할 것이구요. 암튼, 성경해석은 반드시 문맥을 고려해야하는데 제 해석(이해)에 대한 반박글을 기대합니다.
명철님 방언의 종류에 대해서는 제가 지식이 없습니다. 김동행님 명철님의 글에 대한 의견을 좀 부탁드립니다. 궁금하군요.
실제로 현장에서 행해지는 방언의 99%는 랄랄랄라 내지 그와 유사한 소리입니다. 그리고 언어(외국어) 방언을 한다고 하는 증언들은 대부분 공인받지 못한 가설입니다. 또 악령들린 자가 한번도 말한 적 없는 외국어를 말하는 현상은 드물지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설령 외국어를 난생처음 하면서 유창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해서 곧 사도행전 방언을 한다고 박수칠일도 아니란 것입니다.
방언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것은 사도적 은사가 종결되었는가 지속되는가 하는 지극히 상식적 판단에 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 저는 성경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보지 않으므로 지금 현재로선 님의 글이 이해가 안됩니다. 성경을 넘어서는 설명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합니다. 다만 김동행님께서 영분별 원리를 잘 설명하시므로 그것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김동행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말씀드리면 이해가 쉬울런지요...성경이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반증하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성경이 옳다고 긍정한다고 봐선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입니다.
가령 성경에는 고양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고양이과 짐승은 다 나오는데 고양이만은 나오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신으로 숭배까지 받았는데 성경에는 야옹이가 없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고의로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있는데 이유가 있는 것들입니다.
성경에서 "너는 랄랄랄라 알수없는 소리 방언을 하지 마라"고 경고할 이유가 꼭 있을까요? 상식으로 봐도 이상한 짓이면 상식으로 판단하면 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함부로 풀고 해석하면 안됩니다. 이 부분에서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네 성경을 함부로 풀어서 멸망을 자초하는 사람들은 보통 상식을 건너뛴 다음 자기 구미에 맞는 몇몇 구절을 붙들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때 지켜야 할 원칙은 그 말씀들은 내 체험과 내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색안경끼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면 그는 행간에서 진리를 찾는다고 하다가 하수도로 빠지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 저는 다행히 그동안 좋은 선생과 친구들을 많이 만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상식으로 양심으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면 안됩니다...성경은 영적인 것이라 해서 상식을 벗어나서 무엇이든지 포용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옷벗고 춤추는 것은 미친 바바리맨의 행동이지 정상인은 아니지요.
교회라고 하면서 멈출수 없는 웃음과 벌레처럼 굴러다니고 미친듯한 행동을 하는 것은 성경에서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가 찾아내서 연구하다면 대단한 시간낭비를 하는 것입니다. 왜 상식에도 못 미치는 행동을 꼭 성경으로 판단을 해야 되겠습니까? 성령님께 그런 문제를 가져오기 전에 내가 생각이 있으면 생각의 체로 걸러낼 것은 걸러낼 필요가 있지요.
님이 든 예는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그런 것은 제 눈에도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영분별원리로도 그런 것들은 걸러집니다. 많은 드러내지 않는 조요한 방언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함부로 그들을 판단안합니다. 이제 퇴장할 때가 되었네요.
명철님!!!
아무리 강조하고 피를 토하며 울부짖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어찌 하겠습니까?
"방언의 은사가 성령님의 은사가 맞지만 방언기도가 성령님으로 부터 온것이 아니다"라는것은
진리인데,이 진리에 순종할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이미 많은 분들이 순종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켰지만,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리는 자들도 많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 하신분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하나님의 역사 하시는 방법은 그때와 다르 다는것입니다.
네 방언이 그 하나로 끝난다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하는 정도면 될 것입니다만 방언을 통해서 무수한 신비주의가 끝도 없이 교회 안으로 유입되는데 어떻게 수수방관을 합니까? 방언한 다음에 입신하고 그 다음에 예언하고 그 다음에 신유 축사 단계별로 커져서 결국 교회를 점집 무당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를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묵과하란 것입니까?
교회 안으로 바벨론 신비주의의 영들이 방언 핑계로 진치고 쳐들어 오는데 무관심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겠나요?
성경이 만들어지기 전의 방법과 만들어진 이후에도 똑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하신다면 성경을 왜 만들어 놓았겠습니까?
경험과 체험 다 좋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것이 아니고,그 체험을 성경의 기준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것 입니다.
이제 저도 댓글을 안쓸려고 하는이유는....
어차피 끝없는 논쟁 이란걸 잘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토론을 하자고 헀지만......
항상 그랬듯이,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다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듯이....
그냥 방언기도 하실분들은 계속 하시고,
깨달은 마음으로 버리셔야 할 분들은 깨끗이 버리고,
저는 명철님의 애끓는 마음을 이해 합니다.
진리를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 아름답네요~~
이제 심판 날에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요.
과연 불법을 행했는지,진리를 따랐는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판단이 있을 것입니다. 짚이나 그루터기로 쌓아올린 자들은 모두 불타버려서 빈손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고 보석과 금과 같이 불타지 않고 남아있어서 공적으로 인정받는 자들은 면류관과 상급을 안고 들어가겠지요.
이땅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하며 배를 섬긴 자들, 이적과 표적을 행한다고 하는 거짓교사들 따라다니며 허송세월한자들...그들이 예수님 피로 씻겨 구원받았다고 하면 심판대 앞에서 유구무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고 저주하는게 아니라 그 수치를 당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악령의 종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영적인 갓난아기들은 모릅니다. 사탄을 얽어매고 밟는다느니 사탄에 목줄을 해서 다니는 듯이 으스대는 은사주의 목사들 많습니다. 천사들을 부리는 권세를 가졌다는 자들도 많습니다.
사탄이 공중 권세의 통치자인데 할일이 없어서 그런 허풍쟁이들하고 놀고 있겠습니까? 사탄이 가장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사탄을 정복했다고 말하며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질병도 가난도 극복했다고 말하는 허풍선이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사탄이 실제로 재물과 명예도 안겨줘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고 도구로 써먹습니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고의로 말씀을 짖밟은 모독자들입니다.
방언은정확한의미가있는외국어이며 복음전파용입니다 그외의 용도는 없습니다 오늘날 방언이있으면 통역도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방언하는 사람한테 통역하는사람 한10명데리고 와서 통역해보라고 하십시오 다들 제각기 엉터리통변합니다 실험해보면 오늘날 방언기도와 방언통변이 다 거짓이라는 드러납니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조이님은 방언이 오직 전도용이라고하는데 고린도전서 14:14~15는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누군가가 방언에 대해서 순복음과 미국 은사주의의 뿌리에서부터 제대로 조명해서 제대로 그 근원을 밝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미국 은사주의의 시작 역시 지금의 신사도 현상들과 99%가 아닌 100% 동일한 것이었고 지금 일어나는 신사도 현상들은 20세기 초 중반 오순절 주의의 하드코어 버전일 뿐이라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지만...그 이상으로 설명하려면 힘에 부치니까요...
은사주의에 대해서 이미 연구해 놓은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여기 게시판에서 미처 전달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타 ! 모두가 지혜로와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