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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안식처5
누구나 한 해의 출발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100억원을 벌겠다는 원대한 포부부터 작은 보금자리를 장만하려는 소박한 소망과
새 생명의 탄생을 기대하는 소소한 희망, 그리고 금연·금주 등의 안 좋은 습관에 이별을 고하려는 의지까지.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곳, 조용한 풍경과 편안한 휴식이 있는 곳,
고향집 아랫목처럼 부담 없이 눌러앉아 몇 날 며칠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떠나십시오.
혹시 아직 정해놓은 곳이 없습니까? 여기 <도베> 여행가들이 자신들만의 안식처를 공개하였습니다.
낡은 카메라와 떠난 제주도 드라이브
대지의 넘치는 기운으로 새해를 충전하다
삶에 지쳐 다시 시작할 의지도, 기운도, 용기도 사라진 무기력증에 시달리다가 문득 그를 떠올렸다. 제주도의 무엇이 당신에게 세상의 편견에 맞설 의지를, 자신의 삶을 지탱할 확고한 신념을 준 것인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지금, 사진작가 故 김영갑이 떠난 제주도 중산간의 어느 들판에 서서 바람에 실려올지도 모를 그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본다.
2004년 초여름에 제주도의 갤러리 두모악을 찾았을 때, 그는 가난하고 굶주려야 하는 제주도의 삶과 미친 사진가로 낙인찍힌 인생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조차 초월한 듯 보였다. 그러나 흘러가듯 내뱉는 그의 혼잣말에는 어떤 미련도 느껴졌다. “내가 가면 저 창고에 쌓여 곰팡이가 슬어가는 필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것들을 하나라도 더 정리해놓고 가야 하는데….” 젊은 날의 광기와 열정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흔적들은 바스라져가는 육체 속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두모악을 나서면서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삶과 인생이 담긴 작품을 남겨둔 채 그가 죽음의 그림자를 쉽게 좇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는 그를, 그의 광기와 열정을, 그의 강인한 의지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2005년 5월 29일, 서울에서 그의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며 열리고 있는 동안 그는 제주도의 낡은 폐교에 홀로 누워 세상과 조용한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접했을 때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제주도를 담는 일에 미쳐 있느냐고. 그는 오히려 이상한 듯 내게 물었다. “그럼 자네는 자네 일에 미쳐 있지 않은가?” 미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하기에는 너무도 지친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질문하고 싶다. 어떻게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지를 지탱할 수 있는지. 혹시 당신, 그 대답을 제주도 어딘가에 숨겨두었는가?
제주도의 힘을 찾기 위한 키워드, 갤러리 두모악
2년 만이다. 처음 방문할 때는 몇 차례 헤매고 나서야 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언론의 유명세를 타고 난 이후라 그런지 제법 이정표도 잘 되어 있어 전보다는 훨씬 찾기가 수월하다. 도예가가 가마 속에 몸을 던져야만 고려청자가 탄생하는 것은 아닐진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빛을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작품보다는 드라마틱한 인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씁쓸함은 갤러리 두모악도 예외는 아니다. 전에는 아담한 정원이었던 갤러리 앞마당은 온통 검고 묵직한 제주도 돌들로 제주도 전통의 밭 형태로 새롭게 꾸며졌는데, 그 형태가 언뜻 돌무덤 같아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회색빛의 겨울 날씨 탓도 있겠지만,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초여름의 소박함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는 정원이 어딘가 낯설기만 한 것이다. 게다가 떠나간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다양한 조형물과 예술품들 역시 주인 대신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 어색하기 그지없다. 살아생전에 그가 이런 것들을 즐겼다면 모르겠지만,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문득 2년 전, 그와의 대화에서 유일하게 격앙되어 화를 냈던 부분이 기억난다. “난 그 연놈들과 친하지도 않고, 심지어 만나본 적도 없어. 그런데 내가 ‘죽어가는 사진가’라는 원치 않은 타이틀로 유명세를 타니까 엉뚱한 연놈들이 내 이름을 팔아먹으면서 마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더군.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1 갤러리 두모악에는 김영갑 선생의 작업실이 보존되어 있다.
2 1112번 도로 위에서 만난 삼나무 길.
3 한라산 중턱에는 말 방목장이 있다.
4 중산간의 작은 마을에서 막바지 감귤 수확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공짜로 얻은 감귤은 기막히게 달콤했다.
오름은 화산의 흔적이다. 아래서 보면 둥그렇지만 오름에 오르면 분화구의 자리가 뚜렷이 남아있다.
렌즈를 통해 발견한 대지의 정기, 중산간
김영갑 선생은 지금도 갤러리 앞마당 감나무 아래 누워 제주도의 오름에서부터 들판의 갈대를 스치고 지나 돌담을 타고 넘어온 중산간의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바람을 좇아 제주도 중산간으로 향한다. 그를 매혹시켰던, 그에게 삶의 힘을 주었던,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준 제주도의 숨은 속살을 찾아서.
김영갑 갤러리가 있는 삼달리에서 16번 국도를 타고 성읍민속마을 방향으로 가면 제주시로 향하는 97번 국도와 만난다. 이 도로는 제주도 동쪽 지역을 남북으로 가르는데, 이 길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오름이 수없이 많이 산재하고 있어 풍경이 서쪽과는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10여 분 쯤 북쪽을 향해 거슬러 오르면 1112번 지방도와 만난다. 서쪽은 한라산 방면, 동쪽은 성산 일출봉 방면이다. 잠시 망설이다 일단 오름을 보기 위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경으로 알려진 비자림까지 오면서 결국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름은 만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길을 헤매는 한이 있더라도 소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지도를 펴서 현재 위치를 파악한 후 비자림에서 성산 일출봉 방면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타고 남쪽 방면으로 향한다. 그렇게 창밖을 두리번거리면서 나아가는데, 갑자기 갤러리의 사진에서 본 듯한 거대한 규모의 갈대밭이 나타난다.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그 갈대밭을 향해 방향을 틀었더니 펼쳐지는 것은 사진 이상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밭은 거대한 바다를 연상시키는데, 그 한가운데를 달리는 나는 마치 배의 선장이 된 느낌이랄까? 속도를 줄여 시속 20킬로미터로 갈대 바다를 헤쳐나간다. 갈대밭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내 차뿐인지라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5분쯤 더 나아가는데 갑자기 말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선다. 기다리면 피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10분이 지나도록 꼼짝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말을 다룰 수도 없으니 속수무책. 잠시 바람을 쐴 겸, 풍경을 사진에 담을 겸하여 차에서 내렸다. “아, 오름이다!”
눈 폭풍이 밀려드는 제주의 남해 바다.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산비탈로 생각하고 스쳐 지났을 것이다. 오름을 사진 속에서나 먼발치에서 본 것이 전부이기에 풀로만 덮인 봉우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름의 아래쪽이 우거진 숲이라니. 그 숲을 지나 올라야만 비로소 사진 속 오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육지인이 알 수 있겠는가? 분명 이전에 지나온 길에도 오름 옆을 모르고 지나친 것이 분명하다. 길을 막은 말 덕분에 갈대밭, 오름 그리고 말까지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에서 ‘찰칵’.
결국 그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서 다시 20분이 지난 후에야 오름에 오를 수 있었다. 마침 오름에 등산하러 들어오는 제주도 사람이 말을 길 옆으로 끌어내주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본 오름은 부드럽고 완만하지만 실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팔랐다. 숨을 헉헉거리며 30분을 올라가서야 마침내 정상에 서고, 그제야 제주도 동부의 오름 지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평평한 대지 여기저기에 물혹처럼 둥그렇게 부어오른 수많은 오름들. 제주도를 처음 찾는 사람이 한라산과 바다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이 풍경은 아름다움은 둘째치고 신기하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풍경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사진가가 아닐지라도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으리라. 내려오면서 하산 중인 장년의 남자에게 물으니 이 오름은 다랑쉬오름이란다. 남쪽에 있는 작은 오름은 아끈다랑쉬, 북쪽에 있는 두 개의 오름은 돛오름과 안친오름, 서쪽으로는 너무도 많은 오름이 있어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찾고 있던 김영갑의 흔적을 너무 갑자기 만나게 된 탓일까? 차에 다시 오르니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감을 잃은 것이다. 다행히 내비게이터가 성산 방향만은 놓치지 않고 있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길을 이어갔다.
성산까지 왔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은 눈을 머금은 회색 구름이 가득했고, 푸른 바다는 그 구름에 짓눌려 검은빛을 띄고 있었으며,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은 거대한 파도를 끊임없이 해안가로 밀어붙여 새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거센 바람도, 파도도, 곧 불어닥칠 눈 폭풍도 두렵지 않았다. 이미 중산간의 갈대 바다에 일렁이는 바람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고, 대지 위에 솟아오른 오름에서 대지 아래 감춰져 터져나오는 기운을 얻었으며, 헤매고 헤매다 만난 중산간의 다양한 풍경에 펼쳐진 길 위에서 내가 나아갈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오늘 찾은 것이 당신과 같은 것이었습니까?’ 상관없다. 그에게는 그의 길이 있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으니까. 아아, 눈이나 한바탕 쏟아져라. 그 눈으로 내 앞에 놓인 어지러운 길들을 하얗게 뒤덮어버릴 수 있도록. 그 새하얀 길 위에 올해 내가 걸어갈 길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여행작가 노중훈 인삼만 금산의 보석이 아니다, 보석사 금산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인삼의 고장입니다. 읍내 거리 이름에 인삼로, 약초로, 건삼전길이 쓰이고 식당이나 숙박업소에도 인삼모텔, 인삼사우나, 약초다방이 붙는 등 그야말로 인삼 일색이지요. 하지만 인삼이 보석인 금산엔 또 하나의 보석이 있습니다. 사찰 보석사 寶石寺가 그 주인공이지요. 금산에서 진안 방향으로 10킬로미터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보석사는 넓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진악산 기슭에 수줍게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보석사에서 제일 처음 객을 반기는 것은 전나무 숲길. 부안군 내소사와 평창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에 비해 짧고 수목의 울창함이 덜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란 글귀가 있습니다. 심한 추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안다는 말로, 외부 환경에 꺼둘리지 말고 지조와 의리를 지키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서털구털 지껄이지 말고 정갈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라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성동 盛冬 속 전나무의 푸름은 더욱 의연해 보입니다. 보석사 앞 은행나무는 둘레 10.4미터, 높이 40미터에 달하는 거목으로 수령이 1000년이 넘습니다. 간난과 신고의 세월을 버틴 이런 거목과 고목 앞에 서면 마음의 매무새를 새로이 고치게 되지요. 단청을 새로 입힌 듯 말쑥한 모습의 보석사는 오래된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지간한 탑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보석사에는 그런 홋홋한 살림살이가 더욱 어울립니다. 숲길 초입의 일주문 역시 거개의 사찰이 보여주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것도 마음에 들지요. 유난히 묵직해 보이는 맞배지붕을 얹은 채 빛바랜 모습이 더 감흥을 준다고 할까요? 보석사는 새해를 요란하게 시작하는 대신 자신의 내부를 맑게 가라앉혀 똑바로 응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을 만한 잠적한 공간입니다. 글·노중훈 | 사진·박성일 경향신문 최병준 새해가 되면 겨울 바다를 그리워한다, 변산반도 혹시 겨울 바다가 왜 좋은지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겨울엔 색 色도 꽃처럼 시들기 때문이랍니다. 동해의 푸른 바닷빛도 검붉게 변합니다. 서해는 말할 것도 없죠. 황톳빛에 검은 물이 배고, 갯벌은 무채색으로 변합니다. 하여 겨울엔 눈으로만 세상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변산반도의 바닷가를 거닐다 눈이 아닌 몸으로 보는 법을 알았습니다. 눈을 감으니 내 몸속의 숨구멍들이 서서히 열리더군요. 곰소 개펄의 수많은 게 구멍에서 ‘뻐끔뻐끔’ 바닷물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내 몸의 솜털들은 잡초처럼 누웠다 일어나고, 내 몸속의 온갖 더듬이들이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염부들이 떠난 눈 덮인 겨울 염전, 늙은 어부의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처럼 깜빡거리는 부둣가의 가로등, 주막집 주모의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닳고 닳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곰소 개펄…. 하찮은 것들이 겨울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황량한 아름다움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겨울 바다에서 핏기가 도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로구나…. 새해 달력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허나, 세상에 어디 행 幸만 있겠습니까? 장삼이사들은 올해도 버겁고 힘겹게 인생이란 수레바퀴를 끌고 갈 겁니다. 시인 송수권의 말처럼, 곤쟁이 젓갈처럼 소금기에 절지 않고 뻘물이 튀지 않은 삶은 싱겁습니다. 올해도 버겁고 힘들 때마다 변산을 가슴속에서 꺼낼 겁니다. 꽃 구경과 단풍 구경을 위해 변산을 눈으로만 보셨다고요? 2007년, 당신께 변산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글과사진·최병준 시인 최갑수 폐허에는 삶의 소중한 부스러기들이 모인다, 경주 해마다 경주를 찾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계절을 달리해 찾는 것도 아니고 꼭 1월, 스산한 그 무렵에 찾아갑니다. 1월의 경주는 쓸쓸해서,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그래서 찾아갑니다. 경주가 비로소 경주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주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남산 아래쪽을 기웃거리거나, 황오동 골목을 휘적거리며 쏘다니다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그러했듯 ‘대구막창’에 가 소주를 털어넣고, 팔우정 해장국집에서 허기를 달래는 정도의 기쁨이랄까? 혹 그것도 지겨우면 가끔은 감은사지와 감포, 분황사, 대릉원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소요할지라도 황룡사지만은 꼭 들러 폐사지를 산책합니다. 한때 이곳은 나의 연애 장소이기도 했는데, 연애의 달콤한 시절을 떠올리는 동시에 ‘우리네 生은 곧 저러한 모습으로 외로워지겠구나’,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하며 서툰 다짐 같은 것을 한다고 할까요? 황룡사지는 서편의 선도산 위로 해가 막 넘어갈 때가 가장 예쁩니다. 해 질 무렵이면 거닐던 걸음을 멈추고 그 옛날 절들을 떠받쳤을 돌무더기로 가서 무릎을 구부리고 앉습니다. 해가 지고 캄캄해져 별이 뜰 때까지 내 머릿속에 담겼다 사라지는 생각은 대충 이런 것들이죠. 남은 할부금과 밀린 세금, 읽어야 했으나 읽지 못한 책, 기억하지 못한 누군가의 생일, 잊어버린 제사, 갚지 못한 돈, 챙기지 못한 생일, 정리하지 못한 사진, 지키지 못한 약속, 점집에서 심심풀이 삼아 보았던 내 보잘것없는 미래….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다 황룡사지에서 일어설 때쯤이면 내 머릿속에도 두세 평의 폐사지가 만들어집니다. 그 폐사지에는 내 삶의 부스러기들이 유적처럼 흩어져 있고 그것들 위로 별과 달이 뜨지요. 글과 사진·최갑수 여행작가 서영진 겨울이 내린 청풍호반에 희망을 담그다, 수종사 “안개 많은 날엔 가벼운 옷을 입고 와야지. 그럼 날 수 있다니까.” 언젠가 제천 정방사에 들렀을 때 그곳 주지스님은 물안개 자욱한 청풍호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방사가 월악산 자락 아래 스며드는 청풍호반을 감상하는 장소로 좋다면 영주 부석사는 발아래 소백산 자락 너머로 지는 일몰이 장관입니다. 그러나 발아래 펼쳐지는 장관을 배경으로 한 해를 설계하는 곳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한 수종사도 뒤지지 않을 듯합니다. 물안개와 호수에 그림자를 담고 있는 작은 산자락들은 고요한 사색의 ‘도우미’들입니다. 청평호에서 피어나는 새벽녘의 뽀얀 운무와 여명은 수종사가 몸을 기댄 운길산까지 자욱하게 뒤덮곤 하니까요. 수종사가 차분한 새해맞이에 적합한 데에는 대웅전 앞에 자리 잡은 찻집인 ‘삼정헌’이 한몫합니다. 수종사는 물맛이 좋아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가 차를 즐겨 마시기도 했던 곳인데, 그 정신을 살린 곳이 이 절의 삼정헌이라는 찻집입니다. ‘시 詩’, ‘선 禪’, ‘차 茶’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의미의 삼정헌에서 마시는 작설차의 맛은 은은하기로 유명합니다. 창밖 두물머리가 빛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며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데, 강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운치 있는 찻집을 꼽으라면 단연 이곳을 꼽을 것입니다. 숱한 시객들이 차를 마시기 위해 수종사를 방문했고, 또 그럴듯한 시 한 수씩을 남겨놓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수종사의 삼정헌에서 차 한 잔 그윽하게 마시며 새해의 큰 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그 짧은 찰나에 호수와 강의 빛깔이 변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서영진 |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