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깊이/ 우한용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것은
햇빛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지친 새들이 들어와 쉬어가도록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도록
자기 품을 내어주는 일이다
나무의 그늘이 깊을수록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이 땅을 안고 있는지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의 그늘 역시 그러하여
깊은 그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넓은 품으로 누군가를 감싸 안는다
고난의 깊이가 만드는 포용의 미학
고난과 시련을 품어낸 깊은 삶이 보여주는 따뜻한 포용력과 위로
시「그늘의 깊이」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 인간 삶의 숭고한 가치를 역설하는 따뜻한 시다.
시인은 나무가 만든 '그늘'을 단순히 햇빛을 차단하는 부재의 공간이 아니라,
지친 새와 바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포용과 쉼의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나무의 그늘이 짙고 깊어질 수 있는 이유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견뎌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자연의 모습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인생의 시련과 고통, 즉 '삶의 그늘'을 깊이 겪어낸 사람일수록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고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시는 고난이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누군가를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는 '인간적 깊이'로 승화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짙은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나무처럼, 깊은 시련을 이겨낸 이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얼마나 다정한 위로가 되는지 나지막이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禹
우한용 시인/소설가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작가교수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한국근대작가연구』(공저), 『문학교육론』(공저), 『한국현대장편소설연구』, 『한국현대소설구조연구』, 『채만식 소설 담론의 시학』, 『문학교육과 문화론』, 『창작교육론』, 『한국 근대문학교육사 연구』, 『소설장르의 역동학』 등을 간행했다.
장편소설 『생명의 노래 1, 2』, 『시칠리아의 도마뱀』, 『악어』, 『심복사』, 『소리 숲』, 『그래도, 바람』 등, 소설집 『초연기-파초의 사랑』, 『도도니의 참나무』, 『사랑의 고고학』, 『붉은 열매』,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수상한 나무』, 『시인의 강』, 『왕의 손님』 등,
시집 『청명시집』, 『낙타의 길』, 『검은 소』, 『내 마음의 식민지』, 『만화시초』, 『나는, 나에게 시를 가르친다』 등, 픽션 에세이 『떠돌며 사랑하며』를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