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지난주 일요일 새벽 2시 50분, 영주 작은 아버지댁에 인사 차 들렸다가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 약간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원낙 한산한 노선이기 때문에 앞에 있는 의자를 뒤로 돌려 놓은 후 두 발 뻗고 한 숨 때리며 서울로 올라 올 생각이었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각 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묘하게도 자리가 둘 다 비는 자리는 없고, 꼭 한 사람씩은 앉아있는 걸로 봐선, 저 처럼 두 자리를 독식하고자 하던 사람들이 이미 선점 했던 듯 합니다. 저는 기차나 시외버스, 좌석을 탈 땐 옆에 남자기 있는 것 보다는 여자가 있는 게 더 좋습니다. 이유는 여자여서가 아니라, 여자가 덩치가 작기 때문이죠. 저도 모르게 다리를 좀 벌리면 알아서 다리를 오무려 주기 까지 하니, 같은 남자 끼리 앉을 때 제 자리를 넘어서 까지 다리를 쫘악 벌려서 제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여자 옆에 앉지는 않습니다. 아줌마들의 경우엔 이건 해당 사항이 아니며, 지하철에서 아줌마들이 힐끗 힐끗 처다 보는 것 때문에 이미 노이로제가 걸린 놈이기도 하거니와, 아줌마들은 다리가 맞 닿다더라도 절대로 오무려 주지 않기 때문이죠. 혹여나 내 자리가 아닌데도 젊은 여자 옆에 앉더라도, 자리 임자가 와서 자기 자리임을 주장할 땐 들이 댈 변명도 없으니 더더욱 그러하지요.
어쨌든 전 속으로 될 수 있으면 여자가, 그것도 덩치가 작은 여자가 제 옆자리의 임자이길 바라며, 뒤 늦게 좌석표를 눈으로 하나 하나 찍어가면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 좌석과 동일한 번호를 확인 후 습관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코트를 이불 삼아 얼굴 까지 가린 채 제 자리 까지 차지한 채로 쪼그려 자고 있는 이 여인네...
자고 있는데 누가 깨우는 것이 얼마나 짜증난 일인지는 알지만, 의자를 톡톡 치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화들짝 놀래서 고개를 드는 순간 입 가에 흐르는 미소... 가 아닌 엄청 난 점성을 가진 침과 산발을 한 머리.
자기가 비고 있던 가방과 쇼핑백을 주섬 주섬 자기 구석에 박아 놓으면서 제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고는 다시 코트를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여인네.
저도 입고 있던 후드 점퍼를 벗어 모자 부분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을 청했습니다. 마침 귀엔 이소라 음악들이 흐르고 있어서 잠 잘 여건은 그런대로 조성이 됐죠.
그리고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순간 무언간 저를 심하게 압박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후드 점퍼를 벗어서 보니 옆에 앉아 있던 여인네의 팔은 제 어깨에, 다리는 무릎에, 엉덩이는 허벅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상상들 마시길...-_-; 화장실 갈려고 하는데, 옆에서 자고 있는 저를 깨우기 미안해서 다리를 타 넘고 가다가 순간 차가 흔들려서 넘어진 거라고 하더군요.
얼굴을 붉힌 채 연신 고개를 숙이며 ㅈㅅ ㅈㅅ을 연발하는 그 여인네, 그런데 아까 느꼈던 그 추접함은 다 어디 가고, 천사가...-_-;;; 순간 긴장 했습니다.-_-;
당연히 잠은 다 달아나 버렸고, 심장이란 녀석은 뭐가 신났는지 연신 쿵덕 쿵덕 거리기 시작하고, 눈은 쉴 새 없이 그 여인네를 힐끔 거리는...-_-; 점점 목이 탔지만, 열차 내 판매원이 없는 차여서 침만 꼴딱 꼴딱 삼킬 뿐이었죠.
그리고 어느새 원주에 도착하자, 수화물을 실고 내리기 때문에 좀 오래 정차해 있을 거란 안내 방송을 듣고선 서둘러 승강장에 보이는 자판기로 달려가 음료수 한 캔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한 캔 더 뽑았습니다. -_-;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작업을 걸기, 사실 고삐리 시절 여자들의 옷이 한 없이 가벼워지는 여름 방학 때 간 동네 독서실에서 미끈한 다리 하나에 맛탱이 가서, 그 미끈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해 준 자유시간과 포카리 스웨트 한 캔. -_-; 이 얼마나 빈티 나면서도 안 맞는 조합인지... 거기다 달랑 맛있게 드세요, 란 어이 없는 멘트만 남긴 쪽지 까지...-_-; 며칠 뒤에 그 미끈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책상 위에 빨간색 포장지가 칭칭 감긴 작은 상자를 놓고 튀는 어떤 놈팽이를 본 후에,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시계가 있었다는...-_-; 어떤 놈인지, 작고 비싼 걸 좋아하는 여자들의 생리를 제대로 꽤 뚫는... 그리고 며칠 뒤에 둘이 팔짱 끼고 다는 걸 본 아픈 기억이 새록 새록 났지만, 도전 하지 않는 자즈는 실패 조차도 할 수 없다란 믿음 하에 캔 두 녀석을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느새 그 추잡걸은 머리 정돈을 말끔히 하고, 아까 침이 범람했던 자리를 웻 티슈 한 장으로 복구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전해 줘야 되는데, 이걸 전해 줘야 되는데... 속으로 기회를 엿 보다가, 엿보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저... 목 안 마르세요? 하면서 캔을 들이댔습니다.-_-;
다행이도 천사 같은 웃음과 공손하게 고마습니다, 하면서 두 손으로 음료수를 받아드는 그 여인네...
음료수를 홀짝이며, 어떻게 하든 음료수를 다 마시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걸어야된다란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하지만, 이 싸디 싼 입은 클러치 상황에서 클럭킹 모드로 들어가고, 그저 음료수만 홀짝이다가, 옆에서 가볍게 들려오는 캔 찌그러지는 소리, 그리고 곧 앞에 있는 그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곧 코트를 다시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그 여인네를 보고, 남아 있던 음료수에게 화풀이라도 하듯이 원샷을 한 후 저도 퍼질러져 자버렸습니다.-_-;
그리고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오늘도 저희 철도를 이용해 주신 여러분께 ㄳ를 때리며, 로 시작하는 몇 년째 바뀌지 않는 멘트와, 혹시 놓고 간 물건이 없는지 주변을 잘 살펴 봐 달라는 세심한 배려를 들으며, 주변에 놓고 간 물건은 없어도 사람은 있다란 용기에 말을 걸려지만... ㅠㅠ
무심히 창박을 바라 보는 그 여인네, 답답한 마음에 저도 반대쪽 창 밖을 바라보는데, 이 이른 아침에 둘이 꼭 붙어 있는 매미떼들...-_-; 필시 같이 밤들을 샌 거라 생각을 하니...ㅠㅠ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순간 미친 척 하고... 한 말이...
저 음료수 값 주세요. OTL
황당하다는 듯이 한참을 보더니, 지갑을 꺼내서 웃는 얼굴로 700원을 건네 주는 그 여인네...
배달비는안 주세요?
라는 말에 내밀었던 동전을 거두고, 천원 짜리 한 장을 내미는 그 여인네...-_-;
속으로 완전히 미친 견또라이 됐다고, 그냥 앉아 있었으면 본전이라도 뽑는 건데라는 후회가 머리를 감돌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
순간 이대로 보낼 순 없단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최후의 발악으로 한 짓이...
받은 천원을 위폐 조사라도 하듯이 형광등불에 비춰 본 후에...
이거 가짜 돈인데요.-_-;
네?
전화 번호가 안 찍혀 있는데요.-_-;;;;;
순간 피식 웃으면서, 먼저 핸드폰 번호를 묻은 여인네.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리고 내 핸드폰에 고이 고이 찍힌 그 여인네의 번호.
사실 첫 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사람을 2년 반동안 기다린 대가로 돌아 온 건 그 사람의 결혼, 지난 10월에 결혼 후 빠져 있던 패닉 상태에서 막 벗어났을 때 나타난 여인네이기에 더더욱 절실했던... ㅠㅠ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 올라탄 전철, 내내 그 여인네의 핸드폰 번호와 어굴을 떠 올리며 실실 거리다가 어느 새 대치역이란 방송에 습관적으로 맨 앞자리로 이동을 하던 중, 맨 앞에 보이는 그 여인네의 모습. -_-;
알고 봤더니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사는...-_-;; 그리고, 그 여인네 원래 자리가 6호차 49번 좌석이어는데 5호차 49번에 앉았더라는...-_-;;;
사실 오늘 새벽에도 밤 12시에 불려 나가서 근처 공원 한 바퀴 돌다가 들어와서 잠 못 자고 밤을 새버렸습니다.-_-;;
그런데, 어떻게 하죠? 저 조금 있으면 5~6 년 동안 나라를 떠나 있어야 되는데. ㅠㅠ
생각 한 것 보다 서로 진도는 무진장 빨리 나가 있는 상태.ㅠㅠ 물론 그렇다고 둘이 어찌고 저찌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좀 마음이 많이 빼앗긴 상태입니다.ㅠㅠ
첫댓글 헉...이야;; 인연이네요 ㅋㅋㅋ 바로 옆 동이라 ㅎㅎㅎㅎ 자주 만나시고 그러세요! 화이팅!
ㅋㅋㅋ 대단한 인연이네요. 마지막이 좀 안타깝네요. 5~6년이면ㅠㅠ 잘 되시길 빕니다.
ㅎㅎ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영화 한편 같은.ㅋㅋ. 근데 5, 6년이 ;;
이런얘기 들을때마다 가슴 한켠이 뭉클 뭉클~옛추억이 마구마구 떠오르네요~ 5월의 내사랑이 숨쉬는곳~~♬ 놓치지말고 꼭 그 인연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
이런 글 볼때마다 저도모르게 기대감과 함께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느낌을 받는데...부럽습니다..- -;;
멋지네요.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는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이건 정말 인연이 아닐까요;. 오우.. 오우...
크하.완전 세런디피티다. 온 몸에 전율이 쫘~악. 저까지 설레이는 데요. 잘 되셨음 합니다.^^
클런치슛터시네. 가짜돈이네요하면서 페인트모션에 전화번호를 달라는 클런치슛은. OTL.. 멋진사랑이라면 고난과 어려움을 즐길껍니다. 화이팅!
음.....그래도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저도 이번에 어떤 아는동생이 여자랑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는데 그여자먼저 문자도 자주 보내구요 갑자기 일주일후에 아는척 하지 말래요 ㅡㅡ여자란 참 불가사이한 존재 입니다..잰다고 해야 하나?
같이가세요.
님 짱!!ㅎ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이야!! 이거 영화 한 편 나오겠는데요?^^ 잡으세요.. 인연입니다.. 그런 인연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이거는 진짜 인연이네요.. 천생연분! 라스타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님의 머리는...OTL 그 상황에서 그런 말들이 생각나셨나요?? 최고의 센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