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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한테 거는 기대
신동진 귀촌칼럼니스트
지난 2주 간, 난 죽어있던 마을의 유휴창고를 주민들의 공간으로 살려내는 일을 했다. 2주 전에는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촬영한 1967년도 영화 <사격장의 아이들(감독 김수용)>을 함께 보며 정담을 나눴고, 지난 주말에는 마을 작가의 수공예품과 고구마, 밤, 은행, 떡, 옥수수 등을 구워 파는 작은 플리마켓을 열었다. 1976년 지어져 벼 수매창고, 약재 창고, 가구 창고, 멧돼지 포획틀 창고 등으로 사용되다 10여 년 전부터 사용되지 않던 창고, 그리고 이제 새롭게 태어나 주민들이 새로운 꿈을 함께 꾸며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거듭난 이곳의 이름은 <꿈꾸재>다.
<꿈꾸재>의 비전은 살리는 공간, 기억하는 공간, 그리고 도농상생의 공간이다. 인구 유입으로 소멸위기의 마을과 폐교위기의 학교를 구하고, 주민들의 자존감과 기운까지 살리는 공간, 마을의 역사, 문화, 생태를 기억하는 공간, 그리고 촌의 결핍과 도시의 과잉이 서로 연결돼 도농상생의 꽃이 피는 공간을 꿈꾸며 만든 공간이다. 이 공간은 경기문화재단의 ‘지붕없는 박물관, 경기 에코뮤지엄(Ecomuseum)’사업에 올해 선정돼 만들어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색현에코뮤지엄’의 거점공간이기도 하다.
버려진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주민들의 공간으로 살려낸 '꿈꾸재'. 지난 주말에는 마을 작가의 수공예품과 고구마, 밤, 은행, 떡, 옥수수 등을 구워 파는 작은 플리마켓을 열었다. 2023. 12. 9.
'꿈꾸재'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영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전국에 널려 있지만 닫혀 있는 주민들의 공간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꿈꾸재>와 같은 주민 공유공간은 주민의 힘을 키우는 공간이 된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둥지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난 소멸하는 마을을 살리려면 주민들이 편하게 공동의 일을 도모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령의 선주민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거나 공간이 협소한 기존 마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는 꿈꾸기 어려운 꿈을 펼쳐나갈 새로운 공간이 마을에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있어야 마을에 새로운 젊은 주민이 수혈된다. 그렇게 탈바꿈시킬 수 있는 유휴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가평군도 그렇지만 전국적으로도 각종 사업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부지기수다. 주로 행정재산으로 돼 있는 그런 공간들은 행정이 선도적으로 문을 열고자 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사용할 수 없는 공간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행정은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방해 주민들이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기보다는 그냥 안전(?)하게 유휴공간으로 놔두길 바라거나 또는 비싼 이용료로 공익적 사용의 문턱을 한껏 높여놓기 일쑤다. 법적으로 공간의 관리 위탁을 줄 수도 있고, 이용료를 위탁운영의 경비로 사용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수도 있고, 수의계약도 가능하지만 행정이 걸어잠가놓은 빗장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농식품부의 ‘농촌유휴시설활용 지역활성화사업’ 등 각 부처, 광역지자체에서 유휴시설 활용을 위한 공모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초지자체 행정이 나서지 않으면 다 무용지물이다. 관련 사업을 주민들에게 홍보하지 않으면 주민들은 그런 사업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번에 새로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일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난 송 후보자와 일면식도 없다. 오로지 그의 연구 내용과 활동을 통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귀촌해서 촌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찾아 들어간 사이트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홈페이지였고, 그곳의 연구보고서들 중에서 균형발전과 소멸위기의 촌을 살리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송미령 위원의 연구보고서가 눈길을 끌었고, 그 연구 결과들을 통해 촌의 문제 해결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농·산·어촌 유토피아’ 개념 연구자 출신 장관 후보자
그가 얼마 전 총괄 책임자로서 연구한 보고서의 제목은 <도농상생의 농·산·어촌 유토피아 실천모델 구현을 위한 관계인구 활용 방안>(2023.7)이다. 송 후보자는 2019년 <농촌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낼 정도로 다소 생뚱맞게도 느껴지는 ‘농·산·어촌 유토피아’ 개념을 도전적으로 설파하는 연구자다. 그는 도시민에 비해 촌민의 행복감이 5% 더 높고,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행복감이 9.3% 더 높다는 2019년 조사결과에 근거해 농·산·어촌이 결코 소멸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도를 제고할 수 있는 국민 전체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9년부터 ‘현실적 유토피아 기획’을 반영해 올해까지 5년간 매년 협동연구를 추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농·산·어촌 유토피아 구상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시범사업도 추진하며 그 결과를 조사하는 리빙랩 방식의 연구도 진행했다. 그런 결과들을 총괄해 앞서 인용한 보고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관계인구’라는 개념은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한 ‘정주인구’도 아니고 일회성 관광을 하는 ‘교류인구’도 아닌, 특정 지역과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는 사람을 의미한다. 송 후보자는 정주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다양한 이유로 당장 정주인구를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관계인구를 촌의 발전을 위한 주력으로 보고 있다. 도시를 떠나 촌에서 지낼 때 더 행복감을 느끼기에 정기적으로 촌을 방문하는 관계인구를 정주인구로 견인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해 왔다. 이런 수년 간의 연구 결과를 총화한, 앞서 인용한 연구보고서의 결론 부분에 중요하게 제안되는 것이 바로 촌의 유휴공간에 대한 얘기다.
「주민 문화·복지시설이나 빈집 등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청년, 창조계층 도시민 등이 새로운 창업활동을 시도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도록 유도」 (위 보고서 203쪽, 강조 필자)
「첫째, 농·산·어촌에 분포하는 공공시설들 중 활용도가 낮거나 유휴화된 시설들이 관계인구의 창업, 거주, 활동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한다. 현행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등에 따라 기존에 설치된 공공시설들이 목적 외 용도로 활용되는 데 제약이 있는데, 관계인구의 농·산·어촌 활동 거점 공간으로 보다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지역사회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관계인구 활용 계획이 수립되는 등의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공공시설들이 창조계층이나 청년층 등의 농·산·어촌 활동을 위한 플랫폼 공간으로 이용되도록 유도한다.」 (위 보고서 208쪽, 강조 필자)
'꿈꾸재'의 외관. 겉모양은 창고지만 안에서는 주민들의 공동활동이 이뤄진다.
입구에는 멋진 간판도 달았다.
관계인구 유입 위해 절실히 필요한 플랫폼 공간
위 글에서 보듯 송 후보자는 문화예술 활동 등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하는 창조계층이나 청년층을 농·산·어촌 유토피아 실현을 위한 관계인구의 핵심층으로 보고 있고 그들을 위한 플랫폼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플랫폼 공간을 해야 할 공간으로서 바로 문을 닫고 있는 유휴공간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송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기자들에게 “청년이 농촌에 유입되는 것이 우리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첩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위 보고서에 담긴 아래 제언의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한편으로 과소화가 심화되는 인구감소지역 지방자치단체 등의 경우는 사회서비스 제공 등의 차원에서 농·산·어촌 생활 여건 개선 및 주민 삶의 질 제고를 지원하는 활동을 주도하는 청년 인력을 중심으로 ‘농촌활성화지원단(가칭)’ 채용을 지원하도록 소멸대응기금 등을 활용하도록 할 수 있다」 (위 보고서 227쪽, 강조 필자)
도시의 청년 인력이 가칭 ‘농촌활성화지원단’으로 가서 활동을 하려면 역시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새로 지을 것이 아니다. 이미 촌에 각종 유휴공간들이 있다. 닫힌 빗장을 열게 하면 된다. 촌의 행정 즉 기초지자체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기초지자체가 관장하지 않는 중앙부처 소관의 유휴공간들도 적지 않다. 또한 비록 공간은 촌에 있지만 그 공간을 사용할 사람은 도시에 있기에 이런 사업은 촌과 도시를 총괄할 수 있는 중앙정부에서 사업을 주도 관장하는 것이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유휴공간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공간을 사용할 사람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사람이 공간의 리모델링을 주관해야 한다. 행정이 리모델링을 해놓고 또는 기준을 정해놓고 도시 사람을 공모하는 방식은 실패한다. 침대 크기에 맞춰 사람의 팔 다리를 잘랐다는 그리스신화 속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처럼 되기 쉽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의 장관 후보임에도 응원하는 이유
아무쪼록 송미령 후보자가 예정된 인사청문회를 잘 통과하고 그동안 연구했던 내용들을 정책으로 멋지게 구현하길 기대한다. 이 일을 위해 여러 부서, 특히 일반적으로 농식품부보다 힘 있다고 여겨지는 부서들의 협력도 끌어내야 하고, 연구원 출신 장관에 대한 농식품부 조직 내 은밀한 저항을 극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실제 행정과 비판적, 안정적 거리를 두고 이상적 제언을 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제언들은 지금 단순히 이상으로 머무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기에 비록 탄핵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이지만 이번 글을 송 후보자의 건승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썼다. 농·산·어촌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국민의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건투를 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난 평소 공간의 설계와 운영의 민주화는 한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까지 내면화됐고 심화됐느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보면서도 공간의 민주화가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농·산·어촌에 방치된 유휴공간들의 운영이 민주화될 때 우리나라의 풀뿌리 민주주의도 한층 더 성숙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 농·산·어촌에 널린 '유휴공간' 빗장을 풀어라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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