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을 보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이 양반 영화는 죄다 본 셈이 되었네요.
로얄 테넌바움에 충격받고 거슬러 올라가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를
보며 주목해야 될 사람이구나. 란 걸 깨달은 이후 그는
그 주목에 걸맞는 행보를 걸어온 작가감독이 되었습니다.
신작인 문라이즈 킹덤의 이야기는 기존에 해온 그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옮기자면...
영화의 무대인 뉴 펜잔스 섬은 외딴 곳에 위치한 깡촌입니다.
이곳에 캠핑을 온 스카우트 대원 샘이 사라지며 이야기는 시작되죠.
그가 사라지며 그를 둘러싼 사실들이 밝혀집니다.
주변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았고, 입양아인 그를 집에서도
별로 아끼지 않는단 거죠. 많은 어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샘은 사실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1년 전 이 섬을
방문했을 때 한 눈에 반한 소녀 '수지'와 펜팔을 하며
가출을 기획해왔던 것이거든요.
그 어떤 웨스 앤더슨 영화에도 볼 수 있는
특이한 사람들이 마구 나오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세계관에서 떨어져 나간, 관객을 위한 캐릭터는 없죠.
웨스 앤더슨의 캐릭터들은 분명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행동양식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사연과 상처, 그리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죠.
저는 그런 그의 방법이 좋습니다.
정말 있을 법한 테두리 안에서 특출난 그의 천재들도 좋고
그 세계관 안에 있는 상처받은 괴짜들은 어느정도
현실속의 내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현실적이지 않지만
동감이 가는 인형의 모습 같거든요.
항상 특이한 사람들이 나와서 특이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요.
만듦새를 보자면...
웨스 앤더슨의 장기 중 하나라면 강박에 가까운
화면 구성과 컨트롤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라이즈 킹덤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터라 그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지
궁금했습니다. 클라이막스를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특유의 색감, 좌우 대칭의 강박적인 화면 외에도
그는 자연을 배경으로 그만의 미장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더군요. 참으로 고집스러운 작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클라이막스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며 이렇게 클라이막스가 또렷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충분히 감동적이고 재미있네요.
다소 예상한대로 흐르지 않았느냐..라고 불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사랑스럽고 외로운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
해피엔딩에 불만을 품을 수는 없겠더군요.
사실 어리숙한 어른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역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샘과 수지.
사랑스럽고 또래같은 순수함이 있지만 동시에 조숙하고
아주 사소한 면에서 특출난 점들까지 갖추는 바람에
아주 외롭고 상처 가득한 삶을 보내는 친구들이죠.
샘이 부모가 없기에 외로운 걸까요?
그렇다면 수지는? 그렇다면 수지는 위태위태한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요? 그럼 샘은? 네, 우린 모두 다 다르지만
다 다른 상처를 받아서 치유가 필요한 건 같지요.
서로를 진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연과 사연이
필요하단 걸 샘과 수지의 동행을 보며 우린 깨닫게 됩니다.
샘을 죽도록 괴롭히던 아이들이 고아원에 갈 처지에 놓인
샘을 역설적으로 돕 듯 우리가 누군갈 미워하고 따돌릴 때는
의외로 어처구니 없이 사소한 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고
정말 쉽게 관계가 나아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은 어린아이들 같습니다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 모습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죠
지상낙원 문라이즈 킹덤은 현실적으로 불가한 곳일지 모릅니다.
샘과 수지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서는 샤프소장의 현실적인
결단과 실행이 반드시 필요해야 했죠. 우린 모두 외로워서
꿈을 꿉니다만 적어도 사소한 행복이라도 가질 수 있으려면
여러 사람들의 동의와 도움, 사회적 실천이 필요한 법이죠.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고서 얻는 행복이 사소하다고
한 숨을 쉴 필요 없습니다. 샘과 수지가 함께 사는
뉴 펜잔스섬은 분명 예전과 다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