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이고 가는 사람 외 1편
허효순
새빨간 꽃이 피는 카사바에서 캐낸 뿌리들
머리에 덩이덩이 이고 간다
쏟아지는 땡볕에도 기울어지지 않는다
옷장, 삼인용 소파도 거뜬히
제 키보다 큰 사탕수수나무도 출렁이며,
혹은 공사장 돌까지 머리에 이고 나른다
모든 균형이 머리와 목에서 조율된다
평생 남의 짐을 날랐지만
정작 자신의 생은 온전히 부려놓지 못한다
보이는 길은 아예 없는 것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가고 있는지
검은 피부 위로
태양은 쉼 없이 내리고 있다
제노사이드 추모관
르완다의 4월에는 누구나 초록에 베인다
추모관에 전시된 사진들,
후투족과 투치족 종족 갈등이
그대로 인화되어 있다
사무실에 가끔 들르는 줄래 씨는
학살의 기억이 아직도 뿌리가 깊다
가족이 지하에 숨었던 여섯 살 그날,
먹을 것을 가지러 가던 엄마가
총에 맞아 고꾸라졌고
달려가 껴안던 누나도 연이은 사격에
하얀 블라우스가 빨갛게 물들었다
무리가 된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였다
옆집 아저씨도 그 무리 속에서
눈동자 번득이며 칼을 갈고 있었다
추모관 뜰에는 당시 그 지역에서 학살된
수만 명의 뼈가 안치된 공동묘지가 있다
그 주위로 유독 비가 자주 내려
날카로운 초록이 옆으로 위로 불쑥불쑥
칼처럼 허공을 가른다
그 자리에서 소스라쳐 고개 돌리면
뭉게구름도 쌓여 있는 흰 유골만 같아
두 손을 모아야 한다
― 허효순 시집, 『르완다, 나의 슬픈 간이역』 (문학의전당 / 2024)
허효순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한신대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문예사조》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관계』 『장미는 어느 길로 꽃을 내는가』가 있다. 현재 Unique Creativity Foundation(UCF) 이사, United African Institute of Technology(UAIT) 교양학부 한국어 교수로 재직하며 선교 및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