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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기원전 52년부터 1715년까지,
클래식 황금기 도시건축을 통해 유럽 고전 걸작의 도시 파리를 만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파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라는 도시가 뿜어내는 그 묘한 매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또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호기심과 모험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이러한 궁금증들에 대해 도시학과 건축학, 역사학의 세 학문으로 답하는 파리 도시건축사의 결정판이다.
파리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속주로 출발해 1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세와 고전의 시기를 거치며 독립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발전해온 프랑스, 나아가 유럽의 수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파리의 전통 시대를 꽃피운 ‘클래식 황금기’ 도시건축을 시대의 큰 틀 안에서 여러 지역에 걸쳐 짚어가며, 그것에 반영된 흥미롭고도 은밀한 공간의 내력들을 살펴본다. 도시의 탄생과 성장, 그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구조, 각 시대의 대표 건물 등을 기본으로, 카이사르의 건도(기원전 52년)부터 루이 14세(1715년)에 이르기까지 숱한 왕조 및 국왕의 교체를 겪으며 변화ㆍ발전해온 역사를 탐색하고 그 시대적 의미를 찾는다.
총 4부 2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구성적 특징은 파리(도시학), 도시건축(건축학), 역사(역사학)라는 세 가지 주제를 제각각 풀어내는 것이 아닌, 씨줄과 날줄을 엮듯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종합해낸다는 점이다. 먼저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로 시작하는 1부 ‘파리는 어떤 도시일까’에서는 파리의 문화사적 의미, 파리가 사랑받는 이유, 파리만의 특징과 강점, 현대 파리의 도시구조 등을 살펴본다. 이어서 2부 ‘로마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어 3부 ‘중세 시대’를 거쳐 4부 ‘초기 근대’까지 이어진다. 파리의 탄생기를 다루는 2부에서는 로마 시대의 건도부터 파리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초기 기독교 시대 메로빙거 왕조까지의 도시건축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파리의 형성기에 해당하는 3부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와 카페 왕조, 부르봉 왕조 전반부 등 세 왕조를 거치는 중세 시대를, 성장기에 속하는 4부에서는 16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바로크로 구성되는 초기 근대기의 파리 도시건축사를 짚어본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시테궁, 생트샤펠, 루브르궁, 튈르리궁, 뤽상부르궁, 팔레 루아얄, 발 드 그라스, 앵발리드 등 고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주요 건물들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파리를 대표하는 건물로서 외관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경우 고딕 양식 최초로 플라잉 버트레스를 세우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활용해 스콜라 신학의 정신을 실현하는 등 당대 구조 기술의 발전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성당 주변에 유곽 지대가 형성되는 것을 묵인ㆍ장려했으며 종교 및 신유의 미신이 횡행한 장소였다는 불명예를 안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파리의 전통 시대 대표 건물들 각각에 얽힌 잘 알려지지 않은 유래와 변화 및 발전 양상, 그리고 후일담 등을 건축적ㆍ역사적 시각으로 다양하게 접근하여 제시함으로써 파리라는 도시의 진면목을 살핀다.
이 책은 파리가 탄생기―형성기―성장기를 거쳐온 모습을 살피며 각 시대의 상황 및 시대별 도시건축의 내용을 26개 장과 128개 소주제로 세분해 소개하는, 그야말로 장대한 역사화 작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역사 자료를 통해 ‘유럽 고전 걸작의 도시’ 파리가 지나온 클래식 황금기로의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임석재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사학자이자 건축가로, 1994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을 소재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로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시각으로 건축을 인문학과 예술 등과 연계, 융합시키며 독특한 학문 세계를 일구었다. 2022년 현재 60여 권에 이르는 단독 저서를 출간한 다작 저술가이기도 하다.
대표 저서로 『임석재 서양건축사』(2013, 전 5권), 『예(禮)로 지은 경복궁』(2015), 『한국 건축과 도덕 정신』(2016),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2011), 『서울, 골목길 풍경』(2006),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2008, 전 2권),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2010, 전 2권),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2012), 『유럽의 주택』(2014),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2013), 『광야와 도시』(2017), 『극장의 역사』(2018), 『피라미드의 문』(2021) 등이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부. 파리는 어떤 도시일까
1장. 프랑스의 문화적 힘과 파리 도시건축의 특징: 혼성과 형식화의 조화
프랑스의 네 가지 문화적 힘 1: 혼성 문화
프랑스의 네 가지 문화적 힘 2: 개방성, 종합화, 역사성
파리의 여섯 가지 도시건축 특징 1: 고전주의 + 사회 형식화 = 고전 형식화
파리의 여섯 가지 도시건축 특징 2: 구조 합리주의 + 중세정신 = 중세 합리주의
파리의 여섯 가지 도시건축 특징 3: 고급 예술의 상품화
2장. ‘파리, 파리’ 하는 열 가지 이유: 도시건축 역량에서 자연환경까지
도시건축 역량: 로마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도시
‘국가 - 예술’ 역량: 역사적 장소의 보고와 센강의 축복
3장. 파리의 도시구조: 아롱디스망과 동심원
센강, 포부르, 아롱디스망: 지리와 행정으로 본 파리 구성
세 겹 동심원과 성곽: 도시공학으로 본 파리의 도시구조
4장. 20개의 아롱디스망: 세 겹 동심원과 역동적 확장
1차 동심원 1: 우안의 1구와 2구
1차 동심원 2: 우안의 3구와 4구
1차 동심원 3: 좌안의 5구와 6구
2차 동심원 1: 7구
2차 동심원 2: 8구~11구
3차 동심원 1: 12구
3차 동심원 2: 13구~20구
2부. 로마와 초기 기독교 시대(기원전 51~서기 751년)
5장. 로마 시대(기원전 51~서기 476년): 카이사르와 ‘루테티아 파리시오룸’
루테티아: 켈트 갈리아족이 세운 요새화된 시장 도시
로마 시대의 복합 도시: 카이사르가 세운 ‘루테티아 파리시오룸’
불르바르의 도시 파리: 십자축 대로와 방사형 도로망
로마 후기: 게르만족의 침입과 시테섬의 성곽 축조
로마 뿌리에 대한 현대 파리지앵의 생각: 부정과 긍정의 양면
6장. 초기 기독교 시대(250~751년): 생트주느비에브와 생제르맹데프레의 활약
파리의 초기 기독교 시대를 정의하는 문제
생드니와 생마르탱: 파리를 기독교 도시로 개종하다
생트주느비에브: 파리의 수호성인이자 최초의 정신적 지주
프랑크 왕국, 클로비스 1세, 메로빙거 왕조: 초기 기독교 시대 파리의 정치사
메로빙거 왕조 때 파리의 도시건축: 기독교 도시의 기틀을 닦다
생제르맹데프레: 신유의 이적과 빈민구제 활동
3부. 중세 시대(751~1514년)
7장. ‘중세’의 정의와 카롤링거 왕조(751~987년): 서프랑크 왕국의 수도, 파리
중세의 시대 구분: 풍성한 역사 논의의 보고
파리의 중세 구분 기준 네 가지: 교회사, 정치사, 도시사, 건축사
카롤링거 왕조 1: 프랑스 국가 정체성의 성립
카롤링거 왕조 2: 바이킹족의 침입
8장. 카페 왕조(987~1328년): 중세 파리의 최전성기
카페 왕조: 최초의 진정한 프랑스 왕국
11세기 파리의 안정기: 교역의 중심지로 기틀을 닦다
12세기 파리의 전성기: 양안 개발과 기독교 - 비기독교 양대 건축의 시작
필리프 2세의 파리: 13세기 최전성기의 시작
루이 9세의 파리 1: 성왕의 신앙심과 프랑스 중세의 최전성기
루이 9세의 파리 2: 13세기 최전성기와 기독교 건축
루이 9세의 파리 3: 비잔틴과 신성로마제국을 앞지르다
‘파리’라는 이름의 정착: 12~13세기의 평화 번영과 ‘파리스’ 왕자의 정체성
9장. 발루아 왕조의 중세 시기(1328~1515년): 고난을 이기고 재도약하는 파리
발루아 왕조: 고난의 시대에 닦은 통일국가의 기틀
14~15세기 파리의 건축: 교회를 중심으로 역사성을 확보하다
백년전쟁(1337~1453년) 기간 파리의 도시 상황: 꾸준한 발전을 이어가다
15세기 후반부 파리의 도시 상황: 전쟁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를 준비하다
10장. 중세 파리의 위상: 유럽의 수도로 부상하다
중세 종합형 도시 파리: 북유럽의 중심도시에서 유럽의 수도로
종합화의 두 가지 배경: 지리적 이점과 역사적 · 정치적 자산
중세 파리의 업적: 개방적 메트로폴리스 문명을 일구다
11장. 중세 파리의 도시건축: 네 구역에 포진했던 다양한 건물들
중세 파리의 건축 개괄: 신분제 국가의 종합형 수도
수도원의 도시 파리: 포부르를 정비하면서 파리의 확장을 주도하다
파리대학: 중세 르네상스와 스콜라 신학을 이끈 지성의 산실
중세 파리의 네 구역: 시테섬, 좌안, 우안, 포부르
사진으로 보는 중세 파리: 과밀과 비위생의 문제
12장. 노트르담 대성당 1: 영욕의 중세 기록
프랑스 역사의 증언자: 풍부한 문화 논제를 낳다
건물의 건축 역사 1단계: 고딕 최초로 플라잉 버트레스를 세우다
건물의 건축 역사 2단계: 스테인드글라스로 스콜라 신학을 실현하다
파라다이스를 구현한 중세 이상 도시: 플라스 뒤 파르비스 노트르담
피해갈 수 없는 흑역사 1: 유곽을 낀 성적 타락상
피해갈 수 없는 흑역사 2: 종교재판소와 치유의 미신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인문주의가 비판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이중성
13장. 노트르담 대성당 2: 중세 이후 프랑스 역사의 증인
16세기와 노트르담의 ‘역사적 항상성’: 왕실 행사의 장이자 시민의 축제 장소
종교전쟁(1562~1598년) 기간: 콜리니 살해 미수 사건의 현장
종교전쟁 기간: 앙리 4세가 미사를 드리고 종교전쟁을 종식한 곳
17세기 루이 14세 기간: 프롱드의 난과 베르니니 방문 사건
절대왕정~19세기: 쇠락과 파괴와 복원의 역사
14장. 시테궁: 프랑스 정치사의 압축판
시테궁 개요: 시테섬의 터줏대감, 왕궁 복합단지
중세 때의 시테궁: 콩시에르주리에서 파리고등법원으로
왕궁이 떠난 뒤: 파리고등법원, 혁명재판소, 최고재판소
15장. 생트샤펠: 스테인드글라스, 스콜라 신학, 갈리아주의
루이 9세의 신앙심의 산물: 성물 보관교회를 겸한 왕실 전용 예배당
세 가지 복합 기능: 성물 보관교회, 왕실 전용 예배당, 대학 교회
빛과 스테인드글라스: 앙천성으로 극화한 하늘나라
노트르담 대성당과의 비교: 중세 전성기를 함께 이룬 단짝
스콜라 신학과 갈리아주의의 전성기: 13세기 시대 상황을 대표하다
16장. 중세 파리의 기독교 건축: 수호성인, 공적 기능, 교구 교회, 외부 성인
2차 교회 여덟 채: 중세 파리의 역사를 풍성하게 하는 세부 주제의 보고
생제르맹데프레와 생제르베: 수호성인의 교회
생자크와 생으스타슈: 공적 기능의 교회
생테티엔뒤몽과 생제르맹록세루아: 주요 시설에 부속된 교구 교회
생세브랭과 생메리: 외부에서 들어온 성인의 교회
4부. 초기 근대(1515~1750년)
17장. 르네상스 파리(1515~1610년): 16세기 파리 도시 상황 개괄
파리 르네상스의 시작: 제1차 이탈리아전쟁과 종교개혁 사이의 1515년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여러 왕이 일군 위대한 세기
파리의 도시 변화 상황: 왕실의 파리 정착과 인구 증가
18장. 르네상스 파리: 프랑수아 1세~앙리 4세
프랑수아 1세 1: 내치의 업적과 파리 도시건축 사업
프랑수아 1세 2: 루브르궁 수리, 파리 시청사 신축, 생으스타슈의 혼성 양식
앙리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카트린 드 메디치와 왕궁 건축
로티스망 개발 사업: 파리 최초의 부동산 수익 사업
앙리 4세 1: 공공개발, 파노라마 시선, 도시경관
앙리 4세 2: 최초로 근대적 도시화의 종합적 완성을 이루다
19장. 바로크 파리: 도시건축 개괄과 루이 13세 시대(1610~1643년)
바로크(1610~1715년)의 파리 도시 개괄: 웅장하면서도 환상적으로
바로크의 파리 건축 개괄: 그랜드 매너와 국가 양식의 창출
루이 13세의 부동산 개발 사업: 생루이섬, 뤽상부르궁 일대, 추기경 궁전 일대
루이 13세의 건축 사업: 바로크를 시작해서 발전시키다
파리 도시건축의 확장: 개별 건물과 성곽이 함께 확장하다
20장. 바로크 파리: 루이 14세(1643~1715년)
루이 14세와 파리의 위상: 절대왕정의 영광과 유럽의 수도
파리 도시 개발 1: 성곽 확장과 우안 개발
파리 도시 개발 2: 가로수 산책로(나무 심은 불르바르) 건설
개별 건물 1: ‘비기독교 vs. 기독교’ 건축 모두 활발히 진행되다
개별 건물 2: 개선문에 집착한 루이 14세
‘쿠르’의 등장: 파리의 ‘거리 문화’ 전통을 구축하다
21장. 루브르궁(1190~1678년): 성채형 왕궁에서 올드 루브르까지
초기 근대기 파리의 왕궁 네 곳: 지금도 파리 시민의 품속에서 함께하다
중세 루브르: 영국을 방어하기 위한 성채형 왕궁으로 시작하다
올드 루브르 1단계: 레스코 윙과 프랑스 국가 양식의 시작
올드 루브르 2단계 1: ‘그랜드 디자인’의 전체 계획
올드 루브르 2단계 2: ‘그랜드 디자인’ 가운데 앙리 4세 때 지어진 부분
올드 루브르 3단계: 루이 13세와 시계관 건설
올드 루브르 4단계: 루이 14세와 쿠르 카레의 완성
동익랑: 베르니니의 파리 방문과 프랑스 국가 양식의 각성
22장. 튈르리궁: 여러 불행이 겹쳤던 비운의 왕궁
튈르리궁 개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왕비용 궁전
카트린의 기본 구상: 센강 감상용 복도로 루브르궁과 연결하다
앙리 3세와 앙리 4세: 뷜랑의 안과 1차 준공
루이 14세와 최종 준공: 본궁을 다듬어 왕궁의 품격을 갖추다
23장. 뤽상부르궁과 팔레 루아얄: 좌안과 우안의 2차 왕궁
뤽상부르궁의 건축 역사: 마리 드 메디치의 왕비용 궁전
마리 이후의 뤽상부르궁: 왕실 궁전 - 국립교도소 - 상원의사당
뤽상부르궁의 건축사적 의미: 국가 양식으로 가는 중간 과정
팔레 루아얄의 건축 역사: 추기경 궁전에서 문화부 청사까지
팔레 루아얄의 건축미학: 오텔의 대칭 구성을 이끌다
24장. 루이 13세와 바로크 교회: ‘이탈리아주의’와 ‘프랑스주의’의 충돌
초기 근대의 문화 시설과 바로크 교회 건축
바로크 교회 다섯 채: 갈리아주의 아래 국가 양식을 창출하다
드 브로스의 생제르베: ‘이탈리아주의’와 ‘프랑스주의’를 함께 제시하다
르메르시에의 소르본 교회 가로 입면: 이탈리아주의의 표본
망사르의 성모마리아 방문교회: 프랑스주의의 표본
25장. 발 드 그라스 수도원 본당 교회: 이탈리아주의의 강화
발 드 그라스 수도원: 안 도트리슈의 왕립 수도원
본당 교회 1: 첫 번째 건축가 망사르의 원안
루이 14세: 수도원 규모는 줄이고 본당 교회는 라틴 크로스로 확장해서 준공하다
본당 교회 2: 이탈리아 선례를 종합한 이탈리아주의의 대표작
26장. 루이 14세와 앵발리드 보훈병원: 애국주의로 완성한 국가 양식
앵발리드 교회: 프랑스 국가 양식의 최종 완성
앵발리드 복합단지 1: 참전용사를 위한 보훈병원
앵발리드 복합단지 2: 생루이 교회와 앵발리드 교회를 증축하다
교회를 통한 국가 양식의 완성 1: 정면 외관의 웅장함, 위엄, 품격
교회를 통한 국가 양식의 완성 2: 세 가지 방향성으로 강조한 그랜드 매너
보훈병원 부분: 국가 양식의 사회적 토대로서의 애국주의
에필로그
도판목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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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시민 축제 혹은 도시 축제를 기독교 축일과 함께 벌이던 전통이 있었는데 바보제도 그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와 주현절 사이에 벌였는데, 연말의 들뜬 기분과 맞물려 눌려 있던 놀이 욕구가 분출되면서 열광을 넘어 광란으로까지 번지곤 하던 요란한 축제였다. 그래서 ‘바보’나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을 붙였다. 바보제는 파리 전역에서 벌어졌는데, 노트르담 광장이 가장 중요한 중심 장소였다. 바보제를 비롯한 주요 축제에는 행렬이 수반하는데 노트르담은 행렬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중세의 도시 축제는 단순한 놀이 행사를 넘어서 파리의 여러 시민 자치기관이 화합하고 통합하는 장이기도 했다. 노트르담 광장은 그런 화합과 통합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 p.201
발루아 왕조 초기인 14세기에는 나라 전체에 백년전쟁, 자크리의 난, 마르셀의 난 등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다. 이런 위기를 오롯이 감당한 건 장 2세(재위 1350~1364년)였는데, 이때 반란 세력이 시테궁으로 쳐들어와서 중신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린 나이에 이를 목격한 샤를 5세(재위 1364~1380년)는 이런 기억이 싫어서 즉위하는 해인 1364년에 바로 루브르를 새로운 본거지로 삼아 시테궁을 떠났다. 이로써 시테궁에는 사법, 연회, 집회 등의 기능만 남게 되었으며 사법 기능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감옥 구역도 확충했다. (…)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앙시앵레짐 기간에 시테궁은 프랑스 사법부의 총본산이 되면서 절대왕정을 견제하는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 p.220~221
보통 스테인드글라스의 최고봉은 파리 근교 일드프랑스 지방에 있는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치는데, 파격성, 전격성, 예술성 등을 기준으로 하면 생트샤펠이 단연 최고다. 처음 들어섰을 때 그저 ‘아!’ 하는 외마디 감탄사만이 터져 나올 뿐,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유럽건축을 수놓은 수많은 고전 걸작 가운데 이렇게 경외에 찬 반응을 자아내는 예는 만나기 쉽지 않다. (…) (생트샤펠의 창은) 실제보다 넓어 보이는 걸 넘어서 ‘극적’으로 극화된 극단적인 앙천성을 띤다. 기독교 문명을 살던 중세 유럽인들이라면 이런 수직적 극화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체험적으로 즉각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나라를 향하는 것이거나 하늘을 경배하는 것이다. 더하여 스테인드글라스가 성경 내용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중세 성당의 중요한 종교적 역할인 ‘그림 성경’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 p.229~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