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본능에 대해서 기가 막히게 잘 설명한 경제학자가 있다. 바로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과시적 소비’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과시 본능을 가지게 된 원인을 인류의 본능이 결정된 원시시대로 돌아가 살펴보자. 원시시대에 부를 쉽게 얻는 유일한 방법은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 높은 지위를 차지한 남자에게는 식량과 여자가 저절로 따라왔다.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지위가 낮은 원시인들에게는 학대와 스트레스가 따라다녔다. 그래서 원시인은 힘과 용맹을 과시해 지위를 차지하려 했다. 과시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고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최근까지 남아있는 한 원시 부족을 살펴보면 적의 머리를 베어서 자기집 앞에 걸어놓는 추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야만적 과시는 즉시 부족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최고경영자들이 집무실 평수를 중요시하고 골동품이나 진귀한 박제로 과시하는 것도 수컷 공작이 화려한 꼬리를 과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 베블런의 설명이다. 오늘날의 현대인도 여전히 과거 원시인의 과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살펴보자.
왜 여자들은 그다지 춥지도 않은데 비싼 모피코트를 걸칠까? (비싼 코트를 살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왜 여고동창회에 남편 차를 몰고 나올까? (과시하기 위해서 혹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옛날에는 포동포동한 여자들이 인기였다고 하는데 왜 요즘에는 말라깽이 여자들이 인기일까? ( 요즘엔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마른 체형이 부의 상징이다.)
강남의 아파트 값은 왜 그렇게 비싼가? (성공과 신분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인정하겠는데 강남 아파트는 그게 아니라는 항의가 들리는 것 같다. 교육. 생활문화시설. 재건축아파트 등이 물론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래서 몇 가지 증거를 대보자. 대치동에서 살고 있는 A씨는 막내가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공기도 안좋고 번잡한 강남을 떠나 공기 좋은 신도시로 이사 가시면 되겠네요?” 라는 필자의 권유에 A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나도 막내만 대학 들어가면 우리 부부는 신도시로 이사 가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들 혼사문제 때문에 계속 살아야 하는거 있지.” 모 언론사의 간부도 강남에 살다가 집을 팔고 강북으로 이사 갔다가 딸아이 혼기가 다가오자 다시 강남으로 이사가려 한다고 했다. 일전에 신문에 이런 기사도 났다. 여대생 딸을 둔 대기업체 사장이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딸아이가 우리도 강남으로 이사 가면 안 되느냐고 졸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딸아이 말로는 미팅 나가서 강북에 산다고 하면 애프터 신청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아빠가 사장이라고 말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니, 딸아이는 묻지도 않는 걸 어떻게 말하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업가들 중에 신용도 하락을 걱정해 강남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의 번호판도 강남번호판이 인기다. 중고차 시장에서 아무리 차가 좋아도 브랜드(강남번호판)가 없으면 망설이고 안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결국 많은 사람이 강남 브랜드를 과시하고 싶어한다. 수도권 아파트 거주자 4명 중 1명은 강남아파트 값이 아무리 비싸도 강남에 살고 싶어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베블런 효과 때문이다. 베블런은 “과시하라! 그러면 사회의 존경이 뒤따를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강남아파트에서 베블런 효과가 차지하는 값은 과연 얼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