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진실
물질의 풍요와 자유에 푹 절어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이유없음(회원)
북한을 잘 모르는 한국의 일부 사람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평양은 잘산다고 하기에 내가 살아본 기억을 써본다. 탈북인 중에는 평양에서 온 사람들도 있기에 내가 지어낸 글이라고는 보지 말라.
198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중앙의 무역 기관에 배치받아 평양에 뿌리를 내렸다.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아서 반년 만에 집을 마련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평양에서 자기 집을 가진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북한은 전셋집, 월세집이란 말도 없다.
살림 도구는 처가 덕분에 그럭저럭 마련했다. 내가 무역회사에 다니다 보니 회사에서 주는 칼러TV와 냉장고가 있었다. 1989년 세계 13차 청년 학생축전을 하기 전에는 평양에도 김정일의 선물을 받은 큰 간부들 집에만 칼러TV가 있던 시기였다. 특히 냉장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우리 집은 그 동네에서 제일 잘사는 집이었다. 그런데 먹는 것이 문제였다. 집에 먹을 것이라고는 배급받은 쌀과 공급받은 간장 된장, 소금이 전부다. 그것마저도 양이 적어서 아껴먹어야 한다. 콩기름은 인구 1인당 연간에 200g 정도 공급된다. 계란은 한 달에 인구 1인당 3알 정도 공급해주는데 아꼈다가 손님용이다. 그나마도 못 주는 달이 많다.
제일 문제는 채소가 없는 것이다. 가을에 김장용으로 1인당 30-35kg씩 주는 것 외에는 얻어먹기가 힘들다. 부부가 모두 출근하는 집은 더하다. 공급량이 많지 않으니까 기다렸다가 먼저 사오는 집만 먹는다.
양념감은 가을에 김장용으로 공급해주었던 고춧가루 1kg이 북한 가정들의 조미료 전부다. 그래서 세대주나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매일 싸야 하는 가정주부들은 죽어난다. 햄, 소시지, 달걀, 콩나물은 꿈같은 소리다. 두부는 명절 때마다 1모~2모 정도 공급해주는데 기름 짜고 남은 콩깻묵을 수입해서 만든 두부여서 맛도 없다.
육류는 명절마다 세대별로 뼈다귀 포함 1kg씩 공급해준다. 1년에 1·1, 4·15. 2·16, 9·9, 10·10, 명절에만 돼지고기를 눈으로 볼 수 있다. 물고기는 1970년대 초까지 명태와 도루묵이 흔하던 시기가 끝난 후에는 평양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배와 기름, 그물이 없는데 물고기를 무슨 수로 잡겠나?
과일 역시 1년에 몇 알 먹을 수가 없다. 쌀이 없어서 굶는 판에 호사스럽게 무슨 과일을 먹겠다고 과일 농사를 하겠는가? 있는 과일마저도 자동차와 기름이 없어 유통이 안 된다.….
커피와 차는 평양 사람들도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100%다. 그 자체가 국가의 생산과 공급 계획에는 없는 품목이다. 우유 역시 마셔 본 사람이 몇 안 될 정도로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칫솔 치약도 인민반으로 배정표가 나온다. 그것도 적게 나와서 아우성친다. 신발 표도 인민반으로 배정이 나오면 백화점에 가서 사야 한다. 1년에 1인당 1컬례도 배정이 안 된다.
명절 때마다 수령의 배려라며 세대별로 술 한 병, 당과류 1kg, 담배 몇 갑을 공급해준다.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사탕, 과자 선물 전달식을 거행하며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리고 먹으라고 요구한다.
석유, 가스도 부족해서 우리 집은 공급원들에게 밑돈을 찔러주고 몰래 받아쓰곤 했는데 동네 사람들 보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동네에 우리 집밖에는 전화가 없어서 집 안 현관문 옆에 전화를 두고는 동네 사람들이 불편 없이 쓰도록 했다.
정전이 계속되고 물이 안 나오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잠을 못 자고 겨울에는 난방이 안 되어서 추워 잠을 못 잔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더운 수돗물이 공급되는 법은 없다.
그런데 북한에서 오래 살다보니 별 희한한 세상을 보았다. 경제가 무너지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부터 장마당이 활성화되었다. 장마당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돼지고기, 닭, 계란, 각종 채소, 곡식, 술, 기름, 물고기, 커피, 생활필수품까지 다 있다. 정말 별세상이었다.
고난의 행군으로 국가의 통제시스템이 마비되자 그것은 오히려 국민에게는 자유를 주었다. 국민은 스스로 먹고살기 위하여 자체 생산과 유통사업에 뛰어들었고 결국 그것이 장마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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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북한 사람들은 자유만이 살 길이라는 것과 노동당보다 장마당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북한 독재자는 장마당을 무조건 없애려고 한다. 한국의 좌파정권들은 그런 김일성 가문의 독재정권을 도와주었고 북한 국민들의 노예살이를 연장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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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수십 년 겪은 일을 글 몇 자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물질의 풍요와 자유에 푹 절어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 2024-01-24, 15:32 ]
무학산 2024-01-24 오후 6:49
읽고 보니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저런 북한이 좋다고 깨춤을 추는 자들을 북송해 버릴 방법이 있어야 좋은데....
유려한 글솜씨에 긴 글이 단숨에 읽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