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미 제5해병연대의 출동(샌디에고 항에서 승선)
▲(위) 상륙작전부대 부산항 승선 : 1950년 9월 12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될 국군 해병대와 제17연대. 미 해병대가 부산항에 집결해 배에 오르고 있다.일본 요꼬하마에서는 미 7사단이 고베에서는 미 해병1사단, 사세보에서는 화력지원함이 인천을 향하여 출발했다
▲(위) 마운트 매킨리 함상의 맥아더 : 9월 15일 261척의 대수송단을 이끌고 인천앞바다에 도착한 맥아더 장군이 그의 기함 마운트 매킨리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위) 손원일 해군 참모총장 : 인천에 상륙하기 직전 미 수송선 함교에서 상륙 명령을 기다리는 손원일 제독(사진 왼쪽)
▲(위) 함상에서 17연대장 백인엽 대령 : 상륙명령을 하달하고 있는 한국 제17연대장 백인엽 대령. 동 연대는 9월17일 상륙을 완료했다
▲(위) 월미도와 인천 해안의 모습
▲(위) 월미도의 해안포(엄체호 속의 북한군 76밀리 곡사포)
▲(위)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감행하다 : 9월 12일 261척의 대 수송 선단으로 인천 앞 바다에 도착 한 상륙작전 부대인 제 10군단은 9월 15일 2단계로 나누어 작전을 개시하였다. 월미도 탈환을 위한 1단계 작전은 06:25 제 5해병연대 3대대가 Green Beach로 상륙을 개시하여 07:50 제1목표인 월미도를 탈환하였다. 해두보인 인천 점령을 위한 제2단계 작전은 17:33 미해병 5연대가 Red Beach (인천 북쪽), 17:32 미해병 1연대가 Blue Beach(인천남쪽)에 상륙하여 9월 16일 01:30 해두보를 완전 확보하였다
▲(위) 인천상륙작전 제1제대 : 상륙 제1파를 타고 월미도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미 제5해병연대 제3대대. 이들은 오전 6시33분에 월미도에 상륙, 1시간 후에 월미도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위) 상륙작전 제2제대 : 불타고 있는 Blue Beach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미해병 5연대를 태운 상륙용 주정. 이들은 9월 15일 17:33 인천반도 북쪽에 상륙하여 9월 16일 01:30에 해두보를 완전확보하였다
▲(위) 인천으로...: 공격용 사다리를 갖춘 상륙함정이 인천으로 향하고 있다
▲(위) 레드비치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 9월 15일 'Red Beach'를 공격하기 위해 사다리로 제방을 오르는 미 해병대원들. 인천은 조석간만의 차이가 커 만조 때를 제외하곤 상륙용 주정이 해안까지 접근할 수가 없으며, 또한 상륙해안이 암석과 방파제로 형성되어있어 보조 사다리가 있어야만 극복이 가능하여 상륙에 많은 제약이 되었다
▲(위) 한국해병의 인천상륙 :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신현준 대령이 이끄는 한국군 해병대가 해안에서 육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위) 월미도의 화염방사기 : 월미도의 라디오 고지에서 미군병사가 진지 내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북한군에게 화염방사기를 발사하고 있다
▲(위) 월미도에 상륙한 미 해병대
▲(위) 북한군의 항복 : 월미도에 미 해병대가 상륙하자 인민군이 막대기에 백기를 매달아 들고 투항하고 있다. 북한은 인천에는 신편 18사단의 일부병력으로 상륙을 저지하고 서울지역에서는 18사단과 105전차사단으로 저지하고자 했으나 실제는 영등포에 약 5000명, 서울에 약 8000명이 투입되었다
▲(위) 상륙 직후의 월미도 : 월미도 교두보를 확보한 미 해병대 용사들이 바주카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북한군의 반격에 대비하고 있다. 1950년 9월 15일
▲(위) 인천항에 발을 내디딘 맥아더 원수 : 9월 16일 01:30 인천해두보를 완전 확보하게 되자 맥아더는 인천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위) 인천에 상륙하고 있는 미 제7사단(1950. 9. 18)
▲(위) 헬기로 다련장 추진 : 미 해병대 항공대 소속 시콜스키가 복식포구를 가진 로켓포를 전선기지로 나르고 있다
▲(위) 바다물이 완전히 빠진 부두에 드러난 LST(전차양륙정)(上)과 LCM(기계화양륙정)(下) : 인천상륙작전시 상륙부대를 괴롭혔던 인천만의 간만의 차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위) 한국군 인천시가 진입 : 인천 해두보를 확보한 미 5해병연대는 인천 소탕작전을 한국군 해병대에 인계 후 김포방향으로 진격 18일에는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게 되고 한국군 해병대는 인천시내 소탕전을 벌였다. 인천시내에 돌입한 국군을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위) 인천탈환 념식 :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시가를 탈환한 아군은 인천시청에서 인천탈환기념식을 가졌다
▲(위) 고위 수뇌들을 위한 브리핑이 1950년 9월 17일 미 제1해병사단사령부(인천)에서 열렸다. 우측으로부터 맥아더 장군, 사단장 스미스 소장, 스트러블 제독, 위트니 장군(민정참모부장), 라이트 장군(작전참모부장)
▲(위) 인천 상륙작전 성공을 알리는 전단 : 인천상륙 후 인천을 탈환하고 김포를 거쳐 서울로 진격 중인 국군의 소식을 급히 알리기 위해 등사기로 인쇄해 만든 호외전단
▲(위) 상륙작전 표지석 : 1980년 인천 상륙작전 30주년을 기념해 유엔참전국협회(회장 지갑중)는 인천지역 해변 3개소에 유엔군 인천상륙지점 표지석을 세웠다. 사진은 3개 표지석중의 하나
▲(위) 인천상륙 후 김포지역의 북한군 포로 : 속옷 바람으로 이동중인 북한군 포로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둔 뒤 유엔군은 남한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보했다. 1950년 9월 김포 부근
▲(위) 미 제5해병연대가 김포비행장을 점령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위) 서울진격전에 지뢰로 사망한 미군 : 한·미해병대가 경인가도를 따라서 서울로 진격하던 중, 한 미군이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적의 지뢰를 밟고 즉사한 전우의 맥을 지어보고 있다
▲(위) 경인가도에 산재된 파괴된 북한군 전차
▲(위) 서울로 진격하는 국군(上)과 미 해병(下) : 한강 북쪽 제방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는 미 해병
▲(위) 한강변의 맥아더 :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서울로 진격하기에 앞서 전선을 바라보고 있는 맥아더
▲(위) 한강을 도하하는 미해병대 LVT : 서울의 서측 행주 나루터에서 한강도하작전을 시도하고 있는 미 해병대 LVT(1950. 9. 20)
▲(위) 125에서 심한 사격을 받고 있는 미 제5해병연대
▲(위) 한강변에 도달한 미 제1해병대 병사가 영등포와 서울 시가지를 잇는 파괴된 한강철교를 바라보고 있다
▲(위) 폐허로 변한 서울 시가지
▲(위) 서대문 일대에서의 시가전 모습
▲(위)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장충동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시가전에 대비하고 있는 유엔군
▲(위) 적의 바리케이트를 제거 후 시내로 진입하는 유엔군 전차
▲(위) 건물을 방패삼아 시가전을 벌이는 해병
▲(위) 시가지에 남아있는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사격을 하고 있는 미 해병
▲(위) 충장로에서 투항하는 북한군 :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은 패퇴를 거듭한다. 사진은 1950년 9월 26일 서울 충장로에서 투항하는 북한군
▲(위) 이 사진은 6·25전쟁 중 미 7사단 관할지역인 신사리(현 서울 강남구 신사동·압구정동 일대)에서 32연대 대전차 및 지뢰탐지 소대 플로이드 록우드 훈련담당 부사관이 한 촌로에게 지뢰탐지기 사용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장면이다. 1950년대 한국 촌로의 복장·곰방대와 미군·지뢰탐지기 모습에서 그 당시 생활상과 전쟁의 상흔을 엿볼 수 있다. 미 7사단 32연대(3241명)는 인천 상륙 작전의 선봉에 서서 영등포·서빙고·뚝섬 방면으로 진출, 서울 탈환에 큰 공을 세웠다
▲(위) 덕수궁 중화전 : 덕수궁 중화전 앞에 주둔한 미군. 포격으로 중화전의 지붕이 무너지고 경내는 온통 잡초밭이다
▲(위) 파괴된 서울역
▲(위) 폐허가 된 광화문(上)과 정부청사(下) : 검게 그을린 광화문과 불타서 뼈대만 남은 정부청사. 전쟁은 인명과 재산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재들을 파괴했다
▲(위) 폐허가 된 종로거리 : 서울 시가전이 끝난 후의 종로거리. 멀리 보이는 것이 옛 화신 백화점이다
▲(위) 파괴된 수원 북문
▲(위) 서울 중앙청에 감격의 태극기 게양 :1950년 9월 27일, 맨 처음 중앙청에 진입한 국군 해병 제2대대 6중대 용사들이 국기를 게양하고 있다. 인민군 치하 90일만에 서울을 수복한 국군 해병
▲(위) 서울 수복 기념식 : 1950년 9월 29일, 중앙청 홀에서 거행된 수도탈환 경축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왼쪽에 맥아더 장군과 무쵸 주한 대사가 보인다. 서울 수복 기념식에서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이승만 대통령 내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 행사 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과의 협조없이 한국군 참모총장에게 북진명령을 하달하게 된다
The longest day - Paul Anka
Many men came here as soldiers Many men will pass this way Many mean will count the hours As they live the longest day
Many men are tired & weary Many men are here to stay Many men won't see the sunset When it ends the longest day
(x2): The longest day, the longest day This will be the longest day Filled with hopes & filled with fears Filled with blood & sweat & tears Many men, the mighty thousands Many men to victory Marching on, right into battle In the longest day i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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