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두 번째 집 가구 배달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니 라디오에서 양희은 서경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다음 집까지 거리 14km 빨리 가도 40분이다. 운행 중엔 항상 라디오를 틀어놓지만 한 프로그램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구를 설치하러 들어가면 짧게는 10여 분에서 길게는 90분 이상 소요될 때도 있다. 벙커 침대나 2층 침대를 조립하는 경우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기본이다.
40분이면 여성시대 3,4부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방송 내용을 듣고 있노라니 온통 어버이날 얘기다.
어머니를 어떻게 해 줄 것인가? 라는 물음에
누군가는 전화로 노래를 불러드린다 하고
누군가는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자장면 파티를 하신다고 하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세 송이뿐인 카네이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가만히 내용을 듣고 있자니 어머니 생각에 뜬금없이 눈물이 난다.
내 어머니는 다정하지도 않았고 살갑지도 않았고 무척이나 무뚝뚝한 분이셨다. 나또한 열일곱 살에 집을 나와 삼십 년 넘게 객지를 떠도는 바람에 어머니와 잔정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애교 한 번 떨어 보려다 어머님께 사정없는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다 큰놈이 징그럽게 먼 짓이여?”
그 뒤로 나는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저 먼 발꿈치에서 바라보다가 명절이 되면 찾아뵙고 인사하고 생일 돌아오면, 어버이날 돌아오면, 그저 용돈 몇 푼 보내드리고 전화로 안부나 묻는 게 전부였다. 내 나이 마흔 여덟인데 아내와 가족들 데리고 어머니와 함께 외식해 본 적이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3년 전 시작된 치매는 얼마 되지도 않은 막내 놈과의 추억을 모두 가져가 버렸고 지난 4월 3일 82세를 일기로 먼 길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추모 공원에서도 난 울지 않았다. 아내와 누나가 그 많은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어머니의 죽음이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평안했다. 지병 한 번 앓지 않고 병원 한 번 가보지 않고 그냥 누워서 평안하게 돌아가셔서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삼일장을 치루고 돌아오고 나서도, 한 달여가 지난 오늘까지도 난 어머니의 죽음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여성 시대에서 나오는 방송 때문에 끝내 눈물 흘리고 말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 이맘때가 되면 비록 조화긴 하지만 카네이션을 보냈었다.
그리고 어버이날 전날 저녁에 많진 않지만 그래도 용돈을 보내드렸다.
용돈을 보내고 전화해서
“어머니 많이 못 보내 드려서 죄송해요.”라고 하면
“너도 자식들 키울라면 힘들 텐데 뭔 용돈을 이리 많이 보냈냐? 고맙다.”
내가 5만 원을 보내든 50만 원을 보내든 어머님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제 카네이션 보낼 곳이 없어진 것이다.
‘내 어머니가 진짜 돌아가셨구나, 아! 진짜 내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는구나!’
어머니의 죽음이 이제야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시골 형 집에 아직도 어머니가 계시겠지 라는 망상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죽음이 슬퍼서 슬프지 않은 것인지 슬프지 않아서 슬프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는 착각 속에서 한 달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벽에 적힌 어머니의 농협계좌를 보고 습관처럼 모바일 뱅킹을 연다.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입금하려는데 형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 통장 다 없앴다.”
혹시나 해서 계좌번호를 누르고 입금을 하고 송금 버튼을 누른다.
-잘못된 계좌이거나 없는 번호입니다-
핸드폰 알림 문자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첫댓글 잔잔하네요~~ 저는 양희은 서경석 목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습니다 ㅋㅋ
그맘 알만햐~ㅋㅋ
잘 읽었어요. 저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해가 지난 뒤에야 통곡하듯이 펑펑 울었답니다. 그랬던 사연이 다소 다르지만 윤아아빠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
고맙습니다 한동안은 진한 여운이 있을것 같아요
여성시대 작가가 삼식씨 글을 많이 좋아하나봐요
보내는 족족 사연이 채택되는거 보면
상품으로 가구장만하는 재미도 쏠쏠하겠어요 ㅋ
내년 어버이날엔 아버지 주제로 글 보내보세요!
저 아버지 안계셔요 25년전 돌아가셨어요 ㅠㅠ
그리고 보내는 족족은 아니에요
세번 정도 보내면 한번쯤 될까말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