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덕유]

                            생강나무

박  재 명

  긴 겨울을 나는데 벌써 지칠 때가 된 것일까? 그래서인지 까닭 없이 생강나무가 불쑥 생각났다. 마침 사무실에 생강나무가 한 그루 있기에 가지를 살짝 꺾어 냄새를 맡아 본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진한 생강냄새가 온 몸으로 전해져 봄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듯하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이 나무에는 신기하게도 생강 냄새가 난다. 혹자들은 생강나무 꽃을 두고 영춘화(迎春花)라고 한다는데, 이른 봄 산에서 가장 서둘러 피워내는 꽃 중의 하나인 까닭에 붙여진 이름 같다.

  생강나무와 처음 인연은 맺은 것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지독할 정도로 발목을 삐어서 여러 날을 고생했던 적이 있다. 삔대 좋다는 약을 갖가지 다 사용해 보아도 차도는 없었다. 하루하루 불편함에 공연히 골을 부렸더니,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독특한 방법의 민간처방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 아침 요강에 담긴 오리발 같이 생긴 넙적한 나뭇잎 건저 올리더니 삔 발목에다 척 붙여 주셨다. 나뭇잎을 찧거나 삶은 물을 사용했더라면 특별한 기억이 없었겠으나, 예기치 않게도 요강에서 건저 올린 나뭇잎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싫었지만 어머니의 완강한 뜻으로 그런 민간치료를 몇 일 동안 계속 받아야만 했다. 그 처방에 효험이 있었는지 아니면 때가 되어서 절로 낳았는지 모르지만 그 후 발목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어릴 적 그런 인연으로 이 나뭇잎은 등산길에서 특별하게 눈에 띠었고, 그럴 때 마다 어머니의 처방이 생각나 혼자 웃음 짓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스치면서도 이 나무와 통성명을 하고 지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이 나무가 생강나무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해 전이다. 겨울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두어 해 전의 이른 봄. 산행길에서 만난 노란 꽃이 일행의 화제가 되었다. 꽃 모양새로 보아 난 산수유라고 했더니,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꺾어 주며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영락없는 생강냄새가 났고, 그래서 이 나무를 생강나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특이한 생각에 이후 산에 다니며 생강나무를 유심히 살폈다. 이 나무도 목련이나 벚꽃처럼 꽃이 지고 난 다음에야 잎사귀가 나왔다. 어느 정도 성장한 나뭇잎을 보니 어릴 적 내 삔 발목을 치료하기 위해 쓰였던 문제의 그 나뭇잎이었다. 그간 이 나무를 꽃 따로 잎 따로 보았기에 같은 나무라곤 전혀 생각 못했던 터다. 그제야 난 생강나무의 전체를 알게 되었고, 이후로 만날 때 마다 특별한 인연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나뭇잎이 삔 데 정말 효험이 있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곧바로 인터넷으로 약성을 찾아보니 과연 멍들고 삔 데 특별한 약효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줌에 절여서 붙이거나 바르는 것이 아니라 ‘잔가지나 뿌리를 진하게 다려서 마신다’라고 했으니 어릴 적 내가 받았던 처방과는 애초에 적용방법이 달랐다. 그러나 저러나 방법이 좀 달랐으면 어떠리. 나뭇잎의 약성과 더불어 더러움도 마다 않던 어머니의 손길과 어우러져 결국 약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던가!

  이른 봄이 되면 생강나무와 산수유 그리고 회양목 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들은 크기가 좀 크고 작을 뿐 모양새와 색깔이 서로 닮은꼴이며, 일찌감치 꽃을 피워내는 습성도 비슷한 까닭이다. 그 중 생강나무는 어릴 적 추억이 있어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꽃을 피우므로 봄과 겨울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해서도 좋다. 산수유를 닮았지만 꽃자루가 짧아 앙증스럽고 산수유만큼 무리 짓지 않아 화려하지 않기에 수수하고 겸손스럽다. 그래서 숲 속 잡목들 틈에서 잘난 척 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꽃 모양새는 비슷하나 크기가 작아 자세히 살펴야하는 회양목보다는 보기가 편해서 좋다.

  올 봄에도 어김없이 생강나무에 꽃이 많이 피어나지 않겠는가. 가령산에 특별히 많았던 기억으로 올 봄 산행은 그쪽으로 가고 싶다. 생강나무를 만나면 미리 온 봄 생각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도 함께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그래서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운 한편으로는 곧 만나게 될 생강나무 생각에 잠시 싫증을 느꼈는가 보았다.

           2008.

[명월]

산수유를 닮았지만 꽃자루가 짧아 앙증스럽고 산수유만큼 무리 짓지 않아 화려하지 않기에 수수하고 겸손스럽다. 그래서 숲 속 잡목들 틈에서 잘난 척 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꽃 모양새는 비슷하나 크기가 작아 자세히 살펴야하는 회양목보다는 보기가 편해서 좋다.

생강나무 잎의 약효를 배우며 밥도둑 부각을 만들 생각으로 벌써 마음이 설레입니다.

[춘자]

올 봄에도 어김없이 생강나무에 꽃이 많이 피어나지 않겠는가. 가령산에 특별히 많았던 기억으로 올 봄 산행은 그쪽으로 가고 싶다. 생강나무를 만나면 미리 온 봄 생각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어머니도 함께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그래서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운 한편으로는 곧 만나게 될 생강나무 생각에 잠시 싫증을 느꼈는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