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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몫
민 18:8-20
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한 모든 헌물을 네가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노라
9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아니한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헌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10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 이는 네게 성물인즉 남자들이 다 먹을지니라
11 네게 돌릴 것은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12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1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서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14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15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처음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처음 태어난 부정한 짐승도 대속할 것이며
16 그 사람을 대속할 때에는 난 지 한 달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니라
17 오직 처음 태어난 소나 처음 태어난 양이나 처음 태어난 염소는 대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며
18 그 고기는 네게 돌릴지니 흔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같이 네게 돌릴 것이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민 18:8-20 / [제사장에게 돌아갈 몫]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예물은 너와 네 후손이 관리하여라.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제사장 일을 맡아 보도록 하였으니 너뿐만 아니라 네 후손들도 내게 바치는 제물 가운데에서 돌아갈 몫을 차지하여라. 9)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예물, 곧 한없이 거룩한 예물 가운데에서 불에 살라 바치지 않는 예물은 모두 네 몫이다. 곡식제물과 속죄제물과 면죄제물은 모두 다 너와 네 후손들이 가져갈 몫이다. 10) 너희는 이것을 성소에서만 먹어라. 이 예물은 남자들만 먹어야 한다. 이 예물이 거룩하므로 거룩하게 다루어라. 11-13)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그밖의 다른 예물도 다 네 몫이다.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네 딸과 아들 등 네 가족들이 모두 이 몫을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진상품들, 곧 그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기름과 가장 좋은 포도주와 가장 좋은 곡식도 모두 너희 몫이다. 네 집안 식구들은 모두 깨끗하므로 네게 돌아갈 몫을 차지할 수 있다. 또한 네 후손들도 이러한 예물을 자기 몫으로 받아 살아갈 수 있다. 14) 이 밖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특별히 내게 바친 것도 어느 것이든 네 몫이 될 것이다. 15) 이스라엘 백성이 나 여호와에게 바치는 맏배는 사람이든 가축이든 다 네 몫이다. 그러나 맏아들인 경우에는 몸값으로 대신 받아야 하며, 가축의 맏배인 경우에도 부정 탄 것은 몸값으로 대신 받도록 하여라. 16) 태어난 지 한 달된 아이일 경우 그 아이의 몸값은 성소에서 쓰는 세겔로 은 5세겔이다. 한 세겔은 한 게라이다. 이렇게 몸값을 받고 그 아이는 돌려보내라. 17) 그러나 난지 일년된 소나 양이나 염소의 맏배는 돌려보내지 말아라. 그 맏배는 온전히 내게 바친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잡아서 그 피를 제단 위에 뿌리고 기름 덩어리는 태워서 나 여호와가 흐뭇하도록 향기가 풍겨나게 하여라. 18) 그 가축의 나머지 고기는 네 몫이다. 흔들어 바친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와 함께 그 가축의 고기는 모두 네 몫이다. 19)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특별한 예물은 모두 다 너와 네 후손들에게 돌아갈 몫으로 주겠다. 나 여호와가 너뿐만 아니라 네 후손과도 영원토록 계약을 맺을 것이므로 이 계약은 결로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20) [레위인의 몫]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받은 땅으로 들어가 땅을 나누어 갖더라도 네게 돌아갈 땅은 없다. 너와 네 후손들에게 어떤 몫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 여호와가 너와 네 후손들이 받을 몫이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치는 예물을 너와 네 후손들의 몫으로 주겠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거룩한 직무를 주신 동시에 취할 몫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기에 이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다만 그들이 받은 음식은 성물이기에 정결의식을 행한 후, 먹게 하셨습니다.
네가 기름부음을 받았은즉, 영구한 몫의 음식을 주노라(8-14) 하나님께 드려진 거제물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8). 거제는 문자 그대로 제사장이 제단 앞에서 양손으로 제물을 잡고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은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이며, 아래로 내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물을 제사장의 몫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헌물이란, 거룩한 예물로 제단에서 불사르지 아니한 제물들을 말합니다(9). 제사장들이 받은 몫들은 불사르지 아니한 거제물과 요제물, 땅의 첫 소산물, 그리고 특별하게 드린 모든 것과 태의 첫 소산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 소산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로 얻은 첫 열매입니다. 첫 소산을 봉헌하는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결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고백입니다.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15-20) 고대로부터 소금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언약을 맺을 때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언약을 맺은 당사자들이 소금을 나눔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서로에게 부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소금 언약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영원한 언약을 상징하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고대 유목민족들은 언약의 당사자들이 소금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면서 언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언약을 직접 맺어 주시며 "소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19).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불변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소금 언약 안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마 6:26-34). <현대인의 성경>은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에서 네가 물려받을 유산이나 재산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나 여호와가 너의 재산이며 유산이기 때문이다”(20)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산과 유산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뜻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손 대대로 지켜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적용: 당신은 첫 소산마다 하나님께 드리나요? 당신과 가족은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소금 언약 안에 있음을 믿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헬렌켈러. 하나님은 제사장을 살피신 것과 동일하게 우리의 삶도 돌보십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소망으로 삶의 인도자로 의지할 분으로 삼으세요.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헬리 롱펠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 하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당신도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 설 교 >
선물의 영광
민 18:6-14 / 김창인 목사
오늘은 민수기 18장 6절에서 14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선물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설명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실 때 그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는 받을수록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것은 받으면 받을수록 복이요,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온갖 도움을 베풀어주신 다음에 기뻐하시고 더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아들 딸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했다고 합시다. 그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아 보십시오. 그러면 선물한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장난감을 하찮게 여기고 집어던진다면 무척 서운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선물을 받아 누리면서 기뻐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주시기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은 받을수록 우리에게는 영광이 되는 동시에 모든 지켜보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움은 받아서 좋은 경우가 있고 받아서 괴로운 경우가 있습니다. 괴로운 경우는 도와주고 베풀어 준 다음에 자랑하며 말을 만들어서 돌리는 경우입니다. 그리고는 목에 힘을 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을 깔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도움을 받았지만 괴로운 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받을수록 영광이요, 귀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선물도 우리가 받을수록 우리에게는 영광이 되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선물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신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사람 선물 (6-)
‘세상에 사람을 선물로 주다니?’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았지 돈을 주고 사 오거나 어떤 공로를 세우고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 아내에게는 나라고 하는 김창인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선물이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설명하면 사람을 잘 만나는 복이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잘 못 만나 보십시오. 사람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사람 때문에 억울한 일 당하고, 두고 두고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서 4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울을 위해서 목을 내 놓고 도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고린도라고 하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인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 부부는 장막을 꿰매고 만드는 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업이 똑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통했습니다. 대화가 되다 보니 빨리 친숙해 진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율법만 알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부부가 그 복음을 받고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하는지 바울이 다니는 곳이면 항상 보따리를 싸들고 앞장을 서서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바울을 위해서 목을 내 놓을 만큼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바울이 죽을 경우에서 살아났습니다. 얼마나 좋은 협조자입니까? 이런 협조자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에게 선물해 준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이 직접 세우지 못하고 이들 부부를 통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협조자인지 모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바울은 이런 훌륭한 사람을 잘 만나는 인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복을 누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은 협조자를 선물로 붙여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을 잘 못 만나 울고 한으로 남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절을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 형제 레위인을 취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아론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레위인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농사를 지어 거두는 첫 열매를 바치게 되어 있지만 짐승의 첫 새끼도 하나님께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장자를 죽일 때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열 두 지파에서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너희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것을 삼으신 다음에 그 레위인들을 제사장에게 붙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역대하 29장 34절을 보면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 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싶은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들을 찾아왔습니다. 제사장들이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송아지나 양을 잡을 때는 먼저 죽이고 가죽을 벗겼습니다. 사각을 뜨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드러내고 깨끗이 씻어 하나님이 태우라고 하는 부분을 태워서 재가 된 다음에 땅에 묻어 버리므로 제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감당을 못하기에 그것을 레위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레위인들로 하여금 돕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하는 일에 레위인들이 제사장들 보다 더 성심이 있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들보다 더 잘했다는 것입니다. 성심이 더 크고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사장들보다 오히려 일을 더 잘하는 귀한 사람들을 붙여서 제사장들을 돕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제사장들처럼 훌륭한 사람, 어쩌면 자신 보다 더 나은 사람을 하나님이 붙여 주셔서 돕게 하는 사람 잘 만나는 복 즉 사람 선물이 여러분들의 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을 마쳤으나 2학년에 올라가면서 등록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은 전부 공부하고 있는데 나 혼자 밤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가면서 얼마나 울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부산 시내에 있는 남부민 교회(현 은성교회) 전도사로 시무 했습니다. 돈을 아끼느라고 장가도 가지 못했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어야 했습니다. 옷 한 벌로 철이 바뀌어도 갈아입지를 못하면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 옷을 입고 신학교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얼마나 짜게 굴었는지 3년을 그렇게 모아서 복학하여 등록금을 내고 한 학기 동안 밥을 사 먹고 났더니 남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또 휴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난감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가 나를 좀 키워 주었으면 좀 어떻겠습니까? 교회는 사람을 키우는데 인색하면 안된다는 것이 제가 받은 교훈이었습니다. 결국 난감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신 은인이었습니다. 이 분이 얼마나 나를 돕고 여러 가지로 협조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쓰고 남아 모은 돈은 하나도 없었지만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혀 부족함이 없이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 ‘네가 가서 김창인 전도사를 도우라’고 저에게 붙여 주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그 분이 미국 LA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고 계십니다. 어떤 면에서 그 분은 저에게 천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분을 나에게 선물로 붙여 주어서 돕게 하신 사람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도움이 아쉽고 난감할 때 해치는 사람보다는 돕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 선물의 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명히 ‘레위인을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었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이 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둘째, 직분 선물 (7-)
바울 사도는 자기가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고 못살게 굴다가 예수님께 항복하고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사도로 세움을 받을 때 얼마나 그가 감사했는지 디모데전서 1장 12절을 통해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도라고 하는 직분을 맡겨 준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이 첫째로 감사할 일이요, 가장 크게 감사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직분을 선물로 주심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로마서 11장 13절을 보면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의 직분이 영광스럽다는 말입니다. 먼저 바울은 직분 주심에 감사하였고 다음으로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하십니까? 성가대 대원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직분 같으십니까? 목사의 직분에 비하면 이것은 시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서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이 계산 할 때 똑같이 작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볼 때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 분명히 크지 않습니까? 두 달란트 맡은 종은 분명히 작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두 종을 향해서 똑 같이 “작은 일에 충성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전부 작은 일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크면 다 같이 크고, 작으면 다 같이 작다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큰 직분이 아니요, 성가대원이라고 해서 작은 직분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영광스럽게 알아서 바울 사도처럼 충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7절을 보면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이울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제사장 직분을 선물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목사 직분도 내가 훌륭한 것이 조건이 되어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장로 직분, 권사 직분, 안수집사, 서리집사, 교회학교 교사, 성가대원의 직분 등등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작다면 똑 같이 작고 크다면 똑 같이 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직분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주신 직분을 고맙고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분이라고 하는 것은 별을 다는 것처럼 높아지고 영광을 받고 대접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십리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선생님이 공부를 다 마친 다음에 제 이름을 부르면서 잠깐 남으라고 하셨습니다. 남아서 선생님이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벌써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 혼자만 떨어졌다가 나중에 혼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찮고 괴로운 일입니까? 그러나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서 불러 일을 시켜 주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마음이 있었는지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궂은 일을 다 도와 드리면서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별다른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 세우시는 것은 온갖 궂은 일,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네가 좀 해 달라고 시키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 알고 직분을 맡은 사람은 ‘온갖 궂은 일은 내가 할 일이다’라는 사명을 가지고 봉사하면서 영광스럽게 여기고 바울 사도처럼 충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리교에 이환신 감독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감독을 지냈습니다. 1966년은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해 오던 해입니다. 그런데 그 때 연세대학교에서 총장 자리가 비었습니다. 본래 연세대학교는 장로교가 세운 대학입니다. 그런데 장로교 선교사님들이 이것은 장로교 혼자서 운영하지 말고 기독교 전체가 참여해서 운영하면 좋겠다 하고 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도 들어오고, 성공회도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장로교와 감리교가 돌아가면서 총장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감리교에서 추천만 하면 총장이 될 차례였습니다. 그 교단에서 누구를 추천하면 좋을까 하다가 이환신 감독이면 좋겠다고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 있는 이환신 감독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환신 감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감독의 임기가 남아 있는데 그 직분을 쓰레기처럼 내 버리고 연세대학교 총장 즉 세상이 알아주는 그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 총장은 목사도 할 수 있고 장로도 할 수 있고 세례 교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교단을 끌어 가야되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귀한 성직이 아닙니까? 교회 하나를 끌어가는 목사의 직분이 귀하다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감독의 직분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자기는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어질 총장 자리를 내 버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온갖 좋은 것을 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내 놓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그렇게 영광스럽게 여겨서 바울 사도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물질 선물 (8-14)
‘가난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왜 손을 들지 않으십니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싫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18살에 혼자 피난을 나와 고학하며 목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정말 가난이 지겨웠습니다. 가난하다고 대접받는 곳이 있습니까? 오히려 멸시천대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은 먹는데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가난은 서러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 절대로 죄는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주눅 들지는 마십시오.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왜 못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아굴이라는 사람은 잠언을 통해서 “하나님 저는 너무 떼 부자가 되면 돈이 너무 좋아져서 하나님은 없어도 나는 괜찮다 하나님은 내 알바가 아니다 이렇게 되어질까 걱정입니다. 제가 떼 부자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떼 부자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아굴이 “하나님 그렇다고 해서 제가 너무 가난해 지면 자꾸 남의 것이 부러워 도둑질 할 마음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내게 필요로 한 것을 주어 먹고 누리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들 딸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금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한방에서 둘 셋을 같이 키웠는데 이제는 장성하다 보니 방이 더 있어야 함으로 좀 더 큰 아파트가 필요합니다. 그런 경우 방 하나 혹은 두 개가 더 달린 아파트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동차가 필요하다’면 자동차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만 제 때 있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아굴이 바로 그렇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왜 주시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달라고도 하지 않고 왜 원망부터 하십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가령 여러분들의 아들 딸들이 돈을 꾸러 다니는 것을 보기 좋다고 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남들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십리를 걸어 다니는 아들 딸을 보고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의 필요를 아는 부모는 자식이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도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필요로 한 것이 있으면 솔직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좀 달라고 먼저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노라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예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 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 이는 네게 성물인즉 남자들이 다 먹을찌니라 내게 돌릴 것이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일조 중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서 제사장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바친 우리가 제사장을 먹여 살리는 것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바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가령 장사해서 돈을 버는 것은 여러분이 잘나서 돈을 버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장사에 종사하도록 하고 이문을 하나님이 떼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어서 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먹이시는 것이나, 나를 먹이시는 것이나 똑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떡을 사먹든, 순대를 사먹든 내가 상관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동시에 내가 떡을 사먹든지, 순대를 사먹든지 상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받아서 그 중에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는 것만으로도 그 제사장들은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사를 드린 다음에 몽땅 태워버리는 제사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름만 태워버리고 재가되면 땅에 묻어버리면 제사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태우지 않은 나머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제사장들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가 하면 과일이나 곡식이나 제일 먼저 익어서 따거나 거두는 것 하나님께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제사장들에게 그것 역시 먹으라고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물질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서 먹고 누리고 배부를 만큼 필요한 것을 선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에게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까? 우리도 다 같이 제사장입니다. 즉 만인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필요한 것을 왜 하나님께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는 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부터 하십니까?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물질 선물을 풍족히 받아서 먹고 누리고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베풀고 하나님께 바치고 싶을 때 얼마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풍요로운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가 받을수록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첫째로는 사람 선물입니다. 제사장에게 레위인을 선물로 붙여 주셨습니다. 가장 훌륭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레위인을 붙여 제사장을 돕도록 하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사람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여러분들에게 붙여 주셔서 서로가 돕고 복되게 살아가는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직분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직분이 크다 작다 싶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똑 같은 것입니다. 직분을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일감을 주어 궂은 일, 힘든 일을 시키더라도 얼마나 영광으로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직분을 맡기고 일감을 주어서 궂은 일을 시켜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물질 선물입니다. 제사장들에게만 풍족히 살도록 풍족한 물질을 주십니까?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따로 있었지만 오늘에는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여러분들도 제사장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물질을 풍족히 선물하시어 누리고 베풀고 바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사장의 몫
민수기 18:8~20 / 창원 늘푸른교회
지난주에 본 민수기 18:1~7절은 제사장의 직분이 선물임을 보았습니다. 제사장제도를 하나님께서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가 가장 절실하게 알게 됩니까? 자기 죄가 어떤지를 아는 사람일수록 제사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장들이나 그 백성들이 속죄가 무언지 잘 모르니 제사장들은 삯을 위하여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참되고 영원한 대제사장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8~11절입니다. 제사장 아론과 그 아들들이 받을 몫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물 중에 불사르지 아니한 것은 제사장의 음식이 됩니다. 온전히 불살라 드리는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음식은 불사르지 않는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입니다. 불사르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거제와 요제입니다. 이러한 제물들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영구한 음식입니다.
본문 12~18절입니다. 처음 것에 대하여 나옵니다. 처음 것 중에도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들이 제물로 드려지는데 이것을 제사장에게 돌립니다. 곡식의 처음 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짐승의 처음 태어나는 것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제물로 바치지 못하니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게 합니다. 처음 태어난 소나 양이나 염소는 대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고기는 제사장의 몫이 됩니다.
여기서 처음 것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처음에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을 심지어 처음 익은 곡식과 과일까지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셨습니까? 출애굽의 열 번째 재앙이 처음 태어난 장자와 처음 태어난 짐승의 수컷이 죽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죽지 않은 집의 장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것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 것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희생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 태어난 것을 여호와께 돌리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처음 태어난 것의 희생은 유월절 이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처음 태어난 아들이 르우벤이지만 계모를 범함으로 자격을 잃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차지할 두 몫을 요셉이 받습니다. 요셉이 장자의 몫을 받게 되는 것은 요셉이 희생을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그런데 나중에 총리가 되어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까지 다 봉양을 하게 됩니다. 이때 요셉이 하는 말이 형들의 악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에서는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말씀이 연단하였다고 합니다(시105).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자는 혈통의 순서가 아니라 누가 희생하느냐에 따라 장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유다도 베냐민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는 모습이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4:22~23절입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출애굽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장자 만들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장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장자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희생으로 다른 자들을 살리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장자로 삼으시는 것은 제사장의 나라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의 나라란 다른 나라를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기희생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를 살리는 역할이 장자의 나라 제사장의 나라가 됩니다.
출애굽기 19:4~6절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산 앞에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떻게 인도하여 내었는지 너희가 보았다고 하시면서 세계가 다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의 역할은 세상의 것을 차지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에 없는 참된 속죄를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소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소금이란 변하지 않음을 말하기에 변하지 않는 언약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이미 이천 년 전에 건물로 된 성전을 예수님께서 헐어버리시고 자신이 성전이 되셨습니다.
역대하 13:4~5절입니다. “4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 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이르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남 유다의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입니다. 유다는 군사가 40만이고 북 이스라엘은 80만입니다. 이때 아비야가 북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소금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섬기며 아무나 제사장을 세우지만, 유다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유다가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북이스라엘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유다도 결국 멸망합니다.
그렇다면 소금 언약이라고 하는 제사장이 받는 것이나, 다윗의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소금 언약도 겉으로 보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어떻게 성취가 되는 겁니까? 오늘 오전에 본 대로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로 받았지만, 약속은 받지 못하였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구약은 모형과 그림자로써 실체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몫으로 받는 처음 것과 다윗의 영원한 왕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합니다.
누가복음 1:30~33절입니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다윗에게 소금 언약을 하신 영원한 왕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가 됩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누가복음 2:22~24절입니다. “22 ㄱ)모세의 법대로 정결 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ㄴ)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ㄷ)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처음 태어난 남자마다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하면서 아이가 할 일에 대하여 예언을 합니다. 이방인의 빛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안나도 이 아이에 대하여 말합니다.
요한복음 2:18~22절입니다.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1)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께서 성전도 되시고 제사장도 되시고 제물도 되십니다. 예수님이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십니다.
로마서 8:22~25절입니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예수님께서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열매를 받은 우리가 탄식하는 것은 몸의 구속 곧 몸의 부활을 입을 때까지 탄식하면서 보이지 않는 소망을 기다립니다.
로마서 8:29~30절입니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경에서 맏아들은 희생하는 아들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이나 간에 여호와께 드려지는 희생으로 나머지가 거룩하여 집니다. 이 거룩함에 참여하는 방법은 땅의 기업이 있는 자들이 십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드림으로 참여됩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역할과 제사장의 몫이라는 것은 자신의 희생으로 나머지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5:9~10절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며 왕입니다. 그러면 어떤 모습의 나라의 제사장과 왕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제사장은 이 땅에 기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그들의 기업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듯이 오늘 우리의 영원하신 기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노래합니다.
베드로전서 2:9~10절입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전에는, 다른 말로 긍휼을 얻기 전에는, 또 다른 말로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는 세상의 썩어질 것을 목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기이한 빛,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그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자들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자기희생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힘을 가지고 군림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역할은 땅의 기업이 하나도 없어도 하나님이 영원한 기업이기에 담대하게 전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6:3~10절입니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2)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땅에 기업이 없는 자들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몫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의 몫과 기업은 만유가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요 공급자다
민 18:8-20 /
◈ 주해
1. 제사장 직분은 제사장들에게 봉사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1) 또한 함께 동역하도록 붙여준 레위인들도 제사장에게는 선물이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과 직무(봉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2.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제사장직이라는 직분과 레위인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을 제사장의 분깃과 기업으로 주신다.
1) 하나님이 제사장들의 분깃과 기업이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필요한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신다.
2) 8-32절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을 보수에 대한 규정이다.
3. 눈에 보이기에는 백성들을 통해서 보수(양식)이 제사장에게 주어지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주는 보수, 하나님이 공급하는 양식이라고 하신다.
1)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가나안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는 대신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되신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20절)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9).
4.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시는 보수(양식, 음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 중에서 화제로 드린 것 외에는 제사장에게 다 주겠다고 하면 간단하다.
2)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받으신 제물의 종류를 하나씩 언급하시면서,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제물을 제사장에게 음식으로 주겠다고 하신다.
3)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음식으로 주겠다는 표현이 11번이나 나온다.
- “주겠다, 돌리겠다, 네 것이니”라는 표현으로 제사장에게 음식과 재정을 주겠다고 하신다.
5. 아론은 이스라엘이 바친 거제물(들어서 바치는 제물)을 주관하며 그것들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한 몫의 양식이 된다.
1) 번제물은 제단에서 완전히 태워지기 때문에 보수에서 제외된다(9).
2) 모든 소제(곡식제물)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헌물은 다 거룩하여 아론과 그의 자손의 몫이 된다. 그것들은 지극히 거룩한 곳, 곧 지성소에서 남자들이 먹어야 한다(10절).
3) 이스라엘 백성이 흔들어 바치는 제물(요제)에서 떼어낸 것도 제사장의 몫이다.
- 제사장과 그의 자녀들이 먹되, 다만 부정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먹어야 한다.
4) 이스라엘 백성이 바치는 첫 소산, 곧 기름과 포도주와 곡식을 제사장에게 주신다.
- 이것 역시 그 집안의 정결한 자가 먹는다.
5) 이스라엘이 특별히 드리는 모든 것도 제사장의 몫이다(14절).
- ‘특별히 드리는 것’은 ‘여느 사람은 손대지 못하는 것’이며, 전쟁시 포획하는 전리품을 암시한다(레 27:28-29).
6) 모든 생물의 처음 난 것은 사람이나 짐승 모두 제사장의 몫이다.
- 처음 태어난 사람과 부정한 짐승은 속전(성전 세겔)로 대신 받는다.
7) 처음난 것 중에서 번제로 드리는 소와 양은 흔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가 제사장의 몫이 된다(18절).
6.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공급하겠다는 음식(보수)들을 말씀하신 후에 제사장에게 주는 보수는 영원히 체결된 “소금 언약”이라고 하신다.
1) ‘소금언약’이라는 표현은 여호와와 다윗 가문 사이의 언약과 관련해서만 등장하고(대하13:5) 레위기 2:13절에서 ‘언약의 소금’이라는 말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소금 언약’이 암시되어 있다.
2) 식언치 못하시는 하나님이 “양식을 주겠다”고 하시면 반드시 그대로 실행하신다.
- 하나님은 “내가 양식을 주겠다”는 말씀과 함께 소금언약으로 이 말씀을 확증해 주신다.
3)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양식을 주겠다”는 강조법이다.
4) 여호와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주는 보수는 영원한 효력을 발생한다.
7.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모든 필요와 양식을 더하여 주겠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장이나 목회자(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 신약의 모든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다.
2) 성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직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로 헌신하고, 가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가사일로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양식과 필요를 채워주신다.
3)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그 자리, 삶의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이며 하나님이 주신 일이기 때문이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이 소금언약으로 필요를 채우신다.
4) 예수님은 이것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1)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먹으라고 하신다.
민 18:9 다음은 아주 거룩한 것으로서,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바친 모든 제물, 곧 그들이 나의 것이라고 하여 나에게 바친 모든 곡식제물과, 그들이 바친 온갖 속죄제물과, 그들이 바친 온갖 속건제물 가운데서, 불태워서 바치고 남은 것은 아주 거룩한 것으로서, 너와 너의 자손이 받을 몫이다.
민 18:10 너는 그것을 아주 거룩한 곳에서만 먹도록 하여라. 그것은 남자들만 먹는다. 그것은 너에게 아주 거룩한 것이다.
2) 모든 성도들은 일하고 받은 월급을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여기고, 거룩하게 여김으로 사용해야(먹어야) 한다.
3)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일을 통하여 주신 재정으로 여기고 감사함으로 사용해야 한다.
4) 하나님은 나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시다. 내가 재물을 얻도록 건강과 지혜와 재능과 힘을 주셨다.
9. 오늘 본문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재정의 공급을 말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양식도 주시겠다는 말씀도 된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음식인 거룩한 음식으로 제사장들을 먹이신다.
2) 하나님이 받으심으로 하늘에 속한 양식이 된 음식을 제사장에게 주신다.
3)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양식, 생명의 떡”을 주신다.
- 아들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4) 하나님만을 나의 기업과 분깃으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필요한 재정과 함께 생명의 양식도 공급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
10. 어떤 양식은 “너와 네 자녀에게 준다(19)”고 하심으로 자녀들의 필요도 공급하신다.
1) 우리 자녀들의 필요는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2) 그런데, 자녀들의 필요에 대하여, 자녀들이 헌신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필요한 양식,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겠다고 하신다.
3)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돌보시고,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하나님만을 나의 분깃과 기업으로 믿는 것이다.
11. 하나님이 8-19절까지 반복하여서 제사장의 양식을 주시고, 자녀의 양식까지 주겠다고 말씀하신 진짜 목적을 20절에서 밝히신다.
1) 11번이나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제사장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네 분깃이요 기업”임을 믿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2) 만약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분깃과 기업으로 믿지 않고, 다른 백성들처럼 가나안의 땅을 탐한다면 하나님은 모든 공급을 끊을 것이다.
12.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요 기업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1) 먼저, 제사장은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땀을 흘리는 자라는 것이다.
2) 땅을 기업으로 받은 백성들은 땅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투자하여 양식을 얻는다. 그러나 제사장은 기업인 하나님을 위하여 땀을 흘리며, 투자한다.
3) 땅을 기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땅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난다고 믿으며 땅을 위하여 매일 땀을 흘리며 마음을 쏟는다.
- 제사장은 자신의 모든 필요가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섬긴다.
13. 만약 제사장이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요 기업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1-19절의 모든 약속은 헛된 것이 된다.
1) 하나님이 제사장직을 선물로 주었다는 말씀도 헛것이 되며, 하나님의 것을 양식으로 주겠다고 하신 소금 언약도 헛된 것이 된다.
2)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필요를 공급받는다. 하나님이 나의 분깃이요 기업이라는 믿음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재정을 공급받는다.
3)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재정을 공급받는 방법은 동일하다.
4) 세상 사람들은 불안과 염려가운데 일을 한다. 나이가 들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한다. 그리고 재정이 적으면 불만이고, 많으면 교만해진다.
5) 하나님이 나의 기업으로 믿는 자는 감사함으로 일을 하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젊음과 능력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늙어서도 하나님이 재정을 공급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일할 뿐이다.
14.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라는 것은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1)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의 분깃과 기업이 하나님이심을 알자.
- 하나님이 사업을 통하여, 회사를 통하여, 가족을 통하여 나의 필요를 공급하신다.
2) 소금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일터로 향하자. 그곳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자.
3) 내가 받은 재정이 원래는 하나님의 것인데, 내게 주신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그 돈을 거룩히 여김으로 사용하자(먹으라)”
4) 하나님이 주신 재정이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사용하자.
◈ 나의 묵상
회개: 말씀의 빛이 드러낸 어둠
하나님은 나의 기업이요 분깃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하는 성도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함을 믿었고, 경험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믿음을 상실하였다. 재정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세상적인 방식으로 재정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교회 재정이 적자가 되면 걱정을 한다. 흑자도 적자도 주님이 하신다는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제현황을 듣거나, 패권전쟁을 들어도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믿음으로 뉴스를 듣지 못한다. 하나님이 지구를 주시고, 정치, 경제, 자원, 기술...등 모든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현실이 믿음을 좀 먹었다. 그러니, 재정을 내 뜻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커피를 사 먹든, 플로잉을 하던, 하나님이 주신 재정을 사용한다는 믿음이 없다. 내 돈으로 커피를 사 먹고, 내 돈으로 플로잉한다고 여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헌금을 해야 하는데, 내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헌금을 한다. 남에게 무언가를 사줘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준다는 겸손함이 없다. 맘모니즘이 내 마음과 가치관에 깊이 들어와 있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데 말이다. 재정에 대한 모든 염려와 근심, 불신앙을 주님 앞에 쏟아 놓는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권자이신 주님께로 나아간다.
2. 복음이 생명을 환하게 나타내다.
나같이 믿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은 “소금 언약”으로 내가 양식을 주겠다고 11번이나 말씀하신다. 조목 조목 공급하는 말씀은 오늘날로 말하면, 주거비, 식비, 커피값, 난방비, 의료비...를 나눠서 주신다는 말씀이다. 세밀하게 나의 필요를 채우겠다고 하신다. 하나님만을 기업과 분깃으로 여기는 믿음으로 먹으라고 하신다. 재정의 공급, 재정의 사용 모두 믿음을 벗어난 것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포도나무이신 주님께로 간다. 내가 맺는 열매는 포도나무로부터 공급된 것이다. 적자든 흑자던 주님께 맡긴다. 주님의 풍성한 공급을 감사하며, 복음을 위한 적자도 감사함으로 받는다. 내 돈이라고 여기며 사용한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이 주신 재정,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사용하길 원한다. 맘몬을 마음에 두느라, 주님을 마음에 두지 못했다. 내 마음의 주인이 예수님임을 고백한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인, 나의 기업, 나의 생명이시다.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사 돌덩어리 같은 믿음 주시기를 간구한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주신 주님께로 나아간다. 아직 의심하지만 지상명령을 주신 주님의 주권에 내 영혼을 맡긴다. 선물로 직분을 주신 주님과 지금까지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 묵상 기도
주님, 눈에 보이는 경제와 돈의 흐름 이면에 역사하시고 공급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세계의 경제부터 저의 재정까지 모든 것을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도 주님의 뜻이 없이는 팔리지 않습니다. 저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주님을 항상 신뢰하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공급받고, 믿음으로 재정을 사용하는 자로 빚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에서 순종함을 배우게 하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이 이끄신 심판의 무덤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을 알아, 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에 복종하게 하옵소서. 오늘은 노회가 있고, 김철훈 전도사 안수식이 있습니다. 노회가 주님의 뜻대로 운영되게 하시고, 김철훈 전도사가 예수생명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주신 선물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청년들을 만나 주시고, 주께로 돌이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