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복음 선교의 날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농부가 씨를 뿌려 싹고 줄기를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봄부터 가을까지. 얼마나 갖가지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런 돌봄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바람과 햇빛이 받쳐주어야 하고..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인간의 수고와 노력 뿐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자연의 배려까지. 그것이 되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길. 사람이 태어나서 어린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노년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각가지의 일과 만남과 사건이 있습니까? 자라는 가운데 순탄, 평탄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어른이 되어서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순탄의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의 걸음 걸이, 그의 삶의 여정! 인간이 수고하고 노력하여도 하느님의 이끄심과 자비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 그러니. 인간의 선과 사랑, 자비와 평화의 노력이 중요하고, 하느님의 섭리와 그 따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은 완전하다거나 온전하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허물과 부족함이 있습니다. 한편 사람들은 각자 각가지의 장점 재능 소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이 모두가 똑같지 않고, 똑같이 행사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각각의 소질과 재능을, 그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좋다, 크다, 높다, 낫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설령 가장 작은 이, 미소한 이에게도 그 은사와 소질과 재능을 소중하여 하느님께서 각각이 다르게 똑같이 주셨습니다.
누군가가 부족하고 허물이 보이고, 약하고 미치지 못한 모습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바꾸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그의 모습을 부끄럽게 바라보고 또 배척하지는 않는가? 그와 더 이상의 만남과 관계까지 멈추려고 하지 않는가?
하느님 나라의 길. 누군가가 허물이 있고 약함이 있고 또 부끄러움과 미천함이 있을 때, 그것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무조건 질책이나 책임을 일방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그의 허물과 약함과 부끄러움과 미천함이 어디서 유래하는 지를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런 되새김과 회상과 성찰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님의 앞에서, 그분의 마음에서 그의 치기와 부족함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성숙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상대의 허물이나 치기가 나의 말과 나의 공격 상대가 되는 것으로 인식되면 나는 아직도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상대를 무조건 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규정하는 것을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상대의 부족과 한계와 치기의 모습을 식별하고, 또한 나의 부족과 한계와 사랑과 용기 없음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 선교. 복음화는 상대의 모습을 보고, 또 나를 식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분의 정의와 선을 통해서 배척함이 없이 그것을 수용하고 개선해 나가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나타나는 허물과 부끄러움, 치기와 모자람을 피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바라보고 식별하고 함께 바르게 이끌어 가고 선과 호의로 바꾸어 가는 노력을 할 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성찰과 식별, 선의와 호의로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역사가 흐르고 복음의 길이 함께 그들에게 이루어집니다.
주일은 복음 선교의 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그 제자됨은 선과 사랑과, 자비와 평화를 전하고 또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형제들에게 보입니다. 그것을 실천합니다.
주님, 하늘과 땅의 당신이 권한을 우리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제자 되어,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말씀을 선함으로 가르치는 제자 도게 하소서. 성찰과 식별과 사랑의 실천으로 그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