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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아주 짧은 숏커트를 하고 있지만 아담한 그녀의 얼굴에서 여자라는 것을 감추기는 조금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굳은 결심을 한듯 눈은 크게 뜨고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앞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친구이자 파트너인 최 선국이 그녀에게 발견한 오묘한 기류에 대해 바로 물으려 했으나
참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앞으로 보호해야할 고객. 즉 의뢰인을 모시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두사람. 선국은 아까부터 옆에 조수석에 앉은 하영을
향해 이 오묘한 기류에 대해 묻고 싶은걸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생머리를 경호를 위하여 단번에 고민 않고
잘라버린 하영이 존경스러웠다. 긴머리가 그녀에게 더 잘 어울렸지만 이 짧은 커트도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 건네고
싶은데 눈에 불을 품고 있는것 같은 하영의 모습에 선국은 언뜻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먼저 말 좀 했으면 좋겠는데..
생각하고 있을때 하영의 입이 열렸다.
"역시 내친구네.. 안물어보고.. 근질근질 하지? 내가 왜 이러는지?"
"말해줄거야?"
"어. 아까까지는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랄까.. 아빠말을 어긴건 이 28인생에 처음이니까.."
"무슨말이야? 아빠말을 어기다니? 아! 너 남장한거 때문에? 싫어하시는거야?"
"이번 고객이 대한그룹 기획이사라고 하니까.. 절대 죽어도 하지말라셨어. 근데 내가 꼭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나왔어. 아빠가 사장님이랑 한판 하시겠대. 그리고 경호일도 때려치래. 맘에 안들었다고.이제까지 참고 계셨다고!"
"아! 너희아버지 대한그룹이라면 치를 떠셨었지? 아직도? 대체 왜 그렇게 그곳을 싫어하시는거야?"
"말했잖아. 나도 그게 정말 궁금하다고! 여튼 앞으로 열흘이랬나? 기획이사 지방출장 기간이?"
"그래. 그 동안 잘 설득해봐라. 이 하준! 오늘 부터 니 이름이다. 알지? 부를때 실수 말아야할텐데..니 이름 적응해야할텐데."
"이 하준.. 으 닭살이다. 뭐.. 나도 적응해야지. 나는 이 하영이 아니라 이 하준이다. 이 하준! ㅋㅋㅋ"
속으로는 거실 소파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자신의 아빠가 몹시나 걱정되지만 겉으로는 편안한척 그리고 빨리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잡생각은 경호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테니까..
선국이 하영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 썰렁한 농담을 하며 가는동안 벌써 차는 공항에 들어섰다. 그리고
방금전 도착해 VIP라운지에 있다는 기획이사를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라운지 앞에는 같은 회사 소속의 하영과
선국의 밑에 있는 후배 경호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짧은 목례와 함께 둘은 라운지 안으로 들어섰다.
라운지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뒤돌아 서있는 기획이사를 보며 하영이 헛기침을 했다. 그의 지위가 높아서 그런건지
그에게서 남다른 위압감이 느껴지는듯 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뒤돌아 하영을 바라보는 순간 하영은 말을 잃었다.
그가 돌아서면 고개를 바로 숙여 인사를 올리려했던 하영은 말을 잃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기획이사님을 경호하게될 최 선국입니다."
선국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획이사의 두눈에 빠져들었다. 고급양복을 빼입은 그의 자켓위로
근육이 잡혀있는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문장의 정확한 예시를 보는듯 어느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경호원이라는 직업특성상 연예인 경호도 해보았던 하영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연예인의 실물을 두눈으로
봐왔던 하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그보다 잘생긴 연예인은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영은 그의 쌍꺼풀이 없는 짙고 고혹적인 매력이 넘쳐흐르는 두 눈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하영만이
아니었다. 기획이사 강 시유도 아담한 하영의 매력적인 얼굴에서 두 눈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둘의 얽히고 얽혀 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시선을 강제로 떼어낸건 선국의 강한 펀치였다. 그의 강펀치가 하영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하영이 아픔 신음 소리를 내며 선국을 노려보았고 그 순간에 시유도 선국을 강하게 노려보고 있단 느낌이 들었는지
선국이 시유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유가 급히 시선을 피하는게 보여 확신을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강한 살기가 느껴졌었다.
그에게서..
"아!아프잖아."
"이하준..뭐..해?"
선국이 이를 갈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귀로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갔다대어 소근거렸다.
'잘생긴 얼굴이라고 또 또 정신없이 침흘리며 감상할래? 너 예전에도 경호하다가 그런적 있지?! 아주 지랄을 하십니다!
정신차려! 이..하준군!'
그의 말에 정신을 퍼뜩 차린 하영이 선국을 보며 어색하게 씨익 웃고 나서 고개를 시유 쪽으로 돌렸다. 이젠 정말 티 한점
없는 경호원의 모습으로 각진 인사와 더불어 남자답기 위해 연습한 굵은 목소리까지 하영에게서 흘러나왔다.
"오늘부터 기획이사님의 경호를 책임담당하게된 이 하..준 경호실장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국을 보면서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하영을 보며 인자한 미소라는 걸 보이는 기획이사가 그들의 인사를 받고서는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오늘부로 대한그룹 기획이사를 맡게된 강 시유입니다. 재벌2세.. 이런 말 싫어하는데 제가 그렇게 태어났더군요.
대한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이기에 해외에 20년간이나 살았는데 몇가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거의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의 경호업체를 섭외했고 저는 두분이 제일의 호칭에 걸맞게 저를 보호해주실거라
믿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안전하게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화장실을 갈때만을 제외하고는 제 밀착경호가 필요합니다."
"최선국 경호원이 이사님의 밀착경호를 담당할겁니다."
"아니오. 저는 이 하준 경호실장님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게 이정도 선택권은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의 두눈에서 다른 의견은 허용하지 않겠다는것이 하영에게 전달되었다. 하영은 이의제기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그들의 의뢰인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요구할수 있는 조건이기때문이다.
"그럼 출발할까요? 본사부터 가겠습니다. 아! 가기전 제 수행비서를 소개하겠습니다. 기혁아"
라운지 한쪽 구석에서 장신의 남자가 나와서 하영과 선국의 두눈을 놀라게 했다. 앞에 있는 기획이사의 키도 큰 편인데
기혁은 2미터는 되어보였다.
"김 기혁이라 합니다."
하영과 선국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 같이 그방을 나오려는데 하영의 손목을 시유가 붙잡아 세웠다. 선국이 뒤돌아 섰고
기혁은 아무일 아니라는듯 먼저 라운지 밖으로 나갔다. 하영은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굵고 큰 손의 온기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최선국 경호원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선국이 의아한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라운지 밖으로 나갔다. 하영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그가 잡고 있는 손목과
그의 두눈을 번갈아 보며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하영은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내려 하는데 그가 꽉 잡아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 낮게 읖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너무 작아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드디어 만났네. 정말 보고 싶었다. 너무나..."
"저.. 이사님.. 왜 그러시는지. 이 손목은..좀 놓고..말씀하시면.."
"아! 아.. 죄송합니다. 감정이..넘쳐흘러서."
시유가 아쉬운듯 그녀의 가녀린 손목에서 손을 풀고 그녀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서로 인사를 나누기 전처럼
길고 오래된 침묵과 함께 둘의 시선이 얽혔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만이 그들의 조용한 공간에서 울려퍼졌다.
누구랄것 없이 둘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둘의 침묵을 깬건 시유였다.
"단도 직입적으로 돌리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10살에 해외로 떠나 지금 서른입니다. 20년 긴 세월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습니다.
한국이 너무나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어릴적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했던 한 여성이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 돌려서..말씀하시는거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를 왜 제게 하시는지.."
그의 심각해진 모습과 그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이 고스란히 하영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앞에서
꺼내내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그럴 위치가 아니라는
생각도 또한 들었다. 그저 둘은 의뢰인과 경호원이었고.. 지금 하영의 모습으로는 둘은 같은 남자이기 때문에..
그의 짙고 매혹적인 두 눈이 또 강렬한 시선을 하영에게로 보내며 하영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당신이 그녀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닮았기에 지금처럼 저도 저를 통제하지 못한체 이렇게 이 하준 경호실장을
보게 될것같습니다. 20년간 묵혀있던 그리움의 감정이 넘쳐흘러서 통제하기 힘이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 눈빛이 부담스럽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네?...그건...좀.. 다른 이들이 보면..이상하게 생각할텐데.."
그가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며 부탁했다. 이게 뭐지?.. 뭐야..
갑작스런 그의 말에 하영의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 남자 이상하단 생각까지 마구마구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이남자..
"명령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선 자제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이 감정이 사그라들터이니 너무 부담갖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그럼 이만 갈까요?"
하영의 뒷말은 듣지도 않겠다는 심사로 그녀의 어깨를 밀어 그녀를 라운지 밖으로 몰아냈다. 그가 나오고 하영과 선국 그리고
그들의 후배 4명이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하영이 좀 멀찍이 떨어져 앞으로 걸어가자 시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모두들 시유의 행동에 따라 자리에 멈추어서서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시유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가락으로 세번 가리켰다. 하영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눈쌀을 찌푸렸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뭐라고 하는건지? 그저 그의 옆 바닥을 바라보았다. 뭐가 있나하고..
"여기가 이 하준씨 자리 입니다. 밀착경호"
시유가 그녀의 팔을 잡아 당기어 옆에 세웠고 하영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그가 하영의 팔을 잡은체 앞으로 움직였고
선국을 포함한 다섯의 경호원이 하영의 자리를 대신하여 배치를 달리했다. 하영이 마음을 굳게 먹고 뭐라 항의의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의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기가 그것을 방해했다. 하영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모습을
시유의 뒤쪽에서 지켜보던 기혁이 키특거렸다. 참지 못하고 계속해대자 시유가 그쪽으로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의 웃음이 멈추었다.
이렇게 그의 의견에 강제로 끌려가.. 하영은 그의 리무진 안에서도 그의 옆자리에 위치해야했다. 그리고 그의 부담스런
시선을 계속해서 참아내야했다. 정말 죽을것같이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마주한것도
첨이어서 두근두근대는 심장때문에 죽겠는데.. 그런 사람의 시선을 주구장창 받고 있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회사내에서도 그의 방 문 밖이 아니라 그의 방 가운데 그가 지정한 자리에서서 그를 경호해야했다. 몇번의 이의제기를
했고.. 그것들은 무참히 깨져나갔다. 말씨름 대회에나가 우승이라도 했는지 그를 말상대로 이길 순 없을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고객이기때문에 더욱이 그의 의견을 무시 할 수 가 없었다.
오늘 그의 일정은 대한그룹 본사로 먼저가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 난후 지방 곳곳으로 흝어져
있는 계열사들을 방문시찰할 계획이다. 오후에는 대전으로 향하기로 되어있다.
그는 거의 모든 직원들과의 간략한 인사뒤에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동안 서류에 파묻혀 있어 하영의
시선을 즐겁게 했다. 하영은 그의 머리카락 한올한올 살필 모양인지 그를 천천히 유심히 바라보았다. 잘생기고 두근거리게
하는 그와 한방에 있다는게 많이 긴장되지만 한편으로는 두눈이 즐겁고 행복했다.
하영..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지었는데 고개를 들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와 두눈이 마주치자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어색한 모습으로 자신의 얼굴을 원상태로 천천히 돌려놓는 하영을 시유가 바라보다 푸우 하고 웃음을 뱉어냈다.
그의 모습에 하영이 눈쌀을 찌푸렸고 시유가 한손을 들어올리며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미안합니다.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네? 전 남잡니다. 귀엽다니!.. "
"귀여워서 귀엽다했는데.. 경호실장은 발끈하는것도 귀엽네요"
여전히 웃으며 자신을 귀엽다고 해대는 통에 하영이 심통이 났다. 기껏 남장했더니 그리고 열심히 남자인척 행동하는데
귀엽다니 이건 굴욕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의구심이 들던 생각이 점점 확신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하영은 내뱉어버렸다. 아까부터 스멀스멀 들던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냈다.
"이사님. 혹시 남자좋아하십니까?.. 아.. 걱정은 마십시요. 경호원 수칙에 의뢰인의 어떠한 비밀도 어느누구에게나
누설되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영의 약간은 비웃는듯한 질문에 시유의 눈동자가 굳어졌다. 그리고 점점 가늘어지면서 그녀의 두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화가 잔뜩 난것처럼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책상을 돌아 책상 맞은편 방 가운데 서있던 하영에게로 한발작씩
서서히 걸어갔다. 하영은 자신도 자존심이 있다며 두 발을 바닥에 고정시킨것처럼 움직이지 않겠다 결심해 놓고는
점점 다가오는 부담스런 매력의 그 남자 덕에 두발이 자신의 굳은 결심을 배신하고 뒤로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털썩.. 소파때문에 더 뒤로 가지 못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앉게 된 하영은 잠시 바닥으로 치닿은 시선을
그에게로 올렸다가 그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바로 바닥으로 다시 내리 꽂았다. 화를 담은 두눈이 부담스럽고 겁도 났다.
"저.. 제가..실수 했습니다..그러니까..이사님.."
"저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절대! 네버!"
시유가 한글자 한글자 강조하며 말했고 하영은 알았다는 듯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그를 방어하는 태세를 갖추고
고개를 연신 열심히 끄덕였다. 오로지 바닥만을 보면서..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시유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대로 뒤로 물러나주고 싶지는 않았다.
시유가 그녀의 두손을 자신의 두손으로 잡았다. 그의 두손의 감촉에 놀라 아래를 향하고 있던 그녀의 고개가 위로 향했다.
그의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 그녀의 두눈에 잡혔다.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를 놀리고 있음이다.
"이사님! 지금..저..놀리시는 겁니까?!"
"쿡쿡.. 미안합니다. 지금 경호실장 행동이 꼭 여자같이 귀여워서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장난이 쳐지네.. "
"이..씨!.."
계속해서 웃고 있는 그를 향해 화를 내뿜으며 하영이 일어섰고 일어선순간 가까이 있던 시유 때문에 둘은 더 가까워져버렸다.
그의 얼굴 바로 밑에 그녀의 얼굴이 그를 바라보며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어느 누구하나 말이 없었다. 시유의
미소짓던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진지함만이 남아있었다.
하영이 먼저 이 긴장되 죽을것같은 순간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시유가 하영의 손에서 손을 놓고 그녀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닿게 했다. 좀 더 짙어지려던 그의 행동을 그의 마지막 남아있던 이성이 저지
시켰다. 아쉬움을 가득 안은체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지며 애써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방금의 짧은 뽀뽀로 인해
혼이 저멀리 날아가버린 하영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이런..이런 굳어버렸네. 그러니까 앞으로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란 말도 안되는 소리를 꺼내지 마세요. 저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까 뽀뽀는 벌입니다. 감히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냐고 묻다니! 다시한번 그렇게 묻는다면 그땐 이대로 끝내지 않을겁니다!"
그 때문에 멍해져버린 하영을 두고서 시유는 제자리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은 척 서류철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유의 마음속도
조용할 수는 없었다. 다시한번 더 그녀를 안고 깊은 키스를 보내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아내느라 시유는 너무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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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호텔에 스위트룸에 들어선 네사람. 그리고 나머지 경호원들은 교대로 스위트룸밖을 지키기로 했다. 하영과 선국이
스위트룸의 방과 베란다 욕실등의 안전을 확인하고 거실에 모였다. 둘이 인사를 하고 같이 물러서려는데 시유가 불러세웠다.
기혁이 그 모습에 웃으려다가 시유가 그걸 느꼈는지 바로 돌아보는 통에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밀착경호는 여기서도 행해져야 보는데.. 한분은 여기 있어야겠죠"
그 한분이 하영이라는듯 시유의 두 눈은 선국은 바라보지도 않은체 하영만을 향했다. 이번엔 하영이 아닌 선국이 입을 열었다.
"아까전까지 계속 이사님 옆에 있느라 경호실장님도 피곤하실겁니다. 제가 있겠습니다."
선국은 하영이 여자임을 알기에 남자와 단둘이 호텔방에 있게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선국이 먼저나서서
시유의 생각을 말렸다.
"피곤합니까? 고작 그정도로?"
가늘게 뜨여진 시유의 두 눈이 하영에게로 향했고 하영이 그렇다. 피곤하다..라는 식의 대답을 하기에는 하영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솔직하자면 정말 피곤하고 힘든하루였다. 매력적인 한남자의 끊임없는 부담스런 시선과.. 아까전의
말도안되는 뽀뽀.. 뭐냐고.. 피곤합니다라는 말이 수백수천번 그녀의 머리속을 지나쳐갔지만 그녀의 입에선.
"피곤하지 않습니다. 선국아 난 괜찮아. 걱정말고 가서 쉬어."
그녀의 대답에 시유가 만족스럽게 끄덕이며 선국에게 어서 나가라는듯이 쳐다보았고 선국은 마지못해 그곳을 나왔다.
기혁은 속으로 이상황이 너무 재미있어 큰소리로 웃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시유가 자신을 어떻게 다룰지 알기에 애써 참았다.
그대신 그를 약간 골려주고자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며 그만 들을수 있도록 소근거렸다.
'대단하십니다. 이사님 뜻대로 되어가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거룩한 첫날밤 치루시길.. 정말 오래 참으셨습니다.'
"김기혁!!"
그의 말에 울그락불그락 하며 시유가 기혁에게 소리쳤고 기혁은 빠른걸음으로 문으로 향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갑자기 소리치는 시유의 모습을 의아한 눈으로 하영이 바라보았다. 시유는 기혁의 약올리는 모습에 화가난 자신을 추스렸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결심을 굳힌듯 하영을 바라보았다.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우선 서로 씻도록 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오래도록 같이할 사이인데 편해지도록 노력해볼까요?
자기전에 와인한잔 합시다."
"그건..싫습.."
"또 저랑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고 픈 모양입니다. 결국 저 소파에 마주 앉아 정답게 이야기 나누며 와인한잔을 하게 될텐데..
뭐 굳이 저랑 말 다툼이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야.. 계속해보시죠. 저랑 와인한잔 하는게 그렇게 죽도록 싫습니까?"
또 저렇게 말다툼할때는 얄미워지는 그를 보며 하영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내 오늘은 지고 넘어가지만 언젠가는 꼭 너를
내밑에서 가지고 놀고 말것이다..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며 결국 알겠다고 대답하는 하영이었다.
서로 각기 다른 욕실에서 씻고 나와 편한 옷차림을 한 두사람.. 하영은 캐주얼한 그의 모습도 또한 다른 매력이 넘쳐흐른다
생각하며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하영은 몇일전에 구입한 남성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었다. 누구 앞에서 입을 줄 알았다면
좀 더 멋진걸로 살걸 하고 후회했다.
시유가 와인과 함께 한손에 두개의 와인글래스를 가져왔고 하영의 맞은 편에 앉아 와인을 두잔에 따랐다. 그리고 그윽한
눈길로 하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래도 조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따뜻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는것
같았다. 그가 먼저 그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이 어땠으며.. 그리고 바로 해외로 건너간 이야기. 그 후에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잠을 아껴가며 학업에 매달린 이야기..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애틀에 있는 대한그룹
지사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이야기들.. 언뜻 들으면 정말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인데.. 그가 재미있는 스토리를 섞어넣으며
그녀를 즐겁게 했다. 그리고 해외에는 별로 나가 본일이 없기에 그의 외국생활이야기가 그녀의 흥미를 끌었다.
30년의 그의 인생을 다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그에 대해 많은것을 알게된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의 말투를 통하여 알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많은것들을 해낸 멋진 사람이었다. 재벌2세.. 부모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한게 아니라 오로지 그의 힘만으로 이렇게 높은자리까지 아무런 잡음없이 올라온 대단한 사람이었다.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배경만을 보고 접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가 경험한
몇번의 친구들의 배신을 통해..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외로워한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가 와인에 취한건지 갑자기 그녀에게 말을 놓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하준아.. 너 내 동생할래?"
"하하.. 내 뭘 믿고요? 저도 이사님 배신하면 어쩌려고요?"
"난 알아. 넌 절대 날 배신하지 않을거란걸. 내 동생 할거야? 말거야?! 아니지. 넌 오늘부터 내동생이야! 그러니까
불러봐. 오빠!아니지..아니지.. 오빠가 아니지.. 형!하고 불러봐"
술에 취해도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그의 모습에 하영은 웃음이 다나왔다. 순간 그의 오빠소리에 움찔했지만..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잠시간 고민.. 그가 절대 배신하지 않을거라고 자신을 믿어주는 소리에 하영은
감동받았다. 그리고 외로운 그의 동생이 되어 조금이라도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었다.
고작 몇시간이었지만 그와 급속도로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된것 같다. 그와 친해졌다. 마음으로부터..
"형! 시유 형"
".....뭔가..좀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그럼 이 하준은 앞으로 내 동생이다. 그러니까 둘만 있을땐 형이라고 불러!"
"네. 형! 형 이제 피곤한데 그만 주무세요"
"안돼. 이제까지 내 이야기 했으니까 니 얘기도 들어야지. 해줘. 궁금해. 넌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궁금해"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는 두 눈을 보니 시계가 1시를 넘어가는게 보였지만 이야기를 안할수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8살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너무 슬퍼서 아주 짧게 이야기하고 지나쳤는데 그 순간에 그도
같이 슬퍼해주는 기분이 들어 하영은 감사했다. 그리고 기분좋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냈다. 남자행세를 하고 있기에
아슬아슬하게 여고를 남고로 바꾸어가며 이야기했고.. 좀 지루한듯 한 이야기를 시유가 너무 즐겁게 듣고 있어주어
하영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행복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행복한 감정이 자꾸자꾸 솟아올라 주체할수가 없었다.
이젠 아까전 그가 했던 뽀뽀도 정말 장난으로 넘길수 있을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대다 보니 시간은 벌써 세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부터 그의 일정이 빡빡하기에 하영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강제로 약간 휘청이는 그를 부축해서 침실로
향했다. 술이 약한지 몇잔 들어가지 않은것 같았는데 그의 다리는 힘이 없었다. 조금은 힘겹게 침실에 들어온 두사람.
하영은 그를 가까스로 침대에 눞히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이불을 잘 덮혀주고 가려는데 그의 손이 강하게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그의 위를 구르게 했다. 그리고 킹사이즈 침대위에 그의 옆으로 떨어지게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팔에 힘을 가하며 그 자신을
일으키고는 그녀의 허벅지 위에 자신의 머리를 놓았다. 하영이 움찔하며 물러서려하자 더 강한 무게로 그녀를 옴짝못하게 눌렀다.
"이사님!"
"형!"
그가 정정을 요구했고.. 하영은 호칭을 정정했다.
"형.. 그만 자. 난 밖에 거실에 있을테니까.."
"거실 소파 불편해. 여기서 자"
"에이. 그건아니지.."
하영이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감겨있던 그의 눈이 서서히 뜨여지며 그의 시선은 곧게
하영을 향했다. 하영의 심장이 그의 짙고 곧은 시선에 두근거렸다.
"아까 이야기 안했는데..나 아주 어릴적에 엄마가 돌아가셨어. 다섯살때였는데도 아직 엄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
내 삼촌이란 사람이 회사가 탐이나서 유일한 후계자인 나를 죽이려했는데 그때 엄마가 달려들어서 내 대신 칼에 찔려
돌아가셨어. 그때 내 옷이 엄마의 피로 물들어가는데 난 울지도 소리치지도 못했어. 아무것도..못했어. 그리고 그런상태로
굳어서는 2년동안이나 말이란걸 못했어. 너무 충격이었나봐.."
".................."
하영은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한 줄기를 조용히 손가락으로 닦아낼 뿐 어떠한 위로도 할 수 가 없었다. 그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은데 하영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8살이 됐을때 만났어. 내 운명의 사람을.. 그리고 아주 조금씩 그 분 때문에 말을 할 수 있게 됐어. 그 분은 꼭
돌아가신 내 엄마가 나를 위해 보내준 사람 같았어. 그 분 때문에 점점 밝아졌고.. 1년정도 지났을때는 다른 평범한
아이처럼 멀쩡하게 말도 하고 뛰어도 다녔지. 행복했어. 절망만 남아있던 내게 희망이란걸 가져다 준 분이셨어.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는데..그분이 싫어했어. 하지만 내겐 엄마나 다름 없는 분이었지."
"그런데요? 그분은 지금 어디계세요?"
"...... 돌아가셨어. 내 엄마랑 똑같이 아줌마도 나를 죽이려했던 사람에게서 나를 살리려고 내 대신 죽었어. 5살에 내가
죽었으면 두분은 돌아가지 않으셨을 거야. 내가 죽었어야해."
목소리에 가득 회한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그의 슬픔에 하영은 어쩔줄 모르다가 고개를 숙이며 그를 자신의 팔안에
가두어 안았다. 그의 흐느낌이 멈추길 바라면서.. 자신의 온기가 그에게 전해져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수 있도록
그를 안았다. 그리고 그의 흐느낌이 서서히 자자들기 시작하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그의 눈물을 마저 손가락으로
닦아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그에게 건냈다.
"두분은 형이 이렇게 슬퍼하길 절대 바라지 않을거야. 행복해하고 항상 즐거워하기를 바라실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그의 두눈이 그녀에게 고정되었고..잠시 고요해졌다. 그의 시선이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입술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니 말이 맞아. 근데 그 이후로 고쳐지지 않는 병이 하나있어."
"뭔데?"
"혼자 못자. 혼자 잠이 들면 항상 어릴때의 악몽에 시달리거든."
"그래서..지금 나보고 여기서 자라고? 진짜로?"
"어. 아까 말했잖아. 여기서 자라고"
"참..나.. 그럼 이때까지는 어떻게 누구하고 잤는데?"
"기혁이. 난 외국에서 믿을사람이 기혁이 밖에 없었거든."
"그럼 오늘도 기혁씨 불러서 자면 되겠네. 난 누구랑 같이 못자거든!"
하영이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도망치려고 그의 머리를 치워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의 몸이 들리면서 좀 더 위로 올라와서는
두팔로 하영의 어리를 안고서 머리를 이번엔 그녀의 배에 가져다 대었다. 하영이 흡하며 긴장했다.
"기혁이는 안돼. 싫어!"
"왜?! 이제까지 같이 잤다면서 왜?"
"코를 심하게 골아. 완전심해. 소음공해야."
"나도 심하게 골아. 난 애기들 시끄럽게 우는것보다도 더 크게 골아. 그러니까 기혁씨 불러서 자"
"너 코 안고는거 알아. 거짓말 한 죄로 앞으로 같이자."
"형이 어떻게 아는데? 내가 코 고는지 안고는지!"
"니네 마사장님한테 물어봤어. 더 할말 있어?"
"그래도 싫어. 같이자기 싫어.난!"
어떻게 남자랑 한침대에서 같이자냔 말이다. 이건 정말 혼삿길 제대로 망치는 일이다. 하영은 굳은 의지로 자신의 결심을
소리치듯 말했다. 하지만 시유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오히려 여리고 슬픈척해댔다.
"그래그럼.. 혼자 악몽에 시달리지뭐.. 내가 자다가 소리쳐도 그냥 무시해. 그냥 혼자 편히자. 그럼 이만 나가봐"
시유가 삐친척 말을 내뱉으며 하영에게 말하자 하영은 잠시간 흔들려 그의 옆에서 자려다가 마음을 굳게 다지며 돌아섰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속은 여자였다. 남자랑 한침대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영은 침실을 나와 문을 닫고서는
거실 소파에 누워 옆에 놓여있는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눈이 감기자마자 잠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던 하영은 비명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시계로 돌려진 두눈이 네시임을 확인했다. 한시간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설마..하영은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식은땀을 뻘뻘흘리며 허공에 두손을 흔들며 괴로워하는
시유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소리쳐 비명을 지르다가도 한순간은 목이 괴로운듯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하영이 다가가 두손을 잡고 깨워보지만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듯 괴로워했다. 아까전 긴가민가 했던 악몽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었다. 하영은 그의 모습에 안타깝고 자신이 더 슬퍼지기 시작했다. 다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것처럼 그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하영은 그의 몸을 일으켜 강하게 자신의 품으로 껴안았다. 그리고는 등을 토닥이고 손바닥으로 쓰러내리며 그를 달랬다.
그의 비명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한건 그녀가 달랜지 5분정도가 더 지나서였다. 좀처럼 깨지 않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눈물이 그의 어깨를 적셨다. 그녀의 온기가 괴로워하는 그를 감싸안았다.
드디어 악몽에서 깨어나 서서히 자신을 추스린 시유가 자신을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하영을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이 힘을
가해 좀 더 그녀를 자신에게로 끌어안았다. 포근했다. 그녀의 품이 포근하면서 달콤했다.
"거봐.. 그렇게 혼자두고 나가더니..이런 꼴이나 보이게 하고"
"형.. 미안해요..흑..흑.. 내가 옆에서 같이 잘게..앞으로 계속.. 미안해.. 이렇게 힘들어하는줄 ..몰랐어..흑흑.."
하영의 울음소리에 놀라 포옹을 풀고 하영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을 아까 그녀처럼 엄지손가락으로
조심히 쓰러내려 닦아냈다. 하지만 여자의 눈물이라 그런지 그칠줄 모르고 연신 흘러내려 모진 방법을 쓰기로 결심한 시유.
"너 계속 울면 이젠 입술로 닦아낸다!"
"네?"
하영이 순간 놀라서는 급히 자신의 눈물을 멈추었다. 하영이 눈물을 멈추는것이 보이자 아까의 힘들어하던 얼굴은 원래
없었던듯 환한 미소로 하영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마워. 난 이제 괜찮아. 그리고 아까 니가 한말도 뇌에 저장했어."
"무슨 말?"
"앞으로 계속 내 옆에서 자준다는 이야기! 접수했고 번복은 없다. 이제 자자!"
"으악! 뭐야!"
이제자자며 시유가 하영을 한팔로 안으며 쓰러졌고 누운 하영에게 좀더 팔로 감싸안으며 파고드는 시유때문에 하영은
최대한 그에게서 멀어지려 노력하며 소리쳤다.
"나 악몽 안꾸려면 이렇게 자야해."
"진짜?"
"응!"
"그럼 기혁씨랑 이제까지 계속 이러고 잤다고?"
"응!"
"거짓말이며 가만 안둘거야!"
"진짜야. 낼 물어봐. 졸려. 그만자자"
점점더 자신에게로 파고드는 그를 피해보려 노력에 노력을 해보는 하영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그의
따뜻한 품을 이불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일찍 자신의 휴대폰에 진동을 느끼지 못할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평소 잠에는 예민했던 시유도 오래간만에 아주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비록 일정때문에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세시간을 열시간잔것처럼 푹자고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에서부터 울리는 커다란 진동소리에 조용히 빠른걸음으로
하영이 깨지않도록 움직였다. 하영의 휴대폰이었다.
[사랑하는 아빠]
시유가 종료키를 누르려다 말고 잠시 침실에 있는 하영의 모습을 살피고는 통화키를 누르고 조용히 받기 위해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여보세요"
-누구냐? 선국이냐?-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강 시유입니다."
-너 이자식! 하영이 바꿔! 왜 니가 이걸 받아?!-
"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이 있을겁니다. 마사장님께 들었습니다.이일을 반대하신다고"
-그래. 누굴 더 너때문에 죽이려고 내 딸을 끌어들여?! 당장 하영이 서울로 올려보내. 그리고 다신 만나지 마라-
하영의 아빠. 이 재하. 시유는 단단한 암석같은 재하를 20년간 여러차례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만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나면 그의 앞에 남은 장벽은 단 하나뿐이게 될텐데.. 이 재하란 벽은 시유에게 너무나도 힘든벽이었다.
20년간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제 남은건 단하나였다. 이것까지 들어먹지 않는다면 그땐 정말 아무런 방법이
없을지도..
"제게 그분의 유품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 끝까지 반대하시면 그때 드리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르신께 쓰신 편지입니다. 오늘 제 수하편에 보내겠습니다. 읽어보시고 그래도 반대하시면 그땐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진작 찾아뵈야하는데 못 찾아뵌건 저를 보시면 쓰러지실까봐 그랬습니다. 저에대한 화가 좀 누그러지실때 찾아뵈려고 말입니다."
-널 볼일은 평생 없을거다. 그러니 하영이나 돌려보내. 니 목소리도 듣기 싫다!-
.. 그리고 끊어져버린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같이 내쉬었다. 또 한번 작게 빌어본다. 어르신께서
자신을 용서해주기를.. 정말 힘들겠지만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주시길..간절히 빌어본다.
그방을 나와 거실 소파에 깊은생각에 빠져 앉아있는데 작은 노크와 함께 기혁이 들어섰다. 기혁이 시유를 한번바라보고
열려져 있는 침실에 있는 하영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느글거리는 미소를 시유에게 보냈다. 시유가 인상을 찌푸리며
침실문을 가리키자 기혁이 조용히 침실문을 닫고 시유 근처로 다가가 섰다.
"거룩한 첫날밤을..정말..보내신겁니까?"
킥킥대며 시유를 놀리는 기혁.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노려보는 표정에 그의 심기가 장난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라는건
누가 봐도 알정도로 심각해보였다. 그래서 바로 고개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장난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무슨일 있으십니까?"
"이거.. 하영이 아버님께 보내. 결국엔.. 이걸 보내네. 그분은 이걸 안보내시길 바랐는데 말야.."
시유가 오래되어 보이는 편지봉투를 기혁에게 건냈다. 기혁도 그것이 어떤 편지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또 저렇게
심각한건 하영의 아버지와 통화를 했기 때문이란것도 짐작되었다.
"네. 알겠습니다. 처리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전 일정에 맞추시려면 아가씨도 슬슬 일어나셔서 준비를.."
"아침일정 하나 취소하고 일정시작을 두시간 미뤄. 좀 더 자게 두려고.. 나도 조금 더 자고.."
나도 조금 더 자고를 말할때 살짝 음흉해지는 시유의 표정에 기혁이 다시금 그를 놀리려는데 참았다. 요즘 자신이 과하게
자신의 상사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였다.
"그리고 아가씨라고 하지마. 이 하준! 지금은 남자라고"
"대체 언제까지 이 쓸데없는 연극을 하려는겁니까?"
"하영이라는 장벽 하나만 남기고 모든 장애물을 없앨때까지..그러니까 협조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스위트룸을 나가려는 기혁을 시유가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멈칫하고 생각하더니 행동으로 옮기는 시유.
갑자기 기혁을 가슴에 파고들어 강하게 그를 껴안았다. 기혁이 급습에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고 정신나간 사람을 보는듯이
시유를 바라보았다.
"이사님..지금..대체..뭐하시는 겁니까?"
그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시유가 그에게서 떨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찡긋 윙크했다.
"20년 외국생활동안에 나랑 넌 이러고 한침대 쓴거야. 그렇게 알아두라고"
"네에?! 그게 무슨.. 어디가십니까? 설명은 제대로.."
"하영이한테 그렇게 말해뒀으니까 너도 입맞춰두라고..알겠지? 그럼 나가봐"
"잠깐! 이사님..대체..저를 어떻게..아우..씨..그럼 제가 대체 뭐가..됩니까?.. 이사님!"
"시끄러워. 나가!"
시유는 더 듣기 싫다는듯 나가라는 손짓을 등돈 상태로 한뒤에 침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침대 옆에서서 흐믓한 미소를 띈채
잠이 든 하영의 모습을 넋 나간듯 바라보다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하영의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시유도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씩씩대는 모습으로 기혁이 그들을 깨울때까지.. 하루종일 기혁은 심통난 얼굴로
시유를 대했지만 시유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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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내내 시유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그룹의 계열사 직원들은 냉철하고 지독히도 무섭다고 소문난
기획이사가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했다.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을뿐 그들에게 무서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왜 그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소문이 돌았는지 의아해했다. 분명히 해외지사에 근무하고 돌아온 직원들이 하나같이
그를 지옥이란 한단어로 표현했는데 전혀 그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지방 계열사 순회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온 시유는 괴로워 죽을것 같았다. 그는 평창동에 있는 본가가 아니
강남에 고급빌라에 지내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이틀째되는날.. 회사에서는 즐겁지만 집에 도착해서는 죽을 맛이었다.
너무나도 달콤했던 순간들을 보내고 난터이기에 더욱이더 괴로웠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집에 도착한 시유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 섞여있는 이유를 기혁은 알면서도 모르는척했다. 기혁이 그를
놀리지 못해 안달하다가 참았다. 이럴때 건드렸다가 모든 화가 자신을 향해 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혁아 안되겠다."
"네?"
"일하나 만들어야겠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무슨 말씀이신지?"
"집에 도둑이 들었다 어때? 이러면 난 이곳에서도 보디가드가 필요해지지 않겠어?"
"벌써 그렇게 그리우십니까? 침대에서 삐리리도 못하시면서 껴안고만 주무시는게 그리 좋으십니까? 그게 더 힘들지 않나?!"
심각하게 고민중인 시유를 기어이 기혁이 건들고 말았다. 기혁은 말하고나서 바로 후회했다. 그의 두 눈이 화염에 휩싸인듯
분노한것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에.
"김기혁! 니가 참 내 옆에 오래 있었지. 이젠 아주 세상 하직하고 픈가 보다. 어?!"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아주 빠른시일내에 깔끔하고 완벽하게 사건하나 만들어 놓겠습니다. 하영아가씨께서
이곳으로 오실수 있게 말입니다! 아주 빠른시일내에 해결할테니..단 한번만 너그러히 용서를 해주심이..어떠실런지..헤헤"
"내일 오전에 신문에 터트리고.. 낼 오후에는 이곳에서 하영일 볼 수 있도록 해놓으면 용서해주지. 너그러히 말야."
그의 두 눈은 웃고있는듯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두눈은 협박이었다. 못하면 진정으로 죽이겠다는 협박.
기혁의 머리속은 빠르게 머리회전을 하고 있었다. 오늘 기혁은 자기글렀다.
***********************************
하영은 출근을 위해 자신의 앞에 세워진 선국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선국이 내민 신문의 1면을 확인하고
눈쌀을 찌푸렸다. 1면에는 해외에서 귀국한지 얼마되지 않은 대한그룹의 후계자의 빌라에 누군가 침범하여 자료를 훔쳐
달아났다는 보고였다.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짤막한 글이 맨밑에 적혀 있어 걱정하던 하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화걸어 확인했는데.. 자료도 그렇게 중요했던건 아니었나봐. 그냥 이사님 조금 놀란 정도래."
"그래? 다행이네. 어서가자."
선국이 차를 출발시켰고 하영의 관심은 모두 시유에게로 쏟아졌다. 정말 괜찮은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뭐라시는데? 출장 갔다오고 이야기해본다며.. 아직도 반대하시나?"
"몰라. 해봤는데 몇일 생각해보신대. 무슨 편지같은데.. 계속 손에 들고 계시는데.. 아 몰라. 말도 안해주고 보여주지도 않고..
그게 뭘까?"
"편지? 뭔편지?"
"글쎄.. 처음보는데.. 그것만 손에 들고 계시고 나랑 말도 잘 안해. 뭐 지금 나하는 일은 좀 더 생각해 보신다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머리 빡빡 밀고 방에 가두실거라 생각했었거든..ㅋㅋ"
"으이구..웃기도 하시고!"
"그러게.. 왠지 허락하실것 같아서."
"그럼 좋고! 아 그리고 너! 니 스토커는 잘 처리했냐?"
"아..내 스토커? 그럼..잘 처리했지..라고 해도 되나? 만나봤지.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모두 다 털어놓게 했지. 그러니까
자기가 했던 짓들을 다 털어놓더라고.. 뭐 내 물건 조금 훔쳐가고 몰래 지켜보고.. 요정도 뿐인데 뭐. 대화해보니까
이상한 놈도 아니더라고. 신분 다 확인했고.. 그냥 동경했대. 나를. 그래서 이제 그만하도록 노력해라. 다시 스토커짓을
한다면 그 땐 정말 가만있지 않겠다라고 하니까.. 힘들겠지만 노력한다고 대답했어. 그래서 나도 오케이했지. 잘했지?"
"미쳤냐? 그걸 믿어? 자그마치 3년이다. 너도 너야. 너한테 해꼬지 안한다고 해서 그걸 그렇게 오래도록 냅두냐.으이고..바보
더 확실하게 해야지! 그리고 사이코가 더 평범해보여.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데? 여튼 조심해. 나도 잘 지켜볼테니까"
"친구야! 너나 사서 걱정하지마. 정말 괜찮은 스토커였다니까.. 평범해. 그리고 약해빠져서 누구 해꼬지하고 그럴 존재가 못돼.
내가 봐서 알아. 너도 직접 봤으면 그렇게 느꼈을거다."
"여하튼 조심해. 조심해서 나쁠거 없으니까! 알았지?"
"알았어. 하여튼 소심해서 걱정은 많아. 어여가. 이사님,걱정돼!"
"너 요즘 이사님이랑 너무 붙어다니는거 알아? 니 남장 왜 했는데? 하도 경호하는 의뢰인들하고 스캔들 뿌리고 다니니까
사장님이 시킨거잖아. 설마 이번엔 동성애로 시끄럽게 하는건 아니지?"
"야! 최선국..그 입 찢어놓기 전에 조용해라. 그리고 내가 밀착경호 담당이니까 붙어다니는거 아냐. 이씨! 다시한번 그런소리해라.
죽는다!"
이리저리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본사에 도착한 두사람은 바로 이사실로 향했다. 빌라로 향하려 했지만 벌써 출근했다는 말에
그들은 회사로 향했다. 노크와 함께 하영은 이사실로 들어갔고 선국은 밖에 남았다.
"괜찮으십니까?"
하영이 격식을 갖추어 진심을 담아 물었다. 차 안에서 내낸 그가 걱정이 되었다. 서류에 고정되어있던 시유의 눈이
하영을 향했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리고 우리 둘 뿐이니까 편하게 불러. 새삼스럽게 격식은?"
"정말 괜찮아? 다친데는? 범인은?"
"괜찮고 다친대는 없고.. 범인은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
"형도..참 부잣집에 태어나서 고생이다."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경호를 24시간으로 늘리기로 했어. 해줄거지?"
"그래야지. 주야 2교대로..."
"아니. 밀착경호는 너 하나만이어야해. 그러니까 내가 오늘 새로 구한 빌라에 너도 같이 지내. 범인이 잡히고 내가
위험으로 부터 좀 안전해질때까지.."
"형! 그건 좀.. 내 아빠가 이 일을 많이 반대하셔서."
"...... 지금도 반대하셔?"
시유가 조심스럽게 하영에게 물었다. 하영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몰라. 분명 반대했는데.. 오늘은 몇일 생각해보신다고 하셨어."
"그래? 그럼 생각하실동안은 내 경호 해도 되겠네. 그럼 오늘부터 내 빌라에서 같이 지내는거다. 응?"
가끔 그가 응? 어? 하며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며 애교를 살짝 보이는 모습에 하영은 웃으며 오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참..서른이나 먹은 남자가 저러고 있으니.. 약간은 한심한듯 하면서 그의 모습이 하영에게는 무지 귀여워보였다.
하영의 오케이라는 승낙에 시유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품었다. 하영의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리도록..
인터폰이 울렸다.
-이사님, 회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하영이 방을 나서려고 몸을 움직이자 시유가 막았다.
"가만히 있어. 넌 내 보디가드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이사실 문이 열리고 대한그룹의 회장. 강 천유! 시유의 아버지가 시유의 몇배나 되는 위압감을 풍기며 들어섰다.
그의 기에 하영은 뒤로 물러서야할것 같았다.
"신문에 그 소란은 또 뭐냐?"
"그냥 작은 소동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 그일때문에 일부러 방문하신겁니까?"
"니 혼사 때문에 왔다."
"제 혼사는 제가 알아서 한다 말씀 드렸습니다."
시유의 말을 천유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체 자신의 말을 이었다. 시유의 혼사 이야기에 하영은 귀가 쫑긋해지면서도
가슴 한켠이 찌릿찌릿 고통받는 느낌을 느껴야했다.
"산하그룹의 둘째딸이 미인에다가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출중한 인재라더구나. 그러지 말고 한번 만나나 보거라."
"한국내 그룹 순위 20위 밖에 있던 대한그룹을 1위로 올려놓지 않는다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어릴적 그 말씀 올렸을때 아버님은 콧방귀나 뀌셨지요. 어의없다는 표정이셨습니다. 그때 그러셨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니가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 되었든 하나 들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래..그땐 그랬었지."
"그땐 그랬다라.. 그럼 이제와 지키시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하는 기업인인데 말입니다. 그러신겁니까?"
"그건 아니다. 들어주겠다. 대체 얼마나 좋은 혼처길래..산하그룹을 마다하는게냐"
"제가 대한그룹을 1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20년간 그 죽을 고생을 한건 아버님이 정략결혼을 제게 강요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그룹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굳이 다른 기업과 정략결혼이란걸 해야할 필요가 이젠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앞으로
아버님께 소개할 제 아내될 여자를 그 누가 되었든지 두 팔로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단호한 시유의 모습에 천유는 몇년만에야 제대로 보는 아들의 든든한 모습에 감명받았다. 잠시 고민하듯 시유를 바라보던
천유의 입이 열렸다.
"그래. 알았다. 그럼 언제쯤 내 며늘아기를 볼수있는게냐?"
"조만간 보여드리겠습니다. 곧 말입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짧은 웃음을 보이며 천유는 이사실을 나갔다. 그리고 둘 만 남음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건 시유가 아닌 하영때문이었다.
그에겐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하영은 둘의 대화에서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누굴까? 이쁘겠지? 똑똑하겠지? 나와는
비교도 안되겠지? 질투심과 부러움이 하영의 마음을 혼란과 슬픔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른체
시유는 하영의 표정을 보고 걱정이 되어 하영에게로 다가갔다.
"하준아. 왜? 어디 아파?"
"아..아닙니다. 그냥.."
"그냥..뭐?"
"그냥.. 그냥.. 음.. 이사님 여자친구분이 궁금해져서.."
하영의 그 말에 시유가 껄껄껄 웃음소리를 냈다. 하영의 기분이 자신의 여자친구때문에 우울해졌다는것이 시유를 들뜨게
했다. 하영이 자신에게 무언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영이 그의 웃는 모습에 눈매를 가늘게 뜨자
시유가 갑자기 그녀를 안았다. 하영이 깜짝 놀라 뒤로 떨어지려 하는데 시유가 놓아주지 않았다.
"왜이래! 형!"
"이제야 형처럼 대하네. 아 좋다. 이러고 있으니까!"
"변태! 남자 껴안고 좋다 소리가 나와?!"
"그럼. 그냥 남자냐? 내 이불인데. 포근하고 좋지. 여튼 우리 귀여운 동생님이 형만 애인 있다고 시기하는거 같은데
그거 위로해주려고 이러고 있다. 음 더 위로해주자면.. 아직 애인없어. 조만간 급속도로 빠르게 생길것 같아. 느낌에.."
"뭐냐? 그게"
"그러게. 근데 너 나 임자 없다니까 너무 좋아하는데? 혹시 이 하준.너 이형님 좋아하는거 아냐?"
그의 물음에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하영을 보며 시유는 좀 더 놀려댔다. 진짜 자기를 좋아하는거 아니냐며 도망치는
하영의 뒷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놀려댔다. 시유는 붉어지는 하영의 볼을 보고 깨달았다. 그녀도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그것을 알게되니 시유는 하늘을 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너무 기쁜데.. 너무 행복한 나머지 이 기분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하영이 시유의 새 빌라에서 같이 지내게 된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도 하영의 아빠 재하에게서는
허락도 반대도 어떠한 답도 없었고 둘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둘은 여전히 침대에서 떨어지면 죽을것처럼 껴안은
상태로 잠에 빠져들었고.. 요즘은 그것때문에 시유가 힘들어 죽을 판국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20년만에야 만나게 된 하영덕분에 그냥 껴안고 있는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의
본능이 꿈틀꿈틀..그 보다 더한 일들을 하영과 함께 나누고 싶어 미칠지경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영은 정말
잠에 푹 빠져들었다. 시유만 밤이 행복하면서도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시유와는 조금 다르게 요즘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고 행복한 하영은 앞으로도 쭉 요즘과 같았음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비록 아빠가 무엇가에 고민에 빠져있다는것만 빼고는 말이다.
오전부터 회장님 호출로 회장실로 향한 두사람. 유일하게 몇군데 하영이 안따라가는 곳 중 하나였다. 그래서 회장실 밖에서
하영이 대기중인데 그의 옆에 딱 붙어있는 한사람에게로 하영의 고개가 젖혀졌다. 요즘 왠지 모르게 이 분 덕에 이상한
기분이 드는 하영이었다. 하영의 이맛살이 약간 찌푸려지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김기혁 수행비서님!"
"어? 이하준 경호실장님께서 제 직함을 부르는건 처음 듣는것 같습니다. 항상 기혁씨라고 부르셨잖습니까?"
"그건.. 비서에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우리처럼 경호원이 어울려 보입니다. 기혁씨는.."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왜 갑자기 수행비서라는 직함을 붙여주시는지요?"
요근래 하영과 친해졌다고 틈만나면 기혁도 하영에게 장난을 치곤했다. 그렇다고 하영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직함대로 임무를 수행하란 의미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요즘 기혁씨가 이사님 수행비서라기보다 왠지 제 개인 경호원같아 보여 말입니다. 요즘 계속 제 곁에 붙어있잖습니까?"
기혁이 하영의 말에 움찔거리며 놀라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 평정심을 찾으며 아무렇지도 않은척 태연한척 하영의
말에 대꾸했다.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혹시 도끼병입니까? 이사님 수행비서이기에 여기 있습니다. 그럼 제가 저 높은 회장님실에 같이
들어가야 했다는 겁니까? 지금?"
"아니..그건 아닌데.. 아.. 난 왜 자꾸 기혁씨가 내 옆에서 날 보호해주는 기분이 들까 해서요. 제 착각이 맞는거죠?"
"착각이 맞습니다. 병원에 한번 가보시죠. 혹시 모든 사람이 다 날 좋아한다 이런 착각에 빠져 사는건 아닌가..걱정됩니다. 심히!"
"그건 아니거든요!!"
하영이 소리치자 근처에 있던 회장비서가 놀라 쳐다볼 정도였다. 하영의 모습에 기혁은 키득거렸다.그런데 그때 마침 나오는
시유의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듯 기혁은 진지모드로 전환했다. 그 모습에 하영은 그의 이중얼굴을 한대 때려주고픈 심정이었다.
둘의 신경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유가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밖에서 점심하자. 오늘은"
"네? 갑자기 왜요?"
회사 안이 안전하다며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시유인데 갑자기 밖에서 하자는 말이 뜻밖이라 하영과 기혁이 동시에 물었다.
"회장님 명이다. 기획실 직원들이 말이 많다고! 회식도 안한다고 했다면서.. 참 그런 이야기는 왜 나한테 안하고 딴데다가.."
"여러번 한걸로 기억됩니다만.. 항상 대충 알았다고 넘어가셨죠 아마?"
"그랬나? 몰랐네. 그럼 오늘 하지뭐. 그대신 경호를 철저히 신경써야겠지?"
"당연합니다. 철저히 완벽하게 철통 경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유의 말에 사명감을 담아 하영이 대답했고 시유의 두눈이 마지막에 기혁의 두눈에 닿자 기혁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알아듣었다는 기혁의 무언의 대답이었다.
시끌벅적 기획실 인원이 큰 식당 하나를 가득 메웠다. 시유는 회사 구내식당에 자신을 위해 따로 분리된 공간에서 하영과 단둘이
식사하는걸 방해한 기획실 직원들을 노려보는대신 억지로 웃으려 하니 죽을 맛이었다.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밖에 나오니
하영도 주변을 경계하느라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고.. 지금 이 순간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근처에 앉아있던 한 여직원이 물컵을 쓰러트려 물을 피한다고 움직였다가 오히려 시유는 유리컵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깨먹었다. 쨍그랑 하며 깨진 유리때문에 하영이 바로 그의 안부를 물었고 식당은 초긴장상태가 되었다. 보디가드들이
갑자기 주변을 에워쌓기 때문에.. 단순 유리 깨짐임을 알고 나서야 다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영은 깨진유리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고..시유가 하지말라며 말리는 와중에 유리에 하영의 손끝이 살짝 베여버렸다.
"그러게. 내가 하지 말랬지!"
갑작스런 그의 호통에 주변직원들은 물론 하영도 많이 당황했다. 그녀의 피가흐르는 손가락이 하영이 말릴 틈도 없이
시유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플까봐 조심히 그녀의 손가락을 대하는 시유.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유도 정신을 차렸다. 남자의 손가락의 피를 빨아주는 상사의 모습을 보인것이다.
"아.. 내가 피를 보면 돌아버리는 성격이라.. 다들 앞으로 조심하도록!"
별로 설득력 없는 말을 내뱉으며 마무리하는 시유를 보며 하영이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시유는 뭔가가
계속 찜찜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고 오한이 드는것처럼 오싹 거렸다.
시유는 이 재미없는 점심식사를 빨리 끝내려고 노력했지만 직원들은 신이나서는 더 오래오래 하려는지 대화가 길어졌다.
간신히 점심식사가 끝났을 무렵은 벌써 원래 주어진 점심시간을 한시간 가량이나 초과한 상태였다. 예전의 자신 같았으면
절대 못보는 상황이며 직원들이 자신을 웃으며 대할 수 도 없었을것이다. 하영의 앞이기에 정말 최대한으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 근처에 도착했을때는 주변 도로가 많이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있기에 회사들만 모여있는 곳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회사에 거의 다 도착해서 이제 문을 열고 들어서기만 하는 상황에 갑자기 한 여직원이 시유의 근처로
다가왔다. 하영이 저지하려다가 그냥 두었다.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판단했기에..
"이사님,, 커피라도 한잔 하시고 들어가시는건 어때요?"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들 이만 들어갑시다."
약간은 짜증을 섞어 대답하는게 하영의 눈에도 보였다. 그저 그의 기분이 안좋다는게 느껴졌다. 이 순간이 어떻게든
빨리 지나가버려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그의 말에 기죽지 않고 다시금 애교를 떨며 말했다.
"그럼 이사님,, 후식으로 껌이라도 사주세요!"
"..................."
하영은 그의 머리위로 화가 솟구쳐오르는게 보이는것 같았다. 아까 점심시간이 길어지는 순간부터 아니 그 전부터
그의 기분은 별로 였다. 그리고 기혁이 회장호출로 먼저 회사로 들어간 순간에는 사람이 조금 다급해보였다. 회사에 뭘
숨겨놓은것처럼 빨리 회사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듯 싶었다. 하영은 그의 화가 폭발하기 전에 뭔가 해야될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짜증이 섞여있는 화가 터져나오기 전에 하영이 재빠르게 먼저 움직였다.
"선국아 내대신 이사님 잘 모시고 들어가. 제가 이사님을 대신해서 껌을 사가지고 들어가겠습니다.
이사님 먼저 들어가세요"
"잠깐! 이 하준! 야! 기혁이 오면 같이 가!"
그의 이해가 안되는 뒷말을 무시한체 하영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 있는 조그만 판매점으로 뛰어갔다. 순간 낯익은
얼굴이 스친것 같았는데 하며 돌아섰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하지만 3년여를 봐왔던 지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스토커군이었다.
"여긴 어떻게?.. 내가 될수 있는한 내 앞에 다시 안나타나도록 하라고 했던거 같은데. 지영석씨?"
지영석이 그의 이름이었다. 평범한 직장을 가진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자신에게 나타날 줄은 생각못했다.
순간 조심하라던 선국의 말이 떠올랐다.
"니가 조용히 살면 그러려고 했지.. 어디 처녀가 남자랑 같이살아? 그럴꺼면 나랑 같이 살아. 그 멀대같이 큰 놈이랑 말고..
어? 내가 너랑 더 어울리지? 안그래? 내 사랑!"
그의 말에 그녀의 팔 위로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영화에서 나오는 범죄자 목소리와 흡사했다. 그리고
푹눌러쓴 모자밑으로 드러난 작은 눈이 그녀를 자신의 것인양 바라보는 모습에 그녀는 순간 공포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여러가지 무술을 섭렵한 하영은 그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경찰부르기 전에 내 앞에서 꺼져. 다시 나타나면 그땐 정말 가만 안둬! 꺼져!"
"이런..이런..내사랑 왜이래? 나도 상처받는다고.. 그 놈이랑 어디까지 갔어? 잤어? 얼마나? 3번?4번?.. 3번은 잤겠지?
나도 그이상 너를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딱 세번만 죽었다 깨어나서 나랑 살자. 응?"
"무슨소리야? 야 이미친놈아! 꺼져!"
하영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112을 누르고 통화를 누르려는데.. 맞은편 스토커의 입에서 낮게 두글자가 흘러나왔다.
"잡아."
하영은 순간 뒤에서 튀어나온 두 사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손의 휴대폰이 한 몫했다. 그들에게 집중 못한 하영이 결국
그 둘에게 붙잡혔고 그들에게서 힘으로 빠져나오려는 순간에 스토커의 손에 쥐어져있는 칼이 보였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늦었음을 하영도 깨닫고 두눈을 감았다.
"윽! 윽..아!"
육중한 무게가 자신의 위로 떨어졌다. 칼이 자신의 몸에 와 박히겠다는 생각에 겁이 들어 눈을 감았던건데 하영은 그저
무거움만이 느껴질뿐 칼에 찔린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이 아픔의 고통의 신음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낯익은 목소리에 하영의 두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의 앞으로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은 요즘 24시간이나 붙어있는 그사람이었다. 앞에 스토커의 칼에 피가 흥건히
흘러내려 툭툭 떨어졌다. 하영이 놀란 두눈으로 앞에 쓰러진 시유의 배를 바라보았다. 어디에 찔린지도 알수 없도록
배전체에 피가 흥건했다. 그리고 자신에 옷으로 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니들이...잘 못,,한거야..난 아무..잘못 없어..니가..이 놈이랑..같이 살아서..그런거야..나를 배신하고.."
앞에서 덜덜 떨며 중얼거리는 그녀석의 말 따위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시유의 예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눈앞에
피가 흥건한 엄마를 보면서 비명도 소리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금 딱 자신이었다. 그의 몸의 피가 다 쏟아져
흐르는것 같은데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 어떻게해야하는 생각도 할 수 없도록 혼이 나갔다.
"이 하영!! 정신차려!! 하영아!! 아니 이하준!! 정신차려!!"
선국의 손바닥이 하영의 얼굴을 여러번 때리고 나서야 하영의 두눈에 정신이 잡혔다. 하영의 앞에 그가 없었다. 하영이
혼이 나간듯 그를 찾았다.
"이사님은? 형은?... 시유 형은?! 어딨어?!! 어딨냐고!!!"
"저기 보여? 저 엠블런스에 실려 가고 있는 중이야. 우리도 가자. 어떻할래? 괜찮아? 씻고 갈래? 너 지금 피로.. 야!"
선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도 쪽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가는 하영을 간신히 붙잡은 선국은 택시를 세워 양해를 구하고
피묻은 옷을 하고 양손이 다 피로 도배된채로 병원으로 향했다. 선국은 기사가 건넨 휴지로 하영의 손에 피를 닦아내보려 하지만
벌써 굳어 닦아내지지 않는 부분때문에 깨끗히 닦아낼 수 없었다.
하영은 수술실로 들어간 시유가 수술방에서 나오기전까지도 씻지 않고 수술실 앞을 지켰다. 27시간이나 진행된 오래걸린
수술이지만 하영은 그에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한숨도 자지 않고 피가 범벅이되어있는 모습으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를 말리다 못한 선국이 그녀의 아버지와 마사장님을 불렀지만 하영은 그들의 말이 단 하나도 귀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수술실만 쳐다볼뿐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간호사가 그 상태로 병원에 있으면 안된다고 씻으라고 하는 소리도
무시하는게 아니었다. 그녀에 귀에는 다른 이의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가 27시간만에 집도의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피로 분장한듯한 모습의 여성에게 붙잡혔다.
"시유형은요? 네? 형은요? 어떻게 됐어요?! 네?"
그녀를 이상한듯 바라보았다가 주변으로 몰려든 보호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술은 잘 됐습니다. 범인이 세번을 찔렀는데 다행히라 해야할지.. 한곳에 집중되었는데 혹 옆으로 조금이라도 비켜났으면
장기손상과 더불어 사망했을 겁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살았다는거죠? 괜찮다는거죠? 그렇죠?"
"깨어나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식물인간.."
"깨어날거예요!깨어난다고! 이렇게 안깨어날리가 없잖아? 깨어날거라고 대답해!깨어난다고 대답하라고!!"
하영이 집도의의 팔을 붙잡고 발악하듯 소리치다가 결국 쓰러졌다. 그 모습을 기혁이 옆에서 부축했고 그녀를 위해
데리고 온 이사실의 최비서를 데리고 왔다.
"최비서님. 이하준.. 아니 이하영 경호원님을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국은 기혁이 알고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국은 최비서를따라
하영을 데리고 갔고 기혁은 시유가 수술실에서 나와 병실로 옮겨지는것을 따라갔다. 그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빌면서..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던 순간 자신이 그녀를 지키는 업무에서 떨어져 있었다는걸 한없이 후회했다. 그녀곁에 있었다면
자신이 모시는 시유 도련님이 이지경이 되지는 않았을테니.. 기혁은 그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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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은 깨어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심에 결심을 또 하며 그에게 강렬한 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수술이 끝나고도
잠에 빠져든지 벌써 열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깨어나라.. 벌써 수천번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말이었다. 이러면 꼭 그가 깨어날 수 있을것만 같은지 그의 곁에서 잠도 자는둥 마는둥 하며 계속해서 깨어나라만을 반복하며
벌써 헬쑥해져버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 시유! 너! 깨어나면 내가 가만 안둘거야! 어디 의뢰인이 경호원을 보호하냐! 나쁜놈! 이렇게 너 안깨어나면 정말
죽여버릴꺼야!!"
괜스레 이렇게 한번씩 소리치며 깨어나지 않고 가만히 잠든 그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리고 나서는 바로 후회하는 하영.
그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깨어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걱정이 갑자기 들어서는 말을 정정한다.
"아니,,아니.. 아니야.. 깨어나기만 하면..정말 뭐든지 다 들어줄거야. 내가 하늘에 별도 따다 준다. 정말 뭐든지..
하나도 빠짐없이..정말..뭐든지.. 다 해줄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흑..흑...흑...흑...그러니까.."
하영은 그의 손을 잡으며 그의 손위로 털썩 고개를 숙이고는 뒤의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 깨어나서.. 날 보면서..전처럼 웃어줘....제발..흑..흑.."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그녀의 손을 지나 그의 손으로 흘러내렸다. 그의 손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에 미세한 힘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그 힘이 조금씩 더 힘을 더하기 시작했다. 하영이 놀라서는 바로 고개를 쳐들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이 뜨여져 있었다. 하영이 사실이 아닌것 같아 두눈을 꿈뻑꿈뻑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시유가 웃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정말?"
"뭐? 뭐가?"
"정말 다 들어줄거냐고. 내가 원하는거 말야. 다 들어줄거야?"
그가 깨어난것이 하영은 믿기지 않아 자신의 볼을 꼬집어 확인까지 해보았다. 그가 깨어난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녀에게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영은 아주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응.. 다 들어줄거야. 뭐든지..다!"
"너 그거 번복하기 없음이야. 알았지? 평생 못 무른다."
"응! 뭐든지.. 다 들어줄게. 뭐든지.. 다"
시유는 자신이 그녀를 굉장히 걱정시켰음을 느꼈다. 그녀의 두 눈이 퉁퉁부어있었고 밥은 먹지도 않는지 너무 말라보였다.
그런데 지금도 끊없이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 우선 이제 그만울어. 뚝!"
"알았어. 안 울게. 이제 깨어났으니까.. 안 울게. 안 울게.. 안 울거야..흑흑흑..아아앙!"
그의 소원에 안울겠다고 반복하던 하영은 결국 더 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그녀에게 너무 미안해진 시유가 자신의 몸을 조금
힘겹게 일으켜서는 그녀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안았다. 상처때문에 고통이 찾아들었지만 그녀에게 준 고통에 비할바 있으랴.
그의 품에 안긴 그녀를 토닥이며 그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제부터 말하는 소원 들으면 깜짝 놀라 눈물 그칠것 같은데.."
"흑..흑.. 뭔데?"
하영이 그에게서 떨어져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응큼하고 음흉해져가는 모습이 하영에게 잡혔으나
하영은 정확한 숨은 뜻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때 시유가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뭐 어쩌라고?"
하영이 묻자 시유가 만면에 응큼한 미소를 가득채우며 대답한다.
"배고프다."
"아! 밥 달라고! 알았어."
"아니아니."
"그럼?"
"싱거운 뽀뽀말고.. 맛있는 딥키스! 이거 해줘!"
어째야하나 뭐 저런놈이 다있나 이런 별의별 생각들을 하고 있는게 빤히 보이는 하영을 보면서 시유는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깨어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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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길죠? 아닌가? 연재를 생각하며 썼던거라 단편으로 줄이려 하니까 아무래도 힘이 드네요.
단편 하나로 다 담으려 했는데 지금 거의 10시간동안이나 이거에 매진해서 이제 쓰러지려 합니다.
뒤는 번외편으로 찾아뵐께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으셨길 바라요^^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너무 길어서 검토하다가 포기했어요. 오타는 너그러히 봐주세요. 나중에 보고 수정할게요. 이제 잠좀 자려구요.
첫댓글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는군요. 더 끌리는데요. 그 편지가 궁금해요
댓글 감사합니다.^^ 번외 늦게 올려서 죄송하구요..ㅠ.ㅠ
번외편 언제 올라오나요?
너무 늦었죠.. 빨리 올리려 했는데.. 이제야 올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