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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낙랑토성을 통해본 한(漢)나라 문화의 혼재와 교류사이>|
역사님 추천 0 조회 351 09.11.08 22:23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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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11 16:42

    첫댓글 전체적으로 저는 님의 글을 보면서 역사를 정치로 보는듯하여 논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풍납토성의 편년은 발굴자인 문화재연구소의 신선생은 탄소연대측정법과 토기및 유구등을 종합하여 기원전1세기전후로(몇몇 시료에서는 기원전 2세기말 ) 보고있으나 박순발선생은 기존 토기에 대한 편년을 중심으로 풍납토성의 출토토기기원후3세기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희권선생의 견해를 따르나, 다수설은 박순발선생의 견해입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하는 것은 풍납토성의 초축편년을 연구자들이 기원전 2세기부터 3세기까지 500년일정도로 장구한 세월로 편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작성자 09.11.09 21:46

    보수지지자들이- 개인적으로 순화시켜서 한 용어임- 그들 기존 학설에 끼워 맞추는 편의적 방법인 상대 편년과 과학적 절대편년중에서 현시대에 무엇을 더 기준점으로 말해야 할지는 본인이 좀 더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학문을 정치적 혹은 권력 유지용으로 끌고 가는 세력이 있으니 문제지요.

  • 작성자 09.11.09 21:49

    그리고 풍납토성에는 청동기 말 초기 철기 시대의 육각형 주거지에서(凸자형 주거지) 부터 타날문토기(일명 김해식토기 )등은 기원 전후의 토기들이며 풍납동무문토기(중도식 무문토기)등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전후로 보는 것들로서 이런 것들은 백제 이전시기부터의 흔적이죠. -상대적 편년으로- 그리고 이런 것은 경기 남양주에서도 85기의 군집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주거지나 퐁납동무문토기는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 작성자 09.11.09 22:35

    풍납토성의 연대가 기원후 3세기까지라는 것은 이때까지 보강으로 풍납토성의 외형이 증축 보완되었다는 뜻이며 앞서의 절대편년이나 기타 주거지나 토기등에서도 백제 이전의 흔적들도 함께 나오기에 초축도 이에 상응하여 기원전으로 더 하향될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09.11.10 02:54

    여자형 주거지나 김해식토기 중도식 토기등에 대하여 기본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도 않군요. 과거 어느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 없이 주워 담아서는 제대로된 역사이해가 어려울것입니다. 또한 상대편년 방법론을 아에 이해도 못하는 군요. 그리고 카본데이팅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듯 합니다. 카본데이팅에서의 보정연대도 잘 이해 못하고 계시는 군요. 편년에 대한 기본 개념이나 주거지및 토기에 대한 기본개념이 없으니 무엇을 말해도 보수지지자가 되겠군요. 김해식토기가 뭘말하는 것인지 그 개념이 왜 현재 연구자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지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위 댓글은 신선생과 박선생 두 대표견해를 들어

  • 09.11.10 02:58

    풍납토성의 초축연대를 알려드린것이랍니다. 어느 고고학자도 풍납토성의 초축년대를 500년이나 두고 논하는 연구자는 없거든요. 초축년대를 기원전 2세기에서 3세기까지 5백년이나 보는 정신 나간 제대로된 연구자는 없답니다. 연구자들의 논쟁을 글로 접할때 제대로된 개념이해없이 어설프게 파악하니 이런 500년이나 벌어지는 초축년대를 역사님이 말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논박을 받지 않으려면 정확히 이해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할것입니다. 역사나 고고학에서 보수와 진보라 참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습니다.

  • 작성자 09.11.10 12:06

    지나가다>초축 연대를 5백년간 잡는 무식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요???? 님이 도리어 별 하지도 않을 소리를 계속하니... 위 글에 적힌 한글이 이해되지 않을가요???. 3세기까지라는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풍납토성이 백제 성립 이후 보강등을 통해 현재 발굴된 풍납토성이 거의 완성된 시기를 말하며 앞서의 토기, 초기 주거지등이 백제 건국 이전 세력으로 짐작되며( 백제 이전의 마한세력) 아직 하층부분등에 대한 연대측정등에서 기원전에서 더 하향될수 있다는 소리 즉 이전 세력이 기본뼈대의 초축이 이시기에 있을 거라는 식으로 말한 소리인데 혼자서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지..??? 참

  • 작성자 09.11.10 10:17

    카본데이팅 어쩌고 하시는데- 보수 지지자들이 변명 아닌 변명꺼리마냥 그런 상투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긴 하더군요- 풍납토성 주최측에서 이정도 기본 탄소연대측정에 대한 장단점도 모르고 하는가요. 그러면서 현재 세계 고고학계에서 그래도 왜 우선시 하는 지도 생각 없지는 않겠군요. 그리고 지나가다님이 본인 말맞다나 대단히 학식있고 정립이 잘 되어 있는 분 같은데 이기회에 한수 배우게 가르침을 주시지요.댓글아닌... 내용없는 한글 문맥 이해못하고 따지는 식의 댓글은 더 이상 삼가합니다.

  • 09.11.11 11:20

    역사님의 댓글을 보다보니, 개념이 정확하지 않아 어지럽군요. 문맥상의 말의 의미는 편년이 상향될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즉 편년이 올라갈수 있다고 말하는데 표현은 편년이 하향된다고 말하니 개념정리부터 시작하여야 할듯 싶습니다.<편년의 하향>이란 하가점 하층문화와 상층문화에서 하층문화가 오래된 이른시기의 문화이니 편년의 하행된다는 표현을 쓰나 보군요.

  • 09.11.10 12:27

    역시나 역사님은 성곽의 초축년대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를 잘못 이해하고 있군요. 풍납토성축조자들이 500년에 걸쳐 축조하였다고 하는 기막힌 애기를 하는 군요. 토성초축편년관련하여 백제건국이전 세펵들이 건설하기 시작? 아니면 사용하던것을 백제건국세력이 보강하였다고 생각하나 보군요. 갈수록 신기한 분석이 나옵니다.풍납토성의 축조가 백제건국세력이 아닌 선주세력이나 다른세력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애기는 듣도 보도 못한 애기를 처음 듣습니다.

  • 작성자 09.11.10 13:23

    ㅋㅋ 그래요..풍납토성 축조자의 500년??? 미루어 마한의 어떤 세력에서 백제세력으로 바뀌니 동일 축조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예 님의 고견 부탁 드립니다. 댓글이 아닌.. 새겨 경청하지요..정작 낙랑 토성에 대해서는 없군요. 고견을 가지신 김에 풍납토성에 낙랑토성과 함께 말해주시길...

  • 작성자 09.11.10 20:33

    님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는 알겠군요. 실제 시료 채취해서 성벽 연대 측정한 것에서 주거지보다 후대의 기원후 1세기에서 2세기 정도니까요-중심연대- 물론 기원전1세기로 확인되는 것은 환호 형태의 유적에서 나오는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12개 정도의 채취이며 성벽의 최하층 다양한 채취의 결과등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이 풍납토성을 통해 백제가 이른 시기에 정치력을 구사한 부분의 확인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입니다.하여튼 고견의 글을 보고 싶군요.

  • 09.11.11 11:11

    환호는 토성 초축이전의 유구로 인식이 너무도 당연한데 왜 초축편년에 환호어쩌구가 나오는 것인가요.환호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풍납토성 보고서를 보았을텐데 ... 발굴자의 보고를 잘읽어 보면 풍납토성초축이전의 유구임을 알수 있답니다. 그리고 발굴자가 아직 시료를 측정하지 않은것이 있다? 성벽최하층 다양한 채취의 결과등 가능성이 있다 이건 또 무슨 막말인지. 성벽 최하층에서 카본데이팅 시료를 채취하여 측정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뭔가 음모설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요. 신이권선생이 들이면 열받겠는데요.

  • 09.11.11 11:23

    풍납토성이 백제건국세력이전의 선주세력에 의해 건설되었냐는 질의에 예라고 답한것 맞나요??? 새롭고 경이적입니다.

  • 작성자 09.11.11 12:09

    ㅋㅋ 댓글로 달다보니 말이 짧아지고 이해력의 혼선을 넘어 초축을 500년 운운하니 말을 길게 풀어 님의 고견을 듣자고 말했더니 여전히 댓글이군요.성곽이란 자체가 기본 인구밀집의 취락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난 개념이고 백제 온조 13년 궁궐 축조와 14년 성을 쌓고 한성으로 불리는 기록이나 기본 도성의 예에서도 그 터가 이전 일정한 도시개념이나 취락의 발전 분포지을 기본 틀로 해서 조성이나 천도됨을 기본 상식으로 깔고 봐야 할것이며 풍납토성내의 청동기시대의 전형적 환호-물론 3중형태의 특징 존재-시설의 기원전시기로 보이는 이곳은 이전부터 이런 취락이나 성곽 둘레에 사용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풍납토성의 기본 조성

  • 작성자 09.11.11 12:44

    에 기여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것임.그리고 <별로 달 필요도 없는 초축 500년 운운에서 부터 앞서의 댓글에서도 보면 기원전에서부터 풍납토성축조자가 500여년 걸쳐 축조해다는 식 이야기를 기막히???.> 님 말맞다다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는지??. 삼국사기 기록및...이 평지의 풍납토성 자체가 한강변에 위치하기에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으나 한강의 범람이나 도성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부터 실제 현 풍납토성에도 한강의 유속에 의한 퇴적물들이 쌓였는데 이게 왜 보강을 통해 이런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는 말인지 진짜 모르기에 기막히다라는지 정말 기막히군요.

  • 작성자 09.11.11 12:42

    상식을 가지고 질문은 하는건지 상식이 없어 질문하는 건지??? 온조 14년 이후 41년 즉 28여년만에 다시 위례성을 고치는 기록이 보이고 책계왕 때도 그런 사서 기록이 보이며 기록에도 없지만 토성의 특성상 이전에도 이런 행위는 여러번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 그리고 실제 성벽만해도 동벽과 서벽에서도 하단중심부(초축)에서 풍납동식 무문토기(BC2-1)가 주축을 이루며 발견되고 있고 전체성벽의 출토 토기중 3세기 이후토기가 발견되지 않는점 실제 판축부재의 목재나 목탄및 C14의 절대 연대측정등 늦어도 3세기에(200) 전축이 완료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원전에서 기원후 3세기경에 완축된 모습이 보임.

  • 09.11.11 00:45

    토론은 서로간의 이해가 동반되어서 행해져야 합니다. 감정적이거나 상호간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표현이나 언사는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열된 양상을 보이니 자제 바랍니다.

  • 09.11.11 11:21

    감정 상할 이유는 없습니다. 잘못된 표현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행여 역사님이 뭐라 하여도 감정 상하지 않을테니 염려 놓으시길. 토론이 다소 격하여도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양해바랍니다.

  • 09.11.11 16:38

    역사님// 애기가 길어지니 답글로 반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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