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명주나비와 쥐방울덩굴
김숙자
낙동강 둔치의 삼락생태공원은 집에서 승용차를 10여 분 거리에 있고 ,언제 가도 좋아 산책을 즐기는 곳이다. 강변도로를 지날 때면 공원이 밀림처럼 보이는데, 주변에 이런 곳이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체육시설과 파크골프장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그곳을 지나 습지로 들어서면 호젓한 풍경에 눈이 호사스럽다. 초록으로 일렁이던 곳이 어느새 겨울바람 따라 갈색으로 스사삭거린다. 걷다 보니 지난 6월에 보았던 쥐방울덩굴이 궁금해진다.
공원이 이른 열기를 튕겨내던 현충일 오후, 잠시 한숨 돌리며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맞은편 풀밭에 어울리지 않게 인부들이 두고 갔나 싶은 페트병 몇 개가 누워 있고, 그 앞으로 반쯤 펼친 책 모양을 한 격자무늬 나무판 여러 개가 세워져 있다. '저게 뭐였지?' 하고 있을 때 검은 옷차림이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가 페트병을 살펴보더니 격자무늬 판 아래 앉았다. 그러고는 클럽보드에 끼워진 용지에 뭔가를 기록하는 듯했다. 뭘 하는 걸까. 궁금증과 동시에 저벅저벅 햇볕을 밀쳐내며 남자에게로 다가가서 물었다.
"뭘 기록하시는 거예요?" "쥐방울덩굴이 얼마나 자랐나 체크해요. 물도 주고."
나는 공원 직원이냐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낙동강 에코센터에서 진행하는 쥐방울덩굴 키우기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라고 한다. 자녀 동반 체험이며 아이들과 함께 와야 하는데 휴일이라 아이들이 놀러 가버려서 혼자 왔다고 했다.
이곳에서 걸어서 30여 분이니 2킬로미터 정도 되려나. 상류 쪽인 수관교 근처에 연두색 펜스로 둘러싸인 곳이 있다. 지난겨울에도. 재작년 봄에도, 코로나19가 오기 전부터 수풀을 무성하게 키우며 제법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꼬리명주나비 복원지'라는 푯말도 무심한 듯 서 있다 어떻게 나비를 복원한다는 것일까? 바람 송송 드나드는 펜스만 세워놓고서.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의문의 문이 활짝 열렸다. 남자의 말인즉슨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쥐방울덩굴만 먹고 사는데 쥐방울덩굴이 사라져 간다. 그러다 보면 자연적으로 명주나비도 멸종할 것이다. 그래서 쥐방울덩굴을 심어 명주나비를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천에 수많은 식물이 있건만 명주나비 애벌레의 먹이가 유일하게 쥐방울 덩굴뿐이라니. 오호통재라
전국에 많은 개체수가 서식하던 쥐방울덩굴이 하천 정비사업 등으로 낙동강 하구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쥐방울덩굴도 명주나비도 국외 반출 승인 대상 종이며, 생태계복원의 일환으로 낙동강 관리본부에서 꼬리명주나비 서식지를 복원하였다는 내용이 푯말에 새겨져 있었다.
다시 그곳을 찾아간 건 정확히 23일 후이다. 페트병은 자취를 감췄다. 단지, 여러 개라고 생각했던 격자무늬 판이 세 줄, 무려 스물다섯 개였다. 지난번에 남자가 있던 곳으로 비밀 요원이라도 된 양 조심스레 다가가 쥐방울덩굴이 얼마큼 자랐나 살펴보았다. 그새 30센티가량 자라 있었다. 좀 덜 자란 두 포기 옆에는 줄기를 고정했던 줄만 남아 있다. 체험 가족이 직접 만든 문패를 앞세우며 잘 자란 곳도 있고, 아예 개망초와 잡초가 차지한 곳도 있다. 두 번째 줄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줄로 들어섰을 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순간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분명 꼬리명주나비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명주나비는 날개가 명주明紬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하여 얻은 이름이다. 들판을 나는 모습이 우아하며 성질도 매우 온순하다고 한다. 뒷날개 꼬리 모양 돌기가 수려하고 꼬리 쪽의 붉고 푸른 무늬가 돋보인다. 너무 아름다워 국접國蝶 즉 '나라의 나비'로 지정하려 했으나 한반도 고유종이 아닌지라 끝내 지정되지 못했단다.
날개 바탕색이 미색인 수컷이 날아다니다 낮은 풀 위에 앉았다. 흑갈색 바탕 날개를 가진 암컷들은 조금 더 위에서 바람을 타고 논다. 꼬리의 붉은 무늬가 꽃잎처럼 살랑거린다. 나도 덩달아 들떠 오른다. 옆으로는 쥐방울덩굴이 내 키보다 한 뼘이나 더 높은 격자무늬 판을 타 넘으며 무성하게 잎을 달고 있다. 하트 모양 이파리에 명주나비가 간격을 두고 다섯 마리나 매달려 있다. 암컷이 위로, 수컷이 아래에 매달려 사랑 중인 커플도 있다. 암컷이 위? 찾아보니 명주나비는 짝짓기할 때 다른 곤충과 달리 암수 위치가 다르다.
나비가 앉아 있는 잎 뒷면엔 노랗고 좁쌀 같은 알이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듯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흘렸다. 다행히 무음이라 안심하며, 혹여 날아갈까 살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팔을 뻗어 코앞까지 다가가도 걱정과 달리 무딘 건가. 놀라지 않는다.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까만 몸통에 노란 점의 가시, 머리 위쪽으론 한 쌍의 돌기가 있는 애벌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가 잎사귀를 잡아먹고 있었다. 화들짝 뒷걸음질 치며 스멀스멀해 오는 목덜미를 자꾸만 손으로 훑여냈다. 다시 보니 여기저기에 애벌레들이 포진해 있었다. 멀찍이 물러서서 '애벌레 씨, 개망초도 먹어봐요. 토끼풀은 얼마나 맛있게요.'라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조차 떨었다. 저도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애벌레 무섬증이 있다는 것을.
오는 길에 연두색 펜스가 설치된 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쥐방울덩굴이 펜스를 감아 오르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것인가. 그저 수풀만 무성하다고 생각했는데 귀한 쥐방울덩굴이 자라고 있다. 에코 센터 담당자에게 알아본 바로는 이곳은 명주나비 보존지역이다. 내가 격자무늬 판이라고 한 것은 쥐방울덩굴이 자라며 타고 올라오는 활착 구조물이었다. 또 한 가지, 운 좋게 보았던 놀라운 광경엔 커다란 비밀 아닌 비밀이 있었다. 그날이 마침 200여 마리의 명주나비를 방사한 날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비로운 풍경이다. 체험 초기에는 애벌레를 이식했는데 지금은 성충을 이식하고 있다고 한다.
명주나비의 아슬아슬한 생존법은 쥐방울덩굴이 가진 독성을 취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종을 이어가기 위해 그야말로 잔인한 선택을 하고 실행했다. 애벌레가 아리스톨로크산(Aristolochic acid)이라는 독에 적응한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진화의 결과다. 오늘에 이르러 애벌레는 극단주의적 편식가로 태어나는 운명이며, 독을 삼키며 살아야 하는 고독한 순례자다. 천적의 공격을 받아도 독한 맛 때문에 뱉어버리거나 한번 맛을 본 이후에는 천적이 애벌레를 피해 다닌다니. 선구적 애벌의 본능인 모험에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애벌레는 순례의 끝에서 드디어 아름다운 나래를 펼쳐 자취를 남길 것이다.
몇몇 타 지자체에서도 명주나비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모 지자체에서는 쥐방울덩굴을 심었는데 기자가 취재 당시 쥐방울덩굴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꼬리명주나비 서식지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제초 작업을 했다나. 많은 예산이 한 방에 날아간 셈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끝으로 저기 쥐방울덩굴이 보인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쥐방울덩굴은 말라서 바스락댄다. 쥐방울처럼 작다고 해서 생긴 이름의 열매가 미니어처 놀이기구처럼 조랑조랑하다. 낙하산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벌어진 열매 안이 비어 있다. 어떤 것은 아직도 씨앗이 차곡차곡 박혀 있다. 어서 뛰어내려 땅에 다다라야 할 텐데. 나는 씨앗보다 먼저 계절을 건너 여름 가득히 명주나비 화접도를 그려 넣는다.
김숙자 poem315@hanmail.net
ㅡ멈춤도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