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6,39-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우리의 말과 판단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할 일입니다>
3월의 첫 주일입니다.
기승을 부리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옵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사순시기를 준비하면서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곧 우리의 ‘혀’와 ‘눈’을 통해서 ‘마음’을 보게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혀)에서 드러나고”(집회 27,4), “사람의 말(혀)은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낸다.”(집회27,6)고 말하며,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라고 말합니다.
또한 복음은 눈 속에 있는 ‘티’와 ‘들보’도 ‘마음의 곳간’에서 흘러나옴을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루카 6,45)
그러니 이제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찬미하오며, 우리의 ‘혀’가 “아침에는 당신 자애를, 밤에는 당신 진실을 알리나이다.”(시 92,3) 하고 화답송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마음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을 품으신 아버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1코린 15,57)고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2,14-15)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1코린 15,58)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시 13,6) 하고 영성체송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가 6,36-37)는 말씀에 이어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눈먼 스승의 비유', 곧 제 눈에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는 위선자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앞 장면과 연결해 볼 때, 결국 ‘판단하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단보다 앞서, 하느님의 '선의(호의, 자애)의 마음'(헤세드)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루카 6,43)
구약에서 ‘열매’는 주로 행동을 가리키고(이사 3,10; 예레 17,10;21,14; 호세 10,13), ‘나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거짓 열매를 맺고, 참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가시나무가 무화과를 내지 못하고, 가시덤불이 포도를 내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매’는 ‘혀와 눈’, 곧 ‘말과 판단’을 통해 드러나는 행실로, ‘나무’는 ‘마음의 곳간’으로 표현됩니다.
곧 ‘열매’는 우리의 입으로 하는 ‘말’과 눈으로 하는 ‘판단’으로 드러납니다.
곧 ‘마음의 곳간’에 선한 것이 담겨 있는지 악한 것이 담겨 있는지에 따라 말과 판단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말과 판단의 곳간이요, ‘말과 판단’은 마음의 열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열매인 말과 판단을 보면, 나무인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기에, ‘그리스도의 마음’, 곧 ‘호의의 마음’을 품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과 판단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몸으로 하는 ‘실행’으로 드러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하면서 '아버지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을 실행하는 것을 당신의 ‘일’로 삼으셨고, 오늘 복음의 뒷절에서는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라고 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의 ‘실행’이야말로 진정한 향기일 것입니다.
비록 홍수가 들이닥쳐도 떠내려가지 않는 반석 위의 집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일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삶이 당신 말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때깔만 그럴싸한 열매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으로 속이 꽉 찬, 좋은 열매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 · 샘 기도>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루카 6,42)
주님!
눈을 뜨고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저는 눈먼 이입니다.
보지 못하면서 보는 척 하지 말게 하소서!
보지 못하면서 타인을 인도하지는 더더욱 말게 하소서!
제 눈에서 들보를 빼내소서.
보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것이 제게는 들보이니, 제가 모른다는 것을 보게 하소서!
형제의 눈에서 티가 아닌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첫댓글 우리의 말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