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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몫
민 18:21-32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민 18:21-32 /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가져오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그들 몫으로 줄 것이다. 그리하여 레위인들이 만남의 장막에서 일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 22) 다른 사람들이 장막에 가까이 다가섰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23) 오직 레위인만이 장막에서 일을 볼 수 있으며 장막에서 일을 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것은 너뿐만 아니라 네 후손들도 영원히 지켜야 할 규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다 나누어 가질 몫이 있다 할지라도 레위인들에게는 돌아갈 몫이 없다. 24)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 여호와에게 바치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의 몫으로 준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 그들 몫을 나누어 갖는다 해도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는 까닭이다.' 25) [레위인의 십일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6) `레위인들에게 일러라. `이스라엘 백성이 내게 바친 십일조를 내가 너희의 몫으로 돌리며 그 중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 나 여호와에게 바쳐라. 27) 나는 너희가 이렇게 내게 바치는 특별한 예물을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 내게 바치는 곡식이나 포도즙틀에서 짜내어 내게 바치는 포도즙과 똑같이 여길 것이다. 28) 너희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나 여호와에게 바친 십일조를 너희의 몫으로 받아 다시 내게 특별한 예물로 바쳐라. 그것은 모두 아론 제사장의 몫이다. 29) 너희는 받은 예물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나 여호와에게 바쳐라. 30) 가장 좋은 것을 내게 바치고 남은 것은 너희의 몫이다. 농부가 농사 지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곡식과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내게 바치고 그 나머지를 자기들 먹거리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1) 아무튼 내게 바치고 남은 것은 너뿐만 아니라 너희 가족들이 먹거리로 어디에서든 먹을 수 있다. 그것은 너희가 만남의 장막에서 맡은 일을 하여 받은 대가이다. 32) 너희가 받은 예물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게 바치고 나머지는 너희가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내게 바치기도 전에 먹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거룩한 예물을 더럽힌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이 받을 몫으로 레위인들은 봉헌된 십일조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봉헌한 십일조는 대제사장 가문인 아론과 후손들의 생계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21-24) 십일조는 문자 그대로 자기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입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레위인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즉 레위인들의 봉급입니다. 레위인들은 성전과 제사에 관련된 일을 하지만, 땅을 분배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당시는 농경사회이기에 땅이 없으면 생계를 유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입니다(신 26:12). 경제가 어려울수록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앙심이 없으면 드릴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꼭 기억해야 할 십일조의 정신은 돈과 물질을 드리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와 사랑입니다.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25-32) 하나님은 십일조를 받은 레위인들에게 십일조에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26).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로 사는 레위인도 십일조의 규례를 지키게 하심으로 예외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받은 십일조 중에서 더 거룩하고 더 좋은 것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29-30). 2006년에 출간된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이채윤, 미래사)는 지금까지 10만 부 넘게 판매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에서 록펠러가 세계 최고의 부자와 최고의 자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록펠러의 재산은 현재가치로 약 395조원으로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재산(140조원)보다 2.8배나 많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간증하기를 십일조를 드림과 동시에 많은 돈을 구제하면서 오히려 재산이 더 많이 불어나는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치 않습니다(막 13: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적용: 당신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나요? 십일조를 드리면서 받은 축복을 이웃에게 간증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서 오래 갈 수 있다.”-도덕경. 애착이 심하면 영혼이 지치고 욕심이 과하면 만족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명예와 재물 그리고 내 몸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물으면 당연히 몸이 소중하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탐욕에 빠지면 이성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삶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적극 표현해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주어진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잘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설 교 >
십일조를 드려야 할 일곱 가지 이유
민 18:21-29 / 피영민 목사
서 론
제임스 윌리엄스라는 목사님이 1994년 크리스천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오늘날 십일조를 실천하는 세대는 세 곳에서 살고 있다. 첫째는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둘째는 노환의 어른들을 돌보는 Nursing Home, 셋째는 공동묘지다.” 이 글은 미국의 기독교에서도 십일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라는 사실을 풍자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잘 실천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실천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부모님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실천하기는 했습니다. 부모님이 하는 것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십일조에 대한 이론도 잘 모르고 실천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 기독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흐름을 볼 때, 미국 기독교의 방식은 언젠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먼저 믿고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물질 축복을 받는 원리를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십일조를 실천하게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기쁜 일이겠습니다만, 자녀가 열심히 번 돈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달에 새벽기도 강단에 약 500만원 되는 헌금을 한분이 하였습니다.
비닐봉투에 현금으로 담아진 헌금이었습니다. 한 권사님의 아들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직장이 바빠서 교회에 잘 나오지 못했는데 직장에 다니면서 2~3년 드리지 못했던 십일조를 계산해 보니 500만원 정도가 되었기에 그것을 현금으로 비닐봉투에 넣어서 권사님을 통해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권사님의 마음에 얼마나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비록 아들이 바빠서 교회는 잘 출석하지 못해도 그 마음 중심에는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수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그 이상도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일군들의 필요를 채워주심
십일조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군들에 대한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의 보수를 주는 재원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민수기 18장 20~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주셔서 회막에서 하는 일의 보수를 받게 하셨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땅의 기업도 없고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초 자원도 없기 때문에 십일조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지 않고, 오로지 회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라고 지정해 주셨기 때문에 나머지 지파의 십일조를 가지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십일조를 ‘주의 십일조(Lord's tithe)’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이 십일조를 사용할지라도 이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인들도 십일조의 십일조를 또 드렸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니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이 십일조는 목사나 교회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신 이 십일조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수로 먼저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가리켜서 아름다운 것이며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본문 29절을 보니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찌니라”고 했습니다.
거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아름다운 것이며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란 구약 시대에나 있는 원리지, 신약 시대의 원리는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일조의 행습을 인정하셨으며 칭찬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와 인과 신도 중요하지만 십일조를 드리는 행습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실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13~14절에서 신약시대에 복음전하는 사람들의 생계원리를 지정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구약시대에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의존해서 먹고 살았듯이, 신약시대에 복음 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 이런 원리를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원리를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여러분이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교역자들과 교회의 직원들이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원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의 십일조(Lord's tithe)입니다.
2.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
두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소유권자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편 24편 1절 말씀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의 주인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100%가 하나님의 것이라면서 왜 도리어 10%만 드리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이 말씀을 악용해서 십일조를 반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불평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보, 나에게도 시간을 좀 내주세요. 당신이 직장 생활하느라고 바빠서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주지않으니 집이 마치 호텔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자 남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 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 인줄 아시오? 당신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다 당신시간이 아니겠소?” 그러나 이런 대답은 아내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두 번이라도 식사를 같이 나누면서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지만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원하셨기 때문에 주일을 정하신 것입니다. 일주일 중의 하루만큼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십일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익도 100%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주시면 1원도 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이지만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100% 소유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특별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며 창조주가 되신다는 원리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3. 탐심을 경계하는 방편
세 번째로 십일조는 탐심을 경계하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성경은 탐심을 죄로 여깁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일 마지막 계명이 바로 “탐내지 말라”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도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을 경계합니다. 뿐만 아니라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로 여겨집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우리가 우상을 경계하듯이 경계해야 하는 죄입니다.
십일조는 정상적인 소유욕과 탐심을 구별하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수입이 조금 났어도 그것을 다 차지하는 사람은 탐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이 벌어도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탐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와 함께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십일조까지 모두 차지하는 사람은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우상 섬기듯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물질에 대한 탐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청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공을 다짐하며 평생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자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두 청년 중 한 사람은 목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업가 친구의 사업이 번창하자 처음에는 맹세한 대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수십억이 넘는 돈을 벌게 되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친구 목사님. 내가 젊은 시절에 자네와 맺은 언약을 취소하고 싶네. 내가 십만 원씩 십일조를 드릴 때는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는데 이제 몇 억을 십일조로 드려야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든다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잠시 기도하고 오겠다고 하며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친구가 수십억을 버니까 탐심이 생겨서 십일조를 안 하려고 합니다. 도로 십만원 십일조 하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십일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십일조를 깎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고, “하나님. 올해는 십일조를 더 많이 드리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리면 소득도 더욱 많아지고, 탐심도 경계하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4. 물질의 복을 주시는 원리
네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물질의 복을 내려주시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복을 받는 원리는, 마치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농사지을 때에 조금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많이 드린 사람이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헌금을 드린 결과입니다. 항상 모든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풍성하게 드리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넉넉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부자인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를 결성한 석유왕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어려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정도 넉넉하지 못했고 공부도 잘못했습니다. 머리 좋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극히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좋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단 한 가지만을 가르쳤습니다. “너는 십일조를 해라, 네가 십일조를 하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 아들이 된다.”
그래서 록펠러는 어려서부터 십 원을 벌더라도 일 원을 헌금하는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록펠러가 청년 시절에 교회 재무를 담당하였는데, 교회 형편이 어려워져서 빚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는 말씀 전하는 목사가 될 은사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세우는 종이 되겠습니다. 물질에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 록펠러가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했는데, 한번은 탄광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탄광이 이미 폐광이 된 상태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니 인부들이 몰려와서 임금을 달라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록펠러는 혼비백산하여 굴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리면 물질의 복을 주신다더니 이렇게 망하게 되었으니 어떡합니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록펠러에게 들려왔습니다. “조금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그 음성을 주의 음성으로 믿고 인부들을 설득해서 탄광을 더 깊이 파나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시커먼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석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석유정유회사를 세워가면서 결성한 것이 바로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입니다. 1882년에는 이 회사가 미국 석유 사업의 90%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후에 록펠러는 교회를 세우고, 재단과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등 사회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80명이나 배출한 시카고 대학이 바로 록펠러가 세운 대학입니다. 록펠러가 이룬 큰일들을 통해 그는 십일조 축복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신학교만 8년을 다녔습니다. 한국에서 3년, 미국에서 5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먹고, 살고, 입을 것을 모두 채워주셔서 지금까지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저는 어려운 중에서도 신학교 다닐 때부터 십일조 드리는 일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물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십일조를 시작하십시오. 지금도 어려운데 무엇을 더 드릴 수 있겠느냐고 생각될 때, 더욱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채워 주십니다. 자녀들이 물질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세요. 그러면 자녀들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말라기서 3장 10-1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을 금하시고 축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미완성 되는 것이 없이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십일조를 실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믿음을 강화하는 방편
다섯 번째로 십일조는 믿음을 강화하는 방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처럼 십일조를 통해 물질의 복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강화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Tithing)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쓰신 아더 핑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믿음을 양육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시금석이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내 호주머니를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과 장래와 내세를 모두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내 호주머니를 맡길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내가 마음과 눈과 입으로는 믿을 수 있지만 내 호주머니로는 못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진실된 믿음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믿음의 시금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영혼과 내세를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물질도 하나님께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 물질의 복도 주시고, 영혼의 복도 주시고 더 나아가 우리 믿음을 강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6. 예배를 풍성하게 하는 재원
여섯 번째로 십일조는 교회의 예배를 풍성하게 하는 재원입니다. 구약에는 주의 십일조(Lord's tithe)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는 세 가지 종류의 십일조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레위인들의 생계수단이 되는 주의 십일조(Lord's tithe)이고, 둘째는 절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는 절기 십일조(Festival tithe)입니다. 신명기 12장 17-18절을 보면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세 번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함께 모인 사람들이 먹고 예배드리기 위해 필요한 경비가 바로 절기 십일조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강화하고 풍성하게 하도록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저절로 준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도 준비해야 하고, 사역자들의 준비도 필요하고, 예배당 시설도 준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이런 일들에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당에 올 때에 부족하고 낡은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불평만 하지 마시고 그것을 위해서 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의 예배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예배가 더 풍성하고 강화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7. 구제와 선교의 재원
마지막으로 십일조는 교회의 구제와 선교와 봉사를 강화하는 재원이 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첫 번째 십일조가 주의 십일조이고, 두 번째는 절기 십일조이며, 세 번째 십일조가 바로 구제 십일조(poor tithe)입니다. 신명기 14장 28-29절을 보면 구제의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구제 십일조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쓰였는데, 오늘날의 교회도 역시 구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교구 사역자들이나 다른 성도님들을 통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님들을 발견하게 되면, 교회는 사회복지위원회와 다양한 구제 프로그램들을 통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이 분들을 돕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구제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광고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위원회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왕성하게 구제와 선교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우리가 드린 십일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처럼, 올해 우리 교회가 구제와 선교 사업에 더욱 힘써 범사에 복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 론
어떤 두 사람이 무인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며 걱정이 태산 같은데, 다른 한 사람은 느긋하였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 느긋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느긋하고 태평합니까? 우리가 이 무인도에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습니까?” 그러자 느긋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드리는 줄 아세요? 우리 목사님께서 꼭 심방 오실테니 난 걱정 없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교인은 교회에서도 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풍자입니다.
십일조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저 실천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도 십일조를 드렸고, 구약의 율법도 십일조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십일조를 통해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신구약을 통틀어 제정된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십일조를 실천하고, 우리 자녀들도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실천할 때, 가정도 부강하고, 교회도 부강하고, 국가도 부강해질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국가가 축복을 받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립니까
민 18:25-32 / 유관지 목사
오늘 본문에는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관한 말씀이, 29절, 30절, 32절 세 군데에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 29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거제는 제물을 들어 올려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것”을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은 “극상품”이라고 했고 「표준새번역 개정판」은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레위인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동시에 하나님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 봉헌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은 성숙한 믿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봉헌할 때, 아름다운 것을 드려야합니다.
지금 읽은 29절에서는 그냥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는 것은 구분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드릴 때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은 본문에 의지해서 세 가지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들의 답을 찾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질문은,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물질의 아름다운 것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시간의 아름다운 것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입니다.
첫째,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1851년 중국에서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홍수전(洪秀全)이라는 사람이 일으킨 난인데 한 때는 중국을 크게 위협했었습니다.
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데 크게 공을 세운 사람이 당시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영국의 고든(Charles George Gordon 1833~1885) 장군이었습니다.
고든 장군은 청렴하고 신앙이 깊은 신자였습니다.
영국 정부에서 고든 장군의 공로를 치하하면서 많은 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상금이나 다른 것들은 모두 사양했습니다.
그의 전투경력을 새긴 금메달 하나만을 받았습니다. 그 금메달에는 33회의 전투 경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고든 장군은 이 금메달을 아주 귀하게 여겼습니다.
고든 장군은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해외의 싸움터에서 보내다가 1885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전사했습니다. 고든 장군이 전사한 뒤 사람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그가 그렇게 아끼던 금메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고든 장군의 일기장을 읽다가 감동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영국이 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 굶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는데 고든 장군은 그 금메달로 맨체스터라는 공업지역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을 녹여 빵을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날 고든 장군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소중히 여긴 마지막, 그리고 유일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렸다
고든 장군은 예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자기가 가장 아끼는 금메달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을 드린 대표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 금메달보다 더 아름다운 메달을 상급으로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의 가장 귀한 것,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바치는 것을 하나님은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십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내게 있는 것을 모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입니다.
예수님은 이 헌금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눅 21: 1-4)
찬송가 가운데는 봉헌 찬송으로 분류되는 찬송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71장입니다.
이 찬송을 지은 분은 미국 목사님인데 이름이 좀 복잡합니다.
저드손 W. 반 데 벤처(Rev. Judson Van W. De Venter 1855-1939)입니다.
이 분은 음악과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오랜 갈등 끝에 자기의 취미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부흥전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결심을 기념해서 이 찬송가 가사를 작사했습니다.
이 찬송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을 반복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만 따라 가겠네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겸손하게 바치네 세상 복락 멀리하니 나를 받아 주소서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 바치네 크신 권능 충만하게 내게 내려 주소서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양심상 이 찬송을 도저히 부를 수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십일조도 온전히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순수한 마음이기는 하지만 찬송가 가사에 너무 문자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글로 번역된 문자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찬송은 헌신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이 찬송가의 ‘바치네’ ‘드리네’가 영어 원문 가사에는 모두 ‘surrender'로 되어 있습니다.
‘surrender'는 항복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주님께 완전히 항복합니다‘ 이런 고백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항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 찬송은 봉헌찬송이면서 동시에 헌신찬송입니다.
유명한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님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이 찬송을 지은 저드손 목사님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트리니티 신학교에 다녔는데, 저드손 목사님은 정기적으로 그 학교를 방문해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저드손 목사님은 탐파(Tampa)라는 곳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이곳이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동료들과 함께 저드손 목사님이 목회하는 곳을 방문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저드손 목사님의 헌신적인 삶에 대한 결단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던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항복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크게 쓰십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 대장(William Booth, 1829~1912)은 원래 감리교인이었습니다. 이 분은 이 세상의 악과 싸우는데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1887년 군대적인 조직과 제도를 갖춘 구세군을 만들었습니다. 구세군에서는 목사님을 사관이라고 부르고 계급을 부칩니다. 부스 대장이라고 할 때 그 대장은 군대의 계급이 아니라 교회의 계급입니다.
부스 대장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이 당신을 종으로 들어 쓰신 비결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하는 것을 신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부스 대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보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크게 쓰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9장에서 연보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6절과 7절을 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즐겨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런 마음을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이라도 마지못해 내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포장을 거칠게 하면 그 값이 떨어집니다.
오늘 봉헌 특송 시간에 일본을 대표하는 성악가 한 분이 찬양을 해 주실 것입니다. 봉헌 특송 시간에 그 분의 약력이 파워포인트로 소개되겠습니다만 뛰어난 기량을 가진,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임민철 권사님이 중간 역할을 하셨습니다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 저희 교회에 오셨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오늘 봉헌 특송은 귀한 찬송의 제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린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봉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칭찬 받고 크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물질의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의 소산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레위인들에게 주었습니다.
본문 앞의 12절을 보세요.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물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하나님은 그 가장 좋은 것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것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의 아름다운 것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348장은 ‘나의 생명 드리니, 손과 발을 드리니, 음성 드리니, 보화 드리니,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여러 가지를 봉헌해야 합니다.
예물, 물질은 그것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7: 21)라고 하셨습니다.
예배 가운데 봉헌 순서가 있습니다. 봉헌 순서는 여러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봉헌 특송이 있습니다. 찬양의 은사를 받은 이가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봉헌찬송을 부릅니다. 봉헌위원들이 헌금 상자를 들고 앞으로 나옵니다. 교역자가 그것을 받아 교회당 안에서도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옮깁니다. 봉헌기도를 합니다. 봉헌기도 뒤에는 찬양대의 후주가 있습니다.
봉헌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가지 순서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또 봉헌은 엄숙한 마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여러분, 봉헌 시간에는 ‘나는 나의 시간, 물질, 생명, 모두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약속하는 뜻으로 이 물질을 드립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땀 흘려 얻은 것 가운데에서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 땅을 기업으로 삼아 땀 흘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습니다.
그 소학 가운데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은 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족속으로서 다른 족속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가지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세요.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하나님은 그 레위인들이 바치는 십일조도 땀 흘려 일한 것과 똑 같은 것으로 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힘들게 농사를 지어 타작을 하고 포도즙을 생산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주님께 드리는 것이 귀한 것이라는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헌금을 할 때 꼭 새 돈으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세뱃돈을 줄 때 될 수 있으면 새 돈으로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바칠 때는 더욱 그러해야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들 가운데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해서 첫 거래, 첫 수익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물질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헌금 봉투를 대할 때는 참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청년의 직장생활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이 분의 사업을 축복해 주실 것이다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물질의 아름다운 것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셋째, 시간의 아름다운 것을 드리십니까?
감리교회에서 3년 전에 「새 예배서」를 펴냈는데 매우 잘 되었습니다.
이 「새 예배서」에서는 예배 용어도 많이 다듬었는데 예를 들면 성가대는 ‘찬양대’라고 부르고, 공식적으로 쓰는 성경용어는 「개역 개정판」을 쓰고, 이런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헌금’ 또는 ‘헌금 기도’는 ‘봉헌’과 ‘봉헌기도’로 통일한다. 봉헌은 단순히 물질만 드리는 것이 아니다. 참된 봉헌은 시간, 물질, 생명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산 제사의 의미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여기 ‘시간, 물질, 생명’ 이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참된 봉헌의 대표적인 것으로 시간을 제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시간을 바친다는 것은 시간을 예배 참석, 성경 읽기, 묵상, 전도, 교회 봉사, 주님의 이름으로 나눔과 섬김에 힘쓰는 데 사용하는 것, 이런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아름다운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바쁜 가운데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지금은 사업에, 직장 일에,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너무 바빠서 교회 일을 하기 어렵다고, 좀 한가해진 다음에, 나가서는 은퇴한 다음에 교회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교회에서 약한 부서 가운데 하나가 청장년선교회입니다.
청장년선교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청장년선교회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마음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에, 바쁜 때에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어야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바쁠수록 시간을 더 많이 내서 기도하기에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그 바쁜 것을 잘 감당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아무래도 새벽이 가장 귀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인이 문학 강연을 하는데 자기는 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귀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귀한 시간인 새벽에 시를 쓴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시간의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새벽기도회에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다음 주일부터 드리는 사순절 새벽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은 일 년 365일의 십일조입니다.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아니 목사님,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라는 뜻인데 365일의 십분의 일은 36. 5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순절은 40일, 주일까지 포함하면 46일, 많지 않습니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목사님, 성도들은 일주일에 하루씩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것만 해도 시간의 십일조를 충족하도 남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십일조를 드려야합니까?’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될 수 있는 대로 덜 바치기 위해 계산하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26절 끝부분을 보세요. “십일조의 십일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바칠 의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명하셨습니다.
사순절은 시간의 십일조의 십일조입니다.
집중적인 십일조입니다.
매주 십일조 헌금을 드린 성도들의 명단을 보면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는 청년들, 중고등부 학생들, 나가서는 유초등부 어린이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녀들이 또 십일조를 하는 것은 십일조의 십일조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는데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일 년의 십일조인 사순절을 잘 지키고, 하루 가운데 가장 귀한 시간인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십일조의 십일조, 그 가운데서 다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삼중 십일조입니다.
점수 중에 제일 좋은 것은 트리폴 에이입니다. 이것은 트리폴 에이 십일조입니다.
에이 플러스를 학생들의 은어로 ‘에이 뿔’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에이 뿔, 뿔, 뿔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더구나 올해의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는 대 성전 입당 준비기도회를 겸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대상 29장에 다윗의 감사기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11절에서 14절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만든 것이 찬송가 70장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예물을 주께 바치나이다”라고 되어 있지요.
바울도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짧지만 강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 주님이 주신 것, 주님이 내게 관리를 맡기신 것 가운데 일부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드리는데 아름다운 것을 드려야합니다.
거룩한 것, 구별된 것을 드려야 합니다.
목양의 성도들은 봉헌의 모범을 보이는 성도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 면들이 발견되어 당황하고 아쉬워 할 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참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은 어떻게 이 인원을 가지고 저런 성전을 지었느냐고 놀랍니다.
교회 신문을 받아보는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고들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도들의 모범적인 헌신과 봉헌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지금은 주보가 12면으로 되어 있는데 4월부터는 16면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 봉헌한 분들 명단이 한 면에 실리는데 그 때는 두 면으로 늘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봉헌의 모범을 보이는데 아름다운 것을 드려 더욱 모범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것을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고, 나의 모두를 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물질의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시간의 아름다운 것을 드리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드리자
민수기 18장 25-32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레위 지파를 선택하셨습니다. 다른 지파들과는 다르게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성막에서 봉사하며 제사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업는 레위 지파의 생계를 유지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유 중 십분지 일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려, 그것으로 레위 지파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 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일조를 받은 레위 지파에게 주시는 규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주신 십일조를 받은 레위 지파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 또 다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8: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만일 십일조가 단순히 레위 지파의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이라면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고백 입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표현이 십일조이며, 동시에 물질을 의지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들도 십일조 생활을 하도록 명령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는 성막을 위해 봉사하는 레위 지파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쓰였습니다. 이와 같이 또 다시 레위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제사장들에게 돌리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는 레위 지파의 생계를 위해 쓰였습니다. 또한 레위 지파의 십일조 역시 제사장 아론 가정을 위해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다는 느낌보다는 십일조를 사람에게 준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민 18: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받드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받드는 즙 같이 여기리니” 여기 ‘거제물’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거제’란 높이 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저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들은 예배 중 헌금 시간이 되면, 미리 준비한 봉투 안에 넣은 헌금을 머리 위로 듭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이 준비한 예물을 정성으로 드리는 고백을 시간을 갖습니다. 헌물을 머리 위로 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거제’ 입니다.
십일조로 바칠 곡물과 포도즙은 제단에 불태우지 아니하고, 두 손으로 높이 들어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의 의식을 행한 것이죠. 하나님은 십일조로 사용되는 제물들이 비록 제단에서 불태워지지 아니할지라도, 그것을 제사의 제물처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가 레위 지파의 보수로 돌아가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는 십일조를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바친 제물로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십일조는 결코 인간을 대상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임을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헌금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오직 레위지파만 제사장이었으나, 신약 시대는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 됩니다. 그 말인즉슨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하거나 물질적으로 어려운 주 안의 형제들을 돌보는 일에 우리의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받으신다는 사실 입니다. 기업이 없던 레위인들도 십일조의 십일조로 섬겼습니다. 레위 지파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핑계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땅도 없는데, 십일조 내야 합니까?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십분의 일을 드리라뇨?” 그러나 하나님은 레위 지파조차 십일조의 규례를 지키게 하심으로 십일조의 삶에서 예외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기업이 없던 레위인도 예외 없이 십일조로 그의 형제를 돕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통해 가난하고 어려운 형제들을 돕고 섬기는 일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민 18:29)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2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로 “아름다운 것”을 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아름다운 것’이란 원어로 ‘헬레브’란 단어가 쓰였는데 이 표현은 “최고의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 (The best)을 드리라는 말씀 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님, 저는 형편이 어려워서 누구를 도울 형편이 아닙니다. 제 형편이 좀 나아지면 돕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의 대다수는 자신이 써야할 곳에 먼저 쓰고, 나머지로 헌금 하겠다는 마인드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성경적인 물질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먼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우리가 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써야 할 곳에 쓰고 남는 것으로 헌금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중 돈이 남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질은 써도 써도 모자라기 때문 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부자인 것 같아도 백만장자도 여전히 자기는 돈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쓸만큼 쓰고 남은 것으로 헌금한다는 자세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께 바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3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민 18: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자 여기 보시면 우리 소유 중 아름다운 것, 즉 가장 좋은 것을 취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그 다음 표현이 중요합니다. ‘남은 것은…”이란 단어 보이십니까? 먼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 드리고 남은 것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소유가 많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가 적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물질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없던 레위인도 십일조에서 예외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좋은 것을 바치고 있습니까? 내가 쓸 것 다 쓰고 나머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내가 사용할 시간 다 쓰고 나머지 시간 주님께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리십시오. 헌신하십시오. 우리 삶의 가장 귀한 주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을 힘쓰십시오.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관계없이 주변의 형제들을 돌보는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고,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기쁨으로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