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좋은날입니다.
벼베기 잔칫날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진한 대추차를 음복했습니다. 너무나 떨렸거든요.
바깥 마당 진행에 별 경험이 없고 목소리도 작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감이 없어서 지난 3년간 민들레와 신난다가 모내기와 벼베기 잔치 진행을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하지 않으면 안될듯하였습니다. 대추차를 마시면 플라시보효과겠지만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배움터에 와서 만장을 챙기려고 본관 뒷편으로 가니 민들레가 벌써 챙기고 있었습니다.
명상실에서 명상을 잠시 한 후 나와서 더 필요한 것들을 챙기니 길놀이 시간이 되었네요.
휴일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지 동무들이 잠이 덜 깬 얼굴로 마지못해 풍물을 대하니, 유천이 이상태로는 교문 밖을 못나가니 운동장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갖자며 한 두 바퀴 돌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일을 도와주시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오신 노월이장님이 옆에서 같이 오셨습니다.
하늘은 더없이 높고 짙푸릅니다. 그 하늘 아래 황금빛 들녁을 지나는 만장과 풍물패들이 참 멋집니다.
배움터 논에 가니 이미 논 가운데 길을 내고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는 아버님들이 보입니다. 행복, 후마, 흰그림자, 동백, 서로별 모두 반갑고 고맙습니다.
길놀이를 하며 천지신명께 고하고 논앞에 모여 마음 모으기를 하였습니다.
벼에게 보내는 미안함과 고마움의 인사였습니다.
다음에는 노월이장님 인사, 한옥현 선생님 말씀, 그리고 민들레 가족과 한옥현 선생님, 할머니 할아버지, 노월이장님이 첫 벼 베는 의식을 해주셨습니다.
징소리가 울리고 신난다 모둠과 보리밥 모둠이 들어가서 양편에서 벼베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스컹크도 와서 함께 해주었습니다. 일이 있어 못올 것 같다는 로견도 오고요. 졸업생 준서도 함께 했습니다.
정말 모두 열심히 베었습니다. 풍물하던 사풍인들도 마치고 논으로 들어왔어요.
구정과 향원, 해리가 새참을 준비해 오고, 논에 들어와 함께 낫질을 했지요.
나락들이 한 아름씩 깔리고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콤바인 기계와 기계 주인 두 분이 오셨습니다. 함께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저께 논에서 먼저 뵈었었는데 우리 벼를 보시며 감탄을 하며 당신도 무농약 벼농사를 지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었지요. 농주 길가에 있는 민물장어집 사장님이세요. 천천히 하라며 서두르지 않으시는 모습이 참 고마웠습니다.
드디어 벼가 다 베어지고 콤바인에 넣는 탈곡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장님과 노월이장님이 콤바인 앞에서 볏단을 받아 기계에 넣어주셨지요.
11시 반경 드디어 모두 탈곡이 마무리되고 로견의 트럭에 탈곡한 나락이 부어졌습니다.
양을 보니 작년의 절반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입니까. 고맙고 고맙습니다.
즐거운 새참 시간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마무리 후에 모시는 새참은 참 맛납니다. 푸짐한 새참이 점심이나 다름없습니다.
새참이 마무리되고 콤바인 주인분들과 작별 인사를 했지요. 내년 논갈이, 벼베기 모두 함께 하시겠다니 참 고맙습니다.
배움지기들과 천지인들은 1층의 짐들을 정리하기 위해 자리를 뜨고, 모두들 뒷정리를 위해 자리를 뜨니 논 주변은 다시 고요하게 되었네요. 저는 아빠 몇 분들과 작은집으로 가서 나락 널기를 하였지요.
나락을 널고 배움터에 돌아왔는데 한옥현 선생님이 안보였습니다. 함께 점심 드시자고 했는데, 어디에 계신가 전화드리니 배불러서 악기들만 내리고 그냥 댁으로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배움터에서 공양간 뒷정리를 마친 구정과 목공실로 가서 나락 담을 포대를 찾고 이따 걷기순례 때 만나자고 하고 작별했네요.
밖에 나서서 아까 먼저 떠나신 노월이장님댁을 찾았습니다. 노모 점심 챙겨드려야 한다며 서둘러 가셔서 새참을 못드렸거든요. 챙긴 새참을 드리러 댁을 찾았는데 구순할머니만 계셔서 인사드리고 새참드리고 나왔습니다. 노월 이장님이 아침 일찍부터 참 애쓰셨습니다.
벼베기라는 큰 잔치가 무탈하게 마무리되어 참 안도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늘과 땅과 우리 사랑어린사람들이 합작한 연유로 되어진 것이지요.
참 고맙습니다.
당신이 계셔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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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움터 가까이에는 배움지기들이 '모퉁이 천사'라고 부르는 분이 삽니다.
3년전쯤 모내기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쓰고 논으로 쫓아와서
너무 시끄럽다며 화를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이 말을 심하게 했는지 앞에 있던 로견도 그에 응수하게 되고 실랑이가 붙었었지요. 제가 뛰어가서 말리고 그분께 사정을 알렸지만 통 들으려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하여 그분이 돌아간 적이 있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배움터에 악기 소리가 울리면 민원을 넣는 사람이 그 청년이더군요.
그때를 기점으로 배움터에서 바깥 마당이 펼쳐질 때면 선물 들고 찾아가서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전날 찾아가니 마침 그 분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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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벼베기 때에 손수 벼를 못 베고 콤바인이 서둘러 15분만에 벼를 다 베고 끝나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배움지기 살림 모임 때에 반성의 시간을 가졌었지요.
그리고 한 해가 흘렀네요.
논농사꼭두쇠를 어쩌다 맡게 되었는데 그게 일을 몰라서 덜컥 맡았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3년 내내였네요.
모르니 자꾸 물어보게 되고 그렇다고 금방 이해를 하지도 못하니 몸이 고생하고 다른 배움지기들도 고생한 세월이었어요.
올해도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벼베기날을 준비하며 콤바인 해주실 분을 찾는데 참으로 애를 먹었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는데 스컹크가 연이 되어서 이번 벼베기에 함께 할 콤바인 주인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가 이루어지는게 그냥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노월이장님과 장어집 사장님께, 그리고 모든 수고하신 분들께 참 감사합니다. 뜨거운 가을 볕에, 잠시 움직였는데 뻐근해지는 몸에, 이후 일정 등등 생각에.. 온전한 마음으로 나락들을 보내드리고 있지 못 하구나 하는 알아차림을 여러분들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에게 빛을 보내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