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힘을 다해 달렸던 그 때 그 시절
지금 MBN방송에서 뛰어야 산다라는 프로를 보는 중이다
10km 달리기를 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예전 스타플레이어였던 선수들 모습이 보인다
또 내가 모르는 연예인들도 끼어 있다
허재, 양준혁, 최준석, 골때녀의 심으뜸
여배우 방은희, 슬리피의 모습도 보인다
나이 탓인지 숨을 헐떡이며 걷기도 하고 그런다
방금 허재가 반환점 5km를 돌았다
심으뜸이 옆에서 함께 뛰어주고 있다
그러면서 41분이 걸렸다고 한다
10km를 완주하고 나면 1시간 반 이상은 걸릴 듯하다
숨을 헐떡거리며, 입에서 쇳내, 핏내가 난다고 한다
허재가 하는 소리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
방금 장동선이라는 친구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뭐하는 친구인지는 모르겠다. 52분59초
이장준이라는 친구가 간발의 차이로 2위를 했다
3위는 한상보라는 친구인데 53분10초
그러면서 나 군대생활 할 때 생각이 났다
훈련이 빡세기로 유명한 맹호부대에서 복무했다
특별히 120명의 서대문구 병력 중에서 차출되어
아주 강하게 8주간 특별 훈련을 받았다
사단 내에서 우리들을 8주병이라고 불렀다
제대로 강한 훈련을 받은 신병들이란 뜻이다
잘 뛰고, 잘 쏘고, 똑소리나는 엘리트 병사들이란 뜻이다
5가지의 맹호 합격 수준이란 것이 있었다
공수여단장 출신의 김종구 사단장이 와서 만든
병사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합격수준이었다
기존의 병사들에게 적용해 보니 합격률이 30% 남짓
신병을 뽑아다 훈련을 시키기로 하였다
재수없이 우리 동기들이 120명 차출됐다
논산 26연대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나서
101보충대를 거쳐 바로 수기사 신병교육대로 갔다
경기도 가평 현리에 위치한 맹호 사단본부 옆
망월사 앞 101보충대에서 대학동기를 마주쳤다
과는 다르지만 함께 기차통학을 했던 친구
이미 상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내가 수기사로 떠나기 전 날 밤 위로를 받았다
수기사가 훈련이 아주 빡세기로 유명하다면서
"설마 죽기야 하겠냐?" 그런 얘기를 해 주었다
깐 포도와 오징어포 그리고 막걸리를 받아 주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과외수업을 받았다
저녁에는 식사 전에 수색대 쪽으로 꽤 긴 거리를
몇 바퀴씩 뛰었다. 낙오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기록사격과 기록구보를 했다
자동화 사격장에 가서 20발 사격.
최소 14발 이상을 맞춰야 했다
기록구보는 30kg 완전군장을 지고 10km를 뛰었다
포병여단 쪽으로 언덕을 넘어 자동화 사격장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처음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뛰다가 목이 말라 길가의 도랑물을 퍼 마시는 판이었다
30kg무게를 채우기 위해 인근 조종천에 가서
커다란 돌짝을 주워다 겨울내의에 싸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쌀가마 무게를 재는 앉은뱅이 저울에 달았다
무게가 모자라면 모래주머니를 더 달아 주었다
그렇게 무거운 군장을 지고 10km를 55분 안에
뛰어 들어와야 비로서 합격이었다.
처음에는 낙오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졸업할 때 쯤에는 모두 씩씩하게 완주를 하였다
물론 16명의 동기들이 후송을 가고 난 후였다
5가지의 맹호 합격 수준이 무지하게 힘들었다
1. 사격 20발 자동화 사격장 70% 이상 명중
2. 구보 30kg 완전군장을 지고 10km를 55분 안에 완주
3. 국군 태권도 5개 동작 시연
4. 총검술 16개 동작 시연
5. 정훈 필기시험 80점 이상
합격을 하면 파란 바탕에 천연색의 호랑이 상이 그려진
커다란 군장을 받아 가슴에 꿰매어 달고 다녔다
합격을 못하면 외출, 외박, 휴가가 일체 금지됐다
김종구 사단장의 사단구호는 일기당천이었다
부대마다 인근의 가장 높은 고지를 지정해서
일기당천고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기합을 줄 때 완전군장으로 그 곳을 왕복시켰다
그 곳에는 딸딸이 전화기가 비치되어
본부대와 통신을 해서 올라간 걸 확인시켰다
우리 120명의 동기들을 담금질 하기 위해
신병교육대의 다른 기능은 모두 다 정지시키고
우리 8주병들만 교육을 했다
1개 분대당 1인의 조교가 배당됐다
나머지 주특기들은 교육을 면제받고 곧바로 자대로 갔다
120명 중에 16명이 후송을 갔다
104명이 8주병 코스를 수료하고 자대배치를 받았다
제대병을 위한 교육장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아
졸업하던 날 배가 터지도록 돼지고기를 먹었다
졸업식날 사단장이 2시간을 세워놓고 훈시를 했다
기간병 조교들 중에서 2명이 졸도를 했다
조교들은 우리 졸업 후 모두 포상휴가를 갔다
기간병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의미로 뭉쳐서 배치됐다
기갑여단, 1여단, 26여단에 30명씩, 수색대대에 14명
그리고 자대에 가자마자 맹호 합격수준 시범을 보여야 했다
우리 동기들 30명이 기간병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이후로 자대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기록구보를 했다
우리 동기들은 모두 씩씩하게 다들 잘 뛰었다
나도 물론 힘들었지만 거기에 끼어 씩씩하게 뛰었다
매일 아침마다 구보도 4km씩 뛰었다
오늘 MBN의 뛰어야 산다 프로를 보며
내가 군대생활 하던 시절 얼마나 잘 뛰었는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30kg 완전군장을 치고 10km를 55분에 완주
오늘 허재가 5km를 41분에 돌았다
맨 몸으로 운동복을 입고 뛰었다
양준혁은 그 보다 훨씬 뒤쳐져서 들어왔다
20대의 1위 선수가 10km를 53분 걸려서 뛰었다
물론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런닝화를 신고 뛰었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싶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시절 겪었던 고생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고교동문회 산악회나 동기 산악회에 열심히 나갈 때
늘 선두에서 치고 나갔던 일이 생각난다
선후배나 동기들이 그랬다
내 산행실력이 특A급이라고...
우리 맹호부대에서는 유격훈련도 매년 3주씩 받았다
반은 죽다가 살아나는 고된 훈련이었다
모두 1974~1976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다
아침마다 달리고 매주마다 기록구보를 하고
고된 훈련을 받으며 몸이 많이 단련됐다고 본다
내가 오늘날까지 그런대로 버티는 것이
군대생활 3년동안 받은 고된 훈련 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예하 포병여단의 주요 장비다. 지금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막강한 자주포다.
예하 3개 여단에 배속된 4개의 장갑차 대대의 주요 장비. 보병 전투병력을 이동시킨다
예하 3개 여단에 배속된 5개 전차대대의 주요 장비다. 지금은 K2 흑표전차로 교체 중이다
첫댓글 그시절 그훈련을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젊은 패기 였습니다.
저도 21사단 수색중대에서 겨울에는 밥만 먹으면 그늠에 구보 총검술 태권도 ! 겨울이 지나면 비무장지대 잠복 근무를 했지요 낮엔 잠자고 펀치볼 비무장지대 마의계곡 김일성 고지 내려보이는 곳에서 그당시 가 68 김신조 때문에 노래도
불렀지요
그러셨군요
맹호사단은 5군단 소속이었는데
앞쪽의 3사단과 6사단이 휴전선 경계근무
그리고 그 뒤에 우리 수기사와 8사단이
연중 훈련을 하며 전쟁준비를 했지요
엄청 빡센 군대생활이었습니다
3사단이 유명한 백골부대
6사단도 유명한 청성부대
8사단이 행군으로 유명한 오뚜기부대
수기사는 한국 유일의 기계화 사단으로서
기갑장비가 아주 많았습니다
탱크, 장갑차, 자주포 등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청솔님의 글을 보면 참 기억력이대단하신 것 같네요.
50여년 전의 일들을 아직도 소상히 기억하시군요.
그 당시 군 생할은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68년 7월 입대해 71년 7월 제대, 35개월 보름 군생활 했지요.
제가 입대할 당시만해도 28개월 군생활 이였는데, 김신조 사태로
군생활이 조금씩 연장되어 가더니, 그렇게 되더군요.
저는 대학졸업 후 늦게 입대한 케이스라, 한창 밑의 동생들과 함께 했답니다.
신병훈련은 안동 예비사단 2기생으로 훈련장에 잔디를 심어가며 훈련을 받았죠.
신병교육 후엔 공병학교에서 6주간 위탁교육 온 해병대 기간사병들을 상대하며,
향도로 엄청 어려운 내무반 생활을 하기도 했구요.
본대로 배속되기전 대기부대에 2박 3일 인가 있는 동안도 엄청 고생한 기억이...
대기대엔 마침 영창에서 풀려나온 고참병들이 들어와 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본대로 배속된 부대가 부산 문현동에 있는 1203 건설공병단 703중장비중대 였고,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50여대의 중장비 운영관리와 영남지역 일원 군부대에 보급해줄 깬돌과 모래를 채취하는
채석장 및 채사장 운영관리 등 중대한 임무로 하루12시간 이상의 공병행정생활을 하였답니다
공병대에서 근무하셨군요
저는 장갑차부대 정비과에서
차량계를 봤습니다
63대의 M113 APC 수리부속품을
조달하는 업무였지요
수송부와 한 내무반을 쓰는 바람에
내무생활이 매우 고달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세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