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럽, 11월 미 대선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도 대비해야(라나 프루하, FT칼럼니스트)
O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인들의 관심은 온통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만 쏠려 있음. 물론,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 기본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걸고 러시아에 대해서도 “자기 구역에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대비해 만반의 채비를 갖추는 건 당연함. 허나, 바이든 대통령이 고령 이슈에도 불구하고 집권에 성공하거나, 혹은 그가 중도 하차할 경우 그 자리를 대신하는 다른 후보가 승리하여 민주당이 집권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함.
-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허 특검은 최근 특검 보고서를 발표하고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유죄를 입증할 만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불기소 입장을 밝혔으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날짜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묘사했음. 그리고 이를 계기로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중도 하차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음.
- 허나,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글로벌 통상에서는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를 추구하고, 국내경제에서는 낙수효과보다는 기업권력과 폭리 제한에 초점을 맞추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 핵심 정책을 강력하게 계승할 인물이 후보로 뽑힐 것이며, 서부 출신 중도파보다는 중서부 출신 포퓰리스트 성향의 인물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음.
- 대다수 유럽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 이후 빠른 경제 회복을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저조한 것에 대해 나이가 아니라 정책 메시지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바이든 행정부의 포스트 신자유주의 정책이 일반 국민들의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임.
- 미국 유권자들이 비록 워싱턴 정치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 혹은 로버트 비요크 같은 법학자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는 있어도, 탐욕과 권력의 집중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지난 2년 동안 기업 이익의 폭증과 인플레이션을 온몸으로 체감했음.
-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바로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할 것임. 지난 2018년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다수의 민주당 후보들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가 부자감세 정책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한 데 힘입어 승리를 거둔 바 있음.
- 그리고 최근 여론조사 결과, 정부 정책보다 기업의 탐욕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보는 응답률이 절반을 넘었음. “기업이 탐욕을 부리고 있다”라고 답한 응답률이 1년 전에 비해 15포인트나 상승했고, 민간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 때문에 인플레이션 발생했다는 응답률은 59%까지 증가해 재정부양책을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보는 응답률과 동일하게 나타났음.
- 이러한 여론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고 민주당은 11월 대선을 위한 필승 메시지로 이 점을 파고들 것임. 또한, 나토 탈퇴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부 공약들로 인해 공화당 온건파나 무당파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아닌 후보’로 유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것 역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임.
- 이렇게 해서 만일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유럽으로서는 미국의 나토 탈퇴에 대해서는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만 다른 정책입안 부분에서는 민주당이 도모하는 새로운 포스트 브렌트우즈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임.
- 허나, 지금까지 유럽의 대응은 전혀 매끄럽지 않았음. 일례로, 현 시류에는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등이 표방하는 반독점 ‘뉴 브렌다이즈’ 학파의 정책이 EU의 기술주의적 접근 방식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주효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음.
- 또한,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접근법에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디지털 흐름이나 환경 및 노동 기준 등의 분야에서 기존 접근법에 도전하는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행보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
-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10% 기본관세를 부과하는 일은 없겠지만 운송 및 물류, 핵심 광물,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무역조치나 연대에 참여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은 존재함. 또한 중국의 중상주의 정책에 맞서는 공동 대응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는 압박도 거세질 것임.
- 지리적으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고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도 그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EU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변화의 바람이 이미 불기 시작했기에 이제 유럽 정치인들도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며, 트럼프 2기와 포스트 나토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바이든 2기도 대비해야 할 것임.
출처: 파이낸셜 타임즈